형사재판의 재판장으로 근무하던 어느 해 겨울 경에 판사실로 전화가 왔다.
절차적인 협의를 하기 위해 변호사님이 걸어온 전화이겠거니 하고 받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고등법원 부장판사님으로도 근무하셨던 변호사님은 몇 개월 전에 우리 재판부에서 판결한 사건에 대하여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기 위해 전화를 하셨다고 하였다.
형사재판을 맡자마자 사건들을 살펴보니 가장 중요한 사건이 뇌물죄로 기소된 고위직 공무원 사건이었다.
구속된 피고인은 무죄를 주장하고 있었다. 돈을 주었다는 사람은 피고인에게 청탁을 하기 위해 몇 천만 원을 가방에 넣어 중간 전달자에 주었고, 중간 전달자는 이것을 주차장에서 피고인을 만나 피고인의 차량에 실어 주었다는 것이다.
보통 뇌물죄의 경우에 범행 실행 장소와 상황이 매우 중요하다. 전달자가 주장하는 뇌물 전달 장소나 상황의 묘사가 실제의 모습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에는 무죄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범행 장소가 사무실이라면 그 사무실 구조, 돈을 운반한 포장 용기가 사과박스· 백화점 종이 백· 골프용 옷 가방이었다면 그것에 들어갈 수 있는 돈다발의 총액 등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의외로 뇌물 전달자의 진술에 허점이 드러나기도 한다. 중간 전달자가 돈을 전달하지 않고 가로채는 배달사고인 경우도 있다. 그 전달자가 증인으로 법정에서 증언을 하게 되는데 재판장으로서는 검사의 신문 내용에만 의존하지 않고 더 자세히 그때의 상황을 묘사하도록 물어보게 된다. 전달자와 피고인 사이에 너무나 상반되는 말이 법정에 난무하게 되는데 그 거짓말 속에서 사실을 캐어 올리기 위해 온 힘을 기울이게 된다.
그 사건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하였다. 그 무렵 다른 부장판사님 2~2분과 함께 식사하던 자리에서 그 재판의 고충을 털어놓았더니, 그 부장판사님들은 "그 사건은 당연히 무죄지. 검찰이 그 당시 뭔가 사연이 있어서 무리하게 기소했지"라고 하였다. 재판의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재판부에 영향을 끼치지 않기 위해 그 부장판사님들은 함구하여 재판의 독립을 지켜 주셨다. 입이 간지러웠을지라도...
그 변호사님은 피고인과 친한 친구이어서 재판할 때마다 법정에 와서 재판을 지켜보았다고 한다. 1심 무죄, 2심, 3심 모두 상소 기각되어 무죄가 확정되고 그 다음날에 나에게 전화를 한 것이다. 1심 재판을 잘해 주어서 결국 무죄를 받게 되어 감사 인사를 전한다고 하셨다. 그 변호사님이 사건이 모두 끝나고 나서 전화를 주신 것도 재판의 독립을 위한 배려였다고 느껴진다.
정의로운 재판을 위한 부탁과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을지라도...
법무법인 서평 일산 분사무소
대표변호사 장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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