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년 2월 말이 되면 재판부의 교체가 이루어진다.
2년 내지 3년 단위로 재판부가 교체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 해도 민사합의부 재판장을 맡게 되면서 종전 재판부로부터 사건의 메모지를 전달받았다. 전 재판부의 재판장이 친절하게도 그동안 심리하였던 사건들 중에 특이한 것들에 관하여 몇 가지를 설명하여 주었다.
그중에 생각나는 사건이 있다. 청구금액이 몇 백억 대인 사건이었다. 사건의 기록은 두껍지 않았다.
전 재판부에서 변론을 종결한 후에 판결에 관한 합의를 하였는데 주심 판사와 재판장이 의견이 달랐다고 한다. 외국회사와 관련된 사건으로서 약정서의 문구를 어떻게 적용, 해석해야 하는지에 관한 것이 쟁점이었다.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여 선고는 연기되어 있었다.
내가 합의부 재판장을 처음 맡았을 때가 생각난다.
배석판사와 사건 결론에 관하여 합의를 처음하게 되었는데, 만일 결론이 서로 다를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하고 걱정을 많이 하였다. 먼저 배석판사가 결론을 말하고 그 다음에 재판장이 결론을 말하는 순서로 합의를 진행한다.
결론이 아주 명확한 사건은 드물고 대부분이 쟁점마다 애매한 것들이 많다. 대체로 결론이 같게 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서로 토론을 하기 시작한다. 토론을 하다가 결론이 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러다가 재판부 판사들끼리 서먹해지는 경우도 발생한다. 대체로 기록을 다시 보고 와서 다시 합의하였다.
나는 전 재판부의 사건의 변론을 재개하여 당사자들에게 위 약정서가 적용되는 여러 경우에 관한 외국의 사례를 제출할 것을 요청하였다. 당사자들은 이 정도 서면을 써냈으니 결론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나겠지 하고 서로 생각했을 것이다. 서로의 주장이 논리적으로 모두 일리가 있었다. 여러 사건을 경험하다 보니까 당사자들 주장이 아주 엉터리인 것은 거의 없고, 그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고 수긍이 가는 것이 많다.
당사자 서로가 자신의 논리로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충돌할 때 재판부는 사례, 증거, 논리에 따라 심증이 이리저리 움직이게 된다. 사건 기록은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 같아서 재판이 진행됨에 따라 증거나 논리적 설득력에 따라 재판부의 고민은 심해진다.
몇 차례 변론기일을 진행하고 주심 판사와 합의한 후에 판결을 선고하였다. 관심 있게 그 사건의 항소 여부를 살펴보았는데, 항소되지 않았다. 누군가 나에게 기억나는 사건이 있냐고 물어봤을 때, 나는 그 사건이 생각났다.
청구금액이 너무 컸고, 결론에 관하여 많이 고민했고, 다행히도 항소되지 않았기에.
법무법인 서평 일산분사무소
대표변호사 장진훈
로톡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콘텐츠 내용에 대한 무단 복제 및 전재를 금지하며, 위반 시 민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