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검증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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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검증의 추억 

윤인섭 변호사


안녕하세요 윤인섭 변호사입니다.

호주에 살고 있는 사촌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소덕동 이야기편이 방영될 당시 재미있다고 멀리에서 추천을 해왔습니다.

최근 뒤늦게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8편, 즉 소덕동 이야기 2편을 보다보니 원고 대리인의 신청에 의하여 소덕동 현장검증이 진행된 장면이 나왔습니다.

이를 보며 법무관 1년차때 다슬기 불법채취에 대한 탐진강으로 현장검증을 갔던 기억이 자연스레 떠올랐습니다. 그동안 여러 번의 현장검증 경험 중 단연 기억에 남는군요.

전남 장흥군 장흥읍을 관통하는 탐진강입니다. 아름다운.

[출처 장흥군청 홈페이지]

피고인은 모두 3명이었습니다.

갑은 다슬기 채취 허가기간이 만료된 후에도 전남 장흥군 장흥읍을 흘러내려가는 탐진강 지류에서 다슬기를 채취했다는 이유로 내수면어업법위반죄로 기소되었습니다.

을은 갑은 범행에 관여한 사실이 없다는 진술을 했다는 이유로 범인도피죄로 기소되었습니다.

병은 을이 그러한 진술을 하도록 교사하였다는 이유 등으로 범인도피교사죄 등으로 기소되었습니다. 자기 혼자 범행을 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죠.

저는 병의 변호인이었습니다.


여기서 잠깐, 현장검증이 정확히 무엇인가요

검증이라 함은 법관이 시각, 청각 등 오관의 작용에 의하여 직접적으로 사물의 성상, 현상을 검사하는 것입니다.

출처 사법연수원 법률실무과목 교재

예컨데, 토지의 경계확정사건이나 건물인도청사건 및 토지인도청구 사건에서 계쟁토지나 경계선 상황을 본다든지, 교통사고 사건에서 사고현장상황을 보든 등을 말하지요.

평소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살인사건의 현장검증 장면을 많이 접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출처 영화 <암수살인> 중에서

2009. 3.에 훈련소에서 법무관 근무지 지원신청을 받았는데, 대전 출신으로서 대전충남과 서울 말고는 어디에도 살아본 적이 없던 저는 아무 생각 없이 남도의 낭만을 그리며 전남 장흥을 지망하였고,

그때나 지금이나 격오지인 장흥을 스스로 지원한 유일한 법무관이었던 저는, 1지망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연히 장흥으로 배치되었습니다.

법무관 격오지 발령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법무부에서 많이 좋아했다는 후문입니다.

기초군사훈련을 마치고 숨도 돌리기 전에 2009. 4. 1.자로 장흥으로 부임하게 되었는데 3. 31.에 주임님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부임하자마자 너무 죄송한데 4. 1. 새벽 4시에 탐진강에서 형사사건 현장검증이 있으니 첫 출근 전에 반드시 늦지 않게 탐진강변에 출석하라"고 말이지요.

"법무관님이 자가용이 있으셔서 정말 다행"이라는 말과 함께 좌표를 찍어주셨는데, 네비에 쳐봐도 장흥읍에서도 한참을 더 탐진강 지류를 따라 들어가야 하는 정체불명의 장소였습니다.

오밤중에 밤을 새워 차를 몰아 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고속도로를 지나 광주광역시의 불빛을 잠시 지나쳐 다시 칠흙같은 어둠만 있고 휴대폰조차 안 터지는 구간을 지나 희미한 불빛이 보이는 장흥읍에 다다렀지만 머물 곳도 없고 머물 시간도 없이 네비를 따라 그 좌표에 다다렀습니다.

포장도 안된 천변의 강둑을 차를 몰고 가고 있는데 물안개가 너무 자욱하여 시야확보도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좌표에 도달하였는데 아무도 없었습니다.

칠흙같은 어둠과 고요가 무섭다기보다는 혹시 내가 잘못 찾아왔으면 나 때문에 현장검증이 무산될텐데 하는 걱정이 앞섰고, 어디다 전화를 걸어서 맞게 와있는지 확인할 길도 없어서 한참을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습니다.

곧이어 제 피고인도 등장했습니다. 피고인은 상당히 결연한 태도였는데, 의리!, 남자답게!를 강조하는 분위기가 역력한 분이었습니다.

검증현장에서 증인신문 등을 하는 경우 증인 등이 검증시작 전에 현장에 미리 나오도록 점검함으로써 검증 현장에서의 생생한 증언 등을 들을 수 있도록 한다.

출처 사법연수원 법률실무과목 교재

아직 기록도 제대로 보지 못해서 내용도 영문도 몰랐지만, 사법연수생 시절 첫 국선변호 사건에서도 전치 8주의 중상을 입힌 피고인에게 무죄를 받아준 몸이라며 너무 걱정말라고 피고인에게 호기를 부리기도 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로부터 한 10분 정도 지났었나, 저 혼자 기준으로는 피고인과 둘이서 어색하게 상당히 긴 시간이 지났을 무렵, 멀리서 물안개 사이로 차량 불빛이 하나 보이더니 곧이어 도착한 차량에서는 판사님, 참여관님, 실무관님, 운전주임님 등 법원측 분들이 내렸었지요.

마치 정글 한복판에서 잠복하다 조용히 아군들을 조우해서 반가운 상황처럼 밤안개 속에서 기분이 묘했네요.

무변촌, 즉 변호사가 없는 동네에서 유일한 변호사로서 유일한 형사단독판사님인 그 분을 앞으로 1년 동안 뵈어야 하는데 첫 인사는 강둑에서 나누게 되었습니다.

다들 하품을 하며 안개를 쳐다보고 있는데, 검사님은 왜 안 오시냐고 다들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는데, 그로부터 또 시간이 흐른 뒤에 드디어 검사님이 도착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1년간 뵙게 될, 장흥 유일의 공판검사님. 마찬가지로 강둑에서 인사.

곧이어 현장검증이 개시되었습니다.

제 피고인 병은 자신이 혼자서 다슬기를 채취했다는 주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슬기는 하나하나는 손톱보다도 작지만 다슬기 채취는 강바닥에서 하나가득 퍼올려서 자루에 쓸어담는 모양입니다. 몇 시간 작업하면 큰 마대자루 하나가득 다슬기가 담긴다고 하더군요. 그걸 짊어지고 간이 모터보트같은 곳에 싣거나 보트를 같이 끌고 다니며 강바닥 여기저기에서 작업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무게가 상당해 보였는데, 피고인 병은 이 모든 작업을 자신이 혼자서 다 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피고인은 격투기선수 효도르처럼 체구가 장대하고 단단한 체형이었기에 저는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하며 지켜보았죠.

우리가 강간죄나 폭행죄 등의 사건에 있어서도 피고인이나 피해자의 체구와 신장, 몸무게를 살피게 되는데 이러한 부분도 다 법관의 눈으로 살피는 것이니 넓게 보면 검증에 해당됩니다. 저도 피고인 체구를 잘 봐주시라고 강조하였죠.

그런데 피고인이 작업을 시작하자마자 상당히 무리가 가는지 언뜻 잘 이동하지 못하였습니다. 판사님이 웃으면서 한번 마저 해보라고 하시니 피고인이 움직이기는 하였는데, 넘어질까봐 위태위태하더군요.

올림픽 역도경기를 떠올려보시면 역기를 겨우 들기는 들었는데 성공 부저가 울리기 전 그 짧은 몇 초 동안 선수가 부들거리며 겨우 버티는 장면이 기억나실 겁니다. 이렇게 말씀드려야 좀 와닿으실듯 합니다.

저는 좀 지켜보다가 고개를 돌려 그냥 외면했습니다. 물안개가 자욱하고 아직은 새벽녘에 쌀쌀한 계절이었기에 피고인이 내뿜는 가뿐 숨이 허옇게 다 보이고 고요한 가운데 피고인의 부들거림이 다 전해졌으니까요.

그런데 판사님은 왜 밤안개 자욱하게 낀 새벽녘에 현장검증을 실시하였나요

판사님은 부임 첫날 새볔에 강둑에 불러서 미안하다며, 이 사건 발생의 경우 강둑 건너편에서 특별사법경찰관인 단속반원들이 밤안개 사이로 피고인을 비롯한 무리들이 불법채취작업하는 것을 목격했다고 주장하고 있다면서,

이 사건 발생 일자와 시각, 그리고 밤안개에 이르기까지 사건 당시와 최대한 비슷한 환경에서 현장검증을 실시하기로 하고 어렵게 잡은 날이라서 어쩔 수 없었다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판사님[재판정을 사건 현장으로 옮겨서 개정한 것이니 판사님보다는 재판장님이라고 호칭하는게 더 정확해 보이네요]의 진행으로 검사님이 의견을 제시하였는데,

검사님은 "방금 전에 다같이 보셨다시피... 단독 범행은 불가합니다" 정도로 정리하셨던 것 같네요.

검증 시에 현장에서 소송대리인이 검증대상에 관하여 진술할 필요가 있는데 주장할 내용이 많거나 정리하기 어려운 경우 주장요지서 등을 검증시 제출할 필요가 있다.

출처 사법연수원 법률실무과목 교재


제 경우엔 이 사건은 변호인 진술을 길게 한다고 유리한 상황이 아닌 것으로 보여서 저는 짧고 임팩트 있게 "보시다시피 피고인은 체구가 장대하고 기운이 좋은데다가 다슬기채취를 장기간 해온지라 휴식시간을 적절히 가지면서 혼자서 충분히 작업을 할 수 있다" 정도로 의견을 진술하였습니다.

그날 강 건너편에서 일단의 무리들이 불빛을 비추면서 이쪽을 향해 말을 걸도록 했었는지는 좀 오래된 사건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아마도 "만약 저편에 단속반원들이 있었다면 단속반원들이 피고인들을 볼 수 있었는지, 피고인들은 단속반원들을 볼 수 있었는지"에 대해 다들 가정해보고 의견을 진술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추억 많은 법무관 생활의 첫날이 시작되었습니다.

위 사건은 결국 피고인에게 유죄판결이 선고되었습니다.

피고인은 끝까지 억울하다고 주장하였고, 저도 최대한 강변하였습니다. 그러나 판사님은 "지금이야 피고인이 다른 친구들에 대해 약간의 돈을 받고 의리를 지켜준다 생각할지 몰라도 그런 관계가 얼마나 지속될지 잘 생각해보라"며 양형 이유를 밝혔습니다. 진실은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판사님은 경제범죄의 경우 엄벌을 하지 않으면 재범할 우려가 매우 크다며 제 생각보다 쎈 양형을 하였습니다.

피고인에게 다슬기채취에 대해 물었던 기억이 납니다. 얼마나 돈이 되기에 이렇게까지 무리하며 재판까지 받으면서 계속하냐고. 그런데 우리가 다슬기해장국에서 접하는 그 다슬기, 생각보다 비싸더군요.

작은 바가지 하나 분량에...

그리고 밤새 작업하면 한 자루 가득 나오니...

번외로, 경제사범의 경우 범행동기를 차단할 정도의 양형이란 과연 어느 정도일지를 두고 그 후로도 각종 매체나 세미나에서는 특히 사기범행으로 인한 이득을 환수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는 내용으로 많이 다뤄지고 있습니다.

위 사건은 개인적으로나 법리적으로나 여러가지로 기억에 남는 사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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