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손으로 유언장을 써 두셨어요. 그런데 형이 이건 효력이 없다고 하네요. 정말인가요?"
상속 상담에서 생각보다 자주 듣는 질문입니다. 드라마에서는 병상에 누운 주인공이 가족 앞에서 "이 집은 막내에게 준다"라고 말하면 그걸로 끝이지만, 현실의 법은 훨씬 까다롭습니다. 민법이 정한 형식을 하나라도 어기면, 고인의 진심이 분명해도 그 유언은
없었던 것이 됩니다.
법원 재판연구원으로 일할 때도, 대형 로펌에서 상속 분쟁을 맡을 때도 같은 장면을 수없이 봤습니다. 내용은 누가 봐도 고인의 뜻이 맞는데, 날짜 한 줄이나 도장 하나가 빠져 무효가 되는 경우였습니다. 오늘은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유효한 유언을 남기는 기본기를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1. 유언은 누가 할 수 있을까
모든 사람이 유언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만 17세 이상: 가능 (민법 제1061조)
만 17세 미만: 불가능. 부모가 동의해도 효력 없음
피한정후견인: 후견인 동의 없이 단독으로 가능
피성년후견인: 의사능력이 회복된 때만 가능. 의사가 그 상태를 유언서에 적고 서명날인해야 함 (민법 제1063조)
핵심은 '유언할 당시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느냐', 즉 의사능력입니다. 치매 진단을 받았다고 해서 곧바로 유언을 못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중에 효력을 다툴 때 가장 많이 문제 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연로하신 부모님이 유언을 준비하신다면 그 무렵 인지기능 검사 기록을 함께 남겨 두는 것이 좋습니다.
2. 법이 인정하는 유언 방식은 딱 다섯 가지
민법은 유언 방식을 다섯 가지로 정해 두었고, 이 밖의 방식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카카오톡 메시지, 영상 편지, 가족에게 한 구두 약속은 아무리 진심이어도 법률상 유언이 아닙니다.
한눈에 비교하기
① 자필증서: 필요한 사람: 본인 혼자 / 사후 법원 검인: 필요 / 장점: 비용이 없고 간편 / 주의할 점: 형식 실수로 무효가 되기 쉬움, 분실·위조 위험
② 녹음: 필요한 사람: 본인 + 증인 1명 이상 / 사후 법원 검인: 필요 / 장점: 말로 남길 수 있음 / 주의할 점: 증인 요건, 녹음 훼손·편집 다툼
③ 공정증서: 필요한 사람: 본인 + 증인 2명 + 공증인 / 사후 법원 검인: 불필요 / 장점: 가장 안전하고 원본이 공증사무소에 보관됨 / 주의할 점: 비용 발생, 직접 말로 전해야 함
④ 비밀증서: 필요한 사람: 본인 + 증인 2명 이상 / 사후 법원 검인: 필요 / 장점: 내용을 비밀로 유지 / 주의할 점: 5일 안에 확정일자 받아야 함
⑤ 구수증서: 필요한 사람: 본인 + 증인 2명 이상 / 사후 법원 검인: 7일 안에 반드시 필요 / 장점: 위급할 때 쓸 수 있음 / 주의할 점: 다른 방식이 불가능할 때만 허용
이제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① 자필증서 유언 (민법 제1066조)
가장 흔하고, 그래서 가장 많이 무효가 되는 방식입니다. 다섯 가지를 모두 본인이 직접 갖춰야 합니다.
자필증서 유언 = 내용 전문 + 작성 연월일 + 주소 + 성명 (모두 손으로 직접) + 날인
전문 자필: 컴퓨터로 출력하거나 다른 사람이 대신 써 준 경우
연월일: '2026년 10월'처럼 날짜(일)를 빠뜨린 경우
주소: '서초동'처럼 다른 곳과 구별할 수 없게 간략히 적은 경우
성명: 이름을 직접 쓰지 않은 경우
날인: 도장을 찍지 않은 경우
도장은 인감도장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본인이 평소 쓰는 막도장이면 충분하고, 판례는 손도장(무인)도 인정합니다. 내용을 고치려면 고친 부분에도 직접 쓰고 도장을 찍어야 합니다.
재판연구원 시절, 내용은 꼼꼼한데 날짜가 '○○년 ○월'까지만 적힌 유언장 때문에 결론이 완전히 달라진 사건 기록을 본 적이 있습니다. 가족들은 "날짜 하나 때문에 아버지 뜻이 무시되느냐"며 억울해했지만, 법원은 형식을 엄격하게 볼 수밖에 없습니다. 자필 유언을 쓰신다면 '날짜는 일까지, 주소는 동·호수까지'를 꼭 기억하세요.
② 녹음에 의한 유언 (민법 제1067조)
목소리로 남기는 방식입니다. 녹음 안에 다음 내용이 모두 들어가야 합니다.
유언자: 유언의 취지, 자신의 이름, 유언하는 날짜
증인(1명 이상): 유언이 정확하다는 확인과 증인 자신의 이름
예를 들면 이런 식입니다.
유언자: "나 박정수는 서울 ○○구 ○○아파트 101동 1203호를 딸 박지은에게 준다. 2026년 10월 31일, 박정수." 증인: "방금 들은 유언 내용이 박정수 님이 말씀하신 그대로임을 확인합니다. 증인 최민호."
증인이 녹음에 등장하지 않으면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것이 됩니다. 녹음 파일이 훼손되거나 편집되었다는 다툼도 생길 수 있으니 원본을 여러 곳에 보관해 두는 편이 안전합니다.
③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 (민법 제1068조)
실무에서 가장 권하는 방식입니다. 유언자, 증인 2명, 공증인이 함께 참여합니다.
유언자가 공증인 앞에서 유언 내용을 직접 말로 전합니다(구수).
공증인이 그 내용을 받아 적고 읽어 줍니다.
유언자와 증인이 내용이 정확한지 확인한 뒤 각자 서명하거나 기명날인합니다.
여기서 가장 많이 다투어지는 것이 '말로 전한다'는 부분입니다. 미리 만들어 온 문서를 읽어 주고 유언자가 고개만 끄덕였다면, 판례는 이를 구수로 보지 않습니다. 의식이 흐린 상태에서 "이 내용 맞으시죠?"라는 질문에 "응" 정도만 답한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유언자가 '무엇을, 누구에게 준다'는 핵심을 자기 입으로 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공정증서 유언은 원본이 공증사무소에 보관되고, 사망 후 법원 검인 절차도 필요 없습니다. 비용이 들지만 분쟁 가능성을 가장 크게 낮춰 주는 방식입니다.
④ 비밀증서에 의한 유언 (민법 제1069조)
내용을 생전에 아무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을 때 쓰는 방식입니다.
유언자가 이름을 적은 유언서를 봉투에 넣어 봉하고 도장을 찍습니다.
증인 2명 이상 앞에 내놓고 자기 유언서임을 밝힙니다.
봉투 겉면에 제출한 날짜를 적고, 유언자와 증인이 각자 서명하거나 기명날인합니다.
5일 안에 공증인이나 법원 서기에게 제출해 봉투에 확정일자를 받습니다.
겉면 날짜를 빠뜨리는 등 요건 하나만 어겨도 비밀증서 유언으로는 무효입니다. 다만 안에 든 유언서가 자필증서 요건(전문·날짜·주소·이름 자필과 날인)을 모두 갖췄다면 자필증서 유언으로 살아날 수 있습니다(민법 제1071조).
⑤ 구수증서에 의한 유언 (민법 제1070조)
갑작스러운 병세 악화처럼 급박한 사정으로 앞의 네 가지 방식을 쓸 수 없을 때만 허용되는 예외적 방식입니다. 공정증서 유언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이 방식은 인정되지 않습니다.
증인 2명 이상이 참여한 자리에서 유언자가 그중 1명에게 유언 내용을 말합니다.
들은 증인이 받아 적고 읽어 줍니다.
유언자와 증인이 정확한지 확인한 뒤 각자 서명하거나 기명날인합니다.
증인이나 이해관계인이 급박한 사유가 끝난 날부터 7일 안에 법원에 검인을 신청해야 합니다.
다른 방식과 달리, 이 검인을 놓치면 유언 자체가 무효가 됩니다. 말로 전하는 부분도 엄격하게 봅니다. 고개를 끄덕이거나 "음" 하고 답한 정도로는 인정되지 않고, 유언 내용을 분명히 알 수 있을 만큼 구체적으로 말해야 합니다.
3. 증인은 아무나 설 수 없습니다
책이나 인터넷 자료에서 자주 빠지는 부분인데, 실무에서는 아주 중요합니다. 다음 사람은 유언의 증인이 될 수 없습니다(민법 제1072조).
미성년자
피성년후견인과 피한정후견인
유언으로 이익을 받는 사람, 그 배우자와 직계혈족
예컨대 아파트를 받게 될 딸이나 사위, 손주가 증인으로 서면 그 유언은 방식 위반이 됩니다. 증인은 이해관계가 없는 제3자로 정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4. 유언은 언제든 바꾸거나 취소할 수 있습니다
유언을 남긴 뒤 마음이 바뀌었다면 언제든 전부 또는 일부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민법 제1108조). 횟수 제한도 없고, "다시는 바꾸지 않겠다"고 약속했더라도 그 약속은 효력이 없습니다.
새 유언으로 철회: 새 유언에서 이전 유언을 취소한다고 밝힌 경우
앞뒤 유언이 충돌: 나중 유언과 어긋나는 앞 유언 부분은 철회된 것으로 봄
생전 처분: 유언으로 주기로 한 집을 살아 계실 때 팔았다면 그 부분은 철회된 것으로 봄
고의로 파기: 유언장을 일부러 찢거나 태우면, 또는 유증하려던 물건을 일부러 없애면 그 부분은 철회된 것으로 봄
드라마에서 회장님이 유언장을 찢어 버리는 장면은 실제로도 철회의 효과가 있습니다. 다만 본인이 '고의로' 없앤 경우여야 하므로, 다른 가족이 몰래 유언장을 없앴다면 철회가 아니라 그 가족이 오히려 법적 책임을 지게 됩니다.
5. 유언을 남겼다면 함께 알아 둘 두 가지
사후 검인 절차
공정증서와 구수증서를 뺀 나머지 방식(자필·녹음·비밀증서)은 유언자가 돌아가신 뒤 보관하던 사람이 지체 없이 법원에 검인을 청구해야 합니다(민법 제1091조). 검인은 유언서의 상태를 확인해 두는 절차일 뿐 효력을 확정해 주는 것은 아니지만, 이 절차를 거쳐야 등기 등 실제 집행이 수월해집니다.
유류분
유효한 유언이라도 다른 자녀나 배우자에게 법이 보장하는 최소한의 몫인 유류분까지 빼앗을 수는 없습니다. 한 자녀에게 전 재산을 남긴다는 유언이 있으면, 나머지 자녀는 유류분 반환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유언을 설계할 때는 유류분까지 계산해 두어야 사후 분쟁을 줄일 수 있습니다.
마무리하며
유언은 남겨진 가족에게 주는 마지막 배려입니다. 그런데 형식을 지키지 않은 유언은 오히려 가족 사이 분쟁의 씨앗이 되기도 합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가능하다면 공정증서 유언을 선택하세요.
자필로 쓴다면 날짜는 일까지, 주소는 상세하게, 이름과 도장까지 빠짐없이 갖추세요.
증인은 이해관계 없는 사람으로 정하세요.
유언 무렵의 건강 상태와 인지기능 기록을 함께 남겨 두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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