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병주 변호사입니다.
"아버지 통장에서 장례비를 찾아 썼는데, 나중에 빚이 1억이 넘는다는 걸 알았어요. 이제 포기도 못 하는 건가요?"
부모님을 떠나보낸 뒤 상담실을 찾는 분들께 가장 자주 듣는 질문입니다.
법원 및 대형 로펌에서 가사·유산 분쟁을 다루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비슷한 사건을 수없이 보아 왔는데, 결과를 가르는 건 대개 '처음 몇 주 동안 무엇을 하지 않았느냐'였습니다.
빚을 피하려는 가족은 해마다 늘고 있습니다.
국회가 대법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5년 접수된 상속포기는 38,482건으로 역대 최대였고, 2020년보다 약 79% 늘었습니다. 같은 해 한정승인 접수도 27,838건이었습니다(서울신문, 2026. 8. 25.자 기사).
유족에게는 세 갈래 길이 있습니다.
선택 기한은 돌아가신 사실과 내가 승계인이 된 사실을 안 날부터 3개월입니다(민법 제1019조 제1항). 사망신고일이나 조회 결과를 받은 날부터 세는 게 아니라는 점을 꼭 기억해 두세요. 조사가 늦어진다면 기한이 끝나기 전에 가정법원에 기간 연장을 청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 구체적인 내용은 아래 설명드리겠습니다.
단순승인: 자산과 채무를 제한 없이 모두 이어받음 — 이런 경우에 맞습니다: 남긴 자산이 부채보다 확실히 많을 때
상속포기: 승계인의 지위 자체를 내려놓음 — 이런 경우에 맞습니다: 채무가 자산보다 확실히 많을 때
한정승인: 물려받은 몫 안에서만 채무를 갚음 — 이런 경우에 맞습니다: 부채 규모가 불분명할 때
1. 단순승인 완벽 정리
고인의 권리와 의무를 그대로 모두 이어받는 방식입니다(민법 제1025조). 예금과 집뿐 아니라 대출금, 보증채무도 함께 넘어옵니다.
가장 무서운 점은 물려받은 것으로 부족하면 내 돈으로도 갚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홀로 예금 3,000만 원과 대출 1억 원을 이어받았다면 예금만 내놓고 끝낼 수 없습니다. 나머지 7,000만 원은 내 월급과 내 집으로 책임지게 됩니다.
오해가 많은 부분이 하나 더 있습니다.
이 방식은 따로 신고하지 않아도 성립합니다.
3개월 안에 다른 선택을 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이어받은 것으로 봅니다(민법 제1026조 제2호). "아무 서류에도 서명하지 않았으니 부모님 채무와는 상관없다"는 생각이 가장 위험합니다.
형제 여럿이 함께 물려받는다면 선택도 각자 따로 합니다. 예를 들어 어머니는 지위를 내려놓고, 큰아들은 책임을 제한하고, 작은아들은 그대로 이어받았다면, 큰아들 몫으로 갚고 남은 채무는 작은아들이 혼자 전부 떠안습니다.
그래서 총액만 볼 게 아니라 실제로 남는 가치와 숨은 부채을 함께 살펴야 합니다. 집이 있어도 담보대출과 돌려줘야 할 전세보증금이 크면 남는 게 거의 없을 수 있고, 사업을 하셨다면 개인 간 차용이나 보증도 확인해야 합니다.
2. 상속포기
처음부터 승계인이 아니었던 것으로 만드는 선택입니다(민법 제1042조). 부채가 확실히 많을 때 고려합니다. 다만 좋은 것만 받고 빚만 버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집은 갖고 대출만 거절하거나, 채무 일부만 골라낼 수는 없습니다.
가. 절차
3개월 안에 고인의 마지막 주소지 관할 가정법원에 신고해야 합니다(민법 제1041조). 핵심은 심판이 고지되어야 비로소 효력이 생긴다는 점입니다(대법원 2016. 12. 29. 선고 2013다73520 판결). 서류를 낸 날이 아니라 심판을 받은 날이 기준입니다.
가족끼리 "나는 안 받겠다"고 쓴 각서나, 부모님 생전에 미리 받아 둔 약정은 효력이 없습니다. 반드시 정식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나. 다음 순위로 넘어가는 문제
1순위인 자녀가 모두 지위를 내려놓으면 2순위인 조부모 등에게 빚이 넘어갑니다. 대물림을 끊으려면 다음 순위 가족도 각자 신고해야 합니다.
배우자는 달리 봐야 합니다. 배우자와 자녀가 함께 물려받는 상황에서 자녀만 모두 빠지면, 손자녀나 조부모가 아니라 배우자가 혼자 이어받습니다(대법원 2023. 3. 23.자 2020그42 전원합의체 결정). 배우자까지 빠진다면 그다음 순위가 누구인지 따로 확인해야 합니다.
다. 취소의 제한
한 번 한 결정은 원칙적으로 되돌릴 수 없습니다(민법 제1024조 제1항). 사기, 강박, 착오 같은 사유가 있을 때만 예외적으로 취소할 수 있으니 신고 전에 충분히 따져 보셔야 합니다.
3. 한정승인
물려받은 몫의 한도에서만 고인의 빚을 갚겠다고 하는 방식입니다(민법 제1028조). 승계인의 지위는 유지하되 책임의 범위를 유산으로 묶는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앞의 예로 돌아가면, 예금 3,000만 원과 채무 1억 원을 이 방식으로 이어받았다면 예금 3,000만 원을 정해진 순서대로 변제에 쓰면 됩니다. 내 돈까지 넣을 필요는 없고, 반대로 채무를 정리하고 남는 돈이 있으면 내 몫이 됩니다. 부채 규모가 불확실하거나 나중에 더 나올 가능성이 있다면 가장 안전한 선택입니다.
가. 절차
3개월 안에 유산 목록을 붙여 고인의 마지막 주소지 가정법원에 신고합니다(민법 제1030조 제1항). 이 역시 심판이 고지되어야 효력이 생깁니다.
나. 목록 작성이 중요한 이유
목록에는 예금, 부동산, 자동차뿐 아니라 돌려받을 임대차보증금, 남에게 빌려준 돈까지 넣어야 합니다. 채무도 은행 대출에 그치지 않고 보증채무와 개인 간 차용까지 조사해야 합니다.
채권자를 속일 의도로 일부러 빠뜨리면 전부 이어받은 것으로 바뀔 수 있기 때문입니다(민법 제1026조 제3호). 이 부분은 5번에서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다. 수리 후에도 남는 청산 절차
많은 분이 놓치는 부분입니다. 신고가 받아들여졌다고 끝난 게 아닙니다.
수리된 날부터 5일 안에 채권자와 유증받은 사람에게 그 사실을 공고해야 합니다(민법 제1032조 제1항).
채권 신고 기간은 2개월 이상으로 정해야 합니다.
이미 알고 있는 채권자에게는 따로 신고하라고 알려야 합니다.
먼저 독촉한 채권자에게 몽땅 갚아 버리면 안 됩니다. 정해진 순서대로 나눠 갚아야 합니다.
채권자가 많거나 관계가 복잡하다면 파산 절차로 정리하는 방법도 검토할 수 있습니다.
라. 수리 심판의 효력
가정법원의 수리 심판은 일단 요건을 갖춘 것으로 보아 준다는 의미일 뿐, 효력을 확정하지는 않습니다. 최종 판단은 민사소송에서 다시 이루어집니다(대법원 2021. 2. 25. 선고 2017다289651 판결). 그래서 채권자가 소송을 걸거나 지급명령을 보내오면 절대 내버려 두지 말고, 그 절차 안에서 책임 제한 사실을 적극적으로 주장해야 합니다.
4. 특별한정승인
가. 뒤늦게 빚을 알게 된 가족을 위한 제도
"돌아가신 지 1년이 지나서야 소장을 받았어요. 이제 방법이 없나요?"
이런 경우를 위한 장치입니다(민법 제1019조 제3항). 요건은 세 가지입니다.
고인의 채무가 남긴 자산보다 많을 것
그 사실을 중대한 과실 없이 처음 3개월 안에 알지 못하고 그대로 이어받았을 것
채무가 더 많다는 사실을 안 날부터 3개월 안에 신고할 것
네 번째 선택지라기보다는, 이미 전부 이어받은 뒤에 책임 제한을 다시 할 수 있게 해 주는 구제 제도입니다. 기간을 놓친 경우뿐 아니라 유산을 처분해 이어받은 것으로 간주된 경우에도 쓸 수 있습니다(2017다289651 판결).
나. '몰랐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중대한 과실'이란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다면 알 수 있었는데도 게을리해 몰랐던 경우를 말합니다. 그리고 과실이 없었다는 점은 물려받은 사람이 직접 증명해야 합니다(대법원 2025. 3. 27. 선고 2024다226931 판결). 채무를 이미 알았거나 조금만 조사했으면 알 수 있었다면 인정받기 어렵고, 소장이나 지급명령을 받고서야 처음 알게 된 경우에는 비교적 인정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다음 자료를 미리 챙겨 두시길 권합니다.
돌아가신 뒤 자산과 부채를 조회한 내역
고인과의 동거 여부, 연락과 경제적 교류 상황
빚을 처음 알게 된 독촉장, 소장, 지급명령
받은 날짜를 알 수 있는 봉투나 송달 자료
처음 알던 채무와 나중에 새로 발견한 채무의 내역
새
채무를 발견한 날이 언제나 기준일이 되지는 않습니다. 그 전에 이미 알았다고 평가될 수도 있으니, 통지를 받은 경위를 날짜순으로 정리해 두세요.
다. 미성년 자녀를 위한 별도 장치
2022년 12월 민법 개정으로, 미성년자가 성년이 되기 전에 부채가 더 많은 유산을 그대로 이어받은 경우 성년이 된 뒤 그 사실을 안 날부터 3개월 안에 책임 제한을 신청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민법 제1019조 제4항). 부모의 판단으로 빚을 떠안게 된 아이가 어른이 된 뒤 스스로 벗어날 수 있도록 한 제도입니다. 일반적인 경우와 요건이 다르니 따로 확인해야 합니다.
5. 상속포기·한정승인 전에 재산을 써 버렸다면, 법정단순승인
실무에서 가장 많은 다툼이 생기는 곳입니다. 지위를 내려놓거나 책임을 제한하려 했더라도, 일정한 행동을 하면 법이 자동으로 전부 이어받은 것으로 봅니다(민법 제1026조).
가. 세 가지 사유
제1호: 물려받은 것을 처분한 때 — 적용 시기: 심판 효력이 생기기 전
제2호: 3개월 안에 아무 신고도 하지 않은 때 — 적용 시기: 기간이 지났을 때
제3호: 숨기거나, 부정하게 쓰거나, 일부러 목록에서 뺀 때 — 적용 시기: 심판 효력이 생긴 뒤
나. 제1호, 처분행위
1) 어떤 행동이 '처분'일까요
물건의 모양이나 성질을 바꾸는 행동, 권리를 변동시키는 행동이 처분입니다. 다만 지키고 관리하는 행동은 처분이 아닙니다.
처분으로 본 사례
고인 예금을 인출해 사용 (2009다84936)
고인이 빌려준 돈을 대신 받아 옴 (2009다84936)
협의분할 후 소유권이전등기 (전주지법 2017가단1422)
물려받은 비닐하우스 철거 (대전지법 서산지원 2020가단52424)
관리로 본 사례
전세보증금은 그대로 두고 기간만 연장한 계약 (대법원 2026. 5. 8. 선고 2025다220329 판결)
음식점 점포 인도와 설비 매각 (춘천지법 원주지원 2025가단53573)
특히 받은 돈을 쓰지 않고 보관만 했다고 안전한 게 아닙니다. 고인의 채권을 추심해 받는 행위 자체를 처분으로 본 판례가 있기 때문입니다.
2) 심판 고지 전까지는 손대지 마세요
신고서를 냈더라도 심판이 고지되기 전에 처분하면 전부 이어받은 것이 됩니다(2013다73520 판결). 책임 제한 신고 뒤 고지 전에 처분한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대구고법 2018나22290 판결).
제가 기억하는 상담 사례를 하나 각색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드님이 신고서를 접수하고 안심한 채, 아버지 차를 중고로 팔아 남은 할부금을 정리했습니다. 선의였지만 심판 고지 전이었기에 채권자는 전부 이어받았다고 주장했고, 결국 특별한정승인 요건을 하나하나 입증하며 힘겹게 다퉈야 했습니다. 서류를 냈다는 안도감이 가장 위험한 순간이라는 걸 그때 다시 느꼈습니다.
3) 지위를 내려놓는 취지에 따른 분할협의는 예외
형제 중 일부가 빠지기로 하고, 고지 전에 그 취지대로 분할협의를 한 경우라면 처분으로 보지 않습니다(대법원 2023. 12. 28. 선고 2023다269399 판결). 협의서를 쓰고 등기를 마쳤다는 사실만으로 단정하지 말고 경위를 따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4) 장례비는 원칙적으로 괜찮습니다
고인의 사회적 지위와 지역 풍속에 비추어 합리적인 범위의 장례비를 고인 돈으로 낸 것은 처분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 판례입니다(대법원 2003. 11. 14. 선고 2003다30968 판결). 다만 "장례비로 썼다"는 말만으로 모든 인출이 정당화되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장례에 필요한 비용이었는지, 금액이 적정한지, 남은 돈을 어떻게 보관했는지까지 확인됩니다.
다. 제3호, 숨기기·부정소비·일부러 빠뜨리기
제3호는 심판 효력이 생긴 뒤에 적용됩니다.
숨기기(은닉): 유산이 있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없게 만드는 것입니다.
부정소비: 정당한 이유 없이 써서 없애는 것입니다. 쓴 사실만으로는 부족하고 정당한 이유가 없어야 합니다. 예컨대 신고 후 보증금에서 밀린 월세가 공제된 것은 부정소비가 아닙니다(2010다30416 판결).
일부러 목록에서 빠뜨리기: 알면서 적지 않은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채권자를 해칠 의도로 숨기려 한 경우여야 합니다. 이 점은 채권자가 증명해야 합니다(대법원 2022. 7. 28. 선고 2019다29853 판결).
형제 여럿이 모두 책임 제한을 신청했는데 그중 한 명만 숨겼다면, 그 사람만 효력을 잃고 나머지 형제는 그대로 보호받습니다.
라. 이미 전부 이어받은 것이 되었어도 길은 있습니다
처분 때문에 전부 이어받은 것으로 간주되었더라도 체념하지 마세요. 빚이 더 많다는 사실을 중대한 과실 없이 몰랐다면, 안 날부터 3개월 안에 특별한정승인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정리하며
3개월은 생각보다 짧습니다. 세 가지만 기억해 주세요.
부채 규모가 불분명하다면 책임을 제한하는 쪽으로 판단하세요.
신고를 생각 중이라면 심판이 고지되기 전까지 고인 돈에 손대지 마세요. 예금 인출 한 번으로도 전부 이어받은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이미 전부 이어받은 것이 되었다면 특별한정승인으로 구제받을 수 있는지부터 확인하세요.
로톡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콘텐츠 내용에 대한 무단 복제 및 전재를 금지하며, 위반 시 민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상속가이드북2] 상속포기·한정승인과 예금 인출 주의사항](/_next/image?url=https%3A%2F%2Fd2ai3ajp99ywjy.cloudfront.net%2Fassets%2Fimages%2Fpost%2Fguide_title.jpg&w=3840&q=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