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탁판매를 맡긴 물건이 애초에 정해둔 가격보다 싸게 팔렸다는 연락을 받으면, 대부분의 위탁자는 그 매매 자체가 당연히 무효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상법은 이 문제를 그렇게 단순하게 처리하지 않습니다. 위탁매매인이 지정가보다 염가로 팔았더라도 그 차액을 스스로 떠안기만 하면 그 매매는 위탁자에게 그대로 효력이 생긴다는 것이 상법 제106조의 결론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위탁매매인이 차액을 부담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려 한다면 위탁자는 무엇을 근거로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을까요. 이 글에서는 지정가액준수의무의 구조와 그 위반 시 실제로 벌어지는 법률관계를 짚어보겠습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대표변호사
위탁매매인이란 — 자기 이름으로 팔지만 손익은 위탁자의 것
상법 제101조는 위탁매매인을 "자기명의로써 타인의 계산으로 물건 또는 유가증권의 매매를 영업으로 하는 자"로 정의합니다. 대리상이나 중개인과 달리, 위탁매매인은 계약서에 자신의 이름을 씁니다. 거래상대방 입장에서는 위탁매매인이 곧 매도인 또는 매수인이고, 그 뒤에 위탁자가 있다는 사실은 계약관계에 직접 드러나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상법 제102조는 위탁매매인이 위탁자를 위한 매매로 인하여 상대방에 대하여 직접 권리를 취득하고 의무를 부담한다고 정합니다.
하지만 경제적 실질은 다릅니다. 상법 제103조는 위탁매매인이 위탁자로부터 받은 물건이나 위탁매매로 취득한 물건·유가증권·채권을, 위탁자와 위탁매매인 또는 위탁매매인의 채권자 사이의 관계에서는 위탁자의 소유 또는 채권으로 본다고 못박습니다. 여기에 더해 상법 제104조는 위탁매매인이 매매를 마치면 지체없이 계약의 요령과 상대방의 주소·성명을 통지하고 계산서를 제출하도록 의무를 지우며, 제105조는 상대방이 채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위탁매매인이 그 이행을 담보하도록 합니다.
결국 위탁매매는 외부관계와 내부관계가 분리된 이중구조입니다. 거래상대방과의 관계에서는 위탁매매인이 당사자이지만, 위탁자와의 내부관계에서는 매매의 경제적 손익이 고스란히 위탁자에게 귀속됩니다. 지정가 위반 문제가 늘 이 지점에서 시작되는 이유입니다 — 위탁매매인이 얼마에 팔았는지가 곧 위탁자의 재산에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위탁매매인은 자기 이름으로 거래상대방에게 직접 권리·의무를 지지만, 그 경제적 손익은 내부관계에서 위탁자에게 귀속된다 — 이 이중구조가 지정가 위반 문제의 출발점이다.
위탁자가 지정가를 두는 이유와 지정가액준수의무
위탁계약을 맺을 때 위탁자는 대개 "이 가격 이상에 팔아 달라" 혹은 "이 가격 이하로는 사지 말라"는 식으로 매매가격의 하한 또는 상한을 지정합니다. 골동품·귀금속·재고상품처럼 시세가 유동적인 물건일수록, 위탁자는 자신이 파악한 시세나 최소한 확보해야 할 수익선을 지정가로 못박아 위탁매매인에게 지시합니다. 지정가는 위탁계약의 핵심 조건이고, 이를 따르는 것이 위탁매매인의 기본 의무입니다.
상법 제106조의 표제가 '지정가액준수의무'인 것도 이 때문입니다. 다만 조문 자체는 지정가를 어기면 곧바로 매매가 무효라고 정하지 않습니다. 대신 위반 시 어떤 조건에서 그 매매가 위탁자에게 효력을 갖는지를 규정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이 준수의무는 상법 제112조에 따라 위탁자와 위탁매매인 사이에 준용되는 위임 규정, 즉 민법 제681조가 정한 수임인의 선관주의의무의 한 갈래이기도 합니다. 위탁자가 지시한 가격을 따르지 않는 것은 원칙적으로 위임의 본지를 벗어난 사무처리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지정가는 단순한 참고사항이 아니라, 위탁매매인이 위탁사무를 처리하는 재량의 한계선입니다. 이 한계를 넘어섰을 때 법이 어떻게 반응하는지가 다음 문제입니다.
위탁자가 정한 지정가는 위탁매매인이 지켜야 할 계약상 지시이며, 이를 어기는 것은 원칙적으로 선관주의의무 위반이다.
지정가보다 싸게 팔았다면 — 원칙적으로 벌어지는 일
위탁매매인이 지정가를 어기고 그보다 낮은 가격에 물건을 팔았다면, 이는 원칙적으로 위탁자의 지시에 반하는 사무처리입니다. 위탁자 입장에서는 애초에 원하지 않은 조건으로 물건이 넘어간 것이므로, 그 결과를 그대로 감수할 의무가 없다는 것이 출발점입니다. 예를 들어 위탁자가 재고 의류나 귀금속을 판매업체에 위탁하며 "1,000만원 이상에 팔아 달라"고 지정가를 제시했는데, 실제로는 900만원에 팔렸다면 위탁자는 100만원의 차액만큼 손해를 입은 셈이 됩니다.
이론적으로 보면, 위탁자는 이런 상황에서 그 매매가 자신에게 효력이 없다고 주장하거나, 위탁매매인에게 지정가와 실제 매도가의 차액 상당을 손해로 청구하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상법은 지정가 위반을 곧바로 매매 무효로 처리하지 않습니다. 이미 거래상대방과의 매매는 위탁매매인 명의로 유효하게 성립해 상대방은 아무 잘못이 없는데, 위탁자와 위탁매매인 사이의 내부 사정만으로 그 매매 자체를 뒤흔들면 거래의 안전이 크게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상법은 지정가 위반의 효과를 무효·유효의 이분법이 아니라, 조건부 효력이라는 방식으로 설계했습니다. 그 조건이 바로 다음 조문의 핵심입니다.
지정가를 어긴 매매를 곧바로 무효로 취급하면 이미 제3자에게 넘어간 거래의 안전이 흔들린다 — 상법은 그 대신 차액 부담이라는 조건부 효력 규정을 둔다.
상법 제106조 제1항 — 차액을 떠안으면 위탁자에게 효력이 생긴다
상법 제106조 제1항은 "위탁자가 지정한 가액보다 염가로 매도하거나 고가로 매수한 경우에도 위탁매매인이 그 차액을 부담한 때에는 그 매매는 위탁자에 대하여 효력이 있다"고 정합니다. 앞의 예로 돌아가면, 지정가 1,000만원인데 900만원에 팔렸더라도 위탁매매인이 그 100만원의 차액을 자기 부담으로 위탁자에게 별도 지급하거나 정산금에서 공제하지 않고 보전한다면, 900만원에 이루어진 그 매매 자체는 위탁자에 대하여 그대로 유효합니다.
이 규정이 노리는 지점은 분명합니다. 위탁자를 경제적으로는 지정가만큼 온전히 보호하면서도, 거래상대방과 이미 맺어진 매매관계는 그대로 유지시켜 거래 안전을 지키는 것입니다. 위탁매매인이 차액을 부담하는 순간, 위탁자는 결과적으로 지정가에 판 것과 같은 경제적 지위에 놓이게 되므로, 매매 자체의 효력을 다툴 실익이 사라집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차액 부담이 사후에 다투어 확정되는 것이 아니라, 상법 제104조의 통지·계산서 제출 단계에서 함께 드러나야 한다는 점입니다. 위탁매매인이 계산서에 실제 매도가와 지정가의 차이를 밝히고 그 차액을 위탁자에게 지급하는 절차를 거쳐야, 나중에 "차액을 부담했는지"를 둘러싼 다툼을 줄일 수 있습니다.
위탁매매인이 그 차액을 부담한 때에는 그 매매는 위탁자에 대하여 효력이 있다 — 상법 제106조 제1항.
반대의 경우도 함께 봐야 한다 — 고가매도·염가매수 차익은 위탁자 몫
상법 제106조 제2항은 반대 상황을 정합니다. 위탁자가 지정한 가액보다 고가로 매도하거나 염가로 매수한 경우에는, 그 차액은 다른 약정이 없으면 위탁자의 이익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지정가 1,000만원인데 1,200만원에 팔렸다면, 그 200만원의 차익은 위탁매매인이 임의로 가질 수 없고 원칙적으로 위탁자에게 돌아갑니다.
이 대칭 규정이 중요한 이유는, 위탁매매인이 지정가 위반의 유·불리를 자신에게만 유리하게 해석하지 못하도록 막는 데 있습니다. 손해가 나면 위탁매매인이 부담하고, 이익이 나면 위탁자에게 귀속시키는 구조를 함께 두어야 지정가 준수의무가 실질적으로 작동합니다. 만약 초과 이익을 위탁매매인이 가져도 된다면, 지정가를 지키려는 유인 자체가 사라질 수 있습니다.
다만 이 규정은 임의규정이므로, 위탁계약서에 초과분의 일부를 성과보수 형태로 나누기로 하는 별도 약정을 두었다면 그 약정이 우선합니다. 실무에서 위탁판매 수수료 체계를 설계할 때 이 특약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으므로, 계약서에 명확히 남겨두어야 합니다.
지정가를 넘겨 생긴 이익은 다른 약정이 없으면 위탁자의 몫이다 — 손해는 위탁매매인이, 이익은 위탁자가 갖는 비대칭 구조가 지정가액준수의무의 실효성을 지탱한다.
위탁매매인이 차액을 부담하지 않으면 — 위탁자가 취할 수 있는 조치
그렇다면 위탁매매인이 지정가보다 싸게 팔고도 차액을 보전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상법 제106조 제1항은 "차액을 부담한 때"에 한해 매매가 위탁자에게 효력이 있다고 정하고 있으므로, 반대로 차액을 부담하지 않은 상태라면 위탁자가 그 결과를 당연히 받아들여야 할 근거는 약해집니다. 이때 위탁자와 위탁매매인 사이의 관계는 상법 제112조에 따라 위임에 관한 민법 규정이 적용되고, 위탁매매인의 지정가 위반은 민법 제681조가 정한 선관주의의무 위반이자 민법 제390조의 채무불이행에 해당합니다.
이 경우 위탁자가 실제로 취할 수 있는 조치는 지정가와 실제 매도가의 차액 상당을 손해배상으로 청구하는 것이 중심이 됩니다. 다만 상법 제103조에 따라 위탁매매로 취득한 물건이나 채권은 내부관계에서만 위탁자의 것으로 취급될 뿐, 거래상대방과 이미 맺어진 매매 자체는 위탁매매인 명의로 유효하게 성립해 있어 이를 되돌리기는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즉 위탁자가 실효적으로 쓸 수 있는 구제수단은 매매 자체를 무르는 것이 아니라, 위탁매매인을 상대로 한 차액 상당의 손해배상·정산 청구로 좁혀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무적으로는 위탁계약서에 지정가 미준수 시 차액배상 의무나 위약금 조항을 미리 명시해두면, 나중에 선관주의의무 위반 여부를 처음부터 다시 다투지 않고도 신속하게 정산할 수 있습니다.
차액 부담 없는 지정가 위반 매도 — 위탁자는 매매 효력을 그대로 받아들일 의무가 약해짐.
내부관계상 구제수단 — 민법 제681조 선관주의의무 위반, 제390조 채무불이행 손해배상 청구.
거래상대방과의 매매 자체 — 이미 유효하게 성립해 되돌리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움.
예방책 — 위탁계약서에 지정가 미준수 시 차액배상·위약금 조항을 명시.
차액을 부담하지 않은 지정가 위반은 매매 자체를 되돌리기보다, 위임법리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로 해결하는 것이 실무의 현실적인 경로다.
분쟁을 피하려면 — 통지·계산서와 거래소 시세 물건의 예외
상법 제104조의 통지의무·계산서 제출의무는 지정가 분쟁을 예방하는 실무상 핵심 장치입니다. 위탁매매인은 매매를 마치면 지체없이 계약의 요령과 상대방의 주소·성명을 통지하고 계산서를 제출해야 하는데, 이 계산서에 실제 매도가와 지정가의 차이, 그리고 차액 보전 여부가 함께 기재되어야 나중에 다툼의 여지가 줄어듭니다. 계산서 없이 구두로만 결과를 통보받았다면, 위탁자로서는 지정가 준수 여부 자체를 확인할 방법이 마땅치 않습니다.
한편 주식이나 상장 원자재처럼 거래소 시세가 있는 물건은 상법 제107조의 개입권과 맞물려 사정이 조금 다르게 전개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위탁매매인은 직접 그 매도인이나 매수인이 될 수 있고, 그 매매대가는 위탁매매인이 매매의 통지를 발송할 때의 거래소 시세에 따릅니다. 시세가 공개된 물건에서는 지정가 위반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 자체가 일반 위탁매매와 달리 그 시점의 거래소 시세를 중심으로 재구성될 수 있다는 점을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위탁자 입장에서 분쟁을 예방하려면 준비할 것은 단순합니다. 위탁계약서에 지정가를 서면으로 명확히 기재하고, 위탁매매인이 보내는 통지서·계산서를 반드시 수령·보관하며, 차액이 발생했을 때 그 보전 여부를 서면으로 확인해두는 것입니다.
위탁계약서에 지정가를 구체적 금액으로 서면 기재.
매매 종료 후 통지서·계산서를 반드시 수령·보관.
차액이 발생하면 보전 여부와 방식을 서면으로 확인.
거래소 시세가 있는 물건은 통지 발송 시점의 시세 기준을 함께 확인.
자주 묻는 질문
Q. 위탁매매인이 지정가보다 싸게 팔았는데 아무 정산도 없다면 그 매매는 유효한가요?
A. 상법 제106조 제1항은 위탁매매인이 차액을 부담한 때에 한해 매매가 위탁자에게 효력이 있다고 정하고 있어, 차액 보전 없이 넘어간 상태라면 위탁자는 그 처리에 동의하지 않고 차액 상당의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다만 거래상대방과의 매매 자체는 위탁매매인 명의로 이미 유효하게 성립해 있다는 점은 별개입니다.
Q. 차액을 부담하겠다는 의사표시는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하나요?
A. 법이 정한 특별한 방식은 없지만, 계산서 제출 시 차액을 명시하고 이를 실제로 위탁자에게 지급하거나 정산금에 포함시키는 방식이 일반적입니다. 나중에 다툼이 생기지 않도록 서면으로 남겨두는 것이 안전합니다.
Q. 반대로 지정가보다 비싸게 팔렸다면 그 차익은 위탁매매인이 가져도 되나요?
A. 상법 제106조 제2항에 따라 다른 약정이 없는 한 그 차액은 위탁자의 이익으로 귀속되어, 위탁매매인이 임의로 가져갈 수 없습니다. 성과보수 등으로 나누기로 하는 별도 약정이 있었다면 그 약정이 우선합니다.
Q. 주식처럼 거래소 시세가 있는 물건도 같은 원리가 그대로 적용되나요?
A. 거래소 시세가 있는 물건은 상법 제107조의 개입권이 함께 문제 되어 위탁매매인이 스스로 매도인·매수인이 될 수 있고 가격도 통지 발송 시점의 거래소 시세를 따르므로, 지정가 위반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 자체가 일반 위탁매매와 다르게 전개될 수 있습니다.
Q. 지정가 위반으로 다투게 되면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요?
A. 위탁계약서상 지정가 기재 내용, 위탁매매인이 보낸 계약요령 통지서와 계산서, 실제 매매가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를 모아두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 자료들로 지정가와 실제 매도가의 차이, 차액 보전 여부를 입증하게 됩니다.
Q. 위탁매매인이 지정가보다 싸게 팔면서 이미 위탁물을 상대방에게 넘겨버렸다면 되돌릴 수 있나요?
A. 상법 제103조에 따라 위탁매매로 취득한 물건·채권은 내부관계에서 위탁자의 것으로 보지만, 상대방과의 매매 자체를 무효화하기는 어려워 실무에서는 매매를 되돌리기보다 위탁매매인을 상대로 한 차액 상당 손해배상 청구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맺음말
지정가액준수의무는 위탁매매 특유의 이중구조, 즉 자기 이름으로 거래하지만 손익은 위탁자에게 귀속되는 구조에서 나오는 문제입니다. 지정가를 어겼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매매가 곧바로 무효가 되는 것이 아니라, 위탁매매인이 그 차액을 부담하느냐가 위탁자에 대한 효력을 가르는 실질적 기준입니다.
위탁자로서는 지정가를 서면으로 명확히 남기고, 통지서·계산서를 통해 차액 보전 여부를 그때그때 확인하는 절차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차액을 보전받지 못했다면 매매 자체를 되돌리려 하기보다, 위임법리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로 실질을 확보하는 쪽이 현실적인 경로입니다.
위탁판매·매매대행 계약을 맺을 때는 지정가 문구와 위반 시 처리 방법을 계약서에 구체적으로 못박아두는 것이 분쟁을 줄이는 실질적인 방법입니다.
조력이 필요하시면 강대현 대표변호사에게 연락주십시오. 신속히 도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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