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 커뮤니티 시설이라는 새로운 분쟁 영역
요즘 아파트의 가치는 세대 내부보다 커뮤니티 시설에서 갈린다고들 합니다. 휘트니스센터, 실내골프장, GX룸, 북카페, 키즈룸, 연회장, 독서실. 그런데 이 시설들은 대개 관리주체가 직접 운영하지 않고 전문업체에 위탁합니다. 편의를 위한 구조이지만, 사고가 나는 순간 이 구조는 곧바로 법적 미로가 됩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의 이 판결은 그 미로의 출구를 보여줍니다.
열쇠는 민법 제758조 공작물책임에서 말하는 '점유자'가 정확히 누구인가에 있었습니다.
사안의 개요
아파트 관리주체는 2021년 주민공동시설 일체의 관리업무를 한 운영업체에 위탁했고, 그 업체는 체육시설업자 배상책임보험에 가입했습니다. 그해 11월, 한 입주민이 실내골프장 1번 타석에서 타구 연습을 하던 중 자신이 친 공이 전방 스크린 뒤 막대 사이에 노출된 금속에 맞고 튀어 얼굴로 날아왔고, 우측 안구가 파열되는 중상을 입었습니다.
피해자는 운영업체를 상대로 공작물책임 소송을 제기했고, 제1심과 항소심 모두 운영업체를 위탁계약을 점유매개관계로 하는 직접점유자로 보아 책임을 인정했습니다. 보험사는 피해자에게 합계 9,391만 7,000원을 지급한 뒤, 이번에는 관리주체를 상대로 그 절반인 4,695만 8,500원을 구상 청구했습니다. 관리주체도 운영업체와 함께 공동점유자라는 주장이었습니다.
법원의 판단 — 책임에는 순서가 있다
보험사가 내세운 근거는 위탁계약 제4조 제1항이었습니다. "주민공동시설의 건축물 및 시설물의 하자보수 및 공사는 관리주체가 책임진다." 문언만 떼어놓고 보면 시설 하자에 관한 책임이 관리주체에게 있다고 읽을 수 있는 조항입니다.
그러나 재판부는 조항을 조 전체의 맥락에서 읽었습니다. 같은 조 제2항은 시설물 결함으로 비용이 발생하는 사항을 관리주체에게 요청하여 처리하도록 정하고 있고, 제3항은 관리주체의 승인이 있으면 운영업체가 시설물을 교체하되 그 비용은 관리주체가 부담하도록 정하고 있었습니다. 이 셋을 함께 읽으면 제1항의 의미는 분명해집니다. 기존에 설치된 시설물을 유지·관리할 책임은 운영업체에 있고, 하자보수가 필요할 때 그 비용을 부담하는 주체가 관리주체라는 뜻입니다.
여기에 더해 위탁계약은 운영업체에 안전을 최선의 목표로 관리할 의무, 인수한 설비를 선량하게 유지·관리할 의무, 제반 시설과 장비를 최상의 상태로 유지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스크린 천의 교체가 필요한지 점검할 의무, 이용자가 안전하게 타구 연습을 하도록 시설물을 유지·관리할 의무는 직접점유자인 운영업체의 몫입니다.
그리고 재판부는 공작물책임의 구조를 다시 확인했습니다. 공작물의 점유가 대리점유 관계에 있을 때에는 직접점유자가 1차적인 배상책임을 지고, 직접점유자가 손해방지에 필요한 주의를 해태하지 아니한 때에 비로소 간접점유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습니다. 즉 관리주체는 간접점유자로서, 운영업체가 교체나 하자보수를 요구했음에도 이에 응하지 않은 것과 같은 사정이 증명되어야 비로소 책임을 집니다. 그런 증거는 제출되지 않았고, 구상 청구는 기각되었습니다. 재판부는 덧붙여 관리주체는 관리주체일 뿐 시공자가 아니므로 시공상 하자를 물을 수도 없다고 못박았습니다.
이 판결이 실무에 남기는 것
첫째, "비용은 우리가 낸다"는 조항은 "관리책임도 우리가 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계약 해석은 문장 하나를 떼어내는 작업이 아니라 조 전체의 구조를 읽는 작업이며, 이 사건의 승패는 그 지점에서 갈렸습니다.
둘째, 공작물책임에는 사다리가 있습니다. 직접점유자, 그가 면책될 때 간접점유자, 그리고 소유자의 순서입니다. 이 순서를 건너뛰어 "공동점유"를 주장하려면 사실상의 지배를 실제로 공유했다는 구체적 증명이 필요합니다. 계약서상 비용 부담 조항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셋째, 위탁계약을 설계하는 양쪽 모두에게 교훈이 있습니다. 관리주체라면 유지·관리 의무의 주체를 명확히 하고, 하자보수 요청에서 승인, 집행에 이르는 절차를 문서로 규정해 두어야 합니다. 반대로 운영업체라면 노후·구조적 하자에 대한 책임 한계를 명시하고, 무엇보다 교체 요청과 하자보수 요구를 반드시 서면으로 남겨야 합니다. 이 사건에서 운영업체가 스크린 교체를 요청했는데 관리주체가 이를 거부한 기록이 있었다면, 결론은 정반대가 되었을 것입니다.
넷째, 사고를 당한 입주민의 관점입니다. 커뮤니티 시설 사고의 첫 번째 상대방은 대체로 위탁운영사입니다. 다만 운영사가 무자력이거나 보험 한도를 넘는 손해라면 간접점유자인 관리주체와 소유자인 구분소유자 측으로 책임을 확장할 여지가 있고, 그 판단의 출발점은 언제나 위탁계약서입니다. 사고 직후 관리사무소에 위탁계약서와 보험증권의 열람을 요청해 두시기 바랍니다.
다섯째, 시공상 하자라면 무대가 다릅니다. 애초에 시설이 잘못 지어진 것이 원인이라면 이는 관리의 문제가 아니라 하자담보추급의 문제이고, 상대방은 관리주체가 아니라 사업주체입니다. 청구의 상대방을 잘못 고르면 이 사건처럼 본안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합니다.
맺으며
커뮤니티 시설은 아파트의 자산이지만 동시에 책임의 저수지입니다. 위탁으로 운영을 넘긴다고 해서 책임까지 온전히 넘어가는 것도, 반대로 비용을 부담한다고 해서 관리책임이 따라오는 것도 아닙니다. 그 경계를 정하는 것은 결국 위탁계약서 몇 개 조항입니다. 사고가 난 뒤에 읽으면 늦습니다.
부동산·공동주택 분쟁, 혼자 판단하지 마십시오
집합건물과 공동주택을 둘러싼 분쟁은 대부분 소송이 시작되기 훨씬 전에 승패가 정해집니다. 계약서의 한 조항, 회의록의 한 줄, 이의를 유보했는지 여부, 내용증명을 보냈는지 여부가 결과를 가릅니다. 반대로 말하면, 초기에 방향만 제대로 잡아도 피할 수 있었던 분쟁이 대단히 많습니다.
위와 유사한 문제로 고민하고 계시다면, 사안이 커지기 전에 언제든지 편하게 연락 주십시오. 계약서와 관리규약, 회의록만 살펴보아도 대응의 방향은 상당 부분 잡힙니다.
법무법인 랜드로 신지수 변호사
※ 본 글은 실제 선고된 하급심 판결을 소재로 한 판례평석으로, 당사자 특정을 피하기 위하여 사건번호와 당사자 표시는 기재하지 않았습니다. 개별 사안의 결론은 사실관계와 증거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므로, 구체적 사건에 관하여는 반드시 변호사의 검토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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