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거래에서 계약서에 서명하기 전에 가계약금부터 보내는 일이 흔합니다. 며칠 뒤 매도인이 마음을 바꾸면서 "계약서를 쓰지 않았으니 배액만 돌려주겠다"고 하면 다툼이 시작됩니다. 계약이 성립했는지, 무엇을 청구할 수 있는지를 정리합니다.
계약서는 성립 요건이 아닙니다
우리 민법은 계약의 방식을 원칙적으로 자유롭게 두고 있습니다. 매매의 목적물과 대금, 잔금일처럼 중요한 사항에 대한 합의가 있으면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더라도 계약이 성립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실무에서는 중개사가 보낸 조건 안내 문자, 계좌번호와 금액을 주고받은 기록, 잔금일을 특정한 대화가 판단 자료가 됩니다.
해약금과 위약금은 다릅니다
계약금이 교부된 경우 당사자 일방이 이행에 착수할 때까지 교부자는 계약금을 포기하고, 수령자는 배액을 상환하고 계약을 해제할 수 있습니다(민법 제565조 제1항). 이는 다른 약정이 없을 때의 규정입니다. 계약서에 위약금 조항이 있으면 그 조항이 먼저 적용되고, 위약금의 약정은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 추정되며 부당히 과다하면 법원이 감액할 수 있습니다(같은 법 제398조 제2항·제4항).
가계약금의 성격
가계약금이 해약금 규정의 계약금인지, 계약 체결을 위한 증거금에 그치는지는 당사자의 의사와 거래 경위로 판단합니다. 금액과 명칭보다 무엇을 합의했는지가 중요합니다. 목적물이 특정되고 대금과 일정까지 정해진 뒤에 보낸 돈이라면 계약금으로 볼 여지가 큽니다. 반대로 매물을 잡아 두는 수준이었다면 계약 성립 자체가 부정될 수 있습니다.
계약이 성립했다면 선택지가 늘어납니다
매도인이 이행을 거절해도 매수인은 이행을 구할 수 있습니다. 소유권이전등기 청구 소송과 함께 처분금지가처분을 신청하면 그 뒤의 처분에 대항할 수 있습니다(민사집행법 제300조 제1항). 실제로 그 집을 사려던 목적이라면 배상보다 이 방향이 실익이 큽니다. 다만 소송 기간과 비용, 상대방의 자력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이행에 착수하면 해약금 해제는 막힙니다
해약금에 의한 해제는 당사자 한쪽이 이행에 착수할 때까지만 가능합니다(민법 제565조 제1항). 매수인이 중도금을 지급했다면 그 시점부터 매도인은 배액을 상환하더라도 일방적으로 해제할 수 없습니다. 잔금일을 앞두고 매도인이 마음을 바꾸는 사안에서 이행 착수 여부가 첫 번째 쟁점이 되는 이유입니다. 계약금만 오간 단계라면 해약금 해제가 가능하므로, 매수인으로서는 중도금 지급 시기를 앞당기는 방법이 실질적인 방어가 되기도 합니다.
손해는 어디까지 인정되는가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은 통상의 손해를 한도로 하고, 특별한 사정으로 인한 손해는 채무자가 그 사정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때에 한하여 배상 책임이 있습니다(민법 제393조). 집을 사기 위해 빌린 돈의 이자, 이사 비용, 새로 구한 집의 중개보수는 대부분 특별손해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계약 과정에서 대출 일정이나 이사 계획을 상대방과 중개사에게 알린 기록이 중요합니다. 알린 적이 없다면 인정 범위가 줄어듭니다.
중개사의 책임
개업공인중개사는 중개대상물의 상태와 권리관계를 확인해 성실·정확하게 설명하고 근거자료를 제시해야 하며(공인중개사법 제25조 제1항), 중개행위를 하면서 고의나 과실로 거래당사자에게 재산상 손해를 입히면 배상할 책임이 있습니다(같은 법 제30조 제1항). 권리관계 변동을 알리지 않았거나 중개보조원이 계약서를 작성한 경우에는 사무소의 책임이 문제됩니다. 중개보조원의 업무상 행위는 그를 고용한 개업공인중개사의 행위로 보기 때문입니다(같은 법 제15조 제2항).
중개사가 남긴 기록도 증거입니다
중개사는 거래당사자에게 중개대상물의 상태와 권리관계를 설명하면서 조건을 문자로 정리해 보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메시지는 당사자 사이의 합의 내용을 보여 주는 자료가 되고, 분쟁이 생기면 중개사의 진술로도 확인됩니다. 계약 진행 과정에서 받은 안내문과 확인·설명서 초안을 지우지 말고 보관해 두십시오.
상대가 다른 사람과 다시 계약했다면
매도인이 같은 부동산을 다른 사람에게 팔고 먼저 소유권이전등기를 넘겨주면, 등기를 갖춘 사람이 소유권을 취득합니다. 남은 매수인은 매도인에게 손해배상을 구할 수밖에 없고, 매도인의 자력이 없으면 회수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계약이 성립했다고 볼 자료가 있다면 처분금지가처분을 먼저 신청해 두는 것이 실효적입니다. 가처분은 현상이 바뀌면 권리 실행이 어려워질 염려가 있을 때 하는 보전처분입니다(민사집행법 제300조 제1항).
합의로 끝낼 때의 문구
배상으로 정리하기로 했다면 합의서에 배상금 외에 중개보수, 대출 관련 비용, 이사 비용 같은 실비 정산 항목을 함께 적어야 합니다. 구두로 정리하면 같은 다툼이 반복됩니다. 지급 시기와 계좌, 지급 완료 후 서로 청구하지 않는다는 문구까지 넣으시면 됩니다.
정리
계약이 성립했는지는 결국 사실의 문제이고, 그 사실은 주고받은 기록으로 드러납니다. 상대방이 마음을 바꾼 뒤에 자료를 모으려 하면 이미 늦는 경우가 많습니다. 계약서의 유무가 아니라 합의의 내용이 결론을 정합니다. 문자와 중개사 메시지를 시간순으로 정리해 두면, 계약이 성립했는지와 어떤 손해를 청구할 수 있는지가 보입니다. 서명 전이라도 조건을 주고받은 기록은 남겨 두시는 편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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