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형의 사업 빚 약 10억 원을 대신 갚아주셨습니다.
그 과정에서 아버지 재산 대부분이 사용됐고, 돌아가셨을 때는 남은 상속재산도 거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자녀는 아무것도 상속받지 못하는 걸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부모가 자녀의 빚을 대신 갚아 재산이 남지 않았더라도 곧바로 ‘상속받을 재산이 없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부모가 대신 갚은 돈을 자녀에게 돌려받을 구상권이 남아 있는지, 이를 포기했다면 증여나 특별수익에 해당하여 유류분청구가 가능한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1. 아버지 재산 10억 원이 형의 빚을 갚는 데 사용된 사례
아버지에게 장남과 차남 두 자녀가 있었는데 장남은 사업을 하면서 금융기관에서 거액을 대출받았고, 아버지는 해당 채무의 보증인이 되었습니다.
이후 장남이 대출금을 갚지 못하자 금융기관은 아버지에게 변제를 요구했고, 결국 아버지는 예금과 부동산 등을 정리해 장남의 채무 약 10억 원을 대신 갚았습니다.
장남은 이후 아버지에게 돈을 반환하지 않았고 몇 년 뒤 아버지가 사망했습니다. 당시 아버지 명의로 남아 있던 재산은 사실상 없었습니다.
차남 입장에서는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아버지 재산 10억 원이 형의 빚을 갚는 데 사용됐는데, 남은 재산이 없다는 이유로 저는 아무것도 받을 수 없는 건가요?”

2. 대신 갚은 10억 원이 바로 증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 경우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대위변제와 구상권입니다.
보증인인 아버지가 장남의 채무를 대신 갚았다면 원칙적으로 장남에게 대신 지급한 돈을 돌려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구상권을 취득합니다(민법 제441조 제1항).
대법원 역시 보증인이 주채무를 대신 변제하면서 취득하는 구상권은 변제자가 가지는 고유한 권리라고 보고 있습니다(대법원 94다33514 판결).

따라서 [아버지가 10억 원을 대신 갚음 = 장남에게 10억 원을 증여함] 이라고 바로 판단해서는 안되고 아버지가 장남에게 가진 구상권이 상속개시 당시에도 남아 있었는지를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3. 구상권이 남아 있다면 상속재산이 될 수 있습니다.
아버지 명의의 예금이나 부동산이 남아 있지 않더라도 장남에게 돈을 청구할 수 있는 구상금채권이 존재한다면 그 채권 역시 상속재산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차남 역시 상속관계에 따라 해당 채권을 승계할 수 있으므로 단순히 아버지 명의의 재산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상속받을 것이 없다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다만 구상권의 소멸시효도 확인해야 합니다.
일반채권인 구상권에는 원칙적으로 10년의 소멸시효가 적용되므로, 아버지가 실제로 변제한 시점과 이후 장남의 일부 변제나 채무 승인 등이 있었는지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민법 제162조 제1항, 대법원 2007다37530 판결).

이때 대출·변제내역과 보증계약, 아버지의 반환 요구, 장남의 일부 변제 여부, 문자·카카오톡 등의 자료가 중요한 판단자료가 될 수 있습니다.
4. 아버지가 “갚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면?
반대로 아버지가 장남에게 10억 원을 돌려받지 않기로 했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장남은 자신의 채무를 아버지가 대신 갚아준 데 이어 반환해야 할 부담에서도 벗어나게 됩니다.
따라서 구상권 포기나 채무 면제가 증여에 해당하는지, 나아가 공동상속인인 장남이 얻은 경제적 이익이 특별수익에 해당하는지를 검토해야 합니다(*민법 제1008조).
다만 2026년 개정 민법에 따라 장남이 아버지를 상당한 기간 특별히 부양했거나 재산의 유지·증가에 특별히 기여했고, 그에 대한 보상으로 경제적 이익을 받은 경우에는 기여에 상응하는 범위가 특별수익에서 제외될 수 있습니다(*민법 제1008조 단서).

따라서 구상권을 포기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특별수익 여부를 단정하기보다는 그 경위까지 함께 살펴봐야 합니다.
5. 남은 재산이 없다면 유류분도 청구할 수 없을까요?
사망 당시 남은 예금이나 부동산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유류분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아버지가 구상권을 포기해 장남에게 경제적 이익을 준 것이 증여·특별수익으로 인정된다면 해당 재산이 유류분 산정의 기초재산에 포함되는지를 검토할 수 있습니다.
공동상속인에 대한 특별수익은 상속개시 1년 이전에 이루어진 경우에도 유류분 산정에서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대법원 95다17885 판결 등).

반대로 구상권이 포기되지 않고 사망 당시까지 존재했다면 구상금채권 자체가 적극적 상속재산으로 문제될 수 있습니다.
즉, 어느 경우든 단순히 “아버지 명의로 남아 있는 재산이 0원이다”라는 사실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부모가 자녀의 빚 10억 원을 대신 갚아 재산이 남지 않았더라도 다른 상속인이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고 바로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아버지가 장남에게 가진 구상권이 남아 있었다면 그 권리가 상속재산이 될 수 있고, 구상권을 포기했다면 장남이 얻은 경제적 이익이 증여·특별수익에 해당하는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그 결과 다른 상속인의 상속분이나 유류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구체적인 판단은 대위변제의 경위, 보증관계, 구상권의 존속 여부, 구상권 포기 여부 및 관련 자료 등 개별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글: 상속전문변호사 박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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