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랐다는 게 인정되면 보이스피싱 수거책 무죄 가능한가요
사건 개요
구인구직 사이트나 지인의 소개로 "현금 수거·전달 아르바이트"에 지원했다가, 어느 날 갑자기 경찰 조사를 받는 분들이 있습니다. 낯선 사람에게서 돈다발을 건네받아 지정된 계좌로 송금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전달했을 뿐인데, 그 돈이 보이스피싱 피해금이었고 자신이 조직의 '수거책'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정작 본인은 "그런 조직인 줄 전혀 몰랐다"고 항변하지만, 이미 피해자가 여럿 발생했고 피해액도 상당한 경우가 많아 수사기관은 쉽게 넘어가지 않습니다.
이런 사건으로 상담을 오시는 분들의 공통된 질문은 하나입니다. "정말 몰랐다는 게 받아들여지면 무죄가 되는 것인가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몰랐다는 사실이 인정되면 무죄가 될 수 있는 것은 맞습니다. 사기죄는 고의범이라 고의가 없으면 처벌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몰랐다'는 본인의 주관적 진술만으로 인정되지 않습니다. 채용 경위, 업무의 외형, 보수 수준, 발각 이후의 태도 같은 객관적 정황이 뒷받침되어야만 법원이 그 말을 믿어 줍니다.
핵심 쟁점
수거책 사건에서 다투어지는 것은 사실관계 자체(돈을 받아 전달했는지)가 아니라, 그 행위를 할 때 사기 범행에 가담한다는 인식이 있었는지입니다. 형법상 고의에는 확정적으로 알고 저지른 경우뿐 아니라, 결과가 발생할 가능성을 인식하면서도 이를 용인한 미필적 고의까지 포함됩니다. 즉 "보이스피싱인 걸 100% 확신하지는 않았지만, 뭔가 수상하다고 느끼면서도 그냥 진행했다"면 그것만으로도 고의가 인정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법원은 "반드시 보이스피싱 범행의 실체와 전모를 파악하고 있어야만 공동정범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법리를 확립해 왔습니다. 역할이 철저히 분업화된 조직범죄의 특성상, 자기 몫만 알아도 전체 범행에 가담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취지입니다.
그래서 실무에서 승패를 가르는 것은 크게 네 가지입니다. 첫째, 채용 경위가 정상적인 구인 절차를 거쳤는지—신원 확인, 계약서, 사업자 정보 제공 여부입니다. 둘째, 업무 지시와 서류의 외형이 그럴듯했는지, 즉 위조 정황이 한눈에 드러날 정도로 조악했는지입니다. 셋째, 보수 수준이 통상적인 아르바이트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는지—지나치게 고액이면 오히려 의심을 눈감았다는 근거로 쓰입니다. 넷째, 발각된 이후의 태도—도주하거나 증거를 없앴는지, 아니면 순순히 조사에 응했는지입니다. 실제로 2024년 대법원은 채용 당시 미성년자였고 사회 경험이 전혀 없었으며, 받은 일당도 회당 13만 원 수준으로 지나치게 높지 않았던 사안에서 미필적 고의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보아 무죄를 확정한 반면, 2025년 대법원은 채용 과정에서 신원 확인 절차가 전혀 없었고 건네받은 서류의 형식이 상당히 조악했던 사안에서는 미필적 고의를 인정해 유죄 취지로 사건을 되돌려보냈습니다. 같은 '수거책'이라는 이름 아래에서도 결과가 이렇게 갈리는 이유가 바로 이 네 가지 정황의 차이에 있습니다.
김강희 변호사의 해결방법 [1]: '몰랐다'는 주장을 증명 가능한 정황으로 재구성하기
"몰랐습니다"라는 말 자체는 법정에서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그 말을 뒷받침할 객관적 자료가 있어야 비로소 미필적 고의를 부정하는 근거가 됩니다. 김강희 변호사는 이런 사건에서 다음 순서로 사실관계를 재구성합니다.
1) 채용 경위의 정상성을 자료로 남깁니다.
정식 구인구직 사이트에 게시된 공고, 채용 담당자와 주고받은 문자·메신저 대화, 근로계약서나 위탁계약서, 회사 이름으로 검색되는 사업자 정보 등을 최대한 확보합니다. 법원이 실제로 무죄 판단의 근거로 삼은 것이 바로 채용 과정에서 신원 확인 절차가 있었는지이므로, 면접을 봤는지, 신분증을 요구받았는지, 계약서에 서명했는지와 같은 정상적 채용 절차의 흔적을 구체적으로 정리해 둡니다.
2) 전달받은 서류·지시의 외형을 검토합니다.
수거·전달 업무 중 받은 위임장, 영수증, 신분 확인 서류 등이 얼핏 보기에도 위조임을 알 수 있는 수준이었는지, 아니면 일반인이 보기에 정상적인 회사 서류처럼 보였는지가 관건입니다. 서류를 사진으로 남겨 두었거나 원본이 남아 있다면, 그 형식과 내용을 근거로 "위조를 알아챌 만한 정황이 없었다"는 점을 구체적으로 소명합니다. 조직에서 내려온 지시가 일상적인 업무 지시처럼 보였는지, 아니면 처음부터 은밀하고 비상식적이었는지도 함께 정리합니다.
3) 보수와 업무강도의 정상성을 계좌·명세로 입증합니다.
지급받은 일당·수수료가 동종 아르바이트의 통상적인 수준을 벗어나지 않았음을 계좌 입출금 내역, 급여 명세서 등으로 객관화합니다. 반대로 보수가 지나치게 높았다면 그 자체가 불리한 정황이 되므로, 이 부분은 처음부터 냉정하게 점검하고 다른 정황(채용 경위·서류 외형)으로 균형을 맞추는 전략을 세웁니다.
김강희 변호사의 해결방법 [2]: 무죄가 어려운 정황이라면 책임의 범위를 최소화하기
정황상 의심할 만한 부분이 있어 무죄를 장담하기 어려운 사안도 적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 처음부터 무죄 주장에만 매달리기보다, 형사책임의 범위와 형량을 실질적으로 줄이는 전략을 함께 준비하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1) 공동정범과 방조범을 구별해 다툽니다.
수거책이라 하더라도 조직 상부와 직접 공모하지 않고 단순히 지시받은 심부름 수준의 역할만 했다면, 사기죄의 공동정범이 아니라 방조범(형법 제32조)에 해당한다고 다툴 여지가 있습니다. 종범의 형은 정범의 형보다 필요적으로 감경되므로, 자신이 맡은 역할의 제한성—의사결정 관여 여부, 다른 공범과의 접촉 정도, 반복 가담 횟수—을 구체적으로 정리해 가담 정도를 축소하는 것이 형량에 실질적인 차이를 만듭니다.
2) 피해 회복과 협조로 양형 자료를 쌓습니다.
피해액이 5억 원 이상이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가중처벌 대상이 될 수 있는 만큼, 초기 대응이 결과에 미치는 영향이 큽니다. 수사 초기부터 조사에 성실히 협조하고, 자신이 받은 대가나 확보한 피해금을 공탁하거나 피해자와 합의하는 등 피해 회복 노력을 형성 단계부터 준비하면 실형을 피하거나 집행유예 가능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됩니다.
3) 진술 전 변호인 조력으로 절차적 방어를 갖춥니다.
계좌 추적과 압수수색이 동시에 진행되는 사건 특성상, 준비 없이 조사에 임하면 불리한 진술이 그대로 조서에 남기 쉽습니다. 조사를 받기 전 변호인의 조력을 받아 진술 방향을 정리하고, 무리하게 전부를 시인하거나 반대로 무조건 부인하기보다 사실관계와 인식 여부를 분리해 정확히 진술하는 것이 이후 무죄 주장이나 감경 주장 모두에 유리한 토대가 됩니다.
결론
"몰랐다"는 항변은 그 자체로 무죄를 만들어 주지 않습니다. 채용 경위가 얼마나 정상적이었는지, 전달받은 서류와 지시가 얼마나 그럴듯했는지, 보수가 통상적인 수준이었는지, 발각 이후 어떻게 행동했는지—이 네 가지 정황이 구체적으로 뒷받침될 때 비로소 미필적 고의가 부정되고 무죄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이런 정황이 부족하다면, 처음부터 방조범으로의 축소나 피해 회복을 통한 양형 관리로 전략을 전환하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어느 쪽이든 수사 초기의 대응이 결과를 좌우하므로, 조사를 앞두고 계시다면 자신의 상황이 어느 쪽에 가까운지부터 점검을 받아보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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