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에서 상대방의 채권을 상계로 방어했다면, 법원이 그 상계항변에 대해 실제로 판단을 내린 순간 생각보다 훨씬 큰 효과가 발생합니다. 확정판결의 기판력은 원칙적으로 판결 주문에만 미치고 그 이유에서 판단한 내용에는 미치지 않지만, 상계항변만은 유일한 예외로 취급되기 때문입니다. 반대채권이 존재하는지 아닌지에 대한 법원의 판단에도 기판력이 붙어, 나중에 같은 반대채권을 다시 재판에서 주장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상계항변을 냈다가 패소했을 때, 반대로 상계항변이 받아들여졌을 때 각각 무엇이 확정되는지, 또 이 기판력이 미치지 않는 예외는 어떤 경우인지 짚어보겠습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대표변호사
상계항변에만 예외가 붙는 이유 — 판결이유인데 기판력이 생기는 구조
민사소송법 제216조 제1항은 확정판결은 주문에 포함된 것에 한하여 기판력을 가진다고 정합니다. 즉 원고 승패라는 결론에만 기판력이 미치고, 그 결론에 이르게 된 이유에서의 판단—채무가 왜 발생했는지, 소멸시효가 왜 완성됐는지 같은 내용—에는 원칙적으로 기판력이 미치지 않습니다. 그런데 같은 조 제2항은 "상계를 주장한 청구가 성립되는지 아닌지의 판단은 상계하고자 대항한 액수에 한하여 기판력을 가진다"고 정해, 상계항변에 대한 판단만은 예외적으로 기판력을 인정합니다.
이 예외를 둔 이유는 대법원 2018. 8. 30. 선고 2016다46338, 46345 판결과 대법원 2005. 7. 22. 선고 2004다17207 판결이 공통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만약 상계 주장에 관한 법원의 판단에 기판력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원고의 청구권 존부에 대한 다툼이 나중에 다른 소송에서 제기되는 반대채권의 존부에 대한 다툼으로 그대로 변형되어 버립니다. 그러면 상계를 주장한 사람이 같은 반대채권을 이중으로 행사해 상대방이 불이익을 입을 수 있고, 상계 판단을 전제로 이루어진 전소 판결이 결과적으로 무의미해질 우려가 있다는 것입니다.
정리하면, 상계항변은 겉으로는 '방어방법' 하나에 불과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반대채권을 재판을 통해 실현하려는 시도와 같은 성격을 가집니다. 그래서 법은 상계항변에 대한 판단만큼은 확정판결처럼 취급해 뒤에서 살펴볼 여러 결과를 낳게 됩니다.
확정판결의 기판력은 원칙적으로 주문에만 미치지만, 상계항변에 대한 법원의 판단만은 유일한 예외로 반대채권의 존부까지 기판력으로 확정된다.
상계항변을 냈다가 패소하면 벌어지는 일 — 반대채권 자체가 사라진다
실무에서 흔한 오해가 하나 있습니다. 상계항변이 배척되어 패소해도 "그 채권을 나중에 다시 청구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법원이 반대채권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아 상계항변을 배척했다면, 그 판단에도 기판력이 생겨 같은 반대채권으로 별도 소송을 제기해도 전소 확정판결과 저촉되어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반대채권이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이미 확정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공사대금 청구소송에서 피고가 하자보수비 상당의 손해배상채권으로 상계항변을 냈는데, 법원이 하자 자체가 인정되지 않는다며 상계항변을 배척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이 경우 피고는 그 판결이 확정된 뒤 같은 하자보수 손해배상채권을 별도 소송으로 다시 청구할 수 없습니다. 공사대금 소송의 판결 이유에서 이미 그 손해배상채권이 부존재한다는 판단이 내려졌고, 그 판단에 기판력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법원이 반대채권의 존재를 부정해 상계항변을 배척 → 반대채권 부존재로 확정
부존재로 확정된 반대채권은 별소로 다시 청구해도 기판력에 저촉되어 배척
항소심에서도 같은 판단이 유지되어 확정되면 결과는 동일
법원이 반대채권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아 상계항변을 배척했다면, 그 반대채권은 부존재하는 것으로 확정되어 이후 어떤 소송에서도 다시 주장할 수 없다.
기판력의 범위 — 반대채권 전액이 아니라 '상계하고자 대항한 액수'까지
다만 기판력이 반대채권 전액에 대해 무한정 발생하는 것은 아닙니다. 조문 그대로 기판력은 "상계하고자 대항한 액수"에 한정됩니다. 반대채권 총액이 소구채권(원고가 청구한 채권)보다 훨씬 크더라도, 기판력은 그 소구채권과 대등액으로 소멸했거나 소멸했을 것으로 판단되는 범위까지만 미칩니다.
대법원 2016다46338, 46345 판결은 이 범위를 구체적으로 제시합니다. 법원이 반대채권의 존재를 인정했더라면 상계에 관한 실질적 판단으로 나아가 수동채권의 상계적상일까지의 원리금과 대등액에서 소멸하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었던 반대채권의 원리금 액수, 그 범위에서 기판력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이 법리는 피고가 주장하는 반대채권의 액수가 소구채권보다 더 큰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됩니다.
피고가 두 개 이상의 반대채권을 주장한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판결은, 법원이 그중 하나의 반대채권 존재만 인정해 수동채권 일부와 상계하고 나머지 반대채권들은 모두 부존재로 판단해 배척한 경우, 그 나머지 반대채권들의 부존재 판단에 대해 기판력이 발생하는 전체 범위는 '상계를 마친 후의 수동채권 잔액'을 초과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이때 그 잔액은 원칙적으로 수동채권 원금의 잔액만을 의미합니다.
기판력 범위 = 상계하고자 대항한 액수 한도, 반대채권 전액이 아님
반대채권이 소구채권보다 큰 경우도 같은 한도 원칙 적용
반대채권이 여럿이면 부존재 판단 전체의 기판력 합계도 수동채권 잔액(원금 기준) 초과 불가
기판력은 반대채권 전액이 아니라 상계로 대항한 액수, 즉 수동채권과 대등액으로 소멸하는 것으로 판단될 수 있었던 범위까지만 미친다.
상계항변이 받아들여진 경우도 마찬가지 — 원고에게도 상소의 이익이 생긴다
반대로 법원이 반대채권의 존재를 인정해 상계항변을 받아들이면, 소구채권은 그 대등액에서 소멸한 것으로 확정됩니다. 얼핏 결론(청구기각)만 보면 소구채권 자체가 처음부터 부정된 경우와 같아 보이지만, 기판력의 내용은 전혀 다릅니다.
대법원 2016다46338, 46345 판결은 '원고의 소구채권 자체를 부정하여 청구를 기각한 판결'과 '소구채권의 존재를 인정하면서도 상계항변을 받아들인 결과 청구를 기각한 판결'은 기판력의 범위가 서로 다르다고 판시했습니다. 그리고 후자의 판결에 대해서는 원고에게도 상소의 이익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청구기각이라는 결론은 같아도, 반대채권이 존재했다가 상계로 소멸했다는 확정과 애초에 원고 채권 자체가 없었다는 확정은 원고 입장에서 이후 법률관계를 완전히 다르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대여금 반환 청구소송에서 원고의 채권 자체는 인정되었으나 피고의 손해배상채권 상계로 소멸 처리되어 청구가 기각됐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이 경우 원고는 그 손해배상채권이 실제로 존재했는지, 액수 산정이 맞는지를 다투기 위해 상소할 이익이 있습니다. 반면 원고 채권 자체가 처음부터 부정된 판결이었다면, 원고는 그와는 전혀 다른 쟁점—채권 발생원인 자체의 인정 여부—을 다투게 됩니다.
기판력이 미치지 않는 세 가지 경우
상계항변에 대한 판단이라고 해서 항상 기판력이 붙는 것은 아닙니다. 첫째, 원고의 소구채권 자체가 인정되지 않아 상계항변의 당부를 따질 필요조차 없었던 경우입니다. 이때는 반대채권의 존부를 실질적으로 판단하지 않았으므로 기판력도 발생하지 않습니다.
둘째, 상계 주장의 대상이 된 수동채권이 동시이행항변으로 행사된 채권인 경우입니다. 대법원 2005. 7. 22. 선고 2004다17207 판결은, 상계 주장에 관한 판단에 기판력이 인정되려면 수동채권이 소송물로 심판되는 소구채권이거나 그와 실질적으로 동일하게 취급해야 할 필요가 인정되어야 하는데, 동시이행항변에 행사된 채권은 소송물 자체가 아니므로 이에 대한 상계주장 판단에는 기판력이 미치지 않는다고 판시했습니다. 만약 여기에도 기판력을 인정한다면, 동시이행항변이 상대방의 상계 재항변으로 배척된 경우 그 채권을 나중에 소송상 행사할 수 없게 되어 민사소송법 제216조가 예정한 범위를 벗어나는 결과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셋째, 상계항변을 항소심에서 철회한 경우입니다. 대법원 2022. 2. 17. 선고 2021다275741 판결은, 상계항변은 소송상 방어방법으로서 상대방의 동의 없이 철회할 수 있고, 1심에서 상계항변을 제출해 본안판단까지 받았더라도 항소심에서 이를 철회하면 그 반대채권에 관해서는 기판력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소취하와 달리 재소금지(민사소송법 제267조 제2항)도 적용되지 않아, 철회 후 같은 반대채권으로 별도 소송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소구채권 자체가 부정되어 상계항변 판단에 이르지 않은 경우
동시이행항변으로 행사된 채권을 상계 주장한 경우
항소심에서 상계항변을 철회한 경우
이미 별소가 진행 중인 채권으로도 상계항변을 낼 수 있나
반대채권과 동일한 채권으로 이미 별도 소송을 제기해 진행 중인 상태에서도 그 채권을 자동채권으로 하는 상계항변을 낼 수 있는지가 문제 됩니다. 대법원 2022. 2. 17. 선고 2021다275741 판결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를 허용된다고 판단했습니다. 다만 같은 판결은, 사실심 담당재판부로서는 전소와 후소를 같은 기회에 심리·판단하기 위해 이부·이송·변론병합 등을 시도해 기판력의 저촉·모순을 방지함과 아울러 소송경제를 도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부연했습니다.
같은 판결은 반대 방향도 밝혔습니다. 먼저 제기된 소송에서 상계항변을 낸 뒤 그 소송 계속 중에 자동채권과 동일한 채권으로 별도의 소나 반소를 제기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즉 상계항변을 냈다고 해서 그 반대채권으로 별소·반소를 제기하는 길이 막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각 절차에서 최종적으로 어느 판단이 먼저 확정되는지에 따라 뒤이은 절차의 기판력 저촉 여부가 달라지므로, 병행 절차를 진행할 때는 그 진행 속도와 순서를 함께 살펴야 합니다.
원고가 다시 상계로 맞받을 수 있나 — 재상계가 통하지 않는 이유
피고가 상계항변을 내면, 원고가 이에 대응해 또 다른 채권으로 재상계(상계의 재항변)를 주장하려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 2014. 6. 12. 선고 2013다95964 판결은, 피고의 소송상 상계항변에 대해 원고가 소송상 상계의 재항변을 하는 것은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허용되지 않는다고 판시했습니다.
이유는 실체법적 구조에 있습니다. 피고의 상계항변이 이유 있다고 판단되면, 원고의 청구채권(수동채권)과 피고의 반대채권(자동채권)은 상계적상 시점으로 소급해 대등액에서 이미 소멸한 것으로 처리됩니다. 그렇다면 원고가 재상계로 상계하려는 대상, 즉 피고의 반대채권은 그 범위에서 이미 존재하지 않는 채권이 되어 버리므로, 재상계 자체가 성립할 여지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법리가 실무에 주는 의미는 분명합니다. 원고가 피고의 상계항변에 실질적으로 대응하려면 재상계가 아니라, 그 반대채권 자체의 부존재나 소멸시효 완성, 발생 원인의 흠결 등을 다투는 방법을 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상계항변을 낼지 말지 — 실무에서 따져야 할 판단 기준
상계항변은 별도 소송비용 없이 반대채권을 즉시 실현할 수 있는 효율적인 방어수단입니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대로 반대채권의 존부 자체가 기판력으로 확정된다는 점에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합니다. 반대채권의 존재를 자신 있게 입증할 수 있고 액수도 명확하다면, 상계항변으로 소송을 한 번에 정리하는 편이 유리합니다.
반면 반대채권의 존부나 액수에 다툼의 여지가 크고, 그 채권을 온전히 청구해 결과를 남기고 싶다면 상계항변보다 반소를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반소로 제기하면 그 채권의 존부는 반소청구에 대한 별도의 주문으로 판단되어, 상계항변의 예외적 기판력 법리와는 다른 방식으로 확정되기 때문입니다. 다만 반소로 갈 경우 인지대 등 별도 소송비용이 발생한다는 점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이미 상계항변을 제출했는데 이후 심리 진행 상황이 불리하게 흘러갈 것으로 보인다면, 항소심 단계에서 철회를 검토할 수 있습니다. 다만 철회는 신중해야 합니다. 1심에서 상계항변으로 유리한 결과를 얻었다면, 철회로 오히려 수동채권 전부를 인정받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어 사건의 전체 국면을 함께 살펴야 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상계항변을 냈다가 지면 반대채권은 완전히 사라지나요?
A. 법원이 반대채권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아 상계항변을 배척했다면, 그 판단에도 기판력이 생겨 같은 반대채권으로 별도 소송을 다시 제기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다만 소구채권 자체가 부정되어 상계항변까지 판단할 필요가 없었던 경우라면 반대채권에 대한 기판력은 발생하지 않습니다.
Q. 반대채권이 소송에서 청구된 채권보다 액수가 크면 기판력은 어디까지 미치나요?
A. 반대채권 전액이 아니라 상계로 대항한 액수, 즉 수동채권과 대등액으로 소멸하는 것으로 판단될 수 있었던 범위까지만 기판력이 미칩니다. 반대채권이 여러 개인 경우에도 부존재 판단 전체의 기판력 합계가 수동채권 잔액(원금 기준)을 넘지 않습니다.
Q. 상계항변을 항소심에서 철회하면 반대채권을 다시 청구할 수 있나요?
A. 상계항변은 소송상 방어방법으로서 상대방 동의 없이 철회할 수 있고, 철회하면 그 반대채권에 관해서는 기판력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소취하와 달리 재소금지 원칙도 적용되지 않아 같은 채권으로 별도 소송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Q. 반대채권으로 이미 다른 소송을 진행 중인데 상계항변을 낼 수 있나요?
A.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가능합니다. 다만 법원이 전소와 후소를 같은 기회에 심리하기 위해 이부나 변론병합 등을 시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므로, 병행 소송이 있다는 사실은 미리 알려두는 것이 안전합니다.
Q. 계약상 동시이행항변으로 주장한 채권을 상계항변에도 쓰면 기판력이 생기나요?
A. 동시이행항변에 행사된 채권은 소송물 자체가 아니므로, 그 채권을 상계 주장에 쓴 경우 법원의 판단에는 기판력이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 판례의 입장입니다.
Q. 원고가 피고의 상계항변에 대해 다시 상계로 반박할 수 있나요?
A. 이른바 재상계는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습니다. 상계항변이 받아들여지면 반대채권은 이미 소멸한 것으로 처리되어, 원고가 재상계로 쓸 대상 자체가 남지 않기 때문입니다. 원고는 반대채권 자체의 부존재나 소멸시효 등을 다투는 방법을 취해야 합니다.
맺음말
상계항변은 소송에서 흔히 쓰이는 방어방법이지만, 법원이 실제로 판단을 내리는 순간 반대채권의 존부까지 확정판결처럼 굳어 버립니다. 이겨도 지더라도 그 결과가 별소로 되돌릴 수 없는 형태로 남는다는 점에서, 상계항변을 낼지 반소로 갈지는 반대채권의 입증 가능성과 액수를 먼저 따져본 뒤 결정해야 합니다.
대여금이나 공사대금, 손해배상 청구 등 수원지법을 비롯한 각급 법원의 민사소송에서 상계항변은 자주 등장하지만, 그 판단 하나로 반대채권의 운명이 갈린다는 사실은 의외로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상계항변을 준비하고 있다면 그 채권의 존부와 액수를 어느 정도까지 입증할 수 있는지부터 냉정하게 점검해 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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