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을 맺을 때 상대방이 아니라 계약과 무관해 보이는 제3자가 결정적인 거짓말을 해서 계약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중개인, 분양대행사 직원, 보험설계사처럼 계약 당사자는 아니지만 거래 성사에 관여한 사람이 사실과 다른 말을 해서 계약서에 도장을 찍게 만드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막상 나중에 속은 사실을 알고 계약을 취소하려 하면, "상대방은 그런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는 이유로 취소가 막히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민법은 제3자의 사기로 맺어진 계약을 취소할 수 있는 경우를 상대방이 그 사실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때로 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글에서는 제3자의 사기와 상대방의 사기가 법적으로 왜 다르게 취급되는지, 상대방이 몰랐다면 정말 방법이 없는지를 짚어보겠습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대표변호사
제3자의 사기, 상대방의 사기와 어떻게 다른가
민법 제110조 제1항은 사기나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는 취소할 수 있다고 정합니다. 계약 상대방이 직접 거짓말을 해서 계약을 하게 만들었다면, 그 기망행위와 그로 인해 계약을 체결했다는 인과관계만 증명하면 취소가 인정됩니다. 상대방이 자신의 거짓말에 대해 다시 "몰랐다"고 항변할 여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속인 사람이 계약 상대방이 아니라 그 계약과 직접 관계없는 제3자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민법 제110조 제2항은 "상대방 있는 의사표시에 관하여 제3자가 사기나 강박을 행한 경우에는 상대방이 그 사실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경우에 한하여 그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다"고 별도로 정합니다. 상대방이 전혀 모르는 제3자의 거짓말까지 상대방에게 그대로 책임지워 계약을 뒤집으면, 아무 잘못 없는 상대방의 신뢰를 지나치게 해칠 수 있다는 것이 이 규정의 취지입니다.
결국 같은 "속아서 계약했다"는 사실관계라도, 누가 속였는지에 따라 취소 여부를 다투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상대방을 상대로 취소를 주장하려는 쪽은 가장 먼저 자신을 속인 사람이 계약 상대방 본인인지, 아니면 그와 구별되는 제3자인지부터 가려야 합니다.
이 구분을 처음부터 잘못 잡으면 대응 전략 전체가 틀어질 수 있습니다. 상대방 본인의 사기라고 보고 곧바로 취소통지부터 보냈다가, 실제로는 제3자의 사기였고 상대방의 인식 여부를 증명하지 못해 취소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도 실무에서 드물지 않게 나타납니다. 따라서 취소를 검토하는 단계에서부터 거짓말을 한 사람의 지위와 권한 범위를 먼저 확인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계약 상대방이 직접 속였다면 그 사실만으로 취소할 수 있지만, 제3자가 속였다면 상대방이 그 사실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때에만 취소할 수 있다 — 이 구분이 제3자 사기 사건의 승패를 가른다.
상대방이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나
상대방의 악의(알았음) 또는 과실(알 수 있었음) 유무를 판단하는 기준 시점은 의사표시 당시, 즉 계약을 체결하던 그 시점입니다. 계약이 끝난 뒤 상대방이 뒤늦게 사정을 알게 됐다는 사정은 이 요건 판단에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계약 체결 당시를 기준으로 상대방이 제3자의 기망사실을 실제로 인식하고 있었거나, 통상적인 주의를 기울였다면 인식할 수 있었던 상태였는지를 살핍니다.
예를 들어 제3자가 상대방에게 사전에 귀띔을 했거나, 거짓 정보의 내용이 상대방의 업무 범위에서 조금만 확인해도 쉽게 드러날 만큼 명백했다면 과실이 인정될 여지가 큽니다. 상대방과 제3자가 수수료나 리베이트 같은 경제적 이해관계를 공유하고 있었다는 정황도 상대방이 관여를 의심할 수 있었던 사정으로 평가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상대방이 계약 체결 과정에서 그 제3자와 접촉한 적이 전혀 없고, 통상적인 주의를 기울여도 거짓을 알아차리기 어려운 구조였다면 이 요건은 충족되지 않습니다.
상대방이 제3자와 사전에 공모하거나 정보를 공유한 정황
상대방이 제3자로부터 전달받은 내용을 그대로 계약 상대방에게 안내한 경우
거짓의 내용이 상대방의 통상적인 업무 범위에서 쉽게 확인 가능했던 경우
상대방과 제3자가 수수료 등 동일한 경제적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경우
누가 '제3자'에 해당하나 — 대리인과 피용자는 다르게 본다
계약체결 과정에 관여한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 민법 제110조 제2항의 '제3자'에 해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대법원 1999. 2. 23. 선고 98다60828, 60835 판결은 상대방의 대리인 등 상대방과 동일시할 수 있는 사람의 사기는 여기서 말하는 제3자의 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그 사기를 상대방 자신의 사기로 보아, 상대방이 그 사실을 알았는지와 무관하게 민법 제110조 제1항에 따라 곧바로 취소를 주장할 수 있습니다.
반면 같은 판결은 단순히 상대방의 피용자이거나 상대방이 사용자책임을 져야 하는 관계에 있는 피용자에 지나지 않는 사람은 상대방과 동일시할 수 없어 여전히 이 규정에서 말하는 제3자에 해당한다고 보았습니다. 이 경우에는 상대방의 인식 여부를 별도로 따져야 취소 가능 여부가 정해집니다.
실무에서는 계약을 성사시킨 사람이 상대방으로부터 계약체결에 관한 대리권을 받았는지, 아니면 단순히 소개·안내·판매보조 역할만 했는지를 먼저 구별해야 합니다. 부동산 중개, 분양대행, 보험모집처럼 여러 사람이 거래에 관여하는 구조에서 이 구별이 실제로 자주 문제 됩니다.
상대방으로부터 계약체결권을 위임받아 상대방과 동일시할 수 있는 사람의 거짓말은 상대방 본인의 사기이지만, 상대방 밑에서 일할 뿐인 피용자의 거짓말은 여전히 '제3자'의 사기로 취급된다.
상대방의 인식을 입증하는 것은 누구의 몫인가
취소를 주장하는 쪽, 즉 속아서 계약한 사람이 상대방의 악의 또는 과실을 증명해야 한다는 것이 실무상 원칙입니다. 계약을 그대로 유지하고 싶은 상대방이 스스로 "나도 알고 있었다"고 밝힐 이유가 없기 때문에, 이 요건의 입증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싸움이 됩니다.
문자메시지나 통화녹취, 이메일처럼 상대방의 인식을 직접 보여주는 증거가 있다면 가장 확실하지만, 그런 직접증거가 없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이때는 제3자와 상대방의 관계, 거래조건의 이례성, 상대방이 통상 거쳐야 할 확인 절차를 생략한 정황 등 여러 정황증거를 쌓아 상대방의 과실을 추단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거래조건의 이례성이란, 예컨대 시세보다 현저히 낮은 가격이나 통상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조건이 계약서에 반영돼 있는데도 상대방이 아무런 확인 없이 그대로 계약을 진행한 경우를 말합니다. 이런 정황이 쌓이면 법원은 상대방이 최소한 의심을 가질 만한 상태였는데도 확인을 게을리했다고 보아 과실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판단할 여지가 커집니다. 반대로 계약서 문구나 조건 자체는 평범했고 제3자의 거짓말이 계약서에 드러나지 않는 구두 설명에 그쳤다면, 상대방의 과실을 인정받기가 한층 어려워집니다.
제3자와 상대방 사이의 위임장, 업무협약서, 수수료 지급 내역
계약체결 전후에 오간 문자·메신저 대화 내용
상대방이 통상 확인했어야 할 서류나 절차를 생략한 정황
같은 제3자의 수법으로 다른 피해 사례가 있었는지 여부
상대방이 정말 몰랐다면 — 착오 취소라는 별도 경로
상대방의 인식을 증명하지 못했다고 해서 계약을 무조건 그대로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앞서 본 대법원 98다60828, 60835 판결은 제3자 사기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민법 제110조 제2항을 적용할 것이 아니라, 착오에 의한 의사표시(민법 제109조) 법리만을 적용해 취소 가부를 가려야 한다고 판시했습니다.
착오 취소는 사기 취소와 요건 자체가 다릅니다. 법률행위 내용의 중요한 부분에 착오가 있어야 하고, 그 착오가 표의자 자신의 중대한 과실로 인한 것이 아니어야 합니다. 제3자의 거짓말로 인해 계약의 중요한 사항을 잘못 알고 계약했다면 이 요건을 충족할 여지가 있고, 사기 취소와 달리 상대방의 인식 여부는 원칙적으로 요건이 아닙니다.
다만 착오를 이유로 취소하더라도 그로 인해 상대방이 입은 손해를 배상해야 할 여지가 있고, 착오가 계약 내용 자체가 아니라 계약을 맺게 된 동기에 그친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취소가 제한된다는 점도 함께 유의해야 합니다.
제3자 사기 요건을 채우지 못해도 계약이 끝은 아니다 — 거짓 정보로 계약의 중요한 부분을 잘못 알았다면 착오를 이유로 별도로 취소를 다툴 여지가 남는다.
취소가 막혀도 남는 길 — 제3자에 대한 손해배상과 사용자책임
계약 취소 자체가 막히더라도 거짓말을 한 제3자에게 아무 책임도 물을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민법 제750조의 불법행위 규정에 따라, 계약의 효력과는 별개로 고의로 거짓 정보를 제공해 손해를 입힌 제3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그 제3자가 상대방의 피용자였던 경우라면, 민법 제756조 사용자책임에 따라 사용자인 상대방도 함께 손해배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다만 그 기망행위가 피용자의 사무집행과 관련해 이루어졌다는 관련성이 인정되어야 합니다. 즉 계약 자체는 유효하게 유지되더라도, 그로 인해 발생한 손해는 별도로 회복할 여지가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다만 사용자책임에 따른 손해배상은 계약 취소와는 청구원인 자체가 다르므로, 계약을 유지한 채 손해배상만 구할 것인지 계약을 취소하고 원상회복을 구할 것인지 방향을 먼저 정해야 합니다. 두 청구는 요건과 효과가 다르고 사안에 따라 병행이 제한될 수 있어, 어느 쪽이 실익이 큰지 따져 선택해야 합니다.
계약 취소 + 부당이득반환(원상회복)을 함께 구하는 방향
계약은 유지한 채 제3자를 상대로 불법행위 손해배상을 구하는 방향
제3자가 피용자였다면 사용자인 상대방에게 사용자책임을 함께 묻는 방향
착오 취소를 택할 경우 상대방에 대한 신뢰이익 배상 문제도 별도로 검토
실제 상황에 적용해보면
아파트 분양계약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분양대행사 직원이 시행사로부터 계약체결에 관한 별도 위임 없이 독자적으로 "인근에 지하철역이 곧 들어온다"는 근거 없는 말을 해서 수분양자가 계약을 체결했다고 가정하면, 그 직원이 시행사와 동일시할 수 있는 대리인이 아니라 단순한 판매보조 역할이었을 때는 민법 제110조 제2항의 제3자에 해당할 가능성이 큽니다. 시행사가 그 발언을 사전에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는 사정, 예컨대 홍보자료나 교육자료에 같은 취지의 문구가 이미 들어 있었다는 사정이 없다면 사기를 이유로 한 취소는 받아들여지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같은 사안에서 시행사가 배포한 공식 분양팸플릿에도 같은 취지의 문구가 실제로 들어 있었다면, 그 문구를 작성하고 배포한 것 자체가 시행사 본인의 행위이므로 애초에 제3자의 문제가 아니라 상대방 본인의 사기 문제로 성격이 바뀝니다.
이처럼 같은 거짓말이라도 누가, 어떤 자격으로 말했는지, 그 정보가 상대방의 공식 자료에 이미 반영돼 있었는지에 따라 결론이 완전히 갈립니다. 계약을 취소하려는 쪽은 이 구조부터 먼저 파악한 뒤, 그에 맞춰 증거를 모으는 순서로 접근해야 합니다.
보험계약도 비슷한 구조로 자주 문제 됩니다. 보험설계사가 "지금 가입하지 않으면 예정이율이 곧 내려간다"거나 "이 특약은 나중에 추가할 수 있다"는 식으로 사실과 다른 설명을 해서 계약을 체결하게 만드는 경우입니다. 보험설계사는 상법상 보험모집 관련 규정에서도 확인되듯 통상 보험계약 체결에 관한 대리권 없이 계약 체결을 중개하는 지위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 보험회사(상대방)와 동일시되는 대리인이 아니라 제3자로 취급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경우에도 보험회사가 그 설계사의 잘못된 설명을 사전에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는 사정, 예컨대 회사가 배포한 상품 안내자료에 같은 내용이 들어 있었는지가 취소 가능 여부를 가르는 핵심이 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부동산 중개인이 거짓말을 했는데 매도인은 몰랐다면 취소할 수 없나요?
A. 중개인이 매도인으로부터 계약체결에 관한 대리권을 받은 것이 아니라 단순 소개·중개 역할에 그쳤다면 민법 제110조 제2항의 제3자에 해당해, 매도인이 그 거짓말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던 경우에만 취소할 수 있습니다. 매도인이 전혀 몰랐고 알 수도 없었다면 사기를 이유로 한 취소는 받아들여지기 어렵습니다.
Q. 상대방이 몰랐다는 것은 누가 증명해야 하나요?
A. 원칙적으로 계약을 취소하려는 쪽, 즉 속아서 계약한 사람이 상대방의 악의 또는 과실을 증명해야 합니다. 직접증거가 없다면 여러 정황증거를 종합해 입증해야 하므로 실무상 쉬운 싸움은 아닙니다.
Q. 제3자 사기 요건을 못 채우면 계약을 그대로 이행해야 하나요?
A.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닙니다. 계약의 중요한 부분에 착오가 있었고 그 착오에 중대한 과실이 없었다면 민법 제109조의 착오를 이유로 별도로 취소를 주장할 여지가 있습니다. 계약을 유지하더라도 거짓말을 한 사람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방법도 남아 있습니다.
Q. 상대방의 직원이 거짓말을 한 경우에도 상대방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나요?
A. 그 직원이 상대방의 피용자였다면 계약 취소와 별개로 민법 제756조의 사용자책임에 따라 상대방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여지가 있습니다. 다만 이는 계약의 효력과는 다른 문제이므로 취소 청구와 손해배상 청구 중 무엇을 구할지 먼저 정리해야 합니다.
Q. 계약체결 대리권을 받은 사람이 거짓말을 한 경우도 제3자 사기인가요?
A. 아닙니다. 상대방으로부터 계약체결의 대리권을 받아 상대방과 동일시할 수 있는 사람의 거짓말은 제3자의 사기가 아니라 상대방 본인의 사기로 취급됩니다. 이 경우에는 상대방의 인식 여부와 무관하게 사기를 이유로 취소할 수 있습니다.
Q. 제3자를 상대로 형사고소도 함께 할 수 있나요?
A. 거짓 정보로 재산상 이익을 취득했다면 사기죄로 고소하는 것이 별도로 가능할 수 있습니다. 다만 형사처벌 여부와 계약의 취소·손해배상 인정 여부는 별개의 절차이므로, 민사상 대응과 형사 고소를 함께 검토하되 각각의 요건은 따로 갖추어야 합니다.
맺음말
제3자의 사기로 계약을 맺었다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계약을 취소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상대방이 그 사실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는지, 그리고 그 제3자가 상대방과 동일시할 수 있는 대리인인지 아니면 단순한 피용자인지에 따라 결론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이 요건을 채우지 못하더라도 착오를 이유로 한 취소, 제3자에 대한 손해배상, 사용자책임처럼 남아 있는 구제수단이 적지 않으므로, 처음부터 사기 취소 하나만 바라보고 대응 방향을 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실제 사건에서는 계약체결 과정에서 오간 자료, 제3자와 상대방의 관계를 보여주는 정황을 최대한 빨리 확보해두는 것이 결과를 좌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통화기록이나 메신저 대화 같은 증거는 확보하기 어려워지므로, 속아서 계약했다는 의심이 든다면 관련 자료부터 정리해두는 것이 우선입니다.
조력이 필요하시면 010-3432-1451 강대현 대표변호사에게 연락주십시오. 신속히 도와드리겠습니다.
의뢰인을 위한 최선의 전략을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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