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이런 사연이 있었습니다. 서울에서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일하는 42세 A씨는 10여 년 전 연락이 끊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뒤늦게 전해 들었습니다. 아버지의 사망일은 2024년 9월 초였지만, A씨가 이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같은 해 12월 말, 채권추심 회사에서 전화가 걸려왔을 때였습니다.
추심 회사 측은 아버지가 남긴 채무 약 8,700만 원을 상속인인 A씨에게 청구했습니다. A씨는 당황하며 상속포기를 알아보기 시작했지만, 주변에서는 "사망 후 3개월이 이미 지났으니 늦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쟁점 1: 상속포기 3개월 기한의 기산점은 언제인가
민법 제1019조 제1항은 상속인이 "상속개시 있음을 안 날로부터 3개월 내"에 상속포기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상속개시 있음을 안 날"이라는 표현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 기간을 피상속인(돌아가신 분)의 사망일로부터 3개월이라고 오해합니다. 그러나 법문은 분명히 상속인이 사망 사실을 "안 날"을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기산점의 의미
"상속개시 있음을 안 날"이란, 상속인이 (1) 피상속인의 사망 사실과 (2) 자신이 상속인이 된 사실을 모두 알게 된 날을 의미합니다. 단순히 사망일이 아니라 상속인 본인의 인식 시점이 기준이 됩니다.
A씨의 경우, 아버지의 사망일은 9월이었지만 A씨가 사망 사실을 인지한 것은 12월 말입니다. 따라서 A씨의 상속포기 기한은 12월 말부터 3개월, 즉 이듬해 3월 말경까지로 볼 수 있습니다.
쟁점 2: 상속채무의 존재를 몰랐던 경우에는 어떻게 되는가
A씨와 비슷한 상황에 있던 부산의 34세 공무원 B씨 사례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B씨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사실을 알고 있었고, 사망 직후 재산 조회도 해 보았습니다. 별다른 재산도 채무도 없었기 때문에 특별한 조치 없이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사망 후 6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어머니가 지인의 사업자금 연대보증을 선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보증채무 금액은 1억 2,000만 원. B씨는 이미 3개월이 경과한 후였기 때문에 상속포기가 불가능한 것인지 막막했습니다.
민법 제1019조 제3항 - 특별한정승인
상속인이 상속채무가 상속재산을 초과하는 사실을 중대한 과실 없이 3개월 내에 알지 못한 경우, 그 사실을 안 날로부터 3개월 내에 한정승인을 할 수 있습니다. 이를 "특별한정승인"이라 합니다.
B씨처럼 상속채무의 존재 자체를 과실 없이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 발견한 경우에는, 상속포기는 어렵더라도 특별한정승인을 통해 상속받은 재산의 범위 내에서만 채무를 변제하는 방법이 남아 있습니다. 다만, 이 경우에도 채무의 존재를 안 날로부터 3개월이라는 기한은 엄격하게 적용됩니다.
쟁점 3: "안 날"을 어떻게 증명하는가
실무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바로 이 지점입니다. 상속포기나 특별한정승인 신청 시, 법원은 상속인이 사망 사실 또는 채무 사실을 언제 알게 되었는지를 심사합니다.
A씨의 경우를 다시 보겠습니다. A씨가 12월 말에 추심 전화를 받았다는 것은 통화기록이나 추심 안내서 등으로 비교적 수월하게 증명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만약 가족이나 친척으로부터 구두로 사망 소식을 먼저 들었다면, 그 시점이 기산점이 될 수 있으므로 문제가 복잡해집니다.
인지 시점에 관한 입증 책임은 원칙적으로 상속인에게 있습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자료를 미리 확보해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채권자 또는 추심업체로부터 받은 우편물, 문자메시지, 통화기록
사망 통보를 받은 카카오톡 대화 캡처, 이메일 등
피상속인과 오랜 기간 연락이 없었음을 보여주는 정황 자료(주소지 차이, 교류 부재 등)
안심상속 원스톱 서비스 신청일 및 결과 회신일 자료
법원은 상속인이 피상속인과 동거하고 있었거나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면, 사망일 자체를 인지 시점으로 볼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대로, A씨처럼 오랫동안 연락이 끊겨 있었다면 실제 인지 시점을 별도로 인정받을 여지가 큽니다.
실무적 조언
A씨는 결국 채권추심 전화를 받은 날을 기산점으로 하여, 가정법원에 상속포기 신고를 접수했습니다. 10년간 아버지와 교류가 없었던 정황을 소명하는 자료를 함께 제출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상속포기를 수리했습니다.
B씨의 경우에는 특별한정승인 절차를 밟아, 어머니의 재산 범위 내에서만 보증채무를 부담하는 것으로 정리되었습니다.
이 두 사례에서 공통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점은, 상속포기 3개월 기한의 기산점은 사망일이 아니라 인지일이라는 것입니다. 다만, 인지 시점이 늦었음을 증명하지 못하면 사망일이 기산점으로 간주될 수 있으므로, 사망 사실이나 채무 사실을 알게 된 경위와 시점을 보여주는 자료를 반드시 확보해 두어야 합니다.
또한, 3개월이라는 기간은 생각보다 짧습니다. 피상속인의 재산과 채무를 조회하고, 상속포기 신청서를 작성하여 관할 가정법원에 제출하는 과정까지 고려하면, 사실을 인지한 즉시 절차에 착수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특히 상속인이 여러 명인 경우, 모든 상속인의 의사를 확인하고 서류를 준비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 있습니다.
김경숙 변호사의 코멘트
더감 법률사무소 · 경기도 수원시
상속포기 사건을 다루면서 보면, 3개월 기한을 사망일 기준으로 잘못 알고 계시다가 뒤늦게 찾아오시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인지 시점의 소명 자료를 확보하는 것이 결과를 좌우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상속채무 문제를 발견한 즉시 전문가의 조력을 받으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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