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재해로 가족을 잃은 유족은 근로복지공단에서 유족급여와 장의비를 받고 나면 회사에 더는 책임을 물을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업주나 경영책임자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위반해 중대재해를 발생시킨 경우, 통상의 손해배상과는 별도로 손해액의 5배까지 배상하도록 정한 조항을 두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5배 배상 청구권이 이미 받은 산재보험급여와 어떤 관계에 있는지, 급여를 받았다고 해서 청구 자체가 막히는지가 실제로 따져보면 간단치 않다는 점입니다. 이 글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 제15조가 정한 배상책임의 성립요건, 법원이 배상액을 정하는 기준, 그리고 산재보험급여와 실제로 어떻게 조정되는지를 짚어보겠습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대표변호사
중대재해처벌법 5배 배상 — 통상의 손해배상에 더해지는 특별책임
중대재해처벌법 제15조 제1항은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등이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이 법에서 정한 의무를 위반하여 중대재해를 발생하게 한 경우 해당 사업주, 법인 또는 기관이 중대재해로 손해를 입은 사람에 대하여 그 손해액의 5배를 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배상책임을 진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이 조항은 2022년 1월 27일부터 상시근로자 50인 이상 사업장에 먼저 시행되었고, 2024년 1월 27일부터는 상시근로자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까지 확대 적용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흔히 오해하는 지점이 있습니다. 이 규정은 민법 제750조의 불법행위책임이나 제756조의 사용자책임에 따른 통상의 손해배상액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와는 별도로 법이 새로 창설한 특별책임이라는 점입니다. 유족이나 피해자는 통상의 불법행위 손해배상을 청구하면서, 사업주 측의 고의·중과실이 인정되는 경우 이 제15조에 근거한 배상을 추가로 주장할 수 있습니다. 다만 '5배'는 손해액에 자동으로 곱해지는 배수가 아니라, 법원이 여러 사정을 고려해 그 범위 안에서 재량으로 정하는 상한선이라는 점이 실무상 중요합니다.
배상책임의 주체 — 사업주 본인 또는 경영책임자등이 속한 법인·기관.
주관적 요건 —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단순 과실만으로는 부족).
객관적 요건 — 중대재해처벌법이 정한 안전보건 확보의무 위반과 중대재해 발생 사이의 인과관계.
배상 범위 — 통상 손해액을 기준으로 그 5배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법원이 산정.
제15조의 5배 배상은 통상의 불법행위 손해배상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 더해지는 별개의 청구권이고, 5배는 자동 배수가 아니라 법원이 정하는 상한이다.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 — 배상책임을 가르는 핵심 요건
제15조가 실제로 적용되려면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등에게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있어야 합니다. 고의는 안전보건 확보의무 위반 사실을 인식하고도 이를 방치한 경우를 말하고, 중대한 과실은 고의에 준할 정도로 주의의무를 현저히 게을리한 경우를 말합니다. 단순히 관리감독이 다소 부족했다는 정도로는 부족하고, 위험성평가나 반복 지적된 안전조치를 구조적으로 방치했다는 사정이 있어야 이 요건이 인정될 여지가 커집니다.
실무상 이 요건의 입증에서 결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은 형사재판의 결론입니다. 경영책임자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다면, 그 판결에서 인정된 안전보건 확보의무 위반 사실과 고의·중과실에 관한 판단은 후속 민사소송에서 매우 유력한 근거 자료가 됩니다. 반대로 형사절차에서 무죄가 선고되었다면, 그 자체로 민사상 배상책임이 자동으로 부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유족 측이 고의·중과실을 별도로 입증해야 하는 부담이 커집니다.
단순 과실과 중대한 과실의 경계는 결국 위험을 알고도 구조적으로 방치했는지에 달려 있고, 형사재판에서 확정된 사실관계가 그 판단의 출발점이 되는 경우가 많다.
"상당한 주의와 감독을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법인의 항변
제15조 제1항 단서는 "법인 또는 기관이 해당 업무에 관하여 상당한 주의와 감독을 게을리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정해, 법인 측에 면책 항변의 여지를 열어두고 있습니다. 이는 민법 제756조 사용자책임의 면책 구조와 유사한 형태로, 이 사정에 대한 증명책임은 배상을 면하려는 법인·기관 쪽에 있습니다.
다만 실무에서 이 항변이 받아들여지기는 쉽지 않습니다. 애초에 제15조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이 문제되는 사안 자체가 경영책임자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전제된 사안이어서, 그 전제 위에서 법인이 별도로 "상당한 주의와 감독을 다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모순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이행한 구체적 기록, 위험성평가 실시 내역, 반복 지적사항에 대한 개선 조치 이력 등이 갖춰져 있지 않다면 이 항변이 인정되기는 어렵습니다.
법원은 무엇을 보고 5배 이내에서 배상액을 정하나
제15조 제2항은 법원이 배상액을 정할 때 고려해야 할 사항을 구체적으로 열거하고 있습니다. 이 조항이 있다는 것 자체가, 배상액이 손해액의 5배로 자동 산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안별로 달라지는 재량 판단이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의 정도.
의무위반행위의 종류 및 내용.
중대재해로 발생한 피해의 규모와 사업주·법인이 의무위반으로 취득한 경제적 이익.
의무위반행위의 기간·횟수.
사업주나 법인·기관의 재산상태.
피해구제 및 재발방지 노력의 정도.
같은 사망사고라도 위험성평가를 아예 하지 않은 채 수년간 같은 지적사항을 방치해 온 사업장과, 안전조치를 갖추고 있었으나 예상치 못한 변수로 사고가 발생한 사업장은 이 요소들에서 전혀 다른 평가를 받게 됩니다. 반복적 위반과 사후 개선 노력의 부재는 배수를 끌어올리는 방향으로, 사고 이후의 적극적 피해구제와 재발방지 조치는 배수를 낮추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5배는 상한일 뿐이고, 실제 배수는 위반의 반복성·경제적 이익·재발방지 노력까지 종합적으로 따져 법원이 정한다.
산재보험급여를 받았어도 — 청구 자체가 막히는 것은 아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80조 제2항은 "수급권자가 동일한 사유에 대하여 이 법에 따른 보험급여를 받으면 보험가입자는 그 금액의 한도 안에서 민법이나 그 밖의 법령에 따른 손해배상의 책임이 면제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이 규정 때문에 유족이나 피해자가 이미 요양급여·휴업급여·장해급여·유족급여 등을 받았다면, 사업주는 그 금액의 한도 안에서 동일한 항목의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을 면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조항이 면제하는 것은 산재보험급여와 같은 성질의 손해, 즉 치료비나 일실수익 같은 재산적 손해뿐입니다.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는 산재보험급여의 지급 항목 자체에 포함되어 있지 않아 손해의 성질이 다르므로, 이미 받은 산재보험급여와 상관없이 별도로 청구할 수 있다는 것이 확립된 법리입니다. 마찬가지로 중대재해처벌법 제15조에 따른 배상책임은 통상의 재산적·정신적 손해배상과는 다른 근거에서 창설된 별개의 청구권이므로, 산재보험급여를 받았다는 사정만으로 이 청구권 자체가 소멸하거나 행사할 수 없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산재보험급여와 같은 항목의 재산적 손해 — 급여 수령액 한도에서 공제.
위자료 등 정신적 손해 — 산재보험급여와 성질이 달라 공제 대상 아님.
제15조의 5배 배상 — 산재보험급여 수령 여부와 무관하게 청구 가능한 별개의 청구권.
산재보험급여는 같은 항목의 재산적 손해를 그 한도에서 대신할 뿐이고, 위자료와 중대재해처벌법상 5배 배상까지 막는 것은 아니다.
손해액과 보험급여의 조정 — 아직 다 정리되지 않은 지점
다만 실무상 다투게 되는 지점은 남아 있습니다. 손해액을 산정할 때 이미 지급된 산재보험급여를 먼저 공제한 나머지 금액을 기준으로 5배 이내의 배수를 정할 것인지, 아니면 산재보험급여와 무관하게 산정한 손해액 전체를 기준으로 배수를 정한 뒤 별도로 기지급 급여를 공제할 것인지에 관해서는, 중대재해처벌법 제15조에 특유한 확정된 판단이 아직 축적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조항 자체가 2022년에 시행된 비교적 최근 제도이고, 손해배상 책임이 실제로 인정된 판결 사례 역시 아직 많지 않은 단계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산재보험급여와 손해배상액을 조정하는 방식에 관해서는 참고할 만한 대법원의 최근 태도가 있습니다. 대법원 2022. 3. 24. 선고 2021다241618 전원합의체 판결은 제3자의 불법행위로 재해근로자에게 손해가 발생한 사안에서, 근로복지공단이 지급한 보험급여를 손해액에서 먼저 공제한 뒤 그 나머지에 과실비율을 적용하는 '공제 후 과실상계' 방식으로 종전 판례를 변경했습니다. 이 판결의 사안은 사업주 자신이 아닌 제3자를 상대로 한 청구였다는 점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제15조에 따른 사업주 자신의 배상책임에 그대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산재보험급여와 손해배상액을 조정하는 대법원의 해석 태도가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참고할 수 있습니다.
산재보험급여와 5배 배상액을 어떤 순서로 조정할 것인지는 중대재해처벌법 제15조 고유의 확정된 판단이 아직 없는 영역이고, 이 부분은 사안마다 다투어야 할 쟁점으로 남아 있다.
청구를 준비한다면 — 소송 형태와 챙겨야 할 자료
중대재해처벌법 제15조에 따른 손해배상청구는 형사재판과는 별도의 민사소송으로 진행됩니다. 형사절차와 동시에 진행되는 경우가 많지만, 반드시 형사 확정판결을 기다려야만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형사재판에서 안전보건 확보의무 위반과 고의·중과실이 확정되면 민사소송에서 같은 사실을 다시 다투는 부담이 크게 줄어들기 때문에, 실무상으로는 형사절차의 진행 경과를 지켜보며 청구 시점과 청구 범위를 조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청구를 준비할 때는 고용노동부나 안전보건공단의 재해조사의견서, 사업장의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이행 여부를 보여주는 자료, 위험성평가 실시 내역과 반복 지적사항 개선 이력, 형사판결문, 산재보험 급여 결정 내역 등을 확보해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청구권도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성격을 가지므로, 민법 제766조에 따라 손해와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불법행위가 있은 날로부터 10년이 지나면 시효로 소멸한다는 점도 함께 유의해야 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산재보험 유족급여를 이미 받았는데 중대재해처벌법상 5배 배상을 별도로 청구할 수 있나요?
A. 가능합니다. 산재보험급여는 같은 항목의 재산적 손해를 그 한도에서 대신하는 것일 뿐이고, 중대재해처벌법 제15조에 따른 배상책임은 통상의 손해배상과는 별개로 창설된 청구권이라 산재보험급여 수령 여부와 무관하게 행사할 수 있습니다.
Q. 5배 배상이라는 게 실제 손해액의 5배가 자동으로 인정된다는 뜻인가요?
A. 아닙니다. 5배는 법이 정한 상한선일 뿐이고, 실제 배수는 법원이 고의·중과실의 정도, 피해규모, 위반의 반복성, 재발방지 노력 등을 종합해 재량으로 정합니다. 사안에 따라 상한에 못 미치는 배수만 인정될 수도 있습니다.
Q. 회사가 "안전관리를 다 했다"고 주장하면 배상책임을 면할 수 있나요?
A. 법인이 해당 업무에 상당한 주의와 감독을 게을리하지 않았음을 증명하면 면책될 여지는 있습니다. 다만 이 사안 자체가 경영책임자의 고의·중과실을 전제로 하는 경우가 많아, 실무상 이 항변이 받아들여지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Q. 형사재판에서 무죄가 나오면 민사상 5배 배상 청구도 어려워지나요?
A. 형사 무죄가 곧바로 민사상 배상책임 부정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고의·중과실을 별도로 입증해야 하는 부담은 커집니다. 형사와 민사는 증명책임과 증명의 정도가 다르므로 별개로 판단됩니다.
Q. 원청과 하청 중 누구를 상대로 청구해야 하나요?
A.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부담하는 경영책임자등이 속한 법인·기관이 배상책임의 주체이므로, 원청이 중대재해처벌법상 의무를 부담하는 사업장이라면 원청을 상대로도 청구할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누가 의무 주체인지는 도급관계와 지배·관리 여부에 따라 달라집니다.
Q.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기간에 제한이 있나요?
A.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청구권과 마찬가지로, 손해와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불법행위가 있은 날로부터 10년이 지나면 시효로 소멸합니다. 사고 이후 너무 오래 방치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맺음말
산재보험급여를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회사에 대한 책임 추궁이 끝났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 제15조는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의 고의·중대한 과실로 중대재해가 발생한 경우 통상의 손해배상과는 별도로 손해액의 5배까지 배상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고, 산재보험급여는 이 청구권 자체를 막지 못합니다. 다만 실제 배수는 법원이 사안별 사정을 종합해 정하는 것이고, 산재보험급여와의 구체적 조정 방식은 아직 판례가 충분히 쌓이지 않은 영역이라는 점도 함께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결국 이 청구가 실질적인 결과로 이어지려면 안전보건 확보의무 위반의 구체적 사실관계와 고의·중과실을 뒷받침할 자료를 처음부터 꼼꼼히 갖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형사절차의 진행 상황을 지켜보며 청구 시점을 판단하고, 산재보험급여로 이미 전보된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구분해 청구 범위를 설계하는 작업이 함께 이루어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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