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형사재판에서 가해자가 피해자 동의 없이 돈을 공탁소에 맡기고 감형을 받아가는 '기습공탁' 문제는 오래전부터 지적되어 왔습니다. 피해자가 미처 의견을 낼 틈도 없이 판결이 선고되고, 공탁금은 감형 사유로만 쓰인 채 정작 피해자는 그 돈을 받을지 말지조차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구조였기 때문입니다. 2025년 1월 17일부터 시행된 개정 형사소송법은 이 구조에 제동을 걸어, 법원이 판결을 선고하기 전 반드시 피해자의 의견을 듣도록 의무화했습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2026년 하반기부터는 피해자가 공탁금 수령을 거부하거나 엄벌을 원한다는 의견을 냈을 때 그 의견이 감형 판단에 실제로 어떻게 반영되는지를 정한 새 양형기준까지 적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법원의 의견청취 절차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되고, 피해자의 의견이 감형 판단에 어떤 방식으로 반영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대표변호사
형사공탁, 왜 "확인 없는 감형 카드"라는 비판을 받았나
공탁법 제5조의2가 정한 형사공탁 특례제도는 2022년 12월 9일부터 시행됐습니다. 성범죄를 비롯한 형사사건의 가해자가 피해자의 인적사항을 몰라도 재판이 계속 중인 법원과 사건번호만으로 그 법원 소재지 공탁소에 돈을 맡길 수 있도록 한 제도입니다. 원래 취지는 가해자가 합의를 명목으로 피해자의 개인정보를 캐묻거나 직접 접촉하면서 벌어지는 2차 피해를 막자는 것이었습니다. 공탁통지도 공탁관이 인터넷 홈페이지에 공고하는 방법으로 갈음할 수 있게 해, 피해자가 신상을 노출하지 않고도 공탁금을 찾아갈 수 있게 한 구조입니다.
문제는 시행 이후 이 제도가 정반대 방향으로 쓰이는 사례가 쌓였다는 데 있습니다. 판결 선고가 임박한 시점에 피해자가 대응할 시간조차 없이 이뤄지는 '기습공탁', 공탁으로 감형을 받아낸 뒤 피해자가 찾아가지 않은 공탁금을 가해자가 몰래 회수해 가는 '먹튀공탁'이 대표적입니다. 한 시사프로그램이 형사공탁 특례제도 시행 이후의 판결을 분석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공탁이 이뤄진 사건 중 상당수에서 감형이 인정됐고 성범죄 사건만 놓고 보면 그 비율이 특히 두드러졌습니다. 같은 보도에서는 공탁을 원치 않는다는 피해자의 의사가 판결문에 명확히 반영된 사례가 전체의 20%대에 그쳤고, 오히려 피해자가 엄벌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는데도 공탁이 감경 사유로 반영됐거나 반영된 것으로 추정되는 사례가 그보다 더 많았다는 조사 결과도 함께 제시됐습니다.
결국 피해자 입장에서는 공탁 사실조차 모른 채 재판이 끝나거나, 수령을 거부해도 그 의사와 무관하게 감형에 쓰이는 상황이 반복된 셈입니다. 형사공탁 특례제도 자체를 없애자는 논의까지 나왔지만, 피해자 신상 보호라는 원래 취지 자체는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결국 국회는 제도를 폐지하는 대신 절차를 보완하는 방향을 택했습니다. 형사소송법과 공탁법을 함께 손봐 법원의 의견청취를 의무화하고 공탁금 회수를 제한한 것이 그 결과물입니다. 아래에서 그 개정 내용과 실제 재판 실무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순서대로 짚어보겠습니다.
형사소송법 제294조의5 신설 — 법원의 피해자 의견청취 의무
2024년 10월 16일 공포되어 2025년 1월 17일부터 시행된 개정 형사소송법은 제294조의5(금전 공탁과 피해자 등의 의견 청취)를 새로 뒀습니다. 이 조항 제1항은 법원이 피고인의 공탁 사실을 확인하면 판결을 선고하기 전에 피해자 또는 그 법정대리인(피해자가 사망한 경우에는 배우자·직계친족·형제자매를 포함)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고 정합니다. 공탁이 있었다는 사실만 확인되면 곧바로 감형 판단으로 넘어가던 종전 실무와 달리, 이제는 법원이 피해자에게 의견을 물어보는 절차를 거치는 것이 원칙이 됐습니다.
다만 이 개정 규정은 소급 적용되지 않습니다. 시행일인 2025년 1월 17일 이후 피고인이 공탁을 한 경우부터 적용되므로, 사건 자체가 언제부터 진행됐는지가 아니라 공탁이 실제로 언제 이뤄졌는지가 기준입니다. 또한 이 조항이 "피해자 동의가 있어야만 공탁이 가능하다"는 뜻은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공탁 자체는 여전히 피고인이 일방적으로 할 수 있고, 달라진 것은 그 공탁을 유리한 정상으로 볼지 판단하기 전에 법원이 피해자의 목소리를 반드시 듣게 됐다는 절차입니다.
형사소송법 제294조의5는 공탁을 막는 조항이 아니라, 공탁을 감형 사유로 인정할지 판단하기 전에 법원이 피해자의 의견을 반드시 듣도록 만든 절차 조항이다.
의견청취는 언제, 어떻게 이뤄지나 — 통지부터 의견 진술까지
실무에서는 피고인이 공탁을 마치면 법원이 그 사실을 확인한 뒤 피해자(또는 법정대리인)에게 공탁이 이뤄졌다는 사실과 의견을 낼 수 있다는 점을 통지하는 방식으로 절차가 시작됩니다. 피해자는 서면으로 의견서를 제출하거나, 필요하면 기일에 출석해 진술하는 방식으로 의견을 낼 수 있습니다. 의견의 내용에는 공탁금을 수령할 것인지, 수령을 거부하는지, 처벌을 원하는지, 처벌불원 의사가 있는지 등이 모두 포함될 수 있고, 법원은 이를 판결 선고 전 양형자료로 검토합니다.
의견 청취의 구체적 방법·절차는 법 조항이 대법원규칙에 위임하고 있어, 사건마다 서면 제출과 기일 진술 중 어느 방식이 활용되는지는 재판부의 소송지휘와 사건 진행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다만 공통적으로 확인해야 할 점은, 이 절차가 신설되기 전에는 피해자가 별도로 의견서를 내지 않으면 법원이 공탁 사실과 감형 여부를 사실상 서류만으로 판단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법원이 먼저 의견을 묻는 절차를 거치지 않으면 그 공탁을 양형에 반영하는 데 제약이 생긴다는 점에서, 피해자에게는 실질적인 발언 기회가 새로 생긴 셈입니다.
특히 성범죄 사건에서는 이 의견 진술 방식이 서면으로도 가능하다는 점이 실무적으로 중요합니다. 가해자와 같은 법정에 출석해 진술해야만 의견을 낼 수 있다면 그 자체가 또 다른 부담이 되어 의견 표명을 포기하는 피해자가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서면 의견서 제출이 함께 허용되면서, 법정 출석에 따른 2차 피해 우려 없이도 수령 여부와 처벌 의사를 법원에 전달할 수 있는 통로가 마련된 셈입니다.
의견청취를 생략할 수 있는 예외 — 대법원규칙이 정한 사유
제294조의5 제1항 단서는 의견을 청취하기 곤란한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이 절차를 생략할 수 있다고 정하고, 그 구체적 사유는 대법원규칙에 위임했습니다. 실무상 언급되는 예외 사유는 크게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이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데도 법원이 의견청취 절차 없이 곧바로 공탁을 감형 사유로 삼는다면, 절차상 문제로 다퉈볼 여지가 생깁니다.
피해자가 이미 해당 사건에서 공탁에 대한 의사를 진술한 경우 — 같은 내용을 다시 물을 필요가 없어 생략 가능.
의견청취로 공판절차가 현저하게 지연될 우려가 있는 경우.
피공탁자의 인적사항을 확인할 수 없는 등의 사유로 의견을 듣기 곤란한 경우.
그 밖에 심리나 절차 진행 상황 등에 비추어 의견을 듣기 곤란한 경우.
기습공탁·먹튀공탁을 막는 또 다른 장치 — 공탁금 회수 제한
의견청취 의무만큼 중요한 것이 같은 시기에 함께 개정된 공탁법의 회수 제한 규정입니다. 종전에는 가해자가 공탁으로 감형을 받아낸 뒤, 피해자가 그 돈을 찾아가지 않고 있는 사이 공탁금을 몰래 회수해 가는 '먹튀공탁'을 막을 법적 장치가 뚜렷하지 않았습니다. 개정 공탁법은 형사사건의 피해자를 위해 변제공탁을 한 공탁자는 원칙적으로 그 공탁물을 회수할 수 없도록 정했습니다.
회수가 가능한 예외는 제한적입니다. 피공탁자인 피해자가 공탁물 회수에 동의하거나 수령을 거절하는 의사를 공탁소에 서면으로 통고한 경우, 또는 그 공탁의 원인이 된 형사사건에서 무죄판결이 확정되거나 불기소 결정이 있는 경우(기소유예는 제외)만 회수가 허용됩니다. 이 세 가지에 해당하지 않는 한 가해자는 일단 맡긴 공탁금을 임의로 되찾아 갈 수 없어, 감형만 받고 돈은 회수하는 이중 이득 구조가 제도적으로 차단됩니다. 공탁금 보관 방식도 공탁물 보관은행의 별단예금으로 예탁하도록 정해, 공탁자가 은행 절차를 통해 임의로 손대기 어렵게 만든 것도 같은 맥락의 장치입니다.
공탁물 회수는 피해자의 회수 동의·수령거절 통고, 또는 무죄판결 확정·불기소 결정이 있는 경우가 아니면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 감형만 받고 돈은 되찾는 구조를 막기 위한 장치다.
피해자 의견, 감형 판단에 실제로 어떻게 반영되나 — 2026년 개정 양형기준
법원이 의견을 듣는 절차가 생겼다고 해서 곧바로 감형 폭이 줄어드는 것은 아닙니다. 그 의견을 양형에서 얼마나, 어떻게 반영할지를 정하는 것은 별도로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만드는 양형기준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양형위원회는 제144차 전체회의(2026년 3월)에서 피해 회복 관련 양형기준을 수정하기로 했고, 이 기준은 2026년 7월 1일 이후 공소가 제기된 범죄부터 적용되고 있습니다.
이번 수정의 핵심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전체 범죄군에 쓰이던 '실질적 피해회복(공탁포함)', '상당한 피해회복(공탁포함)'이라는 양형인자 명칭에서 '공탁포함' 문구를 모두 삭제했습니다. 공탁했다는 사실 자체가 곧 피해회복으로 자동 인정되는 것처럼 읽히던 표현을 없앤 것입니다. 둘째, 실질적 피해회복에 해당하는지를 "공탁에 대한 피해자 또는 그 법정대리인의 의견, 피고인이 공탁금을 회수하는 것이 가능하거나 회수할 의사가 있는지 여부, 피해 법익의 성질과 피해의 규모·정도 등을 신중하게 조사·판단한 결과"에 따라 정하도록 판단 기준을 구체화했습니다.
실무적으로 가장 크게 달라지는 지점은, 피해자가 공탁금 수령을 거부하거나 엄벌을 요구하는 의견을 낸 경우입니다. 이런 의견이 확인되면 공탁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감경 사유를 인정하기 어려워지고, 종전보다 감경 효과가 제한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반대로 피해자가 별다른 이의 없이 수령했거나 의견을 내지 않은 경우까지 자동으로 감경 폭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함께 봐야 합니다. 즉 개정 형사소송법이 만든 것은 '법원이 의견을 듣는 절차'이고, 2026년 개정 양형기준이 만든 것은 '그 의견을 어떤 기준으로 감형 판단에 반영할지'라는 두 단계가 맞물려 실제 양형 실무를 바꾸고 있는 셈입니다.
2026년 7월 1일 이후 공소제기된 사건부터는 피해자가 공탁금 수령을 거부하거나 엄벌을 요구했다는 의견이 확인되면, 공탁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감경 사유를 인정받기 어려워진다.
성범죄 사건에서 피해자가 의견을 전달할 때 챙길 실무 포인트
제도가 바뀌었어도 피해자가 아무 의견도 내지 않으면 법원이 참고할 자료 자체가 없습니다. 통지를 받았다면 짧게라도 서면으로 입장을 남겨두는 것이 중요하고, 그 내용은 구체적일수록 뒤에 판결문에서 실제로 검토됐는지 확인하기도 쉽습니다. 2026년 개정 양형기준이 "신중한 조사·판단"을 요구하는 만큼, 막연히 "처벌을 원한다"는 한 줄보다는 수령 여부와 그 이유, 처벌 의사를 항목별로 나눠 적는 편이 법원이 실제로 참작하기에도 명확합니다.
공탁금 수령 여부(수령·거부)와 그 이유를 서면에 명확히 적을 것.
처벌불원 의사가 없다면 "처벌불원 의사가 없다"는 문장을 직접 명시할 것 — 침묵은 의사 없음으로 해석되지 않을 수 있음.
법원의 통지를 받지 못했다면 사건 담당 재판부에 의견서 제출 절차를 먼저 문의할 것.
의견서 제출 후에는 접수증이나 제출 확인 자료를 보관해 둘 것.
자주 묻는 질문
Q. 형사소송법 제294조의5는 모든 형사사건에 적용되나요?
A. 조문 자체는 범죄 유형을 특정하지 않고 "피고인이 피해자의 권리 회복에 필요한 금전을 공탁한 경우"를 요건으로 하므로 성범죄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다만 형사공탁 특례제도가 애초에 성범죄 등 신상 노출을 꺼리는 피해자 보호를 위해 설계된 만큼, 실무상 활용 빈도와 감형 여부를 둘러싼 논란 모두 성범죄 사건에서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편입니다.
Q. 법원에서 의견청취 통지를 받지 못했는데 판결이 났다면 문제 삼을 수 있나요?
A. 통지 누락이 확인되고 대법원규칙이 정한 예외 사유에도 해당하지 않는다면 절차상 하자를 다툴 여지가 있습니다. 다만 실제로 이를 상소 이유로 주장하려면 사건 기록에서 통지 여부와 예외 사유 해당 여부를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작업이 먼저 필요합니다.
Q. 공탁금을 받으면 처벌불원 의사를 표시한 것으로 간주되나요?
A. 그렇지 않습니다. 수령과 처벌 의사는 별개입니다. 공탁금을 수령하면서도 동시에 처벌을 원한다는 의견을 낼 수 있고, 2026년 개정 양형기준 아래에서는 이런 의견이 확인되면 그만큼 감경 효과가 제한적으로 평가될 수 있습니다.
Q. 이미 2025년 1월 17일 이전에 공탁이 이뤄진 사건도 의견청취 절차를 거치나요?
A. 개정 규정은 시행일 이후 공탁이 이뤄진 경우부터 적용되므로, 그 이전에 이미 공탁이 완료된 사건에는 원칙적으로 적용되지 않습니다. 공탁 시점이 언제인지가 적용 여부를 가르는 기준입니다.
Q. 피해자가 의견서에서 엄벌을 요구하면 공탁이 감형에 전혀 반영되지 않나요?
A. 완전히 배제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2026년 개정 양형기준은 피해자 의견을 포함한 여러 사정을 "신중하게 조사·판단"하도록 정했을 뿐 공탁을 일률적으로 배제하지는 않으며, 법원이 종합적으로 판단해 감경 효과의 폭을 제한하는 방향으로 운용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Q. 공탁금을 회수하지 못하게 됐다는데, 무죄가 나오면 어떻게 되나요?
A. 그 형사사건에서 무죄판결이 확정되거나 불기소 결정(기소유예 제외)이 있으면 공탁자는 공탁물을 회수할 수 있습니다. 유죄가 확정되거나 기소유예에 그친 경우에는 피해자의 회수 동의나 수령거절 통고가 없는 한 회수가 제한됩니다.
맺음말
형사공탁은 여전히 피고인이 일방적으로 할 수 있는 절차이지만, 그 공탁을 감형 사유로 볼지 판단하는 과정은 더 이상 서류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2025년 시행된 형사소송법 제294조의5로 법원의 의견청취가 원칙이 됐고, 2026년 하반기부터 적용되는 개정 양형기준으로 피해자가 수령을 거부하거나 엄벌을 요구했다는 의견이 실제 감경 판단에 반영되는 구체적 기준까지 마련됐습니다.
결국 이 제도가 실제로 작동하려면 피해자가 통지를 받았을 때 자신의 의견을 명확히 남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의견을 내지 않으면 법원이 참고할 자료 자체가 비어 있게 되고, 종전처럼 공탁 사실만으로 판단이 이뤄질 여지가 남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가해자 쪽에서도 공탁만 하면 자동으로 감형된다는 전제는 더 이상 성립하지 않으므로, 공탁의 시기와 방식을 신중하게 검토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통지 방식이나 예외 사유 해당 여부가 애매하게 느껴진다면, 사건 초기에 절차를 확인해보는 것이 뒤늦게 대응하는 것보다 안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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