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에게 빌려준 통장이 범죄에 쓰였다면 — 대가·인식 입증
지인에게 빌려준 통장이 범죄에 쓰였다면 — 대가·인식 입증
법률가이드
기타 재산범죄사기/공갈

지인에게 빌려준 통장이 범죄에 쓰였다면 — 대가·인식 입증 

김강희 변호사


지인에게 빌려준 통장이 범죄에 쓰였다면 — 대가·인식 입증


사건 개요


"통장을 빌려달라"는 부탁은 대개 급박하고 사소해 보입니다. "사업자금이 급하게 필요한데 내 계좌가 압류돼서 그런다", "월급을 잠깐만 다른 계좌로 받아야 한다"처럼 그럴듯한 사정을 댄 지인이나 친척이 통장과 체크카드, 비밀번호까지 빌려달라고 청해 오면, 평소 신뢰하던 사이라면 별다른 의심 없이 빌려주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사례금 명목으로 몇만 원, 많게는 몇십만 원을 받기도 하고, 아무 대가 없이 순수한 호의로 빌려주기도 합니다.

문제는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서에서 출석요구서가 날아오면서 시작됩니다. 빌려준 통장이 보이스피싱이나 사기 범행의 입금 계좌로 쓰였고, 피해자들의 돈이 그 계좌를 거쳐 갔다는 것입니다. 당사자는 "나는 정말 몰랐다"고 항변하지만, 수사기관은 일단 전자금융거래법 위반과 사기방조 혐의를 함께 검토합니다. 실제로 상담을 청해 오는 분들 상당수가 "빌려준 대가로 받은 게 없는데도 처벌받느냐", "몰랐다는 걸 어떻게 증명하느냐"를 가장 답답해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통장을 빌려준 사실 자체만으로 곧바로 형사처벌이 확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처벌 여부를 가르는 것은 대여의 대가가 있었는지, 그리고 범죄에 이용될 것을 인식하고 있었는지 이 두 가지입니다. 다만 이 두 가지는 저절로 인정되지 않고, 수사 초기 단계부터 구체적인 자료와 진술로 소명해야 하는 사실관계입니다.


핵심 쟁점


이런 사건에서 실제로 결과를 가르는 지점은 크게 네 가지입니다. 첫째, 빌려준 물건이 통장·체크카드·비밀번호 등 전자금융거래법상 '접근매체'에 해당하는지입니다(전자금융거래법 제2조 제10호). 둘째, 그 대여에 경제적 대가가 있었는지입니다 — 같은 법 제6조 제3항 제2호는 대가를 수수·요구 또는 약속하면서 접근매체를 대여받거나 대여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이를 위반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집니다(제49조 제4항 제2호). 셋째, 대여 당시 그것이 범죄에 이용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적어도 미필적으로)하고 있었는지입니다 — 이는 전자금융거래법위반죄뿐 아니라 형법상 사기방조죄(제347조, 제32조) 성립 여부까지 좌우합니다. 넷째, 대여 이후 그 계좌에 들어온 돈에 손을 댔는지입니다 — 설령 대여 자체는 처벌을 면하더라도, 입금된 돈을 임의로 인출하면 피해자에 대한 횡령죄가 별도로 성립할 수 있습니다(대법원 2018. 7. 19. 선고 2017도17494 전원합의체 판결).

이 네 가지 중 첫째는 대부분의 사안에서 다툼의 여지가 적고, 실제 승부는 둘째와 셋째 — 즉 대가와 인식이라는 두 요건을 얼마나 구체적으로 소명하느냐에서 갈립니다.



김강희 변호사의 해결방법 [1]: '대가 없음'을 객관적으로 입증하기


"돈을 받은 적이 없다"는 진술만으로는 수사기관을 설득하기 어렵습니다. 전자금융거래법위반죄의 구성요건인 '대가'는 접근매체를 넘겨주는 행위에 대응하는 경제적 이익을 뜻하므로, 단순한 호의나 기대, 상대방의 기망에 의해 빌려준 경우까지 포함하지 않는다는 것이 판례의 태도입니다. 이런 사건에서 김강희 변호사는 다음 순서로 대가성 유무를 재구성합니다.

1) 금전 흐름을 은행 거래내역으로 확인합니다.

빌려준 시점을 전후로 상대방으로부터 입금된 돈이 있는지, 있다면 그 금액과 명목이 무엇인지를 계좌 거래내역으로 먼저 확인합니다. 입금이 전혀 없다면 대가성을 다툴 가장 강력한 근거가 되고, 입금이 있더라도 그 금액이 통상적인 생활비 정산이나 기존 채무 변제 등 다른 실질을 가진 것이라면 대여의 '대가'가 아니라는 점을 구체적인 경위와 함께 소명합니다.

2) 대여를 요청받은 경위를 대화 기록으로 남깁니다.

카카오톡, 문자, 통화 녹음 등에 남아 있는 "잠깐만 빌려줘", "곧 돌려줄게" 같은 표현은 그 대여가 대가를 전제로 한 거래가 아니라 호의에 의한 일시적 대여였음을 뒷받침합니다. 대화가 삭제됐더라도 통신사나 메신저 서비스에 자료 보존을 요청하거나 백업 자료를 확보할 수 있는지부터 점검합니다.

3) 상대방과의 관계와 대여 경위를 진술서로 구체화합니다.

가족, 오랜 친구, 직장 동료 등 평소의 신뢰관계와 과거에도 비슷한 부탁을 들어준 적이 있는지를 시간 순서대로 정리해, 이번 대여가 낯선 사람과의 금전 거래가 아니라 기존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 호의였다는 맥락을 갖춥니다.


김강희 변호사의 해결방법 [2]: 범죄에 쓰일 줄 몰랐다는 인식 부재를 소명하기


대가가 없었다는 점이 인정되더라도, 대여 당시 범죄에 이용될 것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면 사기방조죄가 별도로 문제 됩니다. 방조범이 성립하려면 정범의 범행을 돕는다는 사실을 적어도 미필적으로 인식하고 있었어야 하고, 막연히 "뭔가 문제가 생길 수도 있겠다" 정도의 불안감만으로는 그 인식이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것이 법원의 일반적인 태도입니다. 이 단계에서 김강희 변호사는 다음을 챙깁니다.

1) 상대방이 제시한 명목을 구체적으로 재구성합니다.

"사업자금이 급해서", "계좌가 압류돼서", "급여를 대신 받아야 해서"처럼 상대방이 내세운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그것이 당시로서는 의심할 만한 정황 없이 받아들여질 만했는지를 시간 순서대로 정리합니다. 그럴듯한 사유와 평소의 신뢰관계가 겹치면, 통상적인 주의를 기울였어도 범죄에 이용될 것을 예견하기 어려웠다는 정황이 됩니다.

2) 이상 징후를 인지한 시점과 그 직후의 대응을 기록합니다.

통장이 정지되거나 경찰에서 연락이 온 시점, 그 즉시 취한 조치(사실관계 확인, 은행 문의, 지급정지 신청 등)를 정리해 두면,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뒤늦게 인지하고 즉각 대응했다는 흐름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3) 계좌에 들어온 돈에는 손대지 않았다는 점을 분명히 합니다.

설령 대여와 인식 두 쟁점에서 유리한 사정을 갖췄더라도, 계좌에 입금된 피해금을 인출해 사용했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대법원은 계좌명의인이 보이스피싱 피해금을 임의로 인출하면 사기방조죄와 별개로 피해자에 대한 횡령죄가 성립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대법원 2018. 7. 19. 선고 2017도17494 전원합의체 판결). 그래서 이상 징후를 느낀 순간부터 그 계좌의 잔액에는 절대 손대지 말고, 오히려 먼저 은행에 지급정지를 신청해 두는 것이 유리한 정황으로 남습니다.


결론


통장을 빌려준 일은 순간의 호의였을 뿐인데, 그 결과가 형사처벌로 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은 당해 보지 않으면 체감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대가가 없었다는 사실과 범죄에 쓰일 줄 몰랐다는 사실은 저절로 증명되지 않으며, 수사 초기에 어떤 자료를 남기고 어떤 진술을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집니다.

경찰서 출석요구서를 받았거나 빌려준 통장이 범죄에 연루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면, 진술을 하기 전에 대가 유무와 인식 유무를 어떻게 소명할 수 있을지부터 점검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로톡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콘텐츠 내용에 대한 무단 복제 및 전재를 금지하며, 위반 시 민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김강희 변호사가 작성한 다른 포스트
조회수 28
관련 사례를 확인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