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개발 용역대금이 묶였다면 — 검수 기준과 기성 청구
번역·개발 용역대금이 묶였다면 — 검수 기준과 기성 청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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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개발 용역대금이 묶였다면 — 검수 기준과 기성 청구 

김강희 변호사


번역·개발 용역대금이 묶였다면 — 검수 기준과 기성 청구


사건 개요


번역이든 개발이든, 결과물을 넘긴 뒤에 대금이 막히는 패턴은 놀랍도록 비슷합니다. 프리랜서 번역가나 개발 에이전시가 계약대로 작업을 마치고 결과물을 전달하면, 발주처가 "품질이 기대에 못 미친다"며 잔금이나 중도금 지급을 미루거나 아예 거절하는 것입니다. 특허 명세서·계약서를 번역해 넘겼는데 "오역이 많아 못 쓰겠다"는 말을 듣거나, 앱·웹 시스템을 개발해 인도했는데 "버그가 많아 실사용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대금이 묶이는 식입니다.

이런 상담이 실제로 상당히 많습니다. 문제는 대부분의 계약서에 "품질에 만족스러울 것" 정도의 막연한 문구만 있을 뿐, 무엇을 완성으로 볼 것인지, 무엇을 하자로 볼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검수 기준이 없다는 점입니다. 그 공백을 발주처가 "내 마음에 안 든다"는 주관적 불만으로 채워 넣으면서 대금 전체가 인질처럼 묶여 버립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런 다툼은 감정이나 말솜씨가 아니라 결과물이 계약에서 정한 내용과 실제로 다른지, 그리고 그 결과물이 어느 정도까지 완성되었는지라는 두 축으로 정리됩니다. 이 두 축을 얼마나 자료로 재구성해 두는가에 따라, 대금을 전혀 못 받는 상황과 정당한 몫을 받아내는 상황이 갈립니다.


핵심 쟁점


이런 사건에서 실제로 다투는 지점은 크게 네 가지입니다. 첫째, 이 계약의 실질이 결과물의 완성을 대가로 하는 도급인지(민법 제664조), 아니면 단순히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 대가를 지급하는 위임인지입니다. 둘째, 발주처가 문제 삼는 지점이 법이 말하는 '하자'—계약에서 정한 내용과 다르고 불완전한 점(민법 제667조 제1항)—에 해당하는지, 아니면 계약서에 없던 주관적 취향의 문제인지입니다. 셋째, 결과물이 사실상 완성되어 인도된 상태인지, 아니면 미완성 상태에서 중단된 것인지입니다. 넷째, 미완성이라면 완성된 부분에 대한 보수(기성 부분 대금)를 어떤 근거로 청구할 수 있는지입니다.

이 네 가지는 순서대로 이어져 있습니다. 계약의 성격이 도급으로 확정되어야 하자담보책임과 기성고 법리를 논할 수 있고, 하자 여부가 객관적으로 정리되어야 그다음 완성도와 대금 액수를 다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승패는 대개 이 네 지점을 얼마나 미리 자료로 갖추어 두었는가에서 갈립니다.



김강희 변호사의 해결방법 [1]: 계약이 정한 '검수 기준'으로 하자 여부를 재구성하기


가장 먼저 무너지는 지점이 "무엇이 하자인가"에 대한 기준 자체입니다. 계약서에 검수 기준이 명시되어 있지 않다고 해서 발주처의 막연한 불만이 곧 법적 하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사건에서 김강희 변호사는 다음 순서로 사실관계를 재구성합니다.

1) 계약서·명세서·사전 대화기록에서 합의된 기준을 찾아 재구성합니다.

계약서에 별도의 검수 기준이 없더라도, 발주 전후 주고받은 이메일·메신저 대화, 요구사항 정의서, 번역이라면 용어집·스타일 가이드, 개발이라면 기능 명세서나 화면설계서(와이어프레임)에 실제로 무엇을 완성으로 합의했는지가 남아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초안 단계에서 발주처가 승인·수정 요청을 주고받은 이력도 "이 수준이면 된다"고 서로 확인한 기준으로 쓰입니다. 이 자료들을 시간순으로 정리해, 계약이 실제로 정한 완성의 기준선을 재구성합니다.

2) 하자는 '계약에서 정한 내용과 다른지'로 판단됨을 명확히 합니다.

민법 제667조가 말하는 하자란 완성된 일이 계약으로 정한 내용대로가 아니고 불완전한 점이 있는 것입니다. "번역투가 어색하다", "디자인이 마음에 안 든다"는 식의 취향 문제는 계약서·명세서에 그 기준이 없었다면 법적 하자로 인정되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지정된 용어집과 다르게 번역했다", "명세서에 있는 기능이 동작하지 않는다"처럼 합의된 기준과의 편차가 특정될 때 비로소 하자 다툼이 성립합니다. 그래서 발주처가 제기하는 불만 목록을 하나씩 계약서·명세서 항목과 대조해, 어디까지가 진짜 하자이고 어디부터가 취향인지를 가려냅니다.

3) 하자가 '중요하지 않은' 경우엔 보수 자체를 거부할 근거가 없음을 짚어 둡니다.

민법 제667조 제1항 단서는 하자가 중요하지 아니하고 그 보수에 과다한 비용을 요하는 경우에는 하자보수 자체를 청구할 수 없다고 정합니다. 오탈자 몇 건, 사소한 화면 배치 차이처럼 전체 작업의 본질에 영향을 주지 않는 흠을 이유로 대금 전액을 무기한 묶어 두는 태도는, 이 조항에 비추어 정당화되기 어렵습니다. 하자의 경중을 항목별로 나누어 정리하면, "전부 아니면 전무"식의 대금 유보가 근거를 잃습니다.


김강희 변호사의 해결방법 [2]: 완성 여부에 따라 잔금과 기성금을 구분해 청구를 설계하기


하자 다툼이 정리되어도, 대금을 얼마나 받을 수 있는지는 결과물의 완성 정도에 따라 전혀 다른 경로를 탑니다. 이 단계에서 김강희 변호사는 완성 여부를 먼저 가른 뒤 청구 구조를 설계합니다.

1) 결과물이 사실상 완성되어 인도된 경우, 동시이행관계를 활용합니다.

대법원은 완성된 목적물에 하자가 있어도, 발주처가 하자보수·손해배상청구권을 보유·행사하는 한 대금지급채무가 곧바로 이행지체에 빠지는 것은 아니고, 그 채권으로 상계하겠다는 의사표시를 한 다음 날부터 비로소 지체책임을 진다고 봅니다(대법원 1991. 12. 10. 선고 91다33056 판결). 이는 하자보수·손해배상청구권과 보수지급채무가 동시이행관계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 법리는 뒤집어 보면, 발주처가 하자를 특정하지도 않은 채 대금 전체를 기약 없이 묶어 두는 것은 정당한 항변권 행사가 아니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하자의 범위를 금액으로 특정해 상계·공제를 받아들이고, 나머지 잔금은 지급받아야 한다는 논리로 대응합니다.

2) 결과물이 미완성인 경우, 기성고 법리로 접근합니다.

소프트웨어 개발처럼 완성물의 이용 가능성이 불분명한 도급에서는, 건축 공사와 다른 특수한 법리가 적용됩니다. 판례는 수급인이 만든 결과물이 거의 완성되어 약간의 보완만 가하면 실제 업무에 사용할 수 있을 정도임에도, 발주처가 그 결과물에 불만을 표시하며 수급인의 수정·보완 제의를 거부하는 등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 한해 기성 부분에 대한 보수를 청구할 수 있다고 봅니다. 번역 작업도 마찬가지로, 상당 분량이 이미 완성되어 발주처가 이를 열람·활용했다는 사실, 남은 분량과 완성 분량의 비율, 발주처가 추가 수정 기회조차 주지 않고 계약을 끊었다는 정황 등을 갖추어 기성 부분 보수 청구의 토대로 삼습니다.

3) 감정과 하자담보책임 기간을 함께 챙깁니다.

완성도나 기성고 비율은 당사자 주장만으로 다투기 어려운 영역이라, 필요하면 전문가 감정을 통해 완성 부분의 가치와 잔여 작업량을 객관적 수치로 세웁니다. 아울러 하자보수·손해배상 청구는 목적물을 인도받은 날부터 1년(인도를 요하지 않는 경우 일의 종료 시부터 1년) 안에 해야 한다는 담보책임 존속기간(민법 제670조)도 함께 확인합니다. 협상이 길어지는 사이 이 기간이 지나면 정당한 권리도 행사할 기회를 잃게 되므로, 청구와 협상의 일정을 이 기간에 맞추어 관리합니다.


결론


번역이든 개발이든, 결과물을 다 넘겨주고도 "품질이 마음에 안 든다"는 말 한마디에 대금이 묶이는 상황은 억울하게 느껴지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법정에서는 그 억울함이 아니라, 계약이 정한 기준과 실제로 얼마나 어긋났는지, 그리고 그 결과물이 어느 정도까지 완성되었는지가 판단의 축이 됩니다.

검수 기준을 재구성해 하자 여부를 가려내고, 완성 정도에 따라 잔금 청구와 기성 부분 청구 중 맞는 경로를 골라 자료로 뒷받침하는 것이 결과를 가릅니다. 지금 그런 이유로 대금이 묶여 있다면, 어떤 자료를 남기고 어느 경로로 청구를 설계해야 할지 한 번 점검을 받아보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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