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가 퇴직하는 직원의 퇴직금에서 예전에 빌려준 돈을 그대로 떼고 지급하거나, 대출을 연체한 고객의 예금을 은행이 임의로 차감해 가는 일이 실무에서 드물지 않게 벌어집니다. 그러나 급여·퇴직금·생계비 예금처럼 법이 압류 자체를 금지한 채권은, 상대방이 "상계로 정리했다"고 주장해도 그 상계가 법적으로는 대항력을 갖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상계가 가능한지는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의 사정이 아니라, 상계당하는 그 채권이 압류금지채권에 해당하는지부터 따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글에서는 압류금지채권을 수동채권으로 하는 상계가 왜 막히는지, 실무에서 어떤 채권이 여기에 해당하는지, 그리고 상계를 이미 당한 쪽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정리해보겠습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대표변호사
상계란 무엇이고, 압류금지채권이 왜 문제되는가
상계는 서로 같은 종류의 채무를 부담하는 두 사람이, 자신이 가진 채권(자동채권)으로 상대방에 대한 채무(수동채권)를 대등액에서 소멸시키는 의사표시입니다. 예를 들어 A가 B에게 급여 200만원을 줄 의무가 있고, 동시에 예전에 빌려준 돈 100만원을 받을 권리가 있다면, A는 그 대여금채권(자동채권)으로 급여채무(수동채권)를 상계해 100만원만 지급하겠다고 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문제는 여기서 상계당하는 쪽의 채권, 즉 수동채권이 급여·퇴직금·생계비 예금처럼 법이 강제집행 자체를 금지해 둔 채권일 때 생깁니다.
이런 채권은 원래 채권자가 소송을 걸어 압류·추심을 하더라도 손댈 수 없도록 법이 특별히 보호해 둔 몫입니다. 그런데 상계를 자유롭게 허용해 버리면, 소송과 압류라는 정식 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상대방이 자신의 채권을 일방적인 의사표시 한 번으로 그 보호된 몫에서 가져가 버리는 결과가 됩니다. 강제집행으로도 못 빼앗는 돈을 상계라는 우회로로 빼앗아가는 셈이어서, 법은 이 지점에서 별도의 금지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다음 항목에서 그 근거 조문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민법 제497조 — 압류금지채권을 수동채권으로 하는 상계는 대항할 수 없다
민법 제497조는 "채권이 압류하지 못할 것인 때에는 그 채무자는 상계로 채권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고 규정합니다. 여기서 "채무자"는 압류금지채권을 갚아야 할 쪽, 즉 앞서 예시로 든 A(급여를 줘야 하는 사용자, 대출금을 받을 은행 등)를 가리킵니다. A가 아무리 유효한 자동채권(대여금·대출금)을 갖고 있어도, 그 채권으로 B의 압류금지채권을 상계했다고 상계의 의사표시를 해봤자 B에게 그 효력을 주장(대항)할 수 없다는 것이 조문의 핵심입니다.
이 규정의 취지는 명확합니다. 압류금지채권은 대부분 채무자 본인과 그 가족의 최소한의 생활을 지키기 위해 법률이 강제집행 대상에서 아예 제외해 둔 몫입니다. 그런데 상계까지 허용하면 소송·압류 같은 정식 절차 없이도 상대방의 일방적 의사표시만으로 그 생계보호 취지가 무력화됩니다. 그래서 민법은 압류가 금지된 채권 자체의 성질에서 상계금지를 도출하고 있으며, 이는 채무자가 상계 사실을 몰랐는지, 상계에 이의를 제기했는지와 무관하게 적용되는 강행규정으로 이해됩니다.
압류금지채권은 채권자가 소송·압류로도 손댈 수 없는 몫이다. 상계는 이 보호를 우회하는 통로가 될 수 있어, 민법 제497조는 압류금지채권을 수동채권으로 하는 상계 자체의 대항력을 부정한다.
무엇이 압류금지채권인가 — 민사집행법 제246조가 정한 범위
실제로 상계금지가 적용되려면 그 수동채권이 압류금지채권에 해당해야 합니다. 민사집행법 제246조 제1항은 압류하지 못하는 채권을 항목별로 열거하고 있는데, 실무에서 자주 문제되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법령에 규정된 부양료, 유족부조료
급료·연금·봉급·상여금·퇴직연금 등 급여채권 중 2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
퇴직금, 그 밖에 이와 비슷한 성질을 가진 급여의 2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
주택임대차보호법 제8조에 따라 우선변제를 받을 수 있는 소액보증금
생명보험금·상해보험금 등 중 일정 금액 이하
개인별 예금 중 최저생계비에 해당하는 금액(2026년 현재 월 185만원)
여기에 더해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유족급여·요양급여 등 개별 법률이 별도로 압류·양도를 금지하는 채권들도 있습니다. 이런 채권은 민사집행법 제246조에 직접 열거되지 않았더라도, 개별법의 압류금지 규정을 통해 민법 제497조가 그대로 적용됩니다. 요컨대 압류금지채권인지 아닌지는 "이 채권을 채권자가 소송·압류로 가져갈 수 있는가"를 기준으로 법률이 개별적으로 정해 둔 문제이지, 금액이 크고 작음이나 당사자의 사정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용자가 임금·퇴직금을 대여금과 상계하는 경우의 한계
근로 현장에서 가장 흔히 문제되는 장면은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빌려준 돈이나 잘못 지급한 돈을 이유로, 지급해야 할 임금·퇴직금에서 그만큼을 떼고 주는 경우입니다. 근로기준법 제43조가 정하는 임금 전액지급 원칙에 따라, 사용자가 자신의 채권으로 근로자의 임금채권을 일방적으로 상계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금지됩니다. 다만 판례는 근로자의 동의가 자유로운 의사에 따른 것이라고 인정할 만한 합리적 이유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상계가 유효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이 동의가 있더라도 무제한으로 상계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대법원 2010. 5. 20. 선고 2007다90760 전원합의체 판결은, 무효인 퇴직금 분할 약정에 따라 매월 급여와 함께 미리 지급된 퇴직금 명목의 돈을 부당이득으로 보면서도, 사용자가 이 부당이득반환채권으로 근로자의 퇴직금채권을 상계하는 것은 퇴직금채권의 2분의 1을 초과하는 부분에 한해서만 허용된다고 판시했습니다. 퇴직금채권 중 2분의 1은 민사집행법상 압류금지 부분이므로, 민법 제497조에 따라 그 부분에는 아무리 정당한 반대채권이 있어도 상계로 대항할 수 없다는 논리가 그대로 관철된 것입니다. 예를 들어 퇴직금이 1,000만원이고 사용자가 받을 돈이 800만원이라면, 상계로 공제할 수 있는 한도는 압류금지 부분(500만원)을 뺀 나머지 500만원까지이고, 근로자는 최소한 500만원은 그대로 지급받아야 합니다.
은행이 예금을 대출금과 상계하는 경우의 한계
또 다른 대표적 장면은 대출을 연체한 고객의 예금계좌에서 은행이 대출채권으로 예금을 상계해 가는 경우입니다. 은행 약관은 통상 기한이익 상실 시 예금과 대출을 상계할 수 있다고 정해두지만, 그 예금 중 최저생계비에 해당하는 부분은 민사집행법 제246조 제1항이 정한 압류금지채권이므로, 은행이 아무리 유효한 대출채권을 갖고 있어도 그 부분에는 상계로 대항할 수 없습니다. 이 점에서 대법원 2015. 6. 11. 선고 2013다40476 판결은, 예금이 압류금지 범위를 초과해 압류금지채권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채권자가 증명해야 한다고 밝혀, 예금주가 아니라 은행·추심채권자 쪽에 증명책임을 지웠습니다.
이 구조는 최근 제도 개편으로 한층 강화되는 추세입니다. 2026년 2월 1일부터는 1인 1계좌로 지정하는 '생계비계좌' 제도가 시행되어, 종전 월 185만원이던 압류·상계 금지 한도가 월 250만원으로 오르고 해당 계좌의 예금은 사실상 압류·상계 대상에서 전면 제외됩니다. 이는 그동안 은행이 최저생계비 해당 여부를 충분히 확인하지 않은 채 먼저 상계로 예금을 차감하고 이후에 소명을 받는 방식으로 운영해 온 관행이 지적된 데 따른 것으로, 금융당국도 상계 예정일 전 사전 안내와 소명 기간 부여를 은행권에 요구하고 있습니다. 예금주 입장에서는 급여·생계비가 들어오는 계좌를 사전에 생계비계좌로 지정해 두는 것이 상계 분쟁을 피하는 실질적인 방법이 됩니다.
예금이 압류금지 범위 안에 있다는 사실은 예금주가 증명할 필요가 없다 — 그 예금이 압류금지 범위를 벗어난다는 사실을 은행·채권자가 증명하지 못하면 상계는 그 부분에서 대항력을 잃는다.
압류금지 범위를 다투는 법 — 범위변경신청과 사후 대응
상계를 당하기 전이든 후든, 자신의 채권이 압류금지채권에 해당하는지를 다투는 공식 절차가 있습니다. 민사집행법 제246조 제3항은 당사자(채권자 또는 채무자)의 신청에 따라 법원이 채권자와 채무자의 생활형편, 그 밖의 사정을 고려해 압류명령의 전부 또는 일부를 취소하거나, 반대로 압류금지채권에 대해서도 압류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이를 압류금지채권 범위변경신청이라 하며, 신청권자는 어디까지나 채권자·채무자 본인이고 은행 같은 제3채무자는 이 신청을 할 수 없습니다.
이미 상계를 당한 경우라면 굳이 사전에 범위변경신청을 거치지 않았더라도, 해당 소송에서 그 채권이 압류금지채권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직접 주장·증명해 상계의 효력을 다툴 수 있습니다. 상계로 이미 공제된 급여·예금이 있다면 그 차액에 대해 지급청구나 부당이득반환청구로 다투게 되는데, 이때는 급여명세서·예금거래내역·대출약정서 등으로 압류금지 범위에 해당하는 금액을 구체적으로 산정해 제시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범위변경신청을 통해 법원의 결정을 미리 받아두면 이후 분쟁에서 별도로 압류금지 여부를 다툴 필요가 줄어드는 실무적 이점도 있습니다.
채무자가 동의해도 넘을 수 없는 선
실무에서 자주 나오는 질문은, 상계당하는 쪽이 스스로 "상계에 동의한다"고 서명하면 압류금지 부분도 상계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임금 관련 판례는 이 지점에서도 선을 긋습니다. 근로자의 자유의사에 따른 동의라면 임금 전액지급 원칙 위반은 아니게 되지만, 그 동의가 있다고 해서 민법 제497조가 보호하는 압류금지 범위(급여·퇴직금의 2분의 1)까지 상계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앞서 본 2007다90760 전원합의체 판결의 결론입니다. 압류금지채권 제도의 목적이 채무자 본인의 최소생활 보장이라는 공익적 성격을 갖는 만큼, 당사자 사이의 개별 합의만으로 그 보호를 임의로 처분할 수는 없다는 취지입니다.
다만 이는 압류금지 범위 자체를 넘어설 수 없다는 것이지, 압류금지 범위를 초과하는 부분에서까지 상계나 합의가 금지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급여채권의 2분의 1을 초과하는 부분, 퇴직금의 2분의 1을 초과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당사자의 자유로운 합의에 따른 상계나 공제 약정이 유효하게 성립할 수 있습니다. 결국 협상이나 합의서 작성 단계에서부터 어느 채권이 압류금지 대상인지, 그 범위가 얼마인지를 먼저 계산해 두어야 나중에 상계 자체가 무효로 다투어지는 상황을 피할 수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압류금지채권이면 상계 자체가 무효인가요?
A. 상계의 의사표시 자체가 없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고, 민법 제497조에 따라 압류금지 부분에 한해 채권자에게 "대항하지 못하는" 효력만 발생합니다. 즉 그 부분에 관해서는 상계로 채무가 소멸했다는 주장을 할 수 없어 원래 채권자는 여전히 그 금액을 지급받을 수 있습니다.
Q. 근로자가 상계에 동의했는데도 무효를 주장할 수 있나요?
A. 동의 자체가 자유의사에 따른 것이었다면 근로기준법상 임금 전액지급 원칙 위반은 아니지만, 급여·퇴직금의 2분의 1에 해당하는 압류금지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가 있었더라도 상계로 대항할 수 없다는 것이 판례의 태도입니다.
Q. 은행이 먼저 예금을 상계하고 나중에 통보하는 것도 문제없나요?
A. 최저생계비에 해당하는 예금 부분은 상계 대상이 아니므로, 은행이 먼저 상계한 뒤 소명을 요구하는 방식이라도 그 부분에 대한 상계는 법적으로 효력이 없습니다. 예금이 압류금지 범위를 벗어난다는 사실은 은행이 증명해야 합니다.
Q. 압류금지채권 범위변경신청은 누가, 언제 할 수 있나요?
A. 신청권자는 채권자와 채무자이며, 채권압류명령이 내려진 이후 집행법원에 생활형편 등을 소명해 신청할 수 있습니다. 은행 등 제3채무자는 신청권자가 아니고, 반드시 사전에 이 절차를 거쳐야만 나중에 압류금지를 주장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Q. 산재보험 유족급여도 상계 대상이 될 수 없나요?
A.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보험급여를 받을 권리는 압류·양도가 금지되므로, 민법 제497조에 따라 이를 수동채권으로 하는 상계 역시 허용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Q. 이미 상계당한 돈을 돌려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상계로 공제된 금액이 압류금지 범위에 해당한다면, 그 차액에 대해 지급청구나 부당이득반환청구를 통해 다툴 수 있습니다. 급여명세서·예금거래내역 등 압류금지 범위 산정에 필요한 자료를 먼저 정리해 두는 것이 실무적으로 유리합니다.
맺음말
상계는 두 채권을 간편하게 정리하는 제도이지만, 그 대상이 압류금지채권이라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민법 제497조는 채권자가 소송·압류로도 손댈 수 없는 몫을 상계라는 형식으로 가져가는 것을 막아두었고, 임금·퇴직금의 2분의 1, 최저생계비 예금처럼 구체적인 범위가 법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상계를 하려는 쪽이든 당하는 쪽이든, 그 채권이 압류금지채권에 해당하는지와 얼마까지가 보호되는 범위인지를 먼저 계산해 보는 것이 분쟁을 줄이는 출발점입니다.
동의를 받았다거나 약관에 상계 조항이 있다는 사정만으로 압류금지 범위까지 상계할 수 있다고 단정할 수 없고, 반대로 상계를 당한 쪽도 그 범위를 넘는 부분에 대해서는 여전히 채무를 부담한다는 점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급여·퇴직금·예금이 예상보다 적게 지급되었는데 그 이유가 상계라면, 압류금지 범위부터 확인해 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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