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방에 심박스 설치해준 유학생, 용도 몰랐다면 무죄일까
자취방에 심박스 설치해준 유학생, 용도 몰랐다면 무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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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취방에 심박스 설치해준 유학생, 용도 몰랐다면 무죄일까 

김강희 변호사


자취방에 심박스 설치해준 유학생, 용도 몰랐다면 무죄일까


사건 개요


한국에서 혼자 자취방을 얻어 지내는 유학생에게, 우연히 알게 된 사람이 접근해 "통신 장비를 방 한쪽에 설치해 두기만 하면 매달 일정 금액을 주겠다"는 제안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학생은 낯선 상자형 장치에 여러 개의 유심(SIM)이 꽂혀 있는 모습을 보고 의아해하지만, "국제전화 요금을 아끼려고 쓰는 중계 장비다", "인터넷 회선을 여러 대가 나눠 쓰게 해주는 공유기 같은 것"이라는 설명을 듣고 별다른 의심 없이 전원만 켜 둔 채 지냅니다.

몇 주 뒤, 경찰이 그 방을 압수수색하면서 상황이 뒤바뀝니다. 학생이 관리해 온 장치는 국제전화 발신번호를 국내 휴대전화 번호처럼 바꿔 표시해 주는 이른바 '심박스'였고, 보이스피싱 조직이 피해자를 속이는 데 실제로 사용된 장비였다는 것입니다. 학생은 전기통신사업법위반 및 사기방조 혐의로 조사를 받게 되고, "그런 용도인 줄 몰랐다"는 말이 수사기관에서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현실과 마주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장비의 구체적 용도를 몰랐다는 사정만으로 자동으로 무혐의가 되지는 않습니다. 형사책임의 성패는 "몰랐다"는 주장 자체가 아니라,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객관적 정황을 얼마나 갖추고 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핵심 쟁점


이런 사건에서 실제로 다투어지는 지점은 크게 네 가지입니다. 첫째, 학생이 심박스를 설치·운영한 사람 또는 보이스피싱 조직과 범행 실행에 관해 사전에 뜻을 모은 공모관계가 있었는지입니다. 둘째, 구체적인 사기 범행 내용까지는 몰랐더라도 자신이 관리하는 장비가 불법적인 통신 변작이나 사기에 쓰일 수 있다는 점을 미필적으로나마 인식했는지입니다. 셋째, 그 인식 여부를 뒷받침하거나 반박하는 구체적 정황—채용 경위의 정상성, 보수의 수준, 설치자와의 대면 여부, 장비의 외관—이 무엇인지입니다. 넷째, 전기통신사업법위반죄와 사기방조죄가 각각 별도로 성립하는지, 아니면 어느 한쪽만 성립하는지입니다.

전기통신사업법은 영리를 목적으로 발신인의 전화번호를 변작하는 등 실제와 다르게 표시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고(제84조의2 제2항), 이를 위반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제95조의2). 여기에 더해 그 장비가 실제 보이스피싱 범행에 쓰였다면 형법 제347조 사기죄의 방조범(제32조)으로도 함께 입건될 수 있어, 두 죄의 성립 여부를 각각 따져야 합니다.



김강희 변호사의 해결방법 [1]: '몰랐다'는 주장을 객관적 정황으로 뒷받침하기


대법원은 가담자가 범행의 전모를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더라도, 자신의 행위가 범죄에 이용될 수 있음을 충분히 의심하고도 이를 인식하면서 가담했다면 미필적 고의를 인정할 수 있다고 봅니다. 반대로 말하면, 의심할 만한 계기가 없었다는 사정을 구체적으로 밝히면 고의를 다툴 여지가 생깁니다. 이런 사건에서 김강희 변호사는 다음 순서로 사실관계를 재구성합니다.

1) 설치 경위와 설명 내용을 남아 있는 형태로 확보합니다.

설치자가 "국제전화 요금 절감 장비"나 "공유기 확장 장치"라고 설명한 문자·카카오톡 대화, 전화 통화 내역, 설치 당일의 정황을 최대한 복원합니다. 학생이 먼저 "이게 뭐냐"고 물어본 기록이 남아 있다면, 이는 의심을 품고도 방치한 것이 아니라 합리적으로 확인 절차를 거쳤다는 사정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아무런 질문 없이 받아들였다면, 그 정황을 어떻게 설명할지도 함께 준비해야 합니다.

2) 보수의 성격을 '통상적 대가' 범위 안에 위치시킵니다.

고의 판단에서 가장 크게 작용하는 요소 중 하나가 보수의 수준입니다. 매달 받은 금액이 방 한 칸의 전기·공간 사용료로 납득 가능한 범위였는지, 아니면 통상적인 대가로는 설명되지 않을 만큼 고액이었는지를 객관적으로 정리합니다. 후자라면 '몰랐다'는 주장이 흔들릴 수 있으므로, 그 경우에는 다른 정황—나이, 국내 체류 기간, 한국어 이해도, 유사 사례에 대한 정보 접근성 부족 등—으로 인식 가능성 자체를 낮추는 방향으로 방어선을 짭니다.

3) 수사 협조 태도를 고의 부정의 근거로 만듭니다.

경찰이 방문했을 때 장비 반출을 거부하거나 진술을 회피한 정황은 불리하게 작용합니다. 반대로 즉시 장비와 통신 기록을 제공하고, 설치자의 연락처·대화 내용을 스스로 제출하며 협조한 사실은 애초에 숨길 것이 없었다는 정황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조사 초기 단계의 태도가 이후 고의 판단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치므로, 진술 방향을 사전에 정리해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김강희 변호사의 해결방법 [2]: 고의를 완전히 배제하기 어려울 때의 방어선 설계


정황상 미필적 고의 자체를 완전히 부정하기 어려운 사건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무죄만을 목표로 두면 대응 시점을 놓칠 수 있습니다. 김강희 변호사는 고의를 다투는 것과 별개로, 다음 두 갈래로 대응 범위를 넓혀 둡니다.

1) 공동정범이 아닌 종범 지위를 다툽니다.

공동정범이 되려면 범죄를 실현하려는 공동의 의사를 가지고 범행에서 핵심적·기능적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단순히 방 한쪽에 설치된 장비를 그대로 방치해 둔 것에 불과하다면, 범행 계획을 함께 세우거나 수익을 분배받는 핵심 역할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설치·운영·수익 배분 등 범행 전체에서 학생이 차지한 역할을 세밀히 구분해, 정범이 아닌 방조(종범)에 그친다는 점을 부각합니다.

2) 형법 제32조 제2항의 필요적 감경과 양형자료를 함께 준비합니다.

종범으로 인정되면 그 형은 정범의 형보다 반드시 감경됩니다(형법 제32조 제2항). 여기에 더해 초범인지, 가담 기간이 짧았는지, 취득한 이익이 크지 않았는지, 피해 회복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를 양형자료로 함께 제출해 처벌 수위를 낮추는 방향으로 대응합니다.

3) 체류자격에 미치는 영향까지 함께 관리합니다.

유학생 신분에서는 형사처벌 결과가 형사절차로 끝나지 않습니다. 일정 수준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체류자격 심사나 향후 비자 갱신에 불리한 자료로 남을 수 있고, 학칙에 따른 별도의 징계 절차가 진행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형사 대응과 함께 학교·출입국 관련 소명자료를 병행해 준비해 두는 것이 실질적인 불이익을 줄이는 데 중요합니다.


결론


낯선 사람의 부탁으로 정체를 알 수 없는 통신 장비를 자취방에 들여놓는 일 자체가 이미 위험 신호입니다. "그런 용도인 줄 몰랐다"는 말은 그 자체로 방어가 되지 않으며, 그 말을 뒷받침할 구체적 정황을 얼마나 갖추었는가가 결과를 가릅니다.

이미 비슷한 제안을 받아 장비를 설치해 준 적이 있거나, 조사를 앞두고 계시다면 지금이라도 어떤 정황을 남기고 어떻게 진술을 준비해야 할지 대응의 방향을 한 번 점검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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