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 변호사는 의뢰인의 전쟁을 대신 수행하는 참모이자 장군
고대의 전쟁이 물리적 파괴와 살상을 통해 적을 굴복시키는 극단적 수단이었다면, 법치주의와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한 현대 사회에서 당사자 간의 극한 대립은 법정이라는 정교하게 통제된 사법 전장에서 펼쳐집니다. 무력 대신 법리가, 칼과 창 대신 증거와 서면이 무기로 쓰일 뿐, 그 본질적인 냉혹함과 파괴력은 전쟁과 다르지 않습니다. 한 번의 판결로 한 개인의 삶이 영구히 파탄에 이르거나, 수십 년간 쌓아 올린 기업이 흔적도 없이 도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의뢰인이 군주라면, 변호사는 삼국지에 나오는 제갈량같은 군사(軍師)나 장군같은 역할을 하며, 전략적인 조언을 하고 소송에서 의뢰인의 대리인으로서 대신 전쟁을 수행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손자병법의 머릿말
동양 최고의 군사 고전인 손자병법은 다음과 같이 시작합니다.
"전쟁이란 국가의 중대사로서, 생사의 기로이자 존망의 길이니 철저히 살피지 않을 수 없다
(兵者, 國之大事, 死生之地, 存亡之道, 不可不察也)."
이 준엄한 경고는 현대의 소송을 마주하는 당사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적용됩니다. 손자병법을 소송에 대입해 보면, 재판에서 승소하고 나아가 자신을 지키는 가장 지혜로운 전략적 통찰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소송 전에 고려해야 할 다섯가지 객관적 조건
손자는 전쟁을 일으키기 전, 다섯 가지 객관적 조건을 검토해 아군과 적군의 승산을 냉정하게 가늠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이를 소송의 영역에 적용한다면 '소송의 오사(五事)'로 재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도(道): 분쟁의 정당성과 사법 정의에 부합하는 명분
천(天): 시대적 흐름, 여론, 그리고 판례의 최신 트렌드
지(地): 관할 법원과 법관의 성향, 적용될 실체법 및 절차법 관련법리
장(將): 사건을 이끌어갈 소송대리인(변호사)의 지략과 윤리의식
법(法): 체계적인 증거 정리와 소송 수행과정에서 지켜야할 선
소송을 제기하기 전 이 다섯 가지 요소의 우열을 냉정히 비교해 보지 않는다면, 그 소송은 이미 패배를 예정하고 전장에 나서는 것과 같습니다.
싸워서 이기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
또한 "백 번 싸워 백 번 이기는 것이 최고의 선(善)이 아니다.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선이다(百戰百勝, 非善之善者也; 不戰而屈人之兵, 善之善者也)"라는 사상은 소송에서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민사소송이든 형사소송이든 이혼소송이든 행정소송이든 원고든 피고든 피고인이든 피해자든, 소송이란 그 결과를 기다릴 때까지의 과정은 전쟁과 마찬가지로 괴로운 것이며 싸우는 과정에서 피를 흘리고 상처를 입는 것입니다.
손자는 적의 계략을 깨뜨리는 '벌모(伐謀)'와 적의 동맹을 끊는 '벌교(伐交)'를 상책으로 보았으며, 적의 성을 직접 타격하는 '공성(攻城)'을 최하책으로 쳤습니다. 소송에서 '공성'이란 판결문이 나올 때까지 수년간 법정에서 진흙탕 싸움을 벌이는 정식 재판입니다. 반면 소송 전 정교하게 구성된 내용증명을 보내 상대방의 법적 방어 의지를 무너뜨리거나, 법원의 조정 및 당사자 간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은 '벌모'와 '벌교'에 해당합니다. 소송이라는 최종 파괴 수단을 손에 쥔 채, 정식 판결까지 가지 않고 유리한 조건으로 분쟁을 조기에 종결짓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부전이굴인지병(不戰而屈人之兵)-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것'입니다.
전쟁이란 정치와 외교의 연속이며 다른 수단으로 진행되는 것일 뿐이라는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에 나오는 명언처럼, 소송또한 협상과 문제해결의 연속적인 과정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Si vis pacem, Para Bellum)"는 베게티우스의 군사학 논고의 조언처럼, 소송을 철저히 대비하며 불사의 각오를 다져야만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형사소송은 치열한 법정 공방 끝에 무죄를 선고 받는 것보다 강력한 초기대응으로 수사기관에서 '혐의없음'으로 종결되는 것이 낫고, 정식재판에서 집행유예나 벌금형을 선고 받기 보다는 수사기관에서 기소유예나 불송치 결정을 받고 마무리하는 것이 비할 바없이 낫습니다. 그렇기에 수사초기 대응이 중요한 것입니다.
소송의 경제성과 속전속결
손자는 전쟁에 들어가는 천문학적인 비용과 그로 인해 국가 재정이 바닥나 민생이 피폐해지는 과정을 경고하며, "전쟁은 승리를 귀하게 여기지, 오래 끄는 것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兵貴勝, 不貴久)"라고 강조하였습니다. 장기전은 아군의 예리한 기세를 꺾고 재정을 파탄 내며, 결국 승리하더라도 상처뿐인 영광으로 귀결되기 때문입니다.
소송 역시 본질적으로 엄청난 유무형의 자원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입니다. 변호사 선임료, 인지대, 송달료, 감정 비용 등의 직접적 지출은 물론, 소송에 매여 본업에 집중하지 못해 발생하는 기회비용, 장기 송사로 인한 극심한 정신적 소모는 인간의 영혼을 잠식합니다.
소송은 피할 수 있으면 피하는 것이 좋지만, 여차하면 피를 흘릴 각오를 하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가, 일단 소송이 시작되면 초기 전선을 신속히 장악하는 '속전속결'의 지혜를 발휘해야 합니다.
불패의 구도와 정공법, 그리고 기발한 전술
이기는 군대는 이미 이겨놓은 상태에서 싸움을 구하고(勝兵先勝而後求戰), 지는 군대는 먼저 싸움을 시작한 뒤에 비로소 이길 방법을 구한다(敗兵先戰而後求勝)고 하였습니다.
소송에서 불패의 구도를 구축하는 핵심은 바로 객관적 증거입니다. 말이나 감정적 호소가 아닌 계약서, 금융 거래 내역, 이메일, 메신저 대화 등 법정에서 부인할 수 없는 처분문서와 물증을 소송 제기 전에 완벽히 수집해 두는 행위가 이에 해당합니다. 증거가 빈약한 상태에서 홧김에 소부터 제기하고 재판 과정에서 증거를 찾아보겠다는 태도는 손자병법에서 가장 경계한 '패병(敗兵)'의 전형입니다.
증거로써 불패의 틀을 잡았다면, 재판의 변론 과정에서는 기(奇)와 정(正)의 조화가 요구됩니다.
정(正)은 기본 법리에 충실한 정공법적 서면 작성과 일관된 주장이며,
기(奇)는 상대방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타이밍에 내놓는 결정적 반증의 제시나 기발한 소송전략입니다.
정석적인 논리로 재판부를 설득하며 전선을 유지하고, 상대방이 방심하여 허점을 노출한 순간 압도적이고 기발한 서면과 물증으로 쐐기를 박는 정공법과 기책의 결합이 있을 때 비로소 확실한 승리를 쟁취할 수 있습니다.
허허실실 - 주도권 확보와 정보전의 승리
"싸움을 잘하는 자는 상대를 끌고 다니며, 상대에게 끌려 다니지 않는다(善戰者, 致人而不致於人)"와 같이, 주도권 장악은 승패를 결정짓는 핵심 변수입니다.
상대방이 제기한 소송에 피동적으로 대응하며 방어에만 급급한 상태는 남에게 끌려다니는 것인 반면, 상대방의 소송 요건 흠결을 정확히 지적하여 각하시키거나 강력한 반소를 제기하여 공수 관계를 일거에 역전시키는 것, 혹은 유리한 관할로의 이송이나 상대 주장의 근본을 무너뜨리는 기민함은 상대를 끌고 다니는 전술입니다. 상대의 가장 탄탄한 법리는 우회하고 입증책임이 있어 곤란해하는 약점만 골라 파고드는 '피실격허(避實擊虛)'의 안목 역시 법정 공방의 필수 덕목입니다.
또한 아무리 재판에서 이긴들 상대방에게 집행할 재산이 없다면 그 판결문은 무용지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정보전이 소송에서도 똑같이 통용되는 이유입니다. 소송 착수 전 상대방의 재산 현황(부동산, 채권, 예금 등)을 철저히 조사하고 재산분할이나 사해행위취소를 미리 설계해 두는 것, 적의 리스크 요소를 사전에 파악하여 타협 테이블을 지배하는 정보의 획득이야말로 정보전에서의 승리라 할 수 있습니다.
결론 - 신중한 소 제기와 평온한 일상으로의 복귀
손자는 군주와 장수들에게 다음과 같이 강력히 경고합니다.
"군주는 노여움 때문에 군대를 일으켜서는 안 되고, 장수는 분함 때문에 싸움을 시작해서는 안 된다. 노여움은 기쁨으로 바뀔 수 있고 분함은 즐거움으로 변할 수 있으나, 망한 나라는 다시 존속할 수 없고 죽은 자는 다시 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소송 역시 사적 분노와 오기, 감정적 배설을 위해 무분별하게 시작해서는 안 됩니다. 소송은 감정의 종착지가 아니라, 침해받은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회복하고 훼손된 일상의 평화를 되찾기 위한 철저히 이성적이고 차가운 '최후의 수단'이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일단 시작했으면 물러서지 않고 신속하게 반드시 승리를 쟁취해야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소송이라는 전쟁의 길고 험난한 터널을 빠져나와, 분쟁 이전의 평온한 일상을 회복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승리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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