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철의 법률톡톡] 연인 간 강간죄 성립과 판단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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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포인트뉴스. 2026. 07. 06. 오피니언 전문가기고

민경철 법무법인 이엘 대표변호사
연인 간의 성관계를 사후적으로 강간으로 고소하는 것은 감정적 문제이지만, 강간으로 평가하는 것은 철저히 증명의 영역이다.
법원은 연인 간이라도 동일한 법리를 적용하지만 사실인정 단계에서 더욱 엄격하게 심사하는 태도를 취한다. 즉 법적 기준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더욱 강도 높게 심사하는 것이다.
강간죄 성립의 핵심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피해자의 저항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만드는 폭행·협박이고, 둘째는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는 고의이다.
(※현행 형법은 '비동의 간음'을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폭행·협박에 의한 강간을 처벌한다. 따라서 단순히 상대방의 동의가 없었다는 사정만으로는 강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연인 간 사건에서는 비동의 간음을 강간죄로 구성하려는 시도가 적지 않다. 그러나 양자는 명백히 구별되는 개념이며, 비동의 간음을 처벌할 것인지는 입법정책의 문제이다.)
문제는 연인 관계에서는 이러한 요건을 입증하는 것이 구조적으로 어렵다는 점이다. 이미 반복된 성관계와 신체접촉의 경험이 존재하고, 일정 수준의 친밀함이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특정 시점의 행위만을 떼어내어 강간으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그 행위가 기존 관계와 명확히 구별되어야 한다. 즉, 기존의 성관계와 비교하여, 문제된 행위가 왜 본질적으로 다른지에 대한 증명이 필요하다.
단순히 원치 않았다는 진술만으로는 부족하며, 어떤 유형력이 행사되었고 그 강도가 어느 정도였는지 구체적으로 특정되어야 한다. 연인 간에는 신체 접촉 자체가 일상화되어 있기 때문에, 통상적인 접촉과 강제력을 수반한 행위를 구별할 수 있는 객관적 기준이 제시되지 않으면 구성요건 해당성이 인정되기 어렵다.
특히 폭행·협박의 정도에 관한 입증은 매우 구체적이어야 하며 단순히 “잡았다”, “눌렀다”는 식의 추상적 진술만으로는 부족하다. 피해자가 어떠한 방식으로 저항하였고, 그 저항이 어떻게 제압되었으며, 그 결과 실제로 저항이 불가능해졌는지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재구성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법원은 이를 연인 간 통상적인 신체접촉의 연장선으로 해석할 가능성이 높다.
피해자의 의사표시 역시 외부적으로 확인 가능한 형태로 드러나야 하며 “하기 싫었다”는 내심이나 사후적 평가만으로는 부족하다. 명시적이고 반복적인 거부가 있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위가 계속되었는지, 그 과정에서 물리력이 행사되었는지가 객관적으로 입증되어야 한다.
법원은 소극적 동의와 반항 억압 상태를 엄격히 구분한다. 관계 유지나 갈등 회피 등의 이유로 마지못해 응한 경우는 현실적으로 존재하지만, 이를 곧바로 강간으로 확장하는 것을 경계한다. 형법상 강간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피해자의 자유의사가 실질적으로 제압되었음을 인정할 수 있을 정도의 물리적 또는 심리적 강제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기준이 완화될 경우, 연인 간의 대부분의 성적 갈등이 사후적으로 범죄화 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관계 전반의 맥락 또한 중요한 판단 요소이다. 사건 전후로 합의된 성관계가 반복되었거나, 사건 직후에도 자연스러운 상호작용이 이어졌다면 이는 폭력적 지배 상황과 양립하기 어려운 사정으로 평가된다. 따라서 강간으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기존의 관계 흐름과 단절되는 비정상적 상황이 존재해야 하며, 그 단절이 폭행·협박과 결합되어야 한다.
행위자의 고의 역시 핵심적 판단 요소이다. 당시 상황에서 상대방이 동의한다고 인식할 만한 사정이 존재했다면 강간의 고의를 인정하기 어렵다. 사건 전후의 메시지, 관계의 지속 여부, 행위 직후의 태도 등은 이러한 인식 여부를 판단하는 중요한 간접사실로 작용한다.
한편, 사후의 메시지나 감정적 표현은 단독으로는 큰 증명력을 갖지 못한다. “강간이다”라는 표현은 평가에 불과하며, 구체적 사실로 뒷받침하지 못하는 이상 결정적 근거가 되기 어렵다. 진술의 일관성, 주변 정황과의 부합 여부, 고소의 경위 등도 종합적으로 고려되며, 이들 요소가 서로 충돌할 경우 진술의 신빙성은 쉽게 약화된다.
나아가 특정 시점이 아니라 연애 기간 전반에 걸쳐 이루어진 성관계나 신체 접촉이 모두 강제였다고 주장하는 경우에는 더욱 엄격한 기준이 적용된다. 이 경우 최초 성관계의 경위, 이후 관계가 지속된 이유, 반복된 접촉을 거부하지 못한 사정 등이 합리적으로 설명되어야 한다. 단순히 사후적으로 모든 행위를 범죄로 재구성하는 방식은 경험칙에 비추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처럼 연인 간 강간은 사실인정 단계에서 더욱 정밀한 검토를 거치게 된다. 이는 피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형사재판에서 요구되는 엄격한 증명 원칙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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