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이런 사연이 있었습니다. 경기도 S시에서 20년 넘게 살아온 62세 김모 씨는 2016년 자신이 거주하는 아파트 단지 일대가 주거환경개선을 위한 정비구역으로 지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재건축이 이루어지면 새 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다는 기대에 조합설립에도 적극적으로 동의했습니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2024년, 사업은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조합설립인가조차 받지 못한 채 시간만 흘렀고, 그 사이 건축물 수선도 제한되어 집은 점점 노후해졌습니다. 김 씨와 이웃 주민들은 "차라리 정비구역 지정을 해제해 달라"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반면, 같은 구역 내 35세 박모 씨는 재건축 프리미엄을 기대하고 2년 전 매수한 소유자였습니다. 해제가 되면 투자 손실이 불가피하기에 강하게 반대했습니다. 하나의 구역 안에서 정반대의 이해가 충돌한 것입니다.
쟁점 1: 정비구역 지정 해제의 법적 요건은 무엇인가
정비구역 지정 해제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하 '도시정비법') 제21조에 근거합니다. 이 조문에 따르면, 특별자치시장 또는 시장 등은 정비구역이 지정 고시된 날부터 일정 기한 내에 조합설립인가를 신청하지 않은 경우 직권으로 해제할 수 있습니다.
직권 해제의 주요 사유
1 정비구역 지정 고시 후 3년 이내에 조합설립인가 신청이 없는 경우 (추진위원회 미구성 포함)
2 조합설립인가 후 2년 이내에 사업시행인가를 신청하지 않은 경우
3 토지등소유자 과반수가 해제를 요청하고, 해당 요건이 법률 기준에 충족되는 경우
김 씨의 사례에서는 정비구역 지정 후 8년이 경과하고 조합설립인가조차 이루어지지 않았으므로, 도시정비법 제21조 제1항 제1호에 따른 직권 해제 요건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만 실무에서는 지방자치단체가 직권 해제에 소극적인 경우가 많아, 토지등소유자가 주도적으로 해제를 요청하는 절차를 병행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쟁점 2: 토지등소유자의 해제 요청과 동의 비율 문제
김 씨와 주민들이 직접 해제를 요청하려면, 도시정비법 제21조 제1항 제4호에 따라 토지등소유자의 과반수 동의를 확보해야 합니다. 여기서 '토지등소유자'란 정비구역 내 토지 또는 건축물의 소유자를 의미합니다.
사례 속 상황
이 구역의 토지등소유자는 총 240명입니다. 김 씨가 해제 동의서를 돌린 결과 약 145명(60.4%)이 동의하였으나, 박 씨를 포함한 95명은 반대하였습니다. 과반수 요건(121명 이상)은 충족하였으므로 해제 요청 자체는 가능한 상황입니다.
그러나 실무적으로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동의서 징구 과정에서 동의 철회 의사를 밝히는 소유자가 나타날 수 있고, 동의서의 형식 요건(인감증명서 첨부, 본인 서명 확인 등)이 미비하면 유효 동의로 인정되지 않습니다. 실무에서는 동의율이 간신히 과반수를 넘긴 경우 해제 절차 중 동의 철회로 인해 요건 미충족이 되는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따라서 해제를 추진하는 측은 최소 55~60% 이상의 안정적 동의율을 확보한 뒤 절차를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쟁점 3: 해제 이후 재산권 제한 해소와 남겨진 과제
정비구역이 해제되면 그동안 부과되었던 건축행위 제한(건축법상 허가 제한, 대수선 제한 등)이 원칙적으로 해소됩니다. 김 씨처럼 노후 주택의 수선이 급한 소유자에게는 실질적인 의미가 큰 부분입니다.
다만 해제가 확정되더라도, 다음과 같은 후속 문제가 남습니다.
해제 후 주요 고려사항
1 추진위원회 운영비 정산: 조합설립 전이라도 추진위원회가 사용한 비용(용역비, 감정평가비 등)의 정산 문제가 발생합니다. 도시정비법 제132조에 따라 정산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2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 여부: 정비구역 지정에 수반하여 토지거래허가구역이 설정된 경우, 별도 절차로 해제되는지 확인이 필요합니다.
3 재지정 가능성: 해제 후에도 요건이 갖춰지면 다시 정비구역으로 지정될 수 있어, 해제가 곧 영구적 현상 유지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박 씨의 입장에서는 정비구역 해제가 확정되면 기대했던 재건축 프리미엄이 사라지게 됩니다. 다만 해제 결정에 대해 행정소송으로 다툴 수 있는 여지가 있고, 실제로 해제 처분 취소 소송이 제기되는 경우도 존재합니다. 이 경우 해제 처분의 재량권 일탈 여부, 절차적 하자 유무 등이 주요 쟁점이 됩니다.
실무적 조언
정비구역 지정 해제는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라, 수백 명의 소유자 재산권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결정입니다. 해제를 원하든 반대하든, 자신의 입장을 관철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핵심을 정확히 파악해야 합니다.
1 현재 정비사업의 추진 단계와 법정 기한 경과 여부를 정확히 확인합니다.
2 동의서 징구 시 형식 요건(인감, 서명)을 철저히 갖추고, 철회 가능성에 대비하여 여유 있는 동의율을 확보합니다.
3 해제 후 추진위원회 비용 정산,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 등 후속 절차를 사전에 파악합니다.
4 해제에 반대하는 경우에도 행정소송의 가능성과 소송 요건을 미리 검토해 두는 것이 유리합니다.
정비구역 해제 문제는 관련 법률의 개정이 빈번하고 지방자치단체마다 적용 기준이 다를 수 있으므로, 구체적 사안에서는 최신 법령과 해당 지자체의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 조례를 반드시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김경숙 변호사의 코멘트
더감 법률사무소 · 경기도 수원시
정비구역 해제 사안을 다루다 보면, 해제 찬성 측과 반대 측 모두 법적 요건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 감정적으로 대립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동의율 확보 과정의 절차적 하자 하나로 전체 해제 절차가 무산되는 사례도 실무에서 접해 왔으므로, 초기 단계부터 법률 전문가의 점검을 받으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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