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철의 법률톡톡] 명예훼손 법리의 역설, 성범죄는 ‘범죄 아님’ 명예훼손은 ‘허위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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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포인트뉴스. 2026. 06. 22. 오피니언 전문가기고

민경철 법무법인 이엘 대표변호사
최근 대법원(2025도16628)은 동료 교수에게 강간당했다며 국민청원과 언론 인터뷰를 진행하여 명예훼손죄로 기소된 피고인에 대해, 설령 해당 강간 사건이 수사기관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더라도, 피고인의 발언을 곧장 '허위사실'로 단정할 수 없다는 취지로 무죄를 확정했다.
이 사건은 성범죄 고소 사건이 무혐의로 종결된 후 이어지는 명예훼손 보복 고소전(戰)에 경종을 울리는 동시에, 성범죄와 명예훼손이 맞물린 지점에서 기이한 논리적 모순에 빠진다.
성범죄에서 불송치·불기소 처분이 내려졌다는 이유만으로 곧바로 “허위사실”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점은 이미 확립된 법리이다. 수사기관의 결론은 어디까지나 “증거가 부족하다”는 의미일 뿐, 사실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확정적 판단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해당 사실을 외부에 적시한 행위가 곧바로 허위사실적시 명예훼손으로 이어질 수는 없고, 결국 검사가 그 발언의 허위성을 합리적 의심 없이 입증하지 못하면 무죄가 선고된다. 형사절차의 기본 원리인 검사의 증명책임과 무죄추정 원칙에 따른 결과이다.
이 사건이 드러내는 구조적 모순은 그 다음 단계에서 발생한다. 성범죄가 불송치 또는 불기소로 종결된 경우, 피해 주장 발언은 ‘허위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명예훼손이 부정되는 반면 강간죄로 기소되어 유죄로 인정된 경우라면, 강간을 당했다는 동일한 발언이 ‘진실한 사실의 적시’로 평가되어 사실적시명예훼손이 성립할 수 있다. 즉, 전자는 무죄, 후자는 유죄라는 기묘한 결과가 도출된다.
이러한 결론은 직관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객관적 불법성의 정도로 보자면, 강간 주장이 허위일 가능성이 남아 있는 전자의 발언이 오히려 더 위험하다. 반면 후자는 실제의 범죄 사실을 적시한 것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법적 평가는 정반대로 이루어진다.
또 다른 모순은, 성범죄에서는 입증부족을 이유로 “강간으로 보기 어렵다” 라고 평가된 사실이, 허위사실적시명예훼손에서는 입증부족을 이유로 “(강간이)허위사실이라고 보기 어렵다”로 해석되는 논리적 불일치가 발생한다. 동일한 실체적 진실을 두고 국가기관이 상충하는 해석을 내놓는 셈이다.
결국 이는 증명책임 구조와 구성요건 체계가 충돌하면서 생기는 필연적 귀결이다. 허위사실적시 명예훼손에서는 검사가 ‘허위’를 입증해야 하는 반면, 사실적시 명예훼손에서는 행위자가 ‘공공의 이익’을 입증해야 위법성이 조각된다. 이러한 입증구조의 차이가 동일 사안에 대해 상반된 결론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 같은 모순의 원인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존재, 즉 사실 적시만으로도 법적 책임이 발생하는 데에 있다. 이 간극이 “무혐의이면 말해도 되지만, 유죄인데 말하면 처벌된다”는 비상식적 결과를 낳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고소 전략 역시 까다로워질 수밖에 없다. 최초 고소 단계에서부터 주위적으로는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을, 예비적으로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을 구성하는 이중적 구조를 염두에 둘 수밖에 없다. 진실 여부가 사후적으로 어떻게 평가될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모순된 법체계 속에서 법적 리스크를 분산시키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적 선택이다.
이러한 전략적 고소의 범람은 사법 자원의 낭비이며, 사실을 말하고도 처벌받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의 독소 조항이 살아있는 한 이러한 법리적 엇박자는 계속될 것이다.
국가 형벌권은 진실의 표명을 억압하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제는 법리적 완결성을 넘어, 진정한 보호의 대상이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사법적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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