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기고] 2026.04.28. 준강간 사건, 기억의 부재는 어떻게 범죄가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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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기고] 2026.04.28. 준강간 사건, 기억의 부재는 어떻게 범죄가 되는가 

민경철 변호사

[민경철의 법률톡톡] 준강간 사건, 기억의 부재는 어떻게 범죄가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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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철 법무법인 이엘 대표변호사

민경철 법무법인 이엘 대표변호사

술자리를 전후한 성관계 이후 제기되는 준강간 고소는 가장 빈번하면서도, 동시에 가장 판단이 어려운 유형이다. 외형상으로는 합의된 관계처럼 보였던 상황이, 다음 날 “기억이 없다”며 형사사건으로 전환되는 구조가 반복된다. 법적 판단의 핵심은 결국 두 가지로 수렴된다. 당시 상대방이 형법 제299조가 정한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에 있었는지, 그리고 그 상태를 이용한다는 피의자의 고의가 있었는지 여부이다.

 

실무상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쟁점은 이른바 ‘블랙아웃’ 현상이다. 블랙아웃은 알코올로 인해 기억 형성 기능이 일시적으로 차단된 상태를 의미한다. 그러나 이는 기억의 문제일 뿐, 당시의 판단력이나 의사결정 능력, 신체 통제 능력까지 상실되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자가 다음 날 기억을 잃은 경우, 주관적 공포를 근거로 준강간 고소에 이르는 사례가 다수 존재한다. 문제는 이 점이 사후적으로 사건을 재구성하는 하나의 강력한 프레임으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기억이 없다는 사정은 검증이 어려운 ‘공백’을 만들어내고, 그 공백은 종종 피해 서사로 채워진다.

 

물론 외형상 정상적인 행동이 있었다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범죄 성립이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최근 법원은 단순히 “걷고 말했으니 정상이다”라는 기계적 기준에서 벗어나, 외형과 내면 상태 사이의 괴리를 보다 정밀하게 심사하는 경향이다. 일부 사건에서는 대화나 이동이 가능했던 정황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음주량, 반응 속도, 주변인의 관찰 내용 등을 종합하여 실질적인 저항이 불가능한 상태였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결국 판단은 단편적 장면이 아니라, 그 전후를 포함한 ‘맥락 전체’에서 이루어진다.

 

이러한 사건에서 피의자의 방어는 구조적으로 불리한 출발선에 놓인다. 피해자는 “기억이 없다”는 진술만으로도 일응 피해 주장에 부합하는 서사를 형성할 수 있는 반면, 피의자는 그 공백을 깨뜨리기 위해 객관적 정황을 하나씩 복원해야 하는 구조이다. 그래서 피의자의 방어는 사건을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구성된 서사를 해체하는 작업이 된다.

 

방어의 핵심은 ‘상태의 부정’에 있는데, 당시 상대방이 스스로 이동하고 선택하며 의사소통을 수행할 수 있었던 상태였다는 점을 객관적 자료로 재구성해야 한다. 이동 경로의 자발성, 결제 및 통신 기록, 제3자와의 대화의 자연스러움, 성관계 전후의 태도 변화 등은 단순한 주변 정황이 아니라 ‘항거불능 상태가 아니었다’는 점을 뒷받침하는 핵심 자료이다. 사건 직후의 행동과 이후의 메시지 내용은 사후적 감정과 당시 상황 사이의 간극을 드러내는 중요한 단서이다.

 

문제는 이러한 자료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급격히 사라진다는 점이다. 디지털 기록은 빠르게 휘발되고, 기억은 점점 정리되고 왜곡되면서 빠르게 재구성된다. 그 사이에서 남는 것은 정제된 진술이다. 그리고 형사절차는 결국 그 진술을 중심으로 작동한다.

 

결국 이 유형의 사건은 단순한 사실 다툼이 아니다. ‘기억이 없다’는 사정이 ‘저항할 수 없었다’는 것으로 귀결되는 순간, 사건의 방향은 이미 상당 부분 설정된다. 이후의 절차는 진실을 밝히는 과정이라기보다, 이미 형성된 내러티브를 얼마나 흔들 수 있는지의 문제로 귀결된다.

 

술과 성관계, 그리고 그 다음 날의 한 문장은 생각보다 훨씬 무거운 결과를 남긴다. 문제는 그 무게가 사건이 발생하는 순간에는 거의 감지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은, 그 사실을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시점에서야 비로소 인식하게 된다. 인식은 언제나 사건이 끝난 이후에야 형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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