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법무법인 태신 윤태중 대표변호사입니다.
의료사고가 발생했다고 곧바로 구체적인 소송 준비에 돌입하기 보다는, 병원 측과 합의를 먼저 시도해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상담 과정에서 합의가 결렬된 이유를 들어보면 과실 인정 여부나 배상액 차이가 주된 원인이지만, 가끔은 의외의 이유로 합의가 무산되곤 합니다. 바로 합의 테이블에 의사가 직접 나오지 않았다는 점 때문입니다. 물론 사고의 직접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는 논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법률적으로 병원 관계자와의 합의가 무효가 되는 것이 아님을 알면서도 오직 의사와의 면담과 의사의 약속만을 고집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합의의 본질을 벗어난 감정싸움을 피해야하는 이유를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1. 합의는 죄를 심판하는 절차가 아닙니다
수많은 상담을 해보며 느낀 점은, 환자나 보호자들이 의료진의 사과에 지나치게 큰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합의 또한 의료진의 과실 인정과 사죄가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합의의 본질은 재판이 아닌 협상입니다. 협상을 재판처럼 하려고 하면 결코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합의란 배상 금액을 조율해서 확약하는 과정이며, 이를 위해서는 양측의 ‘양보’가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자신은 피해자의 지위에 있으니 마치 형사사건의 피고인을 대하듯 의료진을‘굴복’시켜서 항복 선언을 받아내려 합니다. 결국 합의는 소위 윈윈이 되는 조건을 찾아가는 과정임을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2. 합의서의 명의가 중요한 것이지, 당사자의 약속이 필수적이지 않습니다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개설의가 고용한 실무자가 대리로 진행하거나, 대학병원의 법무팀이 전면에 나서는 일은 매우 일반적인 실무입니다. 대리인과 원만히 협상하고 합의서에 법률적 책임자의 인장만 날인된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유 없이 의사의 대면만을 고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대리인이 권한 없이 회피만 하려 한다면 다른 사안이겠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병원의 업무 체계를 존중해주는 태도가 오히려 시간적, 실무적으로 더 이득입니다. 우리가 구청에 민원을 제기 했을 때 구청장이 아닌 담당 공무원과 면담을 해도 정당한 민원이라면 충분히 해결이 되듯이, 합의에 임할 때 거시적이고 합리적인 태도를 갖추는 것이 감정 낭비를 줄이고 실질적인 결과에 도달하는 가장 빠른 길임을 자각해야 합니다.
3. 뭣이 중한가?
사람은 누구나 자신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기 마련입니다. 의사를 직접 마주한 협상 테이블은 문초와 항변의 자리로 변질될 수도 있고, 이는 불필요한 감정의 골만 깊게 만듭니다. 한편 소송은 필연적으로 양쪽 모두에게 법률비용을 발생시키고, 감정절차로 인해서 시간지연이 발생하는 해결방식입니다. 이러한 감정적 소모는 향후 사법절차를 밟더라도 제소 전 화해나 조정절차를 통해 시간과 절차, 비용을 단축시킬 수 있는 절차를 선택할 수 있었던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의사의 대면사과가 아니라, 언제, 얼마를, 어떻게 지급받느냐는 결과물입니다.
맺음말
의료소송 절차는 환자에게 발생한 현실적인 손해가 금액적으로 얼마인지, 그리고 의료진이 그 손해에 어느 정도의 원인을 제공하였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통상 1년 이상의 긴 시간이 소요됩니다. 그래서 이 긴 과정을 과감히 생략할 수 있는 제소 전 화해나 조정절차의 가치는 결코 낮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절차 진행의 기회를 환자 스스로 걷어차고 소송의 문부터 두드리는 모습을 볼 때면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전편에서 다룬 소송비용 분담의 원리를 다시 상기해 보시기 바랍니다. 합의를 진행하더라도 거시적으로 접근해서 향후 간편한 법원절차를 선택할 수 있는 여지는 남겨둔 채 문을 두드리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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