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어보면 많은 사람들이 변호사를 ‘말 잘하는 직업’이라고 합니다. 법 조항을 줄줄 외우고, 상대의 허점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사람이라고요. 하지만 제 하루를 가장 많이 차지하는 순간은 말하는 시간이 아니라, 말을 멈추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듣는 시간입니다.
형사 사건으로 처음 사무실 문을 열던 한 의뢰인이 있었습니다. 혐의 사실을 설명하는 목소리는 떨렸고, 문장 끝은 자주 흐려졌습니다. 그는 자신이 처벌을 얼마나 받게 될지보다 먼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제가 이런 사람으로 보일까 봐 그게 제일 무섭습니다.” 그 말 앞에서 저는 판례보다 먼저 숨을 고르게 되었습니다. 법은 행위를 판단하지만, 사람은 그 행위 하나로 정의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건은 생각보다 빠르게 정리되었습니다. 구속은 피했고, 형도 최소화할 수 있었습니다. 주변에서는 잘 해결됐다고 말했지만, 사건이 끝난 날 의뢰인은 한참 동안 말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이제 저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그 질문은 법률서 어디에도 답이 적혀 있지 않았습니다.
그날 저는 변호사의 역할이 어디까지여야 하는지를 다시 생각했습니다. 법적 절차를 안내하고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만으로 충분한지, 아니면 그 결과 이후의 시간을 함께 고민해주는 것까지가 변호인지. 최소한 그 순간만큼은 누군가의 불안이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이해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건이 끝날 때 종종 이런 말을 덧붙입니다. “이 일로 당신의 전부가 결정되는 건 아닙니다.” 판결문보다 짧은 문장이지만, 어떤 의뢰인에게는 그 말이 가장 오래 남는다고 합니다. 법은 과거를 정리하지만, 사람은 앞으로를 살아가야 하니까요.
저는 여전히 법을 다루는 사람입니다. 차가운 조문과 숫자 사이에서 논리를 세우고 결과를 만들어냅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한 가지는 놓치지 않으려 합니다. 제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은 ‘사건’이 아니라, 오늘을 버텨낸 누군가의 삶이라는 사실을요.
아마도 제가 생각하는 좋은 변호사는 이기는 사람이라기보다 끝까지 곁에 남아 있는 사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싸움이 끝난 뒤에도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을 남겨주는 사람. 그게 제가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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