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사람 사이에서
법과 사람 사이에서
변호사에세이

법과 사람 사이에서 

정준현 변호사

상담실 문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의 표정은 비슷하다. 조심스럽고, 동시에 절박하다.
그 문을 열기까지, 이미 많은 밤을 혼자 고민했을 것이다.

나는 그 순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 문을 여는 순간, 이 사람은 법보다 먼저 사람을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어디서부터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어요.”


대부분의 상담은 이 문장으로 시작된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편하신 데서부터 하시면 됩니다.”


법률 상담은 늘 이야기를 듣는 것에서 시작된다.

사건을 맡을지 말지 결정하는 순간, 의뢰인의 어깨는 더 무거워진다. 소송은 단순한 절차가 아니다.

시간, 비용, 감정까지 감당해야 하는 선택이다. 그래서 나는 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설명한다.

서류에는 사실만 남는다. 하지만 사건에는 감정도, 망설임도, 후회도 있다.

그것들은 기록되지 않지만, 나는 기억하려 한다.

법리의 방향을 결정하는 건, 때로 그 보이지 않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재판 전날 밤은 유난히 길다.
이미 준비는 끝났지만, 머릿속에서는 수없이 변론을 반복한다.

그 밤이 지나면,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법정에 선다.


나는 말해야 하고, 의뢰인은 견뎌야 한다.

판결을 기다리는 시간은 늘 생각보다 길다.

이미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끝났는데, 마음은 멈추지 않는다.

의뢰인은 자주 묻는다.
“결과는 언제 나올까요?”


나는 날짜를 말해주지만, 그 기다림의 무게까지 대신할 수는 없다.

그래서 이 시간만큼은, 법보다 사람의 불안에 더 집중하려 한다.

판결문을 읽으며 승소를 확인했지만,
의뢰인의 얼굴에는 웃음이 없었다.

이겼다는 말이 모든 걸 회복시켜주지는 않는다.


잃어버린 시간과 관계는
판결문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다.

그날 나는 다시 한 번 느꼈다.
법의 역할과, 변호사의 역할은 완전히 같을 수 없다는 것을.

반대로 패소한 날도 있다.
결과를 전하는 순간, 가장 먼저 고개를 숙이게 된다.

그런데 의뢰인이 말했다.
“그래도 혼자는 아니었어요.”
그 말에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모든 사건이 이길 수는 없지만,
모든 사건이 의미 없지는 않다.

사건이 종결되면, 기록은 보관되고 파일은 닫힌다.
하지만 사람의 기억은 그렇지 않다.

가끔 안부 연락을 받는다.
“요즘은 좀 괜찮아졌어요.”
그 한 문장이, 그동안의 모든 고민을 설명해준다.

변호사의 일은
사건을 끝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도록 돕는 일일지도 모른다.

아침이 되면, 또 다른 사람이, 또다른 사연을 안고 들어올 것이다.

법은 여전히 어렵고, 절차는 복잡하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 앞에서 길을 설명해야 한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이 자리에 앉는다.


법과 사람 사이에서,
조금 더 사람 쪽에 가까운 변호사로 남기 위해.

로톡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콘텐츠 내용에 대한 무단 복제 및 전재를 금지하며, 위반 시 민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정준현 변호사 작성한 다른 포스트
조회수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