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 사이에서도 성범죄가 될 수 있나요?
성범죄 상담에서 자주 나오는 말이 있습니다.
“연인 사이였는데요.”
이 말에는 자연스럽게 이런 전제가 따라옵니다. 연인이라면 어느 정도의 스킨십이나 성적 접촉은 문제 되지 않는 것 아니냐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법의 판단은 관계의 이름보다 그 순간의 동의가 있었는지에 초점을 둡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연인 사이에서도 성범죄는 성립할 수 있습니다. 교제 여부가 면책 사유가 되지는 않습니다. 법은 ‘연인 관계’라는 틀보다, 특정 행위가 이루어진 당시 상대방의 의사와 상황을 중심으로 판단합니다.
성범죄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은 동의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동의는 막연한 호감이나 관계 유지 의사가 아니라, 그 행위에 대해 자유롭고 명확하게 형성된 의사표시를 의미합니다. 연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접촉에 포괄적인 동의가 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이전에 성관계가 있었다거나, 평소 스킨십이 잦았다는 사정도 자동으로 동의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실무에서 문제가 되는 지점은 대개 ‘거부의 표현’입니다. 상대방이 명확히 “싫다”고 말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동의가 있었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법은 거부가 없었다는 사정만으로 동의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상대방이 심리적으로 거절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는지, 관계상 위축되어 있었는지, 술이나 약물로 판단 능력이 저하된 상태였는지도 함께 봅니다.
연인 사이의 갈등이나 다툼 이후 발생한 접촉도 자주 문제 됩니다. 감정이 격해진 상태에서 이루어진 신체 접촉은, 설령 연인 관계라 하더라도 강제성 여부가 엄격하게 판단됩니다. 이 경우 “화해하려는 과정이었다”는 설명만으로 강제성이 부정되지는 않습니다. 상황 전체가 함께 검토됩니다.
사후에 이어진 연락이나 만남 역시 오해를 낳는 부분입니다. 사건 이후에도 연락을 주고받았다는 이유로 “그럼 문제가 없었던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법원은 이를 결정적인 근거로 보지 않습니다. 관계의 특성상 사건 이후에도 연락이 이어질 수 있고, 심리적 혼란이나 관계 유지 부담으로 인해 겉으로 드러나는 태도가 실제 의사와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흔히 말하는 ‘사후 번복’이라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핵심은 마음이 바뀌었느냐가 아니라, 당시 동의가 성립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지입니다. 연인 관계에서는 이 판단이 더 복잡해질 뿐, 기준이 완화되지는 않습니다.
정리하면, 연인 사이라는 사실은 성범죄 성립 여부를 결정짓는 기준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 순간 상대방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그 선택이 명확히 표현되었는지입니다. 연인이라는 이유로 법의 기준이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성범죄 판단에서 관계의 이름보다 중요한 건, 행위 당시의 동의와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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