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예래휴양형주거단지 판결이 남긴 토지보상의 기준
토지보상 사건을 상담하다 보면 가장 자주 듣는 말이 있습니다.
“이미 협의매매로 팔았는데, 이제 방법이 없지 않나요?”
오랫동안 실무와 판례는 이 질문에 비교적 단정적으로 답해 왔습니다. 협의매매는 사법상 매매의 성격을 가지므로, 특별한 무효·취소 사유가 없는 한 그 효력이 유지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협의매매가 정말 ‘자유로운 합의’였는지에 대해서는, 늘 의문이 남았습니다.
10년의 간의 긴 소송
제가 수행한 예래휴양형주거단지 관련 토지반환소송은 바로 이 질문에서 출발한 사건이었습니다.
제주 서귀포시의 예래휴양형주거단지 개발사업은 인허가 무효라는 대법원 판결로 인해 10년 넘게 표류해 온 대표적인 분쟁 사례입니다.
1. 사업 진행 경위 (2005년 ~ 2015년)
사업의 시작: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는 2005년 서귀포시 예래동 일대에 대규모 휴양단지를 조성하는 계획을 세우고, 말레이시아의 버자야 그룹과 합작법인을 설립해 투자를 유치했습니다.
강제 수용: 사업 추진 과정에서 일부 토지주들이 토지 수용에 반발했으나, 당시 행정 당국은 이를 '유원지' 시설로 간주하여 토지를 강제 수용했습니다.
대법원 판결(2015년): 토지주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대법원은 "예래단지는 영리 목적의 분양 시설로, 공공성이 필요한 '유원지'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하며 사업 인허가와 토지 수용을 모두 무효로 확정했습니다. 이로 인해 공정률 65% 상태에서 공사가 전면 중단되었습니다.
2. 토지 반환 소송과 결과
대법원 판결 이후, 토지주들은 JDC를 상대로 "땅을 돌려달라"는 소유권이전등기 말소 소송을 무더기로 제기했습니다. 전체 사업부지 토지주 약 300명 중 나는 총 161명의 토지주분들의 소송대리를 맡아 무려 9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1심과 2심 모두에서 승소 판결을 이끌어냈다.
그 과정에서 최대 걸림돌이 협의매매계약의 효력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있었다. 이 사건에서 문제 된 토지의 상당수는 형식상 ‘협의매매’로 수용되었기 때문이다. 사업시행자(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JDC')는 이를 근거로 “이미 적법하게 매수한 토지”라며 반환을 거부했고, 등기부취득시효, 유익비 상환 등 가능한 모든 항변을 제기했습니다. 나 보다 먼저 소송을 제기한 다른 토지주 일부는 먼저 협의매매는 사법상 매매라는 판단을 받고 그 청구가 기각된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맡은 사건에서 법원은 달리 보았습니다. 협의매매도 공공성의 심사를 피할 수 없다
법원은 이 사건에서 협의매매라 하더라도,
① 공공의 필요성,
② 정당한 보상,
③ 법률이 정한 절차
라는 헌법적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면 그 효력을 부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는 협의매매를 수용재결과 동일선상에서 평가한 매우 의미 있는 판단이었습니다. 형식만 ‘합의’였을 뿐, 실제로는 장기간 사업 지연과 압박 속에서 토지주들이 선택의 여지 없이 응할 수밖에 없었던 점이 인정된 것입니다.
그 결과, 협의매매로 토지를 넘겼던 다수의 토지주들 역시 권리 구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토지는 돌아왔지만, 남은 상처들
문제는 판결 이후에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토지주들은 무려 20년 가까이 소유권을 행사하지 못했고, 사업 부지에는 지금도 흉물처럼 방치된 미준공 건축물이 남아 있습니다. 이미 대법원 판결로 사업의 위법성이 확정되었음에도, 토지를 되찾기까지 다시 10년의 소송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항소심에 이르러 사업시행자 JDC는 ‘추가 보상’이라는 명목으로 조정을 제안했지만, 토지가치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고, 그마저도 세금으로 충당해야 하는 구조였습니다. 많은 토지주들이 불만을 안은 채 현실적인 이유로 합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토지보상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
이 사건을 통해 분명해진 점이 하나 있습니다.
“형식이 아니라 실질을 보아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협의매매라는 이유만으로 권리가 끝났다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사업의 공공성, 절차의 적법성, 보상의 정당성은 언제든 다시 검토될 수 있습니다. 토지보상 사건은 단순한 금전 분쟁이 아니라, 헌법이 보장한 재산권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토지보상은 결과만 놓고 판단하기에는 너무 많은 과정과 맥락이 숨어 있는 분야입니다.
오랜 시간 축적된 경험과 판결을 통해, 실질적인 권리 회복의 가능성을 끝까지 검토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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