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아니지만, 변호사 일 초기에는 의욕에 넘쳐 사무실에 라꾸라꾸 침대를 갖다 놓고 일하던 시절이 있었다.
집에 들어가지 않고 사무실에서 일을 하면서 간이침대에서 자고 일어나 다음날 업무를 하는 식이었다. 물론 몸은 매우 피곤했다.
좋은 점도 있었다. 오늘처럼 폭설이 내린 날에는 집에 가지 않아도 그럭저럭 잘 곳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도 오늘처럼 폭설이 내리던 날이었다.
아마 12시에서 1시 사이였던 것 같다. 누군가 변호사사무실 문을 노크했다. 당연히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 시각에 누가 방문할리 만무하고, 만약 방문했다면 좋은 의도는 아닐 것 같았다. 쥐죽은 듯, 사람 없는 척 했지만 계속 밖에서 사람이 서성이는 기척이 들렸다. 장고 끝에 결국 문을 열었다.
밖에는 20대 초중반 남성(학생?)이 있었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갑자기 꾸벅 인사를 했다. 나는 그의 눈을 쳐다보았는데, 그 순간 많은 것을 깨달았다. 학생은 마약중독자로 보였다. 적어도, 마약을 한 번은 했던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많이 위험했지만 일단 안으로 들어오라 해서 잠깐 대화를 나눴다. 적대적 분위기는 없었다. 나를 찾아 온 이유는 별것 없었다. 불이 켜진 곳이 여기밖에 없어서 그냥 무작정 들어왔다고 했다. 진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유로는 그럴듯 했다.
그는 자수를 망설인다고 했다. 상당히 오래 전에 마약을 한 적이 있는데 자수를 받아주냐고 물어 보았다. 새삼 이제 와서 자수를 한다는 것이 좀 이상했지만 내가 아는 한도에서 최대한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는 실컷 질문을 해 놓고 답을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사무실 집기에 더 관심이 있는 것 같았다.
어색하게 20분 정도 대화를 나누더니 그가 일어났다. 아무래도 자수하러 가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자세한 사정도 모르면서, 그게 맞다고 맞장구를 쳤다. 그는 곧 사무실을 나섰다. 마지막으로 이 말을 남기고 갔다. 혹시 변호사 필요하면, 변호사님 이름 대면 되냐고. 나는 된다고 했다. 그는 만족한 듯 돌아갔다.
그 날은 정말로 잠이 오지 않았다. 그 학생은 정말 마약중독자였을까? 자수는 했을까? 신고를 할까 잠시 생각도 해 보았지만 사실 학생이 마약중독자라는 확신은 없었다.
그리고 매우 유감스럽게도, 약 4년정도 뒤에 나는 그 학생을 구치소에서 마약 피고인으로 만나고 말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는 나를 못 알아보았다. 아니면 못 알아보는 척을 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나도 알은척은 하지 않았다. 그냥 평소처럼 업무를 처리했다. 그것이 우리 둘에게 모두 최선이라고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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