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늘 새로운 아침, 늘 새로운 생각 】
《 한글날 「세종대왕」 vs 프랑스 「대혁명」 》
프랑스 「대혁명」은 《인류 구원》이라는 복음의 실천이었다. 『신』과 『왕』이라는 절대 권위 앞에 무기력하게 맹목적으로 복종하던 인간에게, 그의 이성을 깨우친 프랑스 계몽주의 사상가 루소의 처절한 노력의 산물로, 프랑스 민중이 그 지엄하신 《왕의 목》을, 그 잘난 척하는 《대귀족의 목》을 공개적으로 날려 버렸다. 법률가 출신 로베스 삐에르도 그 「법률로 장난친 공포정치」의 업보로 목이 날라갔다. 그리고 지금의 자유와 평등의 기틀을 만들어졌다.
이런 생각을 해본다.
조선시대에는 양반과 상놈이 구별되어 차별받고 살았다. 즉 “나는 양반, 너는 상놈” 실체화되어 있었다. 이 실체화를 통해 양반은 상놈을 배타적으로 대했다. 여기에 인간의 존엄과 가치는 개나 물어갈 소리다.
그런데 조선시대 국난(國難)에서 보여준 양반의 실상은 무능력과 무책임 그 자체였고, 오히려 민중의 피와 땀으로 나라를 지켰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 그렇다. 이후 몰락한 양반으로 상놈처럼 사는 이들이 나타났고, 부유한 상놈이 돈으로 족보를 사서 양반 행세하는 이들도 역사에 등장했다. “저놈은 본시 상놈인데 돈을 어디서 많이 벌어 양반 행세하고 다닌다네” ,“저자는 본시 양반인데 얼마나 무능했으면 상놈처럼 살까” 양반과 상놈의 경계가 무너지고 실체화 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즉 양반도 몰락하면 상놈이 되는 것이고, 상놈도 돈만 잘 벌면 양반이 되는 세상이 되었다. 이제 상놈도 공개적으로 마당극이나 탈춤을 추면서 양반을 비판하는 세상이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그 양반을 비판하는 의사소통 수단을 생각해 보자. 일반 민중이 『한자』로 의사소통을 하려고 하면 가능했을까? 우리 민중이 중극의 경극처럼 『한자』로 마당극을 하고 탈춤을 출 수나 있었을까?
우리 민족에는 자체적으로 「복음」이 있었다. 그것이 바로 「세종대왕이 창제한 한글」이었다. 곧 훈민정음이 우리 민중의 「복음」이 있었다.
서로의 의사소통 수단을 넘어, 시대 정신을 공유하는 수단으로, 나의 삶을 부당하게 억누르는 무능력하고 무책임한 권위를 비판하는 수단으로 우리의 민중에게는 『한글』이 있었다.
여기서 또한번 생각해 본다. 세종대왕은 왜 한글을 창제핬을까?
당시 주류인 『한자』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양반이었고, 그 중에 성리학을 심봉하는 무리가 영의정부터 방구 깨나 뀐다는 권세가였다. 그들은 자신의 권세와 『한자』를 사용하며 “세상에 정답은 이것이다” 온갖 것에 실체화를 남용하고 살았다.
오직 했으면 상복을 며칠 입어야 하는가 가지고 서로 죽이고 죽고 했겠는가?
이런 답답한 인간들에게 너희만 정답이 아니라는 강력한 비판세력이 필요한데 양반에 대한 양반의 비판세력은 있었으나 지혜롭지 못하고 끈기가 없어 용기있게 역사의 정면에 나서지 못햇으나, 『한글』은 결과적으로 민중이 양반을 비판하는 세력으로 정면으로 나서게 해 준 수단이었고, 마당극이나 탈춤을 통해 지속적이고 지혜로운 수단으로 양반의 허세를 무너뜨려 갔고, 최제우의 동경대전은 『한글』로 씌여진 당시 우리 민중의 복음이었다.
그래서 바로 그 정점이 바로 동학농민혁명이었다. 고종이라는 반역사적인 퇴행적인 인물로 인해 일본의 외세로 그 불씨가 비록 꺼져보였을 지라도 『한글』이 우리의 의사소통 수단인 한 지금까지 그 『비판과 저항의 인류구원의 정신』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우리에게는 이런 왕이 있었다. 궁극적으로는 왕도 비판을 받아야 하는 존재이며, 그 비판은 민중이 주체가 되어야 하므로, 그 의사소통 수단으로 『한글』을 창제한 왕, 그 분이 바로 『세종대왕』이다.
늘 새로운 아침, 늘 새로운 생각이었습니다.
로톡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콘텐츠 내용에 대한 무단 복제 및 전재를 금지하며, 위반 시 민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