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늘 새로운 아침, 늘 새로운 생각 】
《 『정의』는 우리의 「언어」로 존재하는가 우리의 「체험」으로 느끼는 것인가 》
한때 대한민국에서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유행한 적이 있다. 필자도 탐독하였다.
前 해병대 수사단장 기소 등 현재 대한민국의 심각한 갈등 상황에서, 오늘 이런 생각이 든다.
▶ 『정의』는 「존재」한다
『정의』란 《인간의 언어》로 표현되어 그 실체가 있는 「존재」이어서, 그 「존재」를 찾기 위하여 「정의란 무엇인가」라고 묻고,
그 시대의 각종 언어로 표현된 『정의』를 찾아 내어 그것을 비교하며 그 언어로 표현된 『정의』의 장·단점을 분석하여 제시하여,
결국 샌델이 선택한 『정의』을 독자들의 「인식」 속에 각인시키는 효과를 노려 “아, 이것이 『정의』 이지”,
결국 샌델이 제시한 논리의 종착에서 “샌델의 생각이 맞지” 하고 책을 덮고 생각만 하고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사람(필자를 포함한 주로 ‘어쭙은’ 지식인층)들이 추구(?)하는 『정의』인 듯하다. 반면에,
▶ 『정의』는 「체험」이다
『정의』란 세치혀인 인간의 언어가 아닌 용기가 필요한 《인간의 행동》으로 표현되어야 하고, 그것은 실체가 있는 「존재」가 아니라, 행동하는 우리 모두의 「체험」이므로 「정의란 어떤 상태인가」라고 묻고,
그 『정의』의 상태는 그 시대 사람들의 가치에 대한 생각이 달라 늘 변화할 수 있는 상태일 뿐이므로,
그 『정의』는 각 나라별 각 인종별 각 국민별 구체적인 현실에서는 변화할 수 있으며, 이 변화를 온전히 받아들이면 『정의』를 실체화 하지 않고 『상대화』하며,
그 『상대화』란 내가 따르는 『정의』가 오늘의 『정의』의 상태일지라도라도 정권이 바뀌고, 시대가 변하면 타인이 따르는 『정의』가 『정의』의 상태가 될 수 있다는 관용과 포용의 『체험』으로 그 인식이 성숙될 수 있고,
이 성숙한 정신문명의 관점에서 지향해야 할 『정의』 는 곧 언어의 『정의』가 아닌 체험의 『정의』이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용기있는 『정의』가 세상을 바꾸어 가고 있지 않을까? 책 속에 『정의』를 숭상하는 지식인이 세샹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늘 새로운 아침, 늘 새로운 생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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