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 스캠 코인 사기는 '언제 움직였느냐'가 회수 가능성을 가릅니다. 이 글은 사기임을 눈치챈 순간부터 24시간, 72시간, 1주일, 1개월, 그 이후까지 시간대별로 지금 해야 할 일과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정리한 피해자용 대응 가이드입니다.
SNS나 데이팅 앱에서 알게 된 상대가 몇 주간 다정하게 연락을 이어가다 "내가 아는 코인 투자 플랫폼이 있다"며 입금을 유도하고, 처음에는 수익과 출금이 되다가 어느 순간 "세금을 내야 출금된다", "보증금이 필요하다"는 말과 함께 연락이 끊기는 수법. 흔히 돼지도살 사기(피그 부처링)라고도 부르는 전형적인 로맨스 스캠입니다.
이 유형의 피해자가 상담에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창피해서 며칠을 혼자 고민했다"입니다. 그런데 그 며칠이 돈의 행방을 가릅니다. 가상자산은 몇 번의 전송만 거치면 추적이 어려워지므로, 감정 정리는 나중에 하고 절차부터 밟아야 합니다.
0~24시간: 돈의 흐름을 멈추고, 증거를 얼린다
첫 하루의 목표는 두 가지입니다. 아직 움직이지 않은 돈을 묶는 것, 그리고 상대가 지울 수 없게 증거를 확보하는 것입니다. 고소장은 그다음입니다.
지금 할 일
은행 계좌로 송금했다면 즉시 은행 콜센터에 지급정지를 요청합니다. 상대가 알려준 '입금 계좌'가 국내 은행 계좌라면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로 지급정지 신청이 가능한 경우가 많습니다. 112에 신고하면서 지급정지를 함께 요청해도 됩니다.
국내 거래소에서 코인을 사서 상대 지갑으로 보냈다면 해당 거래소 고객센터에 '사기 피해 신고'를 접수합니다. 거래소는 보낸 코인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출금 기록·수신 지갑주소·시각을 공식 자료로 확인해 주고, 수신 주소가 자사 회원 지갑이면 내부 조치를 검토합니다.
대화 내용을 통째로 보존합니다. 카카오톡·텔레그램·라인은 대화 내보내기 기능으로 전체를 파일로 저장하고, 상대 프로필 사진·아이디·전화번호·앱 내 닉네임을 화면 캡처합니다. 투자 플랫폼이라며 안내받은 사이트 주소, 로그인 화면, 잔고 화면, 출금 거부 메시지도 모두 캡처합니다.
송금 내역을 시간순으로 표처럼 적어둡니다. 날짜, 금액, 보낸 계좌 또는 거래소, 받은 계좌번호 또는 지갑주소, 그때 상대가 한 말. 이 정리표가 고소장의 뼈대가 됩니다.
하지 말아야 할 일
"마지막으로 수수료만 내면 전액 출금된다"는 말에 추가 입금하지 않습니다. 출금 조건이라며 세금·보증금·인증비를 요구하는 단계는 이미 사기의 마무리 수순입니다.
상대를 추궁하거나 신고하겠다고 알리지 않습니다. 상대가 계정과 사이트를 닫고 자금을 여러 지갑으로 분산하는 속도만 빨라집니다.
대화방을 나가거나 차단하지 않습니다. 나가면 대화 기록 복구가 어려워지는 메신저가 있습니다. 보존이 끝날 때까지는 그대로 둡니다.
72시간 이내: 고소장을 내고 사건번호를 받는다
사흘 안에 경찰에 고소장을 접수해 사건번호를 받아두면, 이후 거래소·은행에 대한 자료 요청과 계정 동결이 '수사기관의 요청'으로 격상됩니다. 피해자 개인의 요청과는 무게가 다릅니다.
어디에, 무엇으로
관할은 피해자 주소지 경찰서 사이버수사팀이나 경제팀이면 충분합니다. 온라인으로 하려면 경찰청 사이버범죄 신고시스템(ECRM)을 이용할 수 있고, 피해 금액이 크거나 송금 횟수가 많다면 직접 방문해 고소장을 내는 쪽이 접수 누락을 줄입니다.
적용 죄명은 기본적으로 사기죄입니다. 상대가 투자 플랫폼이라며 보여준 수익은 실제 거래가 아니라 화면에 숫자를 띄운 것에 불과하고, 피해자는 그 거짓 표시에 속아 돈을 보냈기 때문입니다.
형법 제347조(사기) ① 사람을 기망하여 재물의 교부를 받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피해액이 5억 원 이상이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3조가 적용되어 3년 이상의 유기징역, 50억 원 이상이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으로 법정형이 올라갑니다. 피해자 한 명의 금액이 아니라 같은 조직이 같은 수법으로 편취한 금액이 합산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내 피해액이 작아도 사건의 무게는 다를 수 있습니다.
고소장에 꼭 들어가야 할 것
기망의 내용: 상대가 무엇을 사실인 것처럼 말했는지. "연애 감정을 이용했다"보다 "존재하지 않는 투자 플랫폼의 수익을 실제인 것처럼 보여주었다"가 사기죄 구성요건에 바로 닿는 표현입니다.
처분 행위: 그 말을 믿고 언제 얼마를 어디로 보냈는지. 앞서 만든 송금 정리표를 그대로 첨부합니다.
피고소인 특정 자료: 이름을 모르더라도 계좌번호, 지갑주소, 메신저 아이디, 사이트 주소, 전화번호가 모두 특정 수단입니다. 성명불상자로 고소해도 접수됩니다.
증거목록: 대화 내보내기 파일, 캡처, 거래소 출금내역서, 은행 이체확인증. 원본 파일은 USB나 클라우드에 따로 백업합니다.
접수 후 받는 사건번호와 담당 수사관 연락처는 이후 모든 절차의 열쇠입니다. 거래소에 "○○경찰서 2026-○○○○호 사건의 피해자"라고 밝히면 응대 자체가 달라집니다.
1주일 이내: 지갑주소를 따라가며 묶을 수 있는 지점을 찾는다
코인은 추적이 불가능한 돈이 아니라, 추적은 되지만 '돌려받을 수 있는 지점'이 한정된 돈입니다. 그 지점은 대개 국내 거래소의 누군가의 계정입니다.
흐름을 읽는 법
내가 보낸 코인의 트랜잭션 해시를 블록체인 탐색기에 입력하면 수신 지갑에서 다음 지갑으로 몇 번 옮겨졌는지 누구나 볼 수 있습니다. 블록체인 자체는 공개 장부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지갑 주인을 아는 것입니다. 지갑이 개인 지갑이면 소유자를 알 방법이 없지만, 어느 단계에서든 국내 거래소의 입금 주소로 들어가는 순간 그 계정은 실명 확인된 사람의 것이 됩니다. 수사기관은 그 거래소에 회원 정보와 거래내역을 요청할 수 있고, 거래소는 수사 협조 요청에 따라 해당 계정의 출금을 제한할 수 있습니다.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은 거래소에 이상거래를 상시 감시하고 수사기관에 통보할 의무를 지웁니다. 피해자가 거래소에 사건번호와 지갑주소를 제공하면, 이 의무를 근거로 해당 주소의 유입 여부 확인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이 단계에서 할 일
트랜잭션 해시와 최초 수신 지갑주소를 담당 수사관에게 전달합니다. 수사관이 거래소에 공문을 보내려면 이 정보가 있어야 합니다.
같은 수법의 피해자가 더 있는지 확인합니다. 같은 계좌번호나 지갑주소로 검색해 다른 피해자가 있다면 사건이 병합될 가능성이 커지고, 조직적 사기로 수사 규모가 달라집니다.
대포통장 명의인이 특정되면 그 사람도 피고소인에 포함합니다. 계좌를 빌려준 사람은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으로 처벌되며, 사정에 따라 사기 방조가 인정되기도 합니다. 민사적으로는 그 명의인에게 손해배상이나 부당이득 반환을 구할 여지가 생깁니다.
1개월 이내: 형사 절차 안에서 돈을 묶는 두 가지 장치
수사가 진행되면 피해자가 직접 쓸 수 있는 장치가 두 개 열립니다. 하나는 수사기관의 몰수·추징보전이고, 다른 하나는 피해자가 거는 민사 가압류입니다. 둘은 대상과 효과가 다르므로 함께 쓰는 것이 원칙입니다.
몰수·추징보전: 수사기관이 거는 것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검사는 범죄수익으로 의심되는 재산에 대해 법원에 몰수·추징보전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피의자나 그 돈이 흘러간 사람의 거래소 계정, 은행 계좌가 대상이 되면 재판이 끝날 때까지 처분이 금지됩니다.
피해자가 직접 청구하는 제도는 아니지만, 담당 수사관에게 "추적된 자금이 ○○거래소 계정에 남아 있으니 보전 조치를 검토해 달라"고 서면으로 요청하는 것은 가능하고, 실제로 그 요청이 계기가 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법이 하나 더 있습니다. 부패재산의 몰수 및 회복에 관한 특례법은 범죄단체 조직이나 다수 피해자를 상대로 한 조직적 사기, 유사수신, 전기통신금융사기 등 특정 사기범죄로 편취한 재산을 국가가 몰수·추징한 뒤 피해자에게 돌려주는 환부 절차를 두고 있습니다. 로맨스 스캠은 대부분 역할을 나눈 조직이 다수를 상대로 벌이는 범행이므로 이 환부 대상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피해자로 등록되어 있어야 환부를 받을 수 있으니, 고소와 피해 진술을 반드시 해두어야 합니다.
가압류: 피해자가 직접 거는 것
계좌 명의인이나 지갑이 연결된 거래소 회원이 특정되었다면, 그 사람을 채무자로 하여 법원에 가압류를 신청할 수 있습니다. 가압류는 상대가 특정되어야 하고 담보 공탁이 필요하지만, 수사기관의 처분과 무관하게 피해자 자신의 채권을 지키는 수단이라는 점에서 별도의 가치가 있습니다.
거래소 계정 안의 코인은 '거래소에 대한 출금청구권'이라는 채권으로 보아 가압류하는 실무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코인 종류와 수량, 거래소명을 특정해 신청합니다.
이 시기의 함정: '회수 대행' 2차 사기
고소 사실이 알려질 즈음 "해킹 기술로 코인을 되찾아 주겠다", "국제 추적 전문 업체다"라며 선금을 요구하는 연락이 옵니다. 블록체인상 전송은 기술적으로 되돌릴 수 없습니다. 수수료를 먼저 요구하는 회수 대행은 예외 없이 2차 사기입니다. 수사기관과 변호사 외에 돈을 먼저 달라는 곳은 없습니다.
그 이후: 기소·재판 단계에서 피해 회복을 청구하는 길
피의자가 기소되면 형사재판 안에서 배상명령을 신청할 수 있고, 그와 별도로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둘 중 무엇을 택할지는 피고인에게 재산이 남아 있는지, 금액 다툼이 있는지에 따라 달라집니다.
배상명령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 제25조에 따라 사기죄 피해자는 1심 또는 2심 변론 종결 전까지 형사법원에 배상명령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인지대가 없고 절차가 간단하며, 유죄 판결과 함께 배상명령이 내려지면 민사판결과 같은 집행력을 가집니다.
다만 피해 금액이 명확하고 다툼이 없을 때 적합합니다. 법원은 배상 범위가 불분명하거나 형사절차를 지연시킬 우려가 있으면 신청을 각하하는데, 이때는 민사소송으로 가면 됩니다.
민사소송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가 기본입니다. 주범이 해외에 있어 특정되지 않더라도 국내 계좌 명의인, 코인을 현금화해 준 거래소 회원 등 '국내에서 특정된 사람'을 상대로 청구하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대법원은 자신의 계좌가 범죄에 쓰일 것을 알면서 넘겨준 사람에게 방조에 의한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될 수 있다고 봅니다. 다만 단순히 계좌를 빌려준 것만으로 모든 손해를 배상해야 하는지는 그 사람이 범행을 어느 정도 인식했는지에 따라 결론이 갈립니다.
형사사건에서 무혐의나 불송치가 나왔더라도 민사소송은 별개입니다. 형사는 '범죄가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되었는가'를, 민사는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는가'를 묻기 때문에 기준이 다릅니다.
시효
사기죄의 공소시효는 10년,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이 적용되는 5억 원 이상 사건은 더 깁니다. 민사의 불법행위 손해배상 청구권은 가해자와 손해를 안 날로부터 3년, 불법행위가 있은 날로부터 10년입니다. '안 날'은 상대가 누구인지 특정된 날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피의자가 뒤늦게 특정되면 그때부터 3년을 세게 됩니다. 그래도 서두를수록 유리합니다.
시간대별 체크리스트 한눈에
아래 순서대로 체크해 나가면 피해자가 할 수 있는 조치는 빠짐없이 한 셈입니다.
0~24시간: 은행 지급정지 요청 / 거래소 사기 피해 신고 / 대화 내보내기와 캡처 / 송금 정리표 작성 / 추가 입금 중단 / 상대에게 신고 사실 알리지 않기
72시간: 경찰 고소장 접수 / 사건번호·담당 수사관 확보 / 증거 원본 백업
1주일: 트랜잭션 해시·지갑주소 수사관 전달 / 동일 수법 피해자 확인 / 계좌 명의인 특정 시 피고소인 추가
1개월: 몰수·추징보전 검토 요청 / 특정된 상대에 대한 가압류 / 회수 대행 사기 경계
기소 이후: 배상명령 신청 또는 민사소송 / 부패재산몰수법 환부 절차 확인 / 시효 관리
로맨스 스캠 피해자가 가장 늦게 하는 일은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돈의 회수 가능성은 침묵한 시간에 반비례합니다. 창피함은 범인이 설계한 수법의 일부이고, 그 설계를 깨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바로 첫 하루의 신고입니다.
※ 본 글은 일반적인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구체적인 법률 조언을 대체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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