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장 쓴 뒤 재산을 팔았다면 — 유언은 철회된 걸까
사건 개요
부모가 재산을 자녀들에게 서로 다른 비율로 물려주겠다는 유언장을 써 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생전에 그 재산이 매매나 수용, 재개발·재건축 조합 편입 등으로 처분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에 이르는 일이 드물지 않습니다. 이때 자녀들 사이에서는 "그 유언은 재산이 없어졌으니 이제 아무 의미가 없다"는 쪽과 "재산이 형태만 바뀌었을 뿐 유언의 취지는 살아 있다"는 쪽이 정면으로 부딪힙니다.
실제로 상담을 청해 오는 분들 다수가 이런 상황입니다. 부모가 특정 비율로 물려주겠다고 적어 둔 부동산이 생전에 팔리거나 조합에 넘어갔고, 매매대금이나 보상금은 법정상속분대로 형제들에게 똑같이 나뉘어 버린 뒤였습니다. 유언장에 적힌 비율을 믿었던 상속인은 "왜 유언과 다르게 나눠 가졌느냐"며 억울해하지만, 상대방은 "재산을 판 순간 그 유언은 이미 철회된 것"이라고 맞섭니다.
이 다툼에 대해 2026년 7월 대법원은 뜻깊은 판단을 내놓았습니다. 부모가 자녀 넷에게 부동산을 35%·35%·19%·11%로 나누는 유언증서를 남긴 뒤, 그 땅이 지역주택조합 사업에 편입돼 8억 원에 매도되고 계약 19일 만에 사망한 사건이었습니다. 조합은 매매대금을 법정상속분대로 4분의 1씩 균등하게 나눠 줬는데, 대법원은 원심(부산고법)을 깨고 사건을 돌려보내며 재산을 처분했다는 사실만으로 유언 철회를 쉽게 단정해서는 안 된다는 첫 판단을 내렸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재산을 팔았다고 해서 유언이 자동으로 철회되는 것은 아니며, 철회 여부는 처분의 경위와 유언자의 진의를 함께 따져 판단해야 합니다.
핵심 쟁점
이런 사건에서 실제로 갈림길이 되는 지점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유언자의 생전 처분이 유언 내용과 실제로 '저촉'되는지입니다(민법 제1109조). 둘째, 처분이 일부에 그쳤다면 나머지 재산에 관한 유언까지 철회된 것으로 볼 수 있는지입니다. 셋째, 처분으로 형태가 바뀐 매매대금·보상금에도 유언의 효력을 미치게 하려는 유언자의 의사가 있었다고 볼 수 있는지입니다.
민법 제1108조는 유언자가 언제든 유언이나 생전행위로 유언의 전부·일부를 철회할 수 있다고 정하고, 제1109조는 유언 후의 생전행위가 유언과 저촉되면 그 저촉된 부분의 유언은 철회된 것으로 '본다'고 정합니다. 문제는 이 '저촉'을 얼마나 넓게 볼 것인가입니다. 대법원은 이미 1998년 판결(97다38503)에서 유증 목적물의 일부를 처분했다고 해서 나머지 재산에 관한 유언까지 철회된 것은 아니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2026년 판결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처분 자체가 있었더라도 대금에 유언의 효력을 미치려는 의사가 추단되면 철회를 쉽게 인정해선 안 된다는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김강희 변호사의 해결방법 [1]: 처분의 '저촉' 여부와 유언자의 진의를 사실관계로 재구성하기
"재산을 팔았으니 유언은 끝났다"는 상대방의 주장에 맞서려면, 처분이 이루어진 경위 자체를 촘촘히 재구성해야 합니다. 김강희 변호사는 이런 사건에서 다음 순서로 사실관계를 정리합니다.
1) 처분이 자발적 매매였는지, 사실상 불가피한 처분이었는지를 가려냅니다.
유언자가 스스로 원해서 판 경우와, 재개발·재건축 조합 편입이나 수용처럼 사업 진행에 따라 사실상 응할 수밖에 없었던 처분은 성격이 다릅니다. 유언증서 작성 시점에 이미 조합 설립이나 사업계획 승인 등 처분이 예정된 절차가 진행 중이었다면, 유언자가 재산이 곧 대금으로 바뀔 것을 알면서도 굳이 비율을 정해 유언장을 남긴 셈이 되어, 대금에도 유언 효력을 미치려던 의사를 뒷받침하는 정황이 됩니다. 처분 관련 조합 총회 자료, 사업계획 승인일, 계약 체결 경위를 시계열로 정리해 둡니다.
2) 처분의 범위가 전부인지 일부인지를 특정합니다.
유증 목적물의 일부만 처분된 경우라면, 판례(97다38503)에 따라 처분되지 않은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유언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다툴 여지가 큽니다. 부동산이 여러 필지이거나 지분으로 나뉘어 있다면 처분된 부분과 남은 부분을 등기부·매매계약서로 명확히 구분해, 최소한 남은 재산에 대해서는 유언대로 이행을 구할 수 있도록 청구 범위를 설계합니다.
3) 유언자의 생전 언행·문서를 통해 처분 이후의 의사를 확인합니다.
처분 이후에도 유언자가 "돈이 들어오면 유언장대로 나눠라"라고 말한 정황, 대금 수령 후 유언장을 다시 쓰거나 폐기하지 않고 그대로 보관한 사정, 가족에게 비율을 재확인해 준 문자·메모 등은 철회 의사가 없었음을 뒷받침하는 핵심 증거가 됩니다. 반대로 유언자가 처분 후 재산분배 의사를 바꾸는 말을 남겼다면 이는 철회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작용하므로, 양쪽 정황을 빠짐없이 수집해 정리해 둡니다.
김강희 변호사의 해결방법 [2]: 처분대금(대상재산)에 유언의 효력을 살려내는 실무 전략
저촉 여부를 다투는 데서 그치지 않고, 실제로 대금을 유언 취지대로 받아내려면 청구의 구성과 증거가 함께 갖춰져야 합니다. 이 단계에서 김강희 변호사는 다음을 챙깁니다.
1) 청구취지를 '유증 이행'이 아니라 '대상재산에 대한 권리 확인'으로 구성합니다.
유언장에 적힌 목적물 자체는 이미 사라졌으므로, 그 물건의 인도나 소유권이전등기를 구할 수는 없습니다. 대신 처분대금이 유증 목적물을 대신하는 재산(대상재산)이라는 점을 전제로, 이미 지급된 대금이나 아직 지급되지 않은 잔금에 관해 유언에서 정한 비율대로 귀속됨을 확인받거나 부당이득 반환·정산을 구하는 방식으로 청구를 구성합니다. 청구원인을 잘못 잡으면 목적물 부존재를 이유로 각하·기각될 위험이 있어, 이 구성 단계가 소송의 승패를 가릅니다.
2) 대금의 흐름을 추적해 '동일성'을 증명합니다.
매매계약서, 조합의 정산내역서, 계좌 입출금 내역을 확보해 처분된 부동산의 대금이 어떤 계좌로 얼마가 들어왔고 그 후 어떻게 분배됐는지를 특정합니다. 이미 형제들에게 법정상속분대로 지급된 경우라면, 유언에서 정한 비율과의 차액을 구체적 금액으로 계산해 청구액을 명확히 산정해 둡니다. 대금이 다른 재산과 섞여 버렸다면 동일성 증명이 어려워지므로, 지급 시점과 계좌 내역을 최대한 빨리 확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3) 유류분과의 관계를 함께 점검합니다.
유언에서 정한 비율이 특정 상속인에게 유리하게 설계된 경우, 다른 상속인이 유류분 침해를 이유로 반환을 구해 올 수 있습니다. 대상재산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면서도 상대방이 유류분 부족분을 근거로 맞대응할 가능성을 미리 계산해, 청구액이 유류분 반환 범위 안에서 방어 가능한 수준인지 함께 점검해 둡니다. 이 계산을 소송 전에 마쳐 두어야 협상 단계에서도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습니다.
결론
유언장에 적어 둔 재산을 생전에 처분했다고 해서 그 유언이 자동으로 휴지 조각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처분의 경위와 유언자의 진의에 따라, 형태만 바뀐 대금에 대해서도 유언의 효력을 주장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습니다.
다만 이 길은 저절로 열리지 않습니다. 처분이 자발적이었는지, 일부에 그쳤는지, 대금이 유언자의 다른 재산과 섞이지 않고 특정될 수 있는지를 증거로 뒷받침해야만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부모님이 남긴 유언장에 적힌 재산이 생전에 팔리거나 수용된 경우라면, 그 처분의 경위와 대금의 흐름부터 짚어 보는 상담을 받아보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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