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가 내린 경영상 판단으로 회사에 거액의 손해가 발생하면, 회사는 그 이사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려 하고 이사는 정관에 있는 책임감경 조항을 근거로 방어하려 합니다. "정관에 보수의 6배까지만 책임진다는 조항이 있으니 그 이상은 걱정 없다"고 안심하는 이사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회사나 주주 쪽에서는 이 조항 때문에 손해액 전부를 받아내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감경 조항은 정관에 넣기만 하면 무조건 적용되는 만능 방패가 아니고, 법이 정한 한도와 몇 가지 배제 사유 안에서만 작동합니다. 조항의 존재만 믿고 안심하거나, 반대로 조항 때문에 청구를 포기하는 것 모두 성급한 판단일 수 있습니다.
먼저 전체를 짚어보겠습니다: 정관상 책임감경 조항이 실제로 작동하는 범위
이사가 회사에 대해 손해배상책임을 지는 근거는 상법 제399조입니다. 이사가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이나 정관에 위반한 행위를 하거나 임무를 게을리해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면, 그 손해 전부를 배상할 책임이 원칙입니다. 문제는 이 책임이 이사 개인 재산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커질 수 있다는 점이고, 유능한 경영인이 적극적인 경영판단을 꺼리게 되는 부작용을 막기 위해 2011년 상법 개정으로 책임감면 제도가 도입됐습니다.
감면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상법 제400조 제1항에 따라 총주주의 동의가 있으면 책임을 전부 면제할 수 있지만, 주주가 다수이거나 이해관계가 갈리는 회사에서는 사실상 실현되기 어렵습니다. 실무에서 훨씬 많이 쓰이는 것은 제400조 제2항에 따라 정관에 근거 규정을 두고 일정 한도를 초과하는 금액만 감면하는 방식입니다. 다만 이 감면은 어디까지나 정관에 정한 범위 안에서, 정관에 정한 절차를 거쳐야만 작동하며, 정관에 조항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손해배상 청구 자체가 막히는 것은 아닙니다.
법은 이렇게 판단합니다: 보수 6배·사외이사 3배 한도의 계산과 네 가지 배제 사유
정관에 의한 감면의 산정 기준은 이사가 문제된 행위를 한 날 이전 최근 1년간의 보수액입니다. 여기에는 매월 지급되는 급여뿐 아니라 상여금과 주식매수선택권 행사로 얻은 이익까지 포함해 계산합니다. 이 보수액을 기준으로 사내이사는 6배, 사외이사는 3배를 곱한 금액까지는 정관으로도 감면할 수 없고, 그 이사는 여전히 전액 배상책임을 집니다. 정관상 감면조항이 실제로 손대는 부분은 이 한도를 넘는 초과분뿐입니다 — "6배까지만 책임진다"는 식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정확히는 "6배 미만은 절대 못 깎고, 6배를 넘는 부분만 회사가 재량으로 깎아줄 수 있다"는 구조입니다.
사외이사의 배수를 사내이사보다 낮게(3배) 정한 것은, 사외이사가 회사 상무에 관여하지 않고 보수 수준도 낮은 대신 감독 기능에 대한 책임은 가볍지 않다는 점을 함께 고려한 것입니다. 또한 이 감면은 정관에 근거 규정만 있다고 자동으로 발생하지 않습니다. 실무상 많은 회사가 정관에 "이사회의 결의로 감면할 수 있다"는 절차 규정을 함께 두고 있고, 이 경우 이사가 감면을 주장하려면 회사(이사회)가 실제로 감면 결의를 거쳤는지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감면 자체가 적용되지 않는 배제 사유입니다. 상법 제400조 제2항 단서는 다음 네 가지 경우에는 보수 배수에 따른 감면을 아예 적용하지 않는다고 못박고 있습니다.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회사에 손해를 발생시킨 경우
상법 제397조(경업금지) 위반 — 이사가 이사회 승인 없이 회사와 같은 종류의 영업을 하거나 동종 영업을 하는 다른 회사의 이사가 된 경우
상법 제397조의2(회사기회유용금지) 위반 — 회사가 수행 중이거나 수행할 사업기회를 이사회 승인 없이 이사 자신이나 제3자의 이익을 위해 이용한 경우
상법 제398조(이사 등과 회사 간의 거래) 위반 — 이사가 이사회 승인 없이 회사와 거래하거나 회사의 이익을 해치는 조건으로 거래한 경우
이 네 가지는 우연히 나열된 것이 아닙니다. 판례는 이사가 법령에 위반한 행위를 한 경우 그 행위 자체가 이미 채무불이행에 해당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경영판단의 원칙으로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봅니다(대법원 2006. 11. 9. 선고 2004다41651, 41668 판결, 대법원 2008. 12. 11. 선고 2005다51471 판결). 상법 제397조·제397조의2·제398조는 모두 법령이 정한 이사의 의무를 정면으로 위반한 경우이므로, 애초에 경영판단으로 방어하기 어려운 데다 감면 대상에서도 제외되는 이중의 불리함을 안게 됩니다.
숫자로 보면 차이가 분명해집니다. 대표이사의 최근 1년간 보수(상여금 포함)가 3억 원이고 경영판단 실패로 회사에 30억 원의 손해가 발생한 경우를 가정해 보겠습니다.
6배 한도 — 3억 원 × 6 = 18억 원(이 금액까지는 절대 감면 불가, 전액 배상)
초과분 — 12억 원(정관 절차를 거치면 이사회 재량으로 감면 여부를 다툴 수 있는 부분)
다만 같은 손해가 자기거래(제398조) 위반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위 구분 자체가 무의미해지고 30억 원 전액에 대해 배상책임을 집니다
김상훈 변호사의 대응, 이렇게: 회사와 이사 양쪽 모두에게 필요한 확인 절차
정관상 감면조항을 둘러싼 다툼은 회사 측과 이사 측이 각각 확인해야 할 지점이 다릅니다. 실제 사건에서는 다음 순서로 검토합니다.
정관 조항의 존재와 절차 요건부터 확인 — 정관에 감면 근거 규정이 실제로 있는지, 있다면 이사회 결의 등 별도 절차를 요구하는지부터 확인합니다. 정관 변경 자체는 주주총회 특별결의(상법 제434조, 출석 의결권의 3분의 2 이상 및 발행주식총수의 3분의 1 이상 찬성)로 이뤄지므로, 감면조항이 언제 신설·개정됐는지, 문제된 행위 시점에 이미 유효했는지도 함께 확인해야 합니다.
손해를 발생시킨 행위의 성격부터 분류 — 단순한 경영판단 실패인지, 경업·회사기회유용·자기거래에 해당하는지를 먼저 가려야 합니다. 후자에 해당하면 감면 자체를 다툴 실익이 없으므로, 이사회 승인 여부·거래 조건의 공정성·이사회 의사록 등 관련 자료부터 확보합니다.
보수액 산정 자료를 준비 — 최근 1년간의 급여대장, 상여금 지급 내역, 주식매수선택권 행사이익 산정 자료를 근거로 정확한 6배(또는 3배) 한도를 계산해 둡니다. 이 계산이 틀리면 감면 범위 자체가 달라지므로 실무에서 다툼이 잦은 부분입니다.
회사 측이라면 배제 사유 입증에 집중 — 이사의 행위가 고의·중과실에 해당한다는 점, 또는 제397조·제397조의2·제398조 위반이라는 점을 뒷받침할 이사회 의사록·내부 보고자료·거래 관련 문서를 확보해 감면 자체를 저지하는 방향으로 접근합니다.
이사 측이라면 경영판단의 한계 안에 있었음을 소명 — 의사결정 당시 합리적으로 이용 가능한 정보를 바탕으로 절차를 거쳐 판단했다는 점을 회의록·검토보고서 등으로 소명해, 애초에 법령위반이 아닌 순수한 경영판단의 문제였음을 다투는 것이 감면조항 원용보다 먼저 검토할 방어선입니다.
망설이는 사이, 시간은 불리해집니다: 정관 조항 하나로 결론이 나지 않는 이유
정관에 책임감경 조항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결론이 나지 않습니다. 보수 6배(사외이사 3배)라는 한도, 그 한도조차 넘지 못하는 배제 사유 네 가지, 그리고 정관이 정한 절차까지 모두 확인해야 실제로 얼마가 감면되는지, 감면이 가능하기는 한지가 정해집니다. 이사 측이든 회사 측이든 손해의 성격과 관련 자료를 먼저 정리해 두는 쪽이 협상에서든 소송에서든 유리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이사의 경영상 판단으로 인한 손해배상 분쟁, 또는 정관상 감면조항의 적용 여부가 쟁점이 되는 사안이라면 초기에 사실관계와 자료부터 정리해 검토받아 보시기 바랍니다.
법률 문제는 초기 대응이 중요합니다.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 김상훈 변호사에게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로톡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콘텐츠 내용에 대한 무단 복제 및 전재를 금지하며, 위반 시 민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