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불량 숨기고 빌렸다면 — 사기 고소와 고지의무 다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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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불량 숨기고 빌렸다면 — 사기 고소와 고지의무 다툼 

김강희 변호사


신용불량 숨기고 빌렸다면 — 사기 고소와 고지의무 다툼


사건 개요


급전이 필요해 지인이나 온라인에서 알게 된 사람에게 돈을 빌리고, 사정이 어려워져 제때 갚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상대방이 "네가 그때 이미 신용불량자였다는 걸 알았더라면 절대 안 빌려줬을 것"이라며 사기죄로 고소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돈을 빌릴 당시 신용불량 등록 상태였던 것은 사실이지만, 상대방이 신용 상태나 다른 빚이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물어본 적은 없었고, 본인도 먼저 나서서 밝히지 않았을 뿐인 경우입니다.

실제로 이런 상담이 상당히 많습니다. 의뢰인은 "속인 적이 없다, 물어보지 않아서 말하지 않았을 뿐이다"라고 항변하지만, 고소장에는 "신용불량 상태를 숨기고 편취했다"는 문구가 그대로 적혀 있어 당혹스러워합니다. 여기서 놓치기 쉬운 것은, 침묵과 거짓말은 형법상 전혀 다른 층위의 문제라는 점입니다. 능동적으로 "빚 없다"고 말한 것과, 묻지 않은 것을 먼저 말하지 않은 것은 같은 무게로 다뤄지지 않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신용불량 상태에 있었다는 사실 자체는 범죄가 아니고, 묻지 않은 것을 밝히지 않은 침묵 역시 그 자체만으로 형법상 기망이 되지는 않습니다. 관건은 이 침묵이 법률상 고지의무를 저버린 것으로 평가되는지, 그리고 돈을 빌리던 그 시점에 실제로 갚을 의사와 능력이 있었는지, 이 두 가지입니다.


핵심 쟁점


이런 사건에서 실제로 승패를 가르는 지점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침묵이 형법상 처벌되는 '부작위에 의한 기망'에 해당하려면 법률상 고지의무가 전제되어야 하는데, 담보나 심사 절차 없이 인적 신뢰만으로 이루어지는 이 거래에서 신용상태 고지가 신의칙상 당연히 요구되는 정보였는지입니다. 둘째, "그 사실을 알았더라면 빌려주지 않았을 것"이라는 인과관계를 누가, 어떻게 증명하는가입니다. 셋째, '신용불량 상태에 있었다는 사실'과 '차용 당시 변제 의사·능력이 전혀 없었다는 것'은 서로 다른 개념인데, 고소인 측이 이 둘을 사실상 같은 것으로 취급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입니다.

이 세 가지는 서로 맞물려 있습니다. 고지의무 자체가 인정되지 않으면 침묵은 애초에 기망이 될 수 없고, 인과관계가 빈약하면 고지의무가 있었다 해도 기망과 처분행위 사이의 연결고리가 끊어집니다. 그리고 신용불량과 변제불능을 분리해 내면, 남는 것은 '침묵'이 아니라 '차용 당시 실제로 갚을 수 있었는가'라는 훨씬 다루기 쉬운 쟁점입니다.



김강희 변호사의 해결방법 [1]: 부작위에 의한 기망 성립 요건을 좁혀 다투기


사기죄에서 부작위에 의한 기망은 법률상 고지의무 있는 자가 상대방이 착오에 빠져 있음을 알면서도 이를 고지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대법원도 재산상 거래관계에서 신의성실 의무를 저버리는 모든 적극적·소극적 행위를 기망으로 보면서도, 고지의무 위반이 사기죄를 구성하려면 상대방이 그 사정을 고지받았더라면 거래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관계와 더불어 신의칙상 사전 고지의무가 인정되어야 한다고 선을 긋습니다(대법원 2018. 8. 1. 선고 2017도20682 판결). 이 사건에서 김강희 변호사는 다음 순서로 방어선을 세웁니다.

1) 능동적 허위진술과 단순 비고지를 구별해 사실관계를 재구성합니다.

상대방이 신용상태나 다른 채무 현황을 구체적으로 질문한 적이 있는지, 있었다면 그에 대해 거짓으로 답했는지, 아니면 질문 자체가 아예 없었는지를 문자·통화내역·거래 경위서 등에서 재구성합니다. "물어보지 않아 말하지 않았을 뿐"이라는 사실관계가 실제로 그러하다면, 이는 적극적 기망이 아니라 단순 비고지에 해당하고, 단순 비고지가 형법상 기망으로 평가되려면 별도로 법률상 고지의무가 인정되어야 한다는 무거운 문턱을 상대방이 넘어야 합니다.

2) 신의칙상 고지의무가 이 거래 유형에 당연히 적용되는지를 다툽니다.

정형화된 금융거래에서조차 여신거래 관련 약정에 차주의 신용상태 고지의무가 명시되지 않는 경우가 지적되어 온 마당에, 담보나 심사 절차 없이 인적 신뢰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개인 간 소액 차용에서 차주가 자신의 신용정보를 자발적으로 공개할 정형적 의무가 당연히 존재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고지의무의 존부는 거래의 성격(담보 유무·금액·기존 관계·자금의 용도가 사업자금인지 생활자금인지), 당사자 간 신뢰관계, 거래 관행에 비추어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규범적 평가이므로, 이 거래의 구체적 사정을 근거로 고지의무의 존재 자체를 다툽니다.

3) 인과관계의 입증책임을 고소인 측에 명확히 지웁니다.

신의칙상 고지의무를 인정하더라도, 상대방이 그 사실을 알았더라면 거래하지 않았을 것이 경험칙상 명백해야 기망과 처분행위 사이의 인과관계가 인정됩니다. 이는 고소인 측이 적극적으로 증명해야 할 사항이지, 사후적 진술이나 감정적 호소만으로 채워질 수 없습니다. 담보 없이도 오랜 친분이나 기존 거래 관계를 이유로 대여가 이루어진 정황(과거 대여 이력, 관계의 성격, 대여 당시의 대화 내용)을 확보해, 신용상태를 알았더라도 대여했을 가능성을 함께 뒷받침하며 이 인과관계를 흔듭니다.


김강희 변호사의 해결방법 [2]: '신용불량'과 '변제불능'을 분리해 차용 당시를 세우기


고지의무 다툼과 별개로, 이 사건의 승부처는 결국 차용 당시로 모입니다. 신용불량 등록 상태였다는 사실이 곧 "그때 갚을 능력이 없었다"는 뜻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단계에서는 다음을 챙깁니다.

1) 차용 당시 시점을 기준으로 변제 의사·능력의 객관적 근거를 정리합니다.

차용금 편취 사기의 성립 여부는 차용 당시를 기준으로 판단하며, 그 시점에 변제 의사와 능력이 있었다면 이후 갚지 못한 것은 민사상 채무불이행에 그칠 뿐 형사상 사기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 대법원의 확립된 태도입니다(대법원 2016. 4. 28. 선고 2012도14516 판결). 신용불량자로 등록되어 있었더라도 당시 급여·사업소득·예정된 채권 회수·담보로 잡을 수 있는 자산 등 실제 상환 재원이 있었다면, 급여명세서·통장거래내역·계약서 등으로 이를 정리해 둡니다.

2) 신용불량의 원인과 성격을 구체화해 채무초과 상태와 구별합니다.

신용불량 등록에는 카드대금 한두 달 연체 같은 일시적 사유부터, 다수 채권자에 대한 회생 불가능한 채무초과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이 있습니다. 편취의 범의는 자백이 없는 한 범행 전후의 재력, 환경, 거래 경위와 내용, 거래의 이행과정, 피해자와의 관계 등 객관적 사정을 종합해 판단하므로(위 2012도14516 판결), 신용불량의 구체적 발생 원인과 당시 실제 재산 상태를 소명해 "처음부터 갚을 능력이 없었다"는 고소인 측 프레임과 거리를 둡니다.

3) 차용금의 실제 사용처와 일부 변제 이력으로 변제 의사를 뒷받침합니다.

빌린 돈을 실제로 어디에 썼는지, 그리고 이자 지급이나 분할 상환처럼 갚으려 했던 이력이 있다면, 이는 처음부터 갚을 생각이 없었다는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자료가 됩니다. 통장내역·문자메시지·계좌이체 기록으로 이런 정황을 정리해 두면, 신용불량 상태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편취 범의를 추단하려는 시도에 효과적으로 맞설 수 있습니다.


결론


신용불량 상태에 있었다는 사실 자체는 범죄가 아니고, 물어보지 않은 것을 먼저 밝히지 않은 침묵 역시 그 자체만으로 형법이 처벌하는 기망이 되지는 않습니다. 이 구도를 뒤집으려면 고소인 측은 신의칙상 고지의무와 인과관계까지 함께 증명해야 하고, 그 문턱은 결코 낮지 않습니다.

결국 이런 고소에 대한 방어는 고지의무의 범위를 다투는 축과, 차용 당시의 실제 변제 의사·능력을 자료로 세우는 축, 이 두 갈래로 나뉩니다. 고소를 당했다면 억울함을 감정적으로 호소하기보다, 이 두 축을 각각 사실관계와 증빙으로 뒷받침하는 작업이 먼저입니다. 지금 상황이 이와 비슷하다면, 침묵의 성격과 차용 당시의 사정을 함께 점검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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