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대표이사나 임원이 이사회 승인 없이 자신 명의로, 또는 배우자나 특수관계인이 대표로 있는 다른 회사 명의로 회사 재산을 사고팔거나 자금을 빌려주는 계약을 맺은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정관과 이사회 의사록을 아무리 뒤져봐도 그 거래를 승인한 결의는 어디에도 없고, 심지어 다른 이사들조차 거래가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경우도 드물지 않습니다. 이런 계약은 상법이 정한 절차를 건너뛴 것이므로 무효를 다툴 여지가 있지만, 실제로 계약을 되돌리려면 누가·언제·어떤 방법으로 다투느냐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집니다. 특히 상대방이 이미 그 재산을 제3자에게 넘겨버렸거나 거래 이후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면, 무효를 주장할 수 있는 범위 자체가 좁아질 수 있습니다.
먼저 전체를 짚어보겠습니다: 이사 자기거래란 무엇이고 승인 누락이 왜 치명적인가
이사의 자기거래란 이사가 자기 또는 제3자의 계산으로 회사와 직접 거래를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사 본인이 회사로부터 부동산을 매수하는 경우뿐 아니라, 이사가 대표로 있거나 지분을 가진 다른 회사가 이 회사와 물품을 거래하거나 자금을 빌리는 경우, 이사의 배우자나 자녀 명의로 이루어지는 거래까지 모두 포함됩니다. 회사와 이사 사이에는 구조적으로 이해상충이 발생할 수밖에 없어, 상법은 이런 거래를 하려면 반드시 이사회 승인을 거치도록 정해두고 있습니다.
문제가 불거지는 상황은 대개 두 갈래로 나뉩니다. 거래 상대방인 이사(또는 그 특수관계인)가 여전히 그 재산이나 계약상 지위를 그대로 보유하고 있는 경우, 그리고 이미 그 재산을 제3자에게 처분·양도해버린 경우입니다. 어느 쪽이냐에 따라 무효를 주장해야 할 상대방과 입증 부담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재산이 그대로 남아 있다면 회사가 직접 반환을 구하면 되지만, 이미 넘어갔다면 그 제3자까지 상대로 다퉈야 하고 훨씬 더 무거운 입증책임을 지게 됩니다.
이런 거래는 감사나 회계실사, 새 경영진 취임 후 장부 검토 과정에서 뒤늦게 발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발견 시점이 늦어질수록 관련자들의 기억과 증거가 흐려지고, 재산이 다시 제3자에게 넘어갈 위험도 커지기 때문에 사실관계를 확인한 즉시 대응 순서를 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법은 이렇게 판단합니다: 상법 제398조의 승인 요건과 상대적 무효설
이사 자기거래를 규율하는 핵심 조문은 상법 제398조(이사 등과 회사 간의 거래)입니다. 이사 등이 자기 또는 제3자의 계산으로 회사와 거래를 하려면 미리 이사회에서 해당 거래에 관한 중요사실을 밝히고 이사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며, 그 거래의 내용과 절차는 공정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놓치기 쉬운 부분이 적용 대상입니다. 2011년 개정 상법은 규제 대상을 이사 본인에서 크게 넓혔습니다. 이사뿐 아니라 주요주주, 이사·주요주주의 배우자 및 직계존비속, 배우자의 직계존비속, 그리고 이들이 단독 또는 배우자와 합하여 의결권 있는 발행주식 총수의 50% 이상을 가진 회사와 그 자회사까지 규제 대상에 포함됩니다. 즉 이사 본인 명의가 아니라 배우자나 계열사 명의로 거래를 우회해도 자기거래 규제 자체를 피할 수는 없습니다.
승인 요건도 명확합니다.
사전 승인 — 거래가 이루어지기 전에 이사회 승인을 받아야 하며, 사후 추인으로 치유되는지는 학설상 다툼이 있어 처음부터 사전 승인을 받는 것이 안전합니다.
중요사실 개시 — 거래 상대방, 목적물, 가액 등 거래에 관한 중요사실을 이사회에 구체적으로 밝혀야 하며, 형식적으로 안건만 상정한 결의는 승인으로 인정되지 않습니다.
가중된 정족수 — 2011년 개정으로 종전 이사 과반수에서 이사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요건이 강화됐습니다.
이 요건을 갖추지 못한 거래의 효력에 대해 판례가 취하는 입장이 상대적 무효설입니다. 승인 없는 자기거래는 원칙적으로 무효이지만, 그 무효를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회사뿐입니다. 거래 상대방인 이사 본인이 스스로 승인 없음을 내세워 계약이 무효라고 주장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이 확립된 판례입니다(대법원 2012. 12. 27. 선고 2011다67651 판결).
재산이 이미 제3자에게 넘어간 경우는 입증 부담이 한 단계 더 올라갑니다. 회사가 그 제3자를 상대로도 무효를 주장하려면, 이사회 승인이 없었다는 사실 외에 그 제3자가 승인이 없었다는 사정을 알고 있었다는 점(악의)까지 회사가 입증해야 합니다. 형식적으로 이사회 결의가 있었던 것처럼 보이는 경우에도 안심할 수 없는데, 대법원 2023. 6. 29. 선고 2021다291712 판결은 이사회 결의가 있었더라도 그 거래에 관한 중요사실을 제대로 밝히지 않은 채 이루어진 결의라면 상법 제398조가 요구하는 적법한 승인으로 볼 수 없고, 그런 사정을 알 수 있었던 상대방은 선의의 제3자로 보호받지 못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계약 무효와는 별개로 손해배상책임도 함께 검토해야 합니다. 자기거래로 회사에 손해가 발생했다면 상법 제399조에 따라 해당 이사는 물론, 승인에 찬성한 다른 이사들도 연대하여 회사에 손해를 배상할 책임을 집니다. 이 손해배상책임은 판례상 위임관계로 인한 채무불이행책임으로 보아 소멸시효 10년이 적용되므로, 계약 무효를 다투는 절차와 별도로 시효를 관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구체적인 숫자로 보면 체감이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시가 10억 원 상당의 회사 소유 부동산을, 이사가 이사회 승인 없이 자신에게 7억 원에 매도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부동산이 아직 이사 명의로 남아 있다면 — 계약 무효를 주장해 소유권이전등기 말소와 부동산 반환을 구할 수 있음
이미 선의의 제3자에게 넘어갔다면 — 반환 대신 시가와 매매대금의 차액인 3억 원을 손해배상으로 청구
승인에 찬성한 다른 이사가 있었다면 — 그 이사에게도 연대책임 추궁 가능
김상훈 변호사의 대응, 이렇게: 승인 여부 확인부터 원상회복까지
쟁점이 정리됐다면, 실제로는 다음 순서로 대응합니다.
이사회 의사록·정관·주주명부부터 확보 — 해당 거래를 승인한 결의가 실제로 있었는지, 있었다면 중요사실이 제대로 개시됐는지, 거래 상대방이 특수관계인 범위에 포함되는지를 먼저 확인합니다. 의사록 자체가 없거나 사후에 작성된 흔적이 있다면 그 자체가 유력한 증거가 됩니다.
내용증명으로 무효 통지와 원상회복 요구 — 계약이 상법 제398조 위반으로 무효라는 취지, 재산 반환 또는 대금 정산을 요구하는 취지, 응하지 않을 경우 소송으로 나아간다는 내용을 명확히 발송해 대응 시점을 남겨둡니다.
계약무효확인 및 원상회복청구소송 — 상대방이 재산을 그대로 보유 중이라면 소유권이전등기말소청구나 부동산 인도청구를 함께 병합해 진행합니다. 다툼이 클 것으로 예상되면 처음부터 소송으로 가는 편이 오히려 시간을 아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3자에게 넘어간 경우, 악의 입증 자료부터 수집 — 거래가액이 시가와 크게 차이 나는지, 거래 경위가 이례적인지, 제3자와 이사 사이의 관계 등을 뒷받침할 자료를 모아 그 제3자가 승인 없음을 알았다는 점을 입증합니다. 입증이 어렵다면 반환 청구 대신 이사에 대한 손해배상청구로 방향을 전환합니다.
처분금지가처분 등 보전처분을 먼저 — 소송이 진행되는 사이 재산이 다시 제3자에게 넘어가거나 다른 담보가 설정되면 회수가 훨씬 어려워집니다. 본안소송을 준비하는 동시에 처분금지가처분을 신청해 재산을 묶어두는 것이 안전합니다.
이사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병행 — 상법 제399조에 따라 거래를 한 이사와 승인에 찬성한 다른 이사들에게 연대책임을 함께 추궁해, 계약 무효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에도 손해를 회복할 통로를 마련해 둡니다.
망설이는 사이, 시간은 불리해집니다: 시간 경과가 무효 주장에 미치는 영향
이사 자기거래는 시간이 지날수록 회사 쪽에 불리해지는 구조입니다. 재산이 제3자에게 추가로 처분되거나 담보가 설정되면 회수 가능성이 낮아지고, 이사회 회의 자료나 관련 메일 등 승인 여부를 뒷받침할 증거도 시간이 지날수록 흐려집니다. 손해배상청구권 역시 시효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이사가 이사회 승인 없이 회사와 거래한 정황이 확인됐다면, 의사록부터 먼저 확보하시고 무효를 다투는 절차와 손해배상청구를 함께 검토해 보시기 바랍니다.
법률 문제는 초기 대응이 중요합니다.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 김상훈 변호사에게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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