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생전에 특정 자녀나 배우자를 사후수익자로 지정해 유언대용신탁을 설정해 두면, 다른 상속인은 상속이 개시된 뒤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유언과 달리 신탁은 계약 형태로 조용히 진행되고, 재산의 명의도 이미 수탁자 앞으로 넘어가 있어 "신탁재산은 상속재산이 아니니 유류분과 무관하다"는 말이 실무에서 한동안 퍼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신탁을 거쳤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유류분 반환의무를 완전히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 글에서는 유언대용신탁으로 이전된 재산이 유류분 산정에서 실제로 어떻게 취급되는지, 어떤 경우에 반환대상이 되고 어떤 경우에 예외가 생기는지를 판례와 조문을 근거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변호사
유언대용신탁이란 — 위탁자가 죽어서도 놓지 않는 통제권
유언대용신탁은 신탁법 제59조에 근거를 둔 신탁으로, 위탁자가 생전에 수탁자와 신탁계약을 맺으면서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은 스스로 수익자가 되고, 사망한 뒤에는 미리 지정해 둔 사람(사후수익자)이 수익권을 취득하거나 신탁재산에서 급부를 받도록 설계하는 구조입니다. 유언과 비슷한 효과를 내면서도 유언에 요구되는 엄격한 방식(자필증서·공정증서 등)을 거치지 않고, 재산 이전이 계약과 등기로 곧바로 확정된다는 점에서 상속설계 수단으로 널리 활용되어 왔습니다.
여기서 실무상 논란이 컸던 지점은 위탁자의 지위입니다. 신탁법 제59조 제1항은 위탁자가 신탁행위로 달리 정하지 않는 한 원칙적으로 수익자를 자유롭게 변경할 권리를 갖는다고 정하고, 같은 조 제2항은 사후수익자가 위탁자가 사망할 때까지는 수익자로서의 권리를 행사하지 못한다고 정합니다. 즉 위탁자는 신탁계약을 맺은 뒤에도 마음이 바뀌면 수익자를 다시 지정하거나, 신탁을 종료시켜 재산을 자기 명의로 되돌려 놓을 수 있습니다. 재산의 명의만 수탁자에게 넘어갔을 뿐, 그 재산을 사실상 지배하고 처분 방향을 결정하는 권한은 위탁자가 사망하는 순간까지 그대로 남아 있는 셈입니다.
신탁법 제59조상 위탁자는 원칙적으로 수익자를 자유롭게 변경할 수 있고 언제든 신탁을 종료시켜 재산을 되찾아올 수 있다 — 이 통제권이 뒤에서 볼 대법원 판단의 핵심 근거가 된다.
유류분 산정의 기본 구조 — 무엇이 반환대상 재산에 들어가나
민법 제1112조는 직계비속과 배우자에게는 법정상속분의 2분의 1을, 직계존속에게는 법정상속분의 3분의 1을 유류분으로 인정합니다. 종전에 있던 형제자매의 유류분 규정은 헌법재판소 2024. 4. 25. 결정으로 단순위헌 판단을 받아 그 즉시 효력을 잃었습니다. 유류분을 얼마나 침해당했는지 계산하려면 먼저 유류분 산정의 기초가 되는 재산 범위부터 확정해야 하는데, 민법 제1113조는 이를 "상속개시 당시 피상속인이 가진 재산의 가액에 증여재산의 가액을 가산하고 채무의 전액을 공제"하는 방식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어떤 증여까지 이 기초재산에 포함되느냐입니다. 민법 제1114조는 원칙적으로 상속개시 전 1년간에 한 증여만 산입하되, 증여 당사자 쌍방이 유류분권리자에게 손해를 가할 것을 알고 증여했다면 1년이 지난 것도 산입한다고 정합니다. 다만 이 1년 제한은 상속인이 아닌 제3자에 대한 증여에 적용되는 원칙이고, 공동상속인 사이의 증여, 즉 특별수익에 해당하는 증여는 확립된 판례상 시기와 무관하게 전부 산입됩니다. 유언대용신탁이 유류분 분쟁에서 쟁점이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신탁을 통한 재산 이전이 이 '증여'에 해당하는지, 해당한다면 사후수익자가 누구냐에 따라 1년 요건이 적용되는지 여부가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대법원의 결론 — 신탁재산도 사인증여처럼 취급된다
이 쟁점에 대해 대법원 2024. 7. 11. 선고 2019다294466 판결은 유언대용신탁으로 사후수익자에게 이전된 재산도 유류분 산정의 기초재산에 포함된다고 판시했습니다. 판결의 논거는 앞서 본 위탁자의 통제권에 있습니다. 위탁자는 신탁계약을 체결한 이후에도 신탁행위로 달리 정하지 않는 한 언제든지 수익자를 변경하거나 신탁을 종료시켜 신탁재산을 자기 명의로 복귀시킬 수 있으므로, 신탁계약을 맺은 뒤에도 여전히 그 재산을 사실상 지배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실질을 근거로 대법원은 위탁자 사망으로 사후수익자에게 확정적으로 재산이 귀속되는 결과가, 사망을 원인으로 효력이 발생하는 사인증여와 다르지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다만 그 취급 방식에는 결이 있습니다. 신탁재산 자체는 위탁자가 사망하는 시점에 이미 명의가 수탁자에게 넘어가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상속개시 당시 피상속인이 가진 '적극적 상속재산'으로 잡히지는 않습니다. 대신 사후수익자가 그 신탁을 통해 얻은 이익이 특별수익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아 유류분 산정의 기초재산에 증여재산으로 가산하고, 반환의 순서 역시 사인증여에 준하여 처리하는 방식입니다. 유류분 제도가 실정법으로 명확히 자리 잡고 있는 이상, 계약 형식만 신탁으로 바꾸었다고 해서 그 제도의 취지가 형해화되도록 둘 수는 없다는 것이 판결의 취지입니다.
위탁자가 신탁계약 체결 후에도 수익자변경권과 신탁종료권을 통해 재산을 사실상 지배한다는 점이, 유언대용신탁재산을 유류분 산정 기초재산에 포함시키는 핵심 근거다.
갈림길 — 사후수익자가 공동상속인인지 제3자인지
대법원 판결로 유언대용신탁이 유류분 반환대상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는 큰 방향은 정해졌지만, 실제 반환 여부와 범위는 사후수익자가 누구인지에 따라 갈립니다. 사후수익자가 공동상속인, 예를 들어 특정 자녀 한 명인 경우에는 앞서 본 특별수익 법리가 그대로 적용됩니다. 공동상속인에 대한 증여는 상속개시 전 1년이 지났는지, 당사자가 유류분 침해를 알고 있었는지와 무관하게 전부 산입되므로, 신탁을 아무리 오래전에 설정해 두었더라도 반환대상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반면 사후수익자가 상속인이 아닌 제3자, 예를 들어 며느리나 사위, 손자녀, 재단 등인 경우에는 민법 제1114조의 원칙이 그대로 적용될 여지가 생깁니다. 신탁설정이 상속개시 1년 이전에 이루어졌고, 그 제3자가 다른 상속인의 유류분을 침해한다는 사실을 몰랐다면 반환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하급심에서는 위탁자가 사망하기 3년 전에 설정된 유언대용신탁 재산을, 사후수익자가 유류분 침해 사실을 몰랐다는 사정을 근거로 반환대상에서 제외한 사례도 있습니다. 신탁이라는 형식이 아니라 '누구에게, 언제, 알면서 넘겼는가'라는 실질이 결과를 가른다는 점이 이 지점에서 분명해집니다.
사후수익자가 공동상속인 — 시기·악의 여부와 무관하게 반환대상에 산입(특별수익 법리).
사후수익자가 제3자 + 신탁설정이 상속개시 1년 이내 — 원칙적으로 반환대상에 산입.
사후수익자가 제3자 + 1년 경과 + 유류분 침해 사실을 알고 받음 — 반환대상에 산입.
사후수익자가 제3자 + 1년 경과 + 유류분 침해 사실을 몰랐음 — 반환대상에서 제외될 여지.
실무에서 다투는 지점 — 증여로 볼 시점을 언제로 잡을까
제3자가 사후수익자인 사안에서 결과를 좌우하는 것은 결국 '언제 증여가 이루어졌다고 볼 것인가'라는 시점의 문제입니다. 신탁계약을 체결하고 등기까지 마친 시점을 기준으로 볼 것인지, 위탁자가 사망해 사후수익자의 수익권이 비로소 확정되는 시점을 기준으로 볼 것인지에 따라 1년 요건 충족 여부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대법원이 위탁자가 사망 시점까지 신탁재산을 사실상 지배한다고 본 논리를 그대로 밀고 가면 사망 시점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도 가능하지만, 실무에서는 재산의 무상이전이라는 행위 자체는 신탁계약 체결 시점에 이미 이루어졌다고 보아 그 시점을 기준으로 삼는 경향이 우세합니다.
신탁재산의 가액을 언제를 기준으로 평가할 것인지도 함께 다투어지는 부분입니다. 신탁설정 당시의 가액으로 볼지, 상속개시 당시의 가액으로 볼지에 따라 유류분 부족액 자체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부동산처럼 가치 변동이 큰 재산을 신탁한 경우 이 평가 시점 차이가 반환 범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신탁계약서와 신탁원부, 등기부상 이전 시점을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작업이 실제 사건에서는 결론을 좌우하는 핵심 자료가 됩니다.
유류분 반환청구의 절차와 한계
유류분 부족액이 확인되면 민법 제1115조에 따라 그 부족한 한도에서 반환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반환의 순서에도 정해진 원칙이 있는데, 민법 제1116조는 증여에 대한 반환은 유증에 대한 반환을 먼저 청구한 뒤가 아니면 청구하지 못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유언대용신탁재산이 사인증여에 준하여 취급되는 만큼, 다른 유증이나 생전증여가 함께 있는 사안이라면 어느 것부터 반환을 청구해야 하는지 순서를 따지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시간 제한도 놓치기 쉬운 부분입니다. 민법 제1117조는 유류분반환청구권을 상속의 개시와 반환해야 할 증여를 한 사실을 안 날로부터 1년, 상속이 개시된 때로부터 10년 안에 행사하지 않으면 시효로 소멸한다고 정합니다. 신탁은 계약 체결 사실 자체를 다른 상속인이 한참 뒤에야 알게 되는 경우가 많아, '언제 그 사실을 알았는가'를 뒷받침할 자료(신탁원부 열람일, 등기부 확인일 등)를 챙겨두는 것이 소멸시효 항변에 대응하는 데 중요합니다.
2026년 개정 민법과 신탁 사안의 접점
유류분 제도는 최근 큰 폭으로 손질되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2024년 4월 25일 결정에서 형제자매의 유류분 규정을 단순위헌으로 즉시 효력을 잃게 했고, 직계비속·배우자·직계존속의 유류분 비율을 정한 조항에 대해서는 유류분을 상실시킬 사유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로 헌법불합치 판단을 내렸습니다. 아울러 기여분을 유류분 산정에 반영하지 않던 민법 제1118조에 대해서도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이에 따른 개정 민법이 2026년 2월 국회를 통과해 같은 해 3월 17일 공포·시행되었고, 기여분 관련 개선 내용은 2024년 4월 25일 이후 상속이 개시된 사건에도 소급 적용됩니다.
개정 민법은 상당한 기간 피상속인과 동거하거나 간호하는 등 특별히 부양했거나 피상속인의 재산 유지·증가에 기여한 대가로 받은 증여나 유증은 유류분 산정의 기초재산(특별수익)에서 제외하도록 정하는 방향으로 다듬어졌습니다. 유언대용신탁으로 특정 자녀에게 재산을 넘긴 것이 실제로는 그 자녀의 오랜 부양이나 기여에 대한 보답 성격이라면, 이제는 그 부분만큼 유류분 산정 기초재산에서 빼달라는 주장을 함께 검토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다만 기여분은 신탁을 설정했다는 사실만으로 자동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부양이나 기여의 구체적 내용과 정도를 별도로 심리해 인정받아야 하는 사항이라는 점은 유의해야 합니다.
신탁을 설계·검토할 때 확인해야 할 것들
재산을 물려주려는 쪽이든, 상속에서 배제될까 우려하는 쪽이든 확인해야 할 지점은 결국 비슷합니다. 유류분 회피만을 목적으로 삼은 신탁 설계는 대법원 판례가 자리 잡은 지금은 그 목적을 온전히 달성하기 어렵다는 점을 먼저 인식해야 합니다. 사후수익자를 공동상속인으로 할지, 상속인이 아닌 제3자로 할지에 따라 결과가 크게 갈리는 만큼, 설계 단계에서부터 이 구분을 염두에 두는 것이 필요합니다.
신탁계약서상 수익자변경권·신탁종료권 조항 — 위탁자가 실질적 지배권을 보유했는지 판단하는 핵심 자료.
신탁원부·등기부의 이전 시점 — 증여 산입의 1년 요건을 계산하는 기준점.
사후수익자와 위탁자의 관계 — 공동상속인인지 제3자인지에 따라 반환 원칙이 달라짐.
신탁설정 경위와 그 무렵의 부양·기여 사실 — 기여분 주장이 가능한지 판단하는 근거 자료.
자주 묻는 질문
Q. 유언대용신탁으로 넘긴 재산은 무조건 유류분 반환대상인가요?
A. 사후수익자가 공동상속인이면 특별수익 법리가 적용되어 시기와 무관하게 반환대상에 산입되므로 사실상 피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사후수익자가 상속인이 아닌 제3자이고 신탁설정이 상속개시 1년 이전이며 유류분 침해 사실을 몰랐다면 예외적으로 반환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습니다.
Q. 신탁계약서에 '유류분과 무관하다'는 문구를 넣으면 효력이 있나요?
A. 유류분은 당사자의 약정으로 배제할 수 없는 강행규정이므로, 그런 문구를 신탁계약에 넣더라도 법원이 실제 지배관계를 보고 판단하는 것을 뒤집지 못합니다. 문구보다 위탁자가 사후에도 실질적 통제권을 유지했는지가 판단의 핵심입니다.
Q. 신탁설정 시점과 위탁자 사망 시점 중 어느 쪽을 기준으로 유류분을 계산하나요?
A. 재산가액 평가는 상속개시 당시를 기준으로 삼는 것이 원칙이고, 증여로서 1년 요건을 따질 때는 신탁계약을 체결한 시점을 기준으로 보는 경향이 실무상 우세합니다. 다만 사안마다 다투어지는 부분이라 구체적 사실관계를 함께 확인해야 합니다.
Q. 이미 신탁재산이 사후수익자에게 이전됐다면 되돌릴 방법이 없나요?
A. 신탁재산 자체를 되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유류분 부족액에 해당하는 가액을 반환받는 방식으로 처리되며, 사인증여에 준한 반환 순서와 소멸시효(안 날로부터 1년, 상속개시일로부터 10년) 안에 청구해야 합니다.
Q. 2026년 개정 민법이 유언대용신탁 유류분 사건에도 적용되나요?
A. 기여분을 유류분 산정에 반영하는 개선 내용은 2024년 4월 25일 이후 개시된 상속에 소급 적용되므로, 신탁을 통한 이전이 부양이나 기여에 대한 보답 성격이라면 기여분 주장을 함께 검토할 수 있습니다. 다만 기여분 인정 여부는 별도의 심리를 거쳐야 확정됩니다.
Q. 유류분 상실사유 신설이 신탁으로 재산을 받은 사람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나요?
A. 개정 민법이 마련한 유류분 상실사유는 부양의무를 저버리거나 피상속인에게 중대한 패륜행위를 한 상속인의 유류분을 박탈하기 위한 것으로, 신탁으로 재산을 받았는지 여부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신탁 자체가 상실사유를 만들어내지는 않습니다.
맺음말
유언대용신탁은 위탁자가 사망할 때까지 재산에 대한 실질적 통제권을 유지한다는 특성 때문에, 계약 형식만 신탁일 뿐 그 실질은 사인증여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 지금의 판례 태도입니다. 사후수익자가 공동상속인인지 제3자인지, 신탁설정이 상속개시 몇 년 전에 이루어졌는지, 그 시점에 유류분 침해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에 따라 결론이 달라지므로, '신탁으로 넘겼으니 안전하다'는 식의 단정은 위험합니다.
수원과 경기남부 지역에서도 부동산이나 사업체를 신탁으로 미리 정리해 두려는 상담과, 반대로 뒤늦게 신탁 사실을 알게 된 상속인이 반환을 구하는 상담이 함께 늘고 있습니다. 신탁계약서와 등기부, 신탁원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아야 결론을 낼 수 있는 영역인 만큼, 신탁을 설계하기 전이든 이미 설정된 신탁을 다투려는 시점이든 관련 자료부터 정리해 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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