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을 다 없애봐야, 그 뒤의 삶이 달라지긴 하나요."
개인회생 상담을 하러 오신 분이 이렇게 물을 때가 있습니다.
도산 사건을 오래 다뤄왔지만, 저는 이 질문 앞에서 매번 잠시 멈추게 됩니다.
제도를 설명하기 전에, 그 말에 담긴 무력감을 먼저 들어야 한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숫자 뒤에 있는 것
통계청·한국은행·금융감독원의 가계금융복지조사를 보면, 2024년 기준 30대 이하 청년층의 소득 대비 부채 비율(LTI)은 221.1%에 이릅니다.
한 해 버는 돈의 두 배가 넘는 빚을 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같은 시기 39세 이하 가구의 평균 자산은 전년 대비 약 6% 줄었습니다.
자산이 감소한 세대는 청년층이 사실상 유일합니다.
법원 통계도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
서울회생법원에서 개인회생 개시결정을 받은 2030세대는 2022년 6,913명에서 2024년 9,339명으로 늘었고, 전체 개인회생 신청자 가운데 2030세대가 차지하는 비율은 40%대에 이릅니다.
이 숫자를 보고 "요즘 청년이 무책임하다"고 읽는 분도 계십니다.
저는 다르게 읽습니다.
성실하게 벌어 아끼고 모아도 자산 격차를 따라잡기 어렵다는 계산을, 청년들이 몸으로 먼저 알아버린 결과라고 봅니다.
영끌도, 빚투도, 과소비도 겉모습은 달라 보이지만 그 밑에는 "성실하게 살아도 이 구조에서는 달라지지 않는다"는 같은 정서가 흐릅니다.
사진 출처: 오마이뉴스/ 성실하게 망해버린 청년들... / 권우성(사진)
망한 것과 실패한 것은 다릅니다
상담을 하며 가장 하고 싶은 말이 이것입니다.
두 단어는 전혀 다릅니다.
실패는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상태를 전제로 합니다.
파산을 도전에 따르는 비용으로 보고 그 비용을 사회가 나누는 사회일수록, 개인에게 남는 낙인과 사후 불이익이 약할수록 사람들은 다시 도전합니다.
한 번의 실패로 진 빚을 평생 혼자 떠안아야 한다면, 누가 위험을 감수하겠습니까.
기술이 빠르게 일자리를 바꾸는 지금, 필요한 질문은 "밀려난 사람을 어떻게 다시 세울 것인가"입니다. 그 출발점 중 하나가 채무 조정 제도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법이 만들어 둔 출구
상담실에서 가장 안타까운 순간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던 시점을 한참 지나서야 찾아오시는 경우입니다.
지금 활용할 수 있는 길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일정한 소득이 있다면 법원 인가를 받아 3~5년간 일부만 갚고 나머지를 면책받는 개인회생이 있고, 변제 능력이 없다면 파산 선고와 면책으로 채무에서 벗어나는 길이 있습니다.
두 절차 모두 신청과 함께 추심과 강제집행을 멈출 수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시점입니다.
연체가 쌓이고 채무가 커질수록 선택지는 줄어듭니다.
"나는 이제 어떻게 해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분께 늘 같은 말을 합니다.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법이 만들어 둔 출구는 반드시 있습니다.
도산 전문 변호사로서 제가 하는 일은, 그 출구를 함께 찾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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