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피의자가 되었다는 통보를 받는 순간, 많은 분들이 가장 먼저 부딪히는 현실적인 고민은 변호사 선임 비용입니다. "국선변호인이 나온다던데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사선변호인은 비싸기만 하고 다를 게 없지 않나" 하는 질문을 정말 많이 받습니다. 그런데 성범죄 사건에서 국선변호인이 언제, 어느 단계부터 선정되는지를 정확히 아는 분은 의외로 드뭅니다. 이 글에서는 국선변호인 선정 기준과 사선변호인과의 실질적 차이,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 어떤 선택이 합리적인지를 형사소송법 조문과 실무 흐름에 따라 정리해 드립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변호사
국선변호인 vs 사선변호인 — 기본 개념부터 정확히
국선변호인은 법원이 피고인을 위해 직권 또는 청구에 따라 선정하는 변호인으로, 보수를 국가가 부담합니다. 반면 사선변호인은 피의자나 피고인이 직접 선임 계약을 맺는 변호인으로, 비용은 본인이 부담하되 누구를 선임할지, 언제부터 활동하게 할지를 스스로 정할 수 있습니다. 두 제도 모두 헌법상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실현하기 위한 장치이지만, 작동 방식과 활동 범위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차이를 한눈에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선임 주체 — 국선은 법원이 정해 주고, 사선은 본인이 직접 고릅니다. 국선은 원칙적으로 변호인을 선택할 수 없습니다.
비용 — 국선은 국가가 보수를 부담하고, 사선은 본인이 수임료를 부담합니다.
활동 시점 — 국선은 원칙적으로 기소 이후(또는 영장실질심사 등 법이 정한 단계)부터 활동하지만, 사선은 경찰 조사 전 상담 단계부터 함께할 수 있습니다.
사건 집중도 — 국선은 제도 구조상 한 변호인이 다수 사건을 동시에 맡는 경우가 많고, 사선은 계약에 따라 사건에 투입하는 시간을 조율할 수 있습니다.
국선변호인은 '법원이 정해 주는 변호인', 사선변호인은 '내가 고르고 시점을 정하는 변호인'입니다. 성범죄 사건에서는 이 '시점'의 차이가 결과를 가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국선변호인 선정 기준 — 형사소송법 제33조
국선변호인 선정의 기본 근거는 형사소송법 제33조입니다. 제1항은 일정한 사유가 있으면 피고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법원이 반드시 변호인을 선정하도록 정하고 있는데, 이를 필요적 국선변호라고 합니다. 변호인 없이 재판이 진행되면 그 자체로 위법한 재판이 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규정입니다.
필요적 국선변호 사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피고인이 구속된 때 — 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는 피고인은 변호인이 없으면 안 됩니다.
피고인이 미성년자이거나 70세 이상인 때.
피고인이 듣거나 말하는 데 모두 장애가 있는 사람인 때.
피고인이 심신장애가 의심되는 때.
피고인이 사형, 무기 또는 단기 3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사건으로 기소된 때 — 법정형의 하한이 3년 이상인 중한 사건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여기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길은 있습니다. 제33조 제2항은 피고인이 빈곤이나 그 밖의 사유로 변호인을 선임할 수 없는 경우 청구에 따라 국선변호인을 선정하도록 하고(청구국선), 제3항은 피고인의 나이·지능·교육 정도를 고려해 권리 보호에 필요하다고 인정되면 법원이 재량으로 선정할 수 있도록 합니다(재량국선). 다만 청구국선은 소명자료를 제출해야 하고, 법원이 사유를 인정해야 선정됩니다.
성범죄 사건에 적용하면 — 죄명과 구속 여부에 따라 갈린다
그렇다면 성범죄 사건의 피고인은 국선변호인을 받을 수 있을까요. 답은 "죄명과 구속 여부에 따라 다르다"입니다. 예를 들어 강간죄(형법 제297조)의 법정형은 3년 이상의 유기징역입니다. 법정형 하한이 3년이므로, 강간죄로 기소된 피고인은 구속 여부와 무관하게 필요적 국선변호 대상이 됩니다. 강간치상, 특수강간 등 법정형이 더 무거운 죄명도 마찬가지입니다.
반면 강제추행죄(형법 제298조)의 법정형은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형의 하한이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불구속 상태로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은 필요적 국선변호 대상이 아니며, 빈곤 등의 사유를 소명해 청구국선을 신청하거나 사선변호인을 선임해야 합니다. 통신매체이용음란죄, 카메라등이용촬영죄 등 상당수 성범죄가 같은 구조입니다.
가정해 보겠습니다. 직장인 A씨가 불구속 상태에서 강제추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면, A씨는 자동으로 국선변호인이 선정되지 않습니다. 재판이 시작되었는데 변호인이 없는 상태가 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같은 성범죄라도 강간 혐의의 B씨는 기소와 동시에 국선변호인이 선정됩니다. "성범죄는 국선이 나온다"는 통념이 절반만 맞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가장 큰 공백 — 경찰 조사 단계에는 국선변호인이 없다
국선변호인 제도의 가장 중요한 한계는 적용 '시점'입니다. 형사소송법 제33조의 국선변호는 원칙적으로 기소된 이후의 피고인을 대상으로 합니다. 수사 단계의 피의자에게 국선변호인이 선정되는 경우는 법이 정한 예외, 즉 구속영장이 청구되어 영장실질심사(형사소송법 제201조의2)를 받는 때와 체포·구속적부심사를 받는 때 정도입니다. 영장실질심사 단계에서 피의자에게 변호인이 없으면 판사가 직권으로 국선변호인을 선정하고, 이 선정은 구속영장 청구가 기각되지 않는 한 제1심까지 효력이 유지됩니다.
문제는 성범죄 사건의 승부처가 대부분 그보다 훨씬 앞, 즉 경찰 첫 조사 단계라는 점입니다. 성범죄는 물증보다 진술의 신빙성이 쟁점이 되는 경우가 많아, 첫 피의자신문에서 어떤 취지로 어떻게 진술했는지가 사건 전체의 흐름을 결정하곤 합니다. 한 번 조서에 남은 진술은 나중에 번복해도 "진술이 일관되지 않다"는 불리한 평가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결정적 단계에서는 국선변호인 제도가 작동하지 않습니다.
국선변호인은 재판 단계의 안전망이지, 수사 단계의 방패가 아닙니다. 성범죄 사건의 골든타임인 첫 경찰 조사에서 변호인의 조력을 받으려면 사선 선임 외에는 사실상 방법이 없습니다.
피해자 국선변호사와 혼동하면 안 된다
"성범죄 사건은 국선변호사가 자동으로 붙는다"는 말을 듣고 안심하는 분들이 있는데, 이는 제도를 혼동한 것입니다. 성폭력처벌법 제27조가 정한 피해자 국선변호사 제도는 성폭력범죄의 피해자를 위해 검사가 선정해 주는 변호사로, 피의자·피고인을 위한 제도가 아닙니다. 오히려 가해자로 지목된 입장에서는, 상대방인 피해자 측에 수사 초기부터 법률 전문가가 붙어 진술을 정리하고 절차에 참여한다는 의미입니다.
즉 성범죄 사건의 구도는 처음부터 비대칭으로 출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피해자 측에는 국가가 변호사를 붙여 주는데, 피의자 측은 기소 전까지 스스로 변호인을 구하지 않으면 혼자 조사받아야 합니다. 이 구조를 모른 채 "어차피 국선이 나올 테니 기다리자"고 판단하면, 가장 중요한 수사 단계를 무방비로 보내게 됩니다.
국선변호인의 구조적 한계와 사선변호인의 장점
오해를 피하기 위해 분명히 하면, 국선변호인 중에도 성실하고 역량 있는 변호사가 많습니다. 다만 제도의 구조에서 오는 한계는 개인의 역량과 별개로 존재합니다. 국선변호인은 본인이 고를 수 없어 성범죄 사건 경험이 충분한 변호사를 만날지 알 수 없고, 한 변호인이 다수의 국선 사건을 동시에 진행하는 구조상 개별 사건에 쏟을 수 있는 시간에도 물리적 제약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앞서 본 것처럼 활동 시점이 원칙적으로 기소 이후라는 점이 성범죄 사건에서는 결정적입니다.
사선변호인 선임이 특히 의미를 갖는 국면은 다음과 같습니다.
경찰 조사 전 — 사실관계를 함께 정리하고 진술 방향을 설계하며, 조사에 직접 동석해 부당한 신문에 대응할 수 있습니다.
증거 대응 — 휴대전화 디지털포렌식, 메신저 대화 복원 등 성범죄 수사 특유의 증거 절차에 초기부터 대응할 수 있습니다.
합의·공탁 전략 — 합의 시도 시점과 방식, 형사공탁 활용 여부는 타이밍이 중요한데, 수사 단계부터 전략적으로 설계할 수 있습니다.
영장 단계 — 구속영장 청구가 예상될 때 의견서 제출과 영장실질심사 준비를 미리 할 수 있습니다. 영장 단계 국선은 심사 직전에 선정되어 준비 시간이 짧을 수밖에 없습니다.
반대로 이미 기소가 되었고 사실관계를 모두 인정하며 양형만 다투는 단순한 사건이라면, 필요적 국선 대상인 경우 국선변호인으로 진행하는 것이 합리적일 수 있습니다. 결국 사건의 단계, 쟁점의 복잡성, 부인 여부에 따라 판단할 문제이지 어느 한쪽이 항상 정답인 것은 아닙니다.
국선에서 사선으로, 사선에서 국선으로 — 변경도 가능하다
두 제도는 중간에 갈아탈 수 있습니다. 국선변호인이 선정된 상태에서 사선변호인을 선임하면 국선 선정은 취소되는 것이 원칙입니다. 재판 진행 중 사건의 쟁점이 예상보다 복잡해졌거나 1심 결과가 좋지 않아 항소심에서 다퉈야 한다면, 그 시점에 사선으로 전환하는 선택도 가능합니다.
반대 방향도 열려 있습니다. 수사 단계는 사선변호인과 함께 대응해 불구속과 유리한 진술 기반을 확보한 뒤, 기소 이후 경제적 사정이 어려워지면 빈곤 사유를 소명해 청구국선을 신청하는 경로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처음에 한 번 정하면 끝"이 아니라 단계마다 비용 대비 효과를 다시 판단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성범죄로 고소당하면 무조건 국선변호인이 선정되나요?
A. 아닙니다. 국선변호인은 원칙적으로 기소된 이후, 형사소송법 제33조의 사유(구속, 단기 3년 이상 사건 등)에 해당하거나 빈곤 등을 소명해 청구한 경우에 선정됩니다. 고소를 당해 경찰 조사를 받는 피의자 단계에서는 영장실질심사 등 예외를 제외하면 국선변호인 제도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불구속 강제추행처럼 법정형 하한이 없는 사건은 기소 후에도 자동 선정 대상이 아닙니다.
Q. 경찰 조사 단계에서 국선변호인을 요청할 수는 없나요?
A. 일반적인 경찰 피의자신문 단계에서는 국선변호인을 선정받을 수 없습니다. 피의자 단계의 국선은 구속영장이 청구되어 영장실질심사를 받을 때, 체포·구속적부심사를 청구했을 때 등 법이 정한 경우로 한정됩니다. 따라서 첫 조사부터 변호인 조력을 받으려면 사선변호인을 선임해야 하며, 성범죄 사건에서는 이 단계의 대응이 이후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Q. 국선변호인을 제가 원하는 변호사로 고를 수 있나요?
A. 원칙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국선변호인은 법원이 국선전담변호사나 관할 변호사 중에서 지정하며, 피고인이 특정 변호사를 지목해 선정해 달라고 요구할 권리는 인정되지 않습니다. 성범죄 사건 경험이 풍부한 변호사를 만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고, 이는 운에 맡겨지는 부분입니다. 변호사의 전문 분야를 보고 선택하고 싶다면 사선 선임이 유일한 방법입니다.
Q. 국선변호인 비용은 정말 한 푼도 안 드나요?
A. 국선변호인의 보수는 원칙적으로 국가가 부담하므로 선임료를 낼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유죄 판결이 선고되는 경우 법원이 소송비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피고인에게 부담시킬 수 있는 규정이 있어, 사안에 따라 사후에 일부 비용 부담을 명령받을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실무상 흔하지는 않지만 "완전 무료"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Q. 영장실질심사 때 선정되는 국선변호인만으로 충분하지 않나요?
A. 영장실질심사 단계에서는 변호인이 없으면 판사가 직권으로 국선변호인을 선정해 주고, 그 효력은 제1심까지 이어집니다. 다만 이 국선변호인은 심사 직전에 선정되는 경우가 많아 기록 검토와 면담에 쓸 수 있는 시간이 짧습니다. 구속 여부는 이후 방어 환경 전체를 좌우하는 갈림길이므로, 영장 청구가 예상되는 상황이라면 미리 사선변호인과 의견서·자료를 준비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Q. 사선변호인을 선임하면 국선변호인과 같이 갈 수 있나요?
A. 아닙니다. 사선변호인을 선임하면 기존 국선변호인 선정은 취소되는 것이 원칙이어서 두 변호인이 나란히 활동하는 구조는 아닙니다. 반대로 사선변호인을 사임시키고 빈곤 등의 사유를 소명해 국선을 청구하는 전환도 가능합니다. 단계마다 사건의 쟁점과 경제적 사정을 따져 어느 쪽이 합리적인지 다시 판단하면 됩니다.
맺음말
정리하면, 성범죄 사건에서 국선변호인은 "기소 이후의 안전망"으로는 의미가 있지만, 사건의 승부처인 경찰 조사 단계를 비워 둔다는 구조적 공백이 있습니다. 강간처럼 법정형 하한이 3년 이상인 죄명은 기소되면 필요적 국선 대상이지만, 불구속 강제추행이나 통신매체이용음란죄처럼 그렇지 않은 사건도 많고, 어느 경우든 첫 진술이 이루어지는 수사 단계에는 국선이 닿지 않습니다. 반면 피해자 측에는 성폭력처벌법에 따라 국선변호사가 초기부터 선정될 수 있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피의자 입장에서 "국선을 기다리는" 선택은 생각보다 위험할 수 있습니다.
물론 모든 사건에 사선 선임이 정답인 것은 아닙니다. 쟁점이 단순하고 양형만 다투는 사건이라면 국선으로 충분할 수 있습니다. 핵심은 자신의 사건이 어느 단계에 있고, 무엇이 쟁점이며, 지금 변호인의 조력이 없을 때 잃는 것이 무엇인지를 빨리 판단하는 것입니다. 수원과 경기남부 지역에서 다수의 성범죄 사건을 수행해 온 경험에 비추어 보면, 첫 조사 전에 변호인과 사실관계를 정리한 사건과 그렇지 않은 사건은 출발선부터 다른 경우가 많았습니다. 혼자 판단하기 어렵다면, 조사 일정이 잡히기 전에 먼저 상담을 받아 보시기를 권합니다.
의뢰인을 위한 최선의 전략을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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