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기 암 환자의 유언, 어디까지 유효한가 —구수증서 유언의 요건
말기 암 환자의 유언, 어디까지 유효한가 —구수증서 유언의 요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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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기 암 환자의 유언, 어디까지 유효한가 —구수증서 유언의 요건 

김의지 변호사

안녕하세요, 가사전문변호사 김의지 변호사입니다.

오늘은 유언의 효력을 둘러싼 상속 분쟁에서 하급심과 대법원의 판단이 정반대로 갈린 주목할 만한 판결을 소개드리려 합니다.

대법원 2026. 4. 2. 선고 2024다309430 판결

이 사건은 말기 폐암 환자가 임종 직전 병상에서 남긴 유언의 효력을 은행이 부정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단순한 재산 분쟁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유언자의 절박한 마지막 의지가 담겨 있었습니다. 유언이라는 제도가 왜 존재하는지, 그리고 그 형식을 얼마나 엄격하게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지는 사건입니다.

1. 서론

우리 민법은 유언의 방식을 자필증서, 녹음, 공정증서, 비밀증서, 구수증서의 다섯 가지로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습니다. 법에서 정한 방식을 갖추지 못한 유언은 유언자의 진정한 의사에 합치하더라도 무효가 됩니다. 이처럼 엄격한 요식성을 요구하는 이유는 유언자의 진의를 명확히 하고 훗날 법적 분쟁과 혼란을 예방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만약 유언자가 병으로 몸을 가누기 어려운 상황에서 스스로 글을 쓰거나 녹음을 남기기 어렵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민법은 이를 위해 구수증서에 의한 유언을 마련해 두었습니다. 질병 기타 급박한 사유로 인해 다른 방식의 유언을 할 수 없는 경우, 2인 이상의 증인이 참여하는 가운데 한 사람에게 유언의 취지를 구수하고 이를 받아 적어 낭독한 후 증인들이 서명하는 방식입니다.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유언 당시의 의료적 상황을 어느 정도로 깊이 들여다보아야 구수증서에 의한 유언의 요건 충족 여부를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2. 사건의 개요

망인(1966년생)은 2012년경부터 폐암 진단을 받아 항암치료를 받아 온 환자였습니다. 2021년 4월 중순, 폐암 말기 및 만성호흡부전 상태에서 호흡곤란, 폐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까지 겹쳐 대학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입원 후에도 상태는 계속 나빠져 2021. 4. 17. 담당의사로부터 예후가 좋지 않다는 설명을 들었고, 유언 전날인 2021. 4. 22.에는 연명의료계획서(심폐소생술 및 기관삽관 금지 등)를 직접 작성하였습니다. 담당 의료진은 임종이 임박한 환자에게 극심한 통증을 줄이기 위해 같은 날 미다졸람을 투여하였습니다.

다음날인 2021. 4. 23., 망인은 증인 두 명과 수증자인 원고가 입회한 가운데 피고 은행에 대한 예금채권을 비롯한 자신의 재산 전부를 원고에게 증여한다는 취지를 구수하였습니다. 당시 변호사였던 증인 소외 9가 유언 과정을 녹화하였는데, 녹화 영상에 따르면 망인은 병실 침대에 산소호흡기를 낀 채 힘없이 비스듬히 누워 있었고, 왼 팔에는 압박용 보조기구를 착용한 상태였으며, 산소호흡기 외에도 여러 의료기기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망인은 숨쉬기 힘든 상태에서 상당히 어눌한 발음으로 예금채권 관련 계좌번호 등을 겨우 말할 수 있었고, 유언의 전체 취지를 스스로 계속하여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으며, 일부 세부사항은 제3자의 보조를 받아 표현하기도 하였습니다. 망인은 유언일로부터 3일 후인 2021. 4. 26. 사망하였습니다.

망인에게는 법률상 배우자나 자녀가 없었고, 망인의 사망 후 원고는 이 사건 유언장에 기재된 예금채권에 관하여 피고 은행을 상대로 96,005,752원의 지급을 청구하였으나, 피고 은행이 이를 거부하면서 소송이 시작되었습니다.

3. 쟁점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 유언 당시 망인이 처한 상황이 민법 제1070조 제1항에서 말하는 '질병 기타 급박한 사유로 인하여 자필증서, 녹음, 공정증서 및 비밀증서의 방식에 의할 수 없는 경우'에 해당하는지 여부입니다.

둘째, 당시 녹화 영상에 담긴 망인의 모습이 구수증서 유언의 요건 중 하나인 유언의 취지를 증인에게 구수한 것으로 볼 수 있는지 여부입니다.

원심과 대법원은 이 두 쟁점 모두에서 판단의 방향이 갈렸습니다.

4. 대법원의 구체적인 판단


원심인 서울중앙지방법원은 망인이 유언장 작성 당시 자신의 재산 상태와 유증의 의미, 상대방 등을 충분히 인지하고 말할 수 있었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녹음에 의한 방식으로 유언을 할 수 없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구수증서에 의한 유언의 요건을 갖추지 못하였다고 보았습니다. 또한 증인이 녹화한 영상에서 망인이 연월일을 구술하거나 참여 증인이 유언의 정확함과 성명을 구술하는 것이 녹화되었다는 증거가 없어 녹음에 의한 유언으로서도 효력이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대법원은 원심의 판단을 파기하였습니다.

대법원은 먼저 '질병 기타 급박한 사유로 다른 방식에 의할 수 없는 경우'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할 때에는 유언자가 처한 급박한 사유의 구체적인 내용, 유언자의 전반적인 건강 상태, 질병의 악화 정도, 거동이나 필기행위의 가능성, 호흡이나 발음기관에 나타난 장애의 정도, 유언자가 주도적으로 유언의 전체적인 내용과 성명, 연월일을 구술할 수 있었는지 여부, 제3자의 도움이 필요하거나 가능하였는지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고 설시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망인의 구체적 의료 상황을 면밀히 검토하였습니다. 망인은 폐암 말기 및 폐렴 등으로 인한 통증으로 완화 진정제를 투여받아 신체 상태가 전반적으로 저하되어 있었고, 산소호흡기를 낀 상태에서 정상적인 발음에 장애가 있었으며, 자유롭게 계속적으로 말하는 것이 곤란하였습니다. 유언 당시 망인이 제3자의 도움 없이 스스로 유언의 취지를 자필증서로 작성하거나 녹음하여 주도적으로 취지, 성명, 연월일을 구술하는 행위를 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웠다고 보았습니다. 더구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에 이환되어 격리된 상황에서 유언일로부터 3일 후에 사망한 점까지 고려하면, 다른 방식에 의한 유언 또한 가능하였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원심이 주목한 부분, 즉 망인이 예금채권 관련 계좌번호 등 일부 세부사항을 비교적 명확하게 구술할 수 있었다는 사정에 대해서도 대법원은 달리 보았습니다. 그것은 망인이 의사능력을 갖추고 유효한 구수를 할 수 있는 상태였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사정에 불과하고, 그로부터 망인이 스스로 유언의 전체 취지를 육성으로 녹음하여 녹음에 의한 유언을 할 수 있었다는 결론이 도출되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나아가 대법원은 증인 소외 9가 유언 과정을 녹화한 것은 구수증서 유언에서 구수와 낭독 과정의 법적 효력을 명확하게 하기 위한 보조수단으로 사용된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보조수단으로 이루어진 녹화물에 나타나는 망인의 모습이 자신의 재산 상태와 유증의 의미를 인지하고 말할 수 있는 상태라고 하여, 그것이 곧 구수증서 외에 녹음에 의한 방식으로 유언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시하였습니다.

결론적으로 대법원은 원심이 판시 영상에 나타난 사정만으로 이 사건 유언장이 구수증서에 의한 유언의 요건을 갖추지 못하여 효력이 없다고 판단한 것에는 구수증서의 보충성 내지 유언의 효력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하여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환송하였습니다.

연합뉴스 기사

(링크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16056572?sid=102&fbclid=IwY2xjawRk2IBleHRuA2FlbQIxMQBzcnRjBmFwcF9pZBAyMjIwMzkxNzg4MjAwODkyAAEeUS0E-GNnHV9Eu-8M04naW7_fdtHH3EqLwZn6oEumj_iLWBdwR_QfjDnlRDc_aem_DVt8EPF-Nj5oCgrzWCIjGA)

5. 판결의 의미

이 판결은 구수증서에 의한 유언의 요건 중 '다른 방식에 의할 수 없는 경우'를 판단하는 기준을 보다 정밀하게 정립하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종래에도 이 요건을 판단할 때 유언자의 건강 상태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는 원칙은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급심에서는 '유언자가 상대방과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일부 내용을 말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서 곧바로 '녹음에 의한 유언도 가능하였다'는 결론을 도출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이 판결은 그와 같은 논리적 비약을 정면으로 부정하였습니다.

유언자가 자신의 의사를 어느 정도 표현할 수 있다는 것과, 유언자가 주도적으로 유언 전체의 취지, 성명, 연월일을 구술하는 녹음 방식의 유언을 스스로 완결할 수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대법원은 이 둘을 명확히 구분하였습니다.

또한 이 판결은 유언 과정을 보조하기 위해 사용된 녹화의 법적 성질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구수증서 유언을 진행하면서 그 과정의 진정성을 보전하기 위해 영상을 녹화하는 것은 실무상 종종 이루어지는데, 그러한 녹화물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유언자가 녹음에 의한 유언도 가능하였다'는 근거가 될 수 없다는 점을 명시적으로 확인하였습니다.

6. 판결을 통해 주목해야 할 점

이 판결을 접하면서 가사법 실무를 담당하는 변호사로서 몇 가지 중요한 점을 짚고 싶습니다.

유언은 유언자 사후에 그 효력이 문제됩니다. 유언자는 이미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당시 자신의 상태가 어떠하였는지 직접 설명할 수 없습니다. 남겨진 사람들이 영상, 의료기록, 간호기록, 주치의의 소견 등을 통해 그 상황을 재구성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언 당시의 상황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기록해 두는 것이 나중의 분쟁을 예방하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이 사건에서도 변호사인 증인이 유언 과정을 직접 녹화하였기 때문에 당시 상황을 어느 정도 재현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그러한 기록이 없었다면 망인의 상태를 입증하는 것이 훨씬 어려웠을 것입니다.

또 한 가지, 구수증서 유언은 급박한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만큼 법에서 정한 요건을 엄밀하게 갖추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유언자가 2인 이상의 증인 참여 아래 유언 취지를 구수하고, 이를 받아 적은 자가 낭독하며, 증인들이 정확함을 승인하고 서명하는 일련의 절차가 모두 갖추어져야 합니다. 이 요건 중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유언 전체가 무효가 될 수 있습니다. 임종을 앞둔 급박한 상황에서 이 절차를 혼자 챙기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법률전문가의 조력이 있었을 때와 그렇지 않았을 때, 사후 분쟁의 결과가 달라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사건은 상속인의 입장에서도 중요한 시사점을 줍니다. 유언의 효력이 부정될 경우 법정상속이 이루어지게 되는데, 망인에게 법률상 배우자나 자녀가 없었던 이 사건에서 법정상속인은 망인의 형제자매들이 됩니다. 유언자가 자신의 재산을 특정인에게 남기고자 했던 의지가 형식적 요건의 흠결로 인해 좌절되는 상황, 그것이 바로 유언을 준비할 때 전문가의 조력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입니다.

7. 마무리

이 판결은 단순히 구수증서 유언의 요건에 관한 법리를 확인한 것을 넘어, 임종을 앞둔 환자의 마지막 의사표시를 어떻게 법적으로 존중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법원의 진지한 답변이라고 생각합니다. 유언자의 상황을 형식적·표면적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그가 처한 의료적 현실 전반을 면밀히 살펴 구수증서 유언의 보충적 지위를 제대로 인정하여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입니다.

유언장 작성, 상속 분쟁, 유류분 문제 등 가사·상속 사건은 가족 사이의 깊은 감정이 얽혀 있는 만큼, 법리를 정확히 이해하고 적절한 시점에 대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유언 준비를 고려하고 계시거나, 유언의 효력을 둘러싼 분쟁에 처해 계신다면 먼저 전문가와 상담해 보시길 권합니다. 사안을 충분히 듣고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함께 고민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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