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의뢰인을 만났을때 이 사건은 의뢰인이 가지고 있는 신체적, 육체적, 정신적 문제들이
감정적 케어가 어느정도? 필요한 사안이라 생각했다.
특히 남편의 불법행위 목록이 끝이 없었다. 폭행, 협박, 가족들의 개입, 고소 남발. 요구사항도 많았고, 감정도 격했다. 변호사 입장에서 말하자면, 이런 케이스는 에너지가 많이 든다.
근데 증거 자료를 하나씩 열어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침대에서 임신한 아내의 머리를 주먹으로 때리는 남자. 별거 중에 아이 키우려고 가져간 가구를 절도죄로 고소한 가족들. 이혼은 절대 안 해준다며 버티는 남편(또 형식적으로는 반소청구까지 진행하여 실질과 형식이 다른 케이스).
소송이 진행되던 중 의뢰인이 갑자기 양육권을 포기하겠다고 했다.
변호사 입장에서 당황스러운 순간이다. 아이 엄마가 양육권을 포기한다는 건 재판에서도 불리하고, 설명하기도 어렵다. 보통은 의뢰인을 설득하려고 한다.
그리고 중요한건 양육권 포기로 인한 엄마와 아이의 분리불안. 이러한 사정이 발생하지 않는게 이혼을 잘 마무리시키는 방향이라고 생각하기에 나는 너무 당황스러웠다.
변론기일 후 조정기일에 다시 만난 의뢰인,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평소보다 너무나 감정적으로 불안한 증세가 심하셨다. 나중에야 알게 됐다. 남편이 면접교섭 때마다 아이를 핑계로 접근해서 신체적 접촉을 강요하고 있었던 거다.
그녀한테 양육권 포기는 아이를 버린 게 아니라 상대방을 다시 만나지 않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다.
조정기일에 가서 알게 된 또하나의 사실은 불안장애로 정신과 약을 먹고 있었다. 1년이 넘는 소송 기간 내내. 남편에 대한 트라우마가 심각했다.
이혼 조정기일 의뢰인이 떨면서 말했다.
"지금은 이혼보다 위자료랑 재산분할이 더 중요한 것 같아요. 그 사람한테 양보도 하고 싶지 않고 지금은 조정은 하고 싶지 않아요."
이런 말을 들으면 변호사들 보통 답답해한다. 소송 전략이 바뀌고, 일이 복잡해지니까.
근데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았다. 그리고 그날 굳이 이혼을 하기 위해서 상대방이 이야기하는 조건을 양보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조정을 마무리 했다.
이혼 사건을 10년 가까이 하다 보면 의뢰인이 갑작스러운 "이상한 요구"를 하는 경우가 있다.
근데 대부분은 이상한 게 아니다. 그 뒤에 말 못한 이유가 있다.
나는 그걸 찾는 게 내 일이라고 생각한다. 서류 너머에 있는 사람을 보는 것. 필드에서 이혼 사건을 하면서 내가 배운 건 결국 그거다.
그녀는 이혼의 결과보다는 지금 현재 자신의 안위가 더 중요할때가 있다. 소송을 함에 있어서 그 사람의 현재상황을 제대로 알고 그 사람을 도우는게 변호사로써의 참된 길이라 생각한다. 앞으로도 그렇게 나아가고 싶다.
서류 너머에 사람을 보는 것. 그게 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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