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는 이혼'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기는 이혼'은 존재하지 않는다.
변호사에세이

'이기는 이혼'은 존재하지 않는다. 

최지연 변호사

이 판에서 당신이 멀쩡하게 걸어 나올 수 있도록

이혼이라는 선택의 끝이 불행이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괜찮은 삶으로 이어지는

좋은 끝맺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시작한다.

상담 오시는 분들 초반 멘트가 대부분 비슷하다.

"남편(혹은 아내)을 박살내고 싶어요"

"위자료 당연히 제가 받아내야죠"

"법으로 끝까지 가고 싶어요"

이런 말들을 들을 때마다 나는 마음이 두 개로 갈라진다.

한쪽은 이해한다. 억울하고 분하고 배신당한 감정, 사람이라면 당연하다.

근데 다른 한쪽은 이성적으로 계산하게된다.

'이 싸움, 끝까지 가면 이 사람 인생이 얼마나 더 망가질까.'

이혼 소송에서 사람들이 말하는 ‘승리’는 보통 이거다.

위자료 받는 것, 재산분할에서 조금 더 가져오는 것, 상대 체면 구기는 판결문 한 줄.

근데 이상하지 않은가? 그게 정말 ‘승리’라면,

왜 소송이 끝나고도 다들 행복해하지 않는 걸까.

돈을 더 받아도 웃지 못한다.

아이는 더 멀어지고, 몸은 더 축나고, 인간관계는 초토화된다.

이것이 승자가 맞을까?

이혼 소송은 구조상 '서로 상쳐봐야만 끝나는 게임'이다.

상대만 다치는 게 아니라 나도 같이 피를 흘린다. 이게 현실이다.

법은 감정을 위로해주지 않는다.

특히 아이가 있는 이혼은 더욱 상처가 깊다.

부모가 법정에서 서로를 험담하고, 싸우는 것을 아이는 모를리가 없다.

아이는 한쪽 편을 들어야 살아남는 구조가 되고, 그 과정에서 아이는 자기 마음을 억누르게 된다.

나는 이러한 상황을 너무 많이 지켜봤다.

그래서 단언할 수 있다.

아이 앞에서 벌이는 이혼 전쟁에는 진짜 승자가 없다.

"그럼 가만히 당하고만 있으라는 건가요?"

아니. 절대 아니다.

참으라는 말도 아니고, 양보만 하라는 말도 아니다.

다만 싸움의 목적을 ‘복수’가 아니라 ‘정리’로 바꾸자는 이야기다.

이혼은 상대를 무너뜨리는 과정이 아니라,

내 인생을 덜 망가뜨리는 정리의 과정에 더 가깝다.

내가 상담에서 가장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이 판에서 이기려 하지 마세요.

이 판에서 ‘멀쩡하게만 빠져나오는 것’이 제일 잘한 겁니다."

이 말 처음 들으면 다들 허탈해한다.

근데 몇 달, 몇 년 지나 다시 연락 오는 분들 말이 거의 같다.

"그때 변호사님 말이 맞았어요. 무조건 이기려 했으면 아직도 지옥이었을 것 같아요."

이혼은 끝이 아니라 과거의 나를 정리하는 것이다

잘못된 관계를 끝내는 건 실패가 아니라 이성적 판단이다.

문제는 끝내는 방식이다.

상대를 완전히 박살내고 나와도, 그 잔해 위에서 새로운 인생을 살 수는 없다.

마음은 전쟁터에 묶여 있고, 몸은 이미 지쳐 있고, 주변 사람들은 이미 다 떠나 있다.

이 상태에서 새 출발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나는 확실하게 말한다.

이기는 이혼은 없다.

다만, '덜 잃는 이혼'만 있을 뿐이다.

그리고 덜 잃는 이혼은 감정보다 한 박자 늦게,

분노보다 한 단계 위에서 결정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

혹시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다면,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래도 나는 억울한걸요"

맞다. 억울하다. 그 감정, 무시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그 억울함이 당신 인생의 다음 10년까지 가져갈 짐이 될 필요는 없다.

이혼은 상대와의 마지막 싸움이 아니라,

나 자신을 다시 세우는 첫 장면이 되어야 한다.

그게 내가 이 일을 하면서 끝까지 붙잡고 있는 기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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