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님, 저희들은 늙어서 쫓겨나면 갈 곳도 없습니다. 그냥 여기서 죽은 것밖에 방법이 없어요.

1. 요 며칠 사이에 머리를 괴롭히는 고민이 있다. 발단은 2년 전 사무실을 찾아온 5분의 어르신들이었다. 어르신들의 눈가에는 걱정어린 표정이 가득했다. 뭔가 큰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일단 앉으시라고 한 후 얘기를 들어보았다. 사연인 즉 어르신들은 1970년 대부터 사찰 토지에 거주하던 분들이었다. 1970년 당시에 서울 사찰들은 대처승(결혼한 승려)들이 많았기 때문에 사찰 부지에는 대처승의 가족들이 무허가 건물을 짓고 사는 경우가 많았다. 어르신들은 당시 사찰 부지에서 거주하고 있던 대처승들의 자녀들이나 가족들이었다.
2. 과거에 사찰의 부지는 승려나 승려 가족들의 거주지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과거 서울 강북은 무허가 주택이 많았고 지금처럼 규제가 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찰의 승려가족들 역시 사찰 부지 한켠에 옹기종기 주택을 만들어 거주하였다. 그때부터 어르신들이 거주한 기간은 벌써 50년 이었다. 과거에 소년이고 청년이었던 사람들은 이제 70~80대의 노인이 되었다. 가진 것 없던 어르신들에게 작고 허름한 무허가 주택은 평생의 삶의 터전이었다. 죽는 날까지 그곳에서 살 수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3. 그런데 2010년에 들어서 사찰에서는 대대적인 부지 정리사업을 시작했다. 사찰을 예쁘고 멋있게 꾸미기 위해 사찰에 수십년간 존재하고 있던 무허가 건물을 철거하고 거주민들은 내쫓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어르신들은 법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토지는 엄연히 사찰 소유이고 수십년간 그곳에서 건물을 만들어 살았다고 하여 권리가 인정될 수는 없었다.
4. 결국 사찰 부지에 쓰러져 가는 무허가 건물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이사갈 돈도 없는 어려운 노인분들 뿐이었다. 최소한의 전세보증금이 있는 사람들은 이미 그곳을 떠났다. 평범한 사람은 살기도 어려운 그곳을 떠날 돈도 없는 분들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선택은 버티는 것 뿐이었다. 사찰에 최소한의 이주비를 요청하여 상호간에 원만하게 이주절차를 진행할 수 있도록 노력을 했지만 사찰에서는 전혀 반응이 없었다. 법적으로 당연히 이기는 싸움이니 굳이 비용 지출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리라.....
5. 어르신들의 이익을 위한 여러가지 방안을 고민하면서 과연 50년간 한 곳에서 거주한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어르신들을 내쫓는 것이 정의이고 옳은 일인 것인가라는 회의가 들었다. 젊은 때는 항상 법이 정의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10년 가까이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느낀 것은 법이 언제나 정의는 아니라는 것이다.
오늘따라 밤하늘이 유난히 밝다. 걱정으로 퇴근하지 못한 채 사무실에 앉아 있으니 여러가지 생각이 드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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