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배우고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 먼 데서 친구가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않겠는가?"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 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논어의 첫 구절이고 누구나 다 아는 제가 학교에서 배운 해석은 ‘배우고 익히면 어찌 즐겁지 않으며, 친구가 찾아오면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이지요. 그런데 논어가 뻑뻑한 것이 이 첫 구절부터 공감이 잘 가지 않습니다. 특히 학창시절에 이 구절을 접하는 경우가 많을텐데 놀고 싶은데 공부하는 것이 힘든데 그것이 즐겁다니 ‘역시 공자님은 공자님이군’하며 논어에 대한 추가적 관심과 접근을 막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논어의 첫 구절이 이런데 더 봐야 ‘공부해라 즐겁다’는 메시지만 가득할 것으로 보여 논어를 읽는 것을 포기했지요.
과연 배우고 익히기만 하면 즐거울까요? 평생을 공부만 배우고 익히면 즐거울까요? 무엇을 배우는 것일까요? 왜 배우고 익히는 것일까요? 배운 것을 써먹지 못한다면(돈벌이를 떠나서) 과연 계속 즐거울까요?
그런데 논어를 다른 구절들을 계속 읽다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들이 마치 퍼즐을 풀 듯이 풀려나올 수 있습니다. 취미로서 스포츠를 잘 하기 위해서 레슨을 받고 연습을 하는 일은 즐거운 일임이 분명할 것입니다. 그러나 배운 것은 써먹어야 기쁘지 계속 연습만 해서 즐거울 리 없습니다. 공자도 자신의 이상을 펼치지 못해서 많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러면 과연 습(習)이라는 글자가 익히기만 한다는 것일까요? 저는 실행 또는 실천을 위한 익힘이라 생각합니다. 배운 것을 쓰려고 연습한다면 얼마나 즐겁겠습니까? 평생 연습만 해야 한다면 왜 하겠습니까? 분명 실천하려고가 생략된 문장일 것이라 생각해봅니다.
다음 구절도 논어를 멀리 하는데 큰 몫을 합니다. 친구가 찾아오면 반드시 기쁜가요? 제 경험으로는 반드시 그렇지는 않은 때도 있고, 친구들과 잘 지내는 것은 중요하지만 때에 따라 친구가 자신의 즐거움에 방해가 되는 경우도 꽤 있습니다. 여기서 친구란 같은 뜻을 가진 말이 서로 생각이 잘 통하는 사람으로 보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좁은 의미의 친구가 아닌 광의의 친구로 해석하여 나이와 성별, 국적을 떠나 같은 뜻을 지닌 사람들로 보는 것이 현대에 맞는 해석일 것입니다. 당시 교통도 통신도 미흡했던 시절 뜻을 같이하는 친구가 와서 서로 밤새워 의견을 교환하는 일이 얼마나 즐거웠을까요? 그래서 공자가 이 구절의 후단에 설명하는 친구는 뜻이 통하는 친구로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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