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나 사실혼 관계에서는 생활비, 대출금 상환, 목돈 마련을 위해 상대방에게 돈을 건네는 일이 흔합니다. 함께 사는 동안에는 서로 얼마를 냈는지 크게 따지지 않다가, 관계가 깨지고 나서야 "그때 준 돈은 빌려준 것"이라며 반환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때 상대방이 "그건 생활비였다"고 맞서면 다툼은 결국 대여금인지 생활비 지출인지를 가리는 문제로 좁혀집니다. 이 글은 동거인·사실혼 배우자에게 건넨 돈을 대여금으로 인정받으려면 어떤 요건과 증거가 필요한지, 반대로 생활비로 판단되면 어떤 결과가 되는지를 정리합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변호사
동거인·사실혼 관계에서 오간 돈 — 대여금인가 생활비인가
사실혼이나 동거 관계에서는 생활비, 대출금 상환, 보증금 마련, 병원비처럼 목돈이 오갈 일이 잦다. 함께 사는 동안에는 누가 얼마를 냈는지 따지지 않다가, 관계가 깨지고 나서야 "그때 준 돈은 빌려준 것"이라며 반환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상대방이 "그건 생활비였다" 또는 "공동생활을 위해 함께 쓴 돈이었다"고 맞서면 다툼은 결국 소송으로 넘어간다. 문제는 두 사람 사이에 차용증 같은 서면을 남기지 않은 채 계좌이체나 현금으로 돈이 오간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법원은 이런 사건에서 돈이 오간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 돈을 주고받은 법적 원인이 무엇인지를 별도로 심리한다. 같은 금액의 송금이라도 소비대차(대여), 증여, 생활비 분담, 채무 변제 등 여러 원인으로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동거인·사실혼 배우자에게 건넨 돈을 대여금으로 인정받으려면 어떤 법적 요건과 증명이 필요한지, 반대로 생활비로 판단되면 어떤 결과가 되는지를 정리한다.
같은 금액의 송금이라도 대여·증여·생활비 분담 중 어느 원인에 해당하는지에 따라 반환 가능 여부가 완전히 달라진다.
소비대차의 성립 요건 — 민법 제598조가 요구하는 것
민법 제598조는 소비대차를 "당사자 일방이 금전 기타 대체물의 소유권을 상대방에게 이전할 것을 약정하고 상대방은 그와 같은 종류·품질 및 수량으로 반환할 것을 약정함으로써 그 효력이 생긴다"고 정의한다. 즉 돈을 건넨 사실만으로는 부족하고, 반환하기로 하는 합의(반환약정)가 있어야 비로소 대여금이 된다. 반환약정은 반드시 서면일 필요는 없고 구두 합의로도 성립하지만, 다툼이 생겼을 때는 그 합의가 있었다는 사실을 증거로 보여야 한다.
동거·사실혼 관계에서는 이 반환약정의 존재가 특히 불분명해지기 쉽다. 연인·배우자 사이에는 돈을 주고받으며 굳이 "언제까지 갚아라"는 조건을 붙이지 않는 경우가 많고, 오히려 그런 조건을 거는 것 자체가 관계의 정서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계가 유지되는 동안 오간 금전은 소비대차보다 증여나 생활공동체 유지를 위한 공동 지출로 추정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사실혼 관계에서 수천만 원이 오간 사안에서 법원이 대여를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며 증여 또는 공동생활비로 본 사례도 있다.
대여사실의 증명책임은 누구에게 있나 — 대법원 판결의 법리
돈을 돌려받으려는 쪽이 가장 먼저 부딪히는 문제는 증명책임이다. 대법원 2019. 7. 25. 선고 2018다42538 판결(대여금등)은 "금전을 대여하였다는 원고의 주장에 대하여 피고가 다투는 때에는 대여사실에 대한 증명책임은 이를 주장하는 원고에게 있다"고 판시했다. 같은 판결은 당사자 간 금전 수수 사실 자체에는 다툼이 없더라도, 그 수수가 대여였는지 여부는 별도로 증명되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 법리를 동거인·사실혼 관계에 적용하면, 돈을 건넨 사실(계좌이체 내역 등)만 제시해서는 부족하고 그 돈이 갚기로 하고 준 것이었다는 사정까지 별도로 입증해야 한다는 뜻이 된다. 상대방이 "생활비였다", "결혼자금 마련을 도운 것이었다"고 다투면, 반환약정을 증명하지 못하는 이상 대여금 청구는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이는 가족·연인 사이의 금전 거래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원칙으로, 동거 관계라고 해서 증명책임이 완화되지는 않는다.
대여사실(반환약정)에 대한 증명책임은 돈을 돌려달라고 주장하는 쪽에 있다 — 계좌이체 내역만으로는 부족하다.
법원이 실제로 보는 판단 기준
법원은 반환약정 유무를 직접 확인할 방법이 없는 만큼, 여러 정황 증거를 종합해 돈을 준 목적을 추론한다. 금액의 규모와 지급 방식, 두 사람의 소득·자산 격차, 돈을 주고받을 당시 나눈 대화 내용, 이후의 상환 정황 등이 함께 검토된다. 특히 지급 목적이 생활비·공동 채무 변제·자녀 관련 비용처럼 공동생활과 밀접한 항목이었는지, 아니면 상대방 개인의 사업자금이나 채무 변제처럼 순전히 개인적인 용도였는지가 중요한 갈림점이 된다.
지급 목적 — 생활비·공과금·병원비처럼 공동생활 유지 목적이면 대여로 보기 어렵고, 상대방 개인 사업자금·채무 변제처럼 개인적 용도라면 대여 인정 가능성이 높아진다.
대화·메시지 내용 — 문자나 카카오톡에 "빌려줄게", "언제까지 갚아", "이자는 됐고 원금만"처럼 반환을 전제한 표현이 남아 있는지가 핵심 정황이 된다.
지급 방식과 반복성 — 정기적으로 소액씩 나간 돈은 생활비로, 특정 시점에 목돈이 한 번에 나간 돈은 대여로 볼 여지가 상대적으로 크다.
상환 정황 — 일부라도 갚은 이력이나 갚겠다는 취지의 언급이 있었다면 반환약정을 뒷받침하는 유력한 정황이 된다.
경제력 격차 — 한쪽이 소득이 없거나 형편이 어려운 상대를 돕는 취지로 건넨 돈은 증여나 생활비 지원으로 판단될 가능성이 있다.
구체적 적용 예시로 보는 판단 갈림
가령 동거 중이던 A가 B의 신용카드 연체금 300만 원을 대신 갚아주면서 "다음 달 월급 받으면 갚아"라는 문자를 남겼고, 실제로 B가 일부를 되갚은 이력이 있다면 이는 반환약정과 상환 정황이 함께 확인되는 사례로 대여금 인정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A가 매달 생활비 명목으로 100만 원씩 B의 계좌로 보내며 별다른 반환 언급 없이 함께 생활비로 써 왔다면, 이는 공동생활을 위한 지출로 보아 관계 해소 후에도 반환 청구가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애매한 중간 사례도 많다. 결혼을 전제로 동거하던 중 A가 전셋집 보증금 5천만 원을 대신 내주었는데 혼인신고 없이 관계가 끝난 경우, 그 돈이 순수한 증여였는지 결혼을 조건으로 한 대여였는지가 다투어질 수 있다. 이런 사안에서는 보증금 지급 당시 오간 대화, 계약서상 명의, 이후 관계 진행 경과까지 종합적으로 심리되므로 단순히 "빌려줬다"는 일방의 주장만으로는 부족하고, 지급 목적을 뒷받침하는 구체적 자료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생활비·공동생활 목적 지출로 판단되면 — 부당이득 주장의 한계
대여금으로 인정받지 못하면 민법 제741조의 부당이득반환청구를 대안으로 검토하는 경우가 있다. 같은 조문은 "법률상 원인 없이 타인의 재산 또는 노무로 인하여 이익을 얻고 이로 인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그 이익을 반환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생활비나 공동생활 유지를 위해 지출된 돈은 애초에 두 사람이 함께 살기로 한 관계에 기초해 정당하게 지출된 것으로 평가되는 경우가 많아, "법률상 원인 없이" 이익을 얻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부당이득 주장도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다만 지출의 성격이 애매하지 않고 상대방 개인 명의 재산을 늘려주는 데 일방적으로 사용된 경우, 예를 들어 상대방 명의 부동산의 대출 원리금을 혼자 부담해온 사안 등에서는 기여분 상당의 부당이득이나 별도의 정산 청구가 인정될 여지가 있다. 이 경우 생활비 지출과 재산 형성 기여를 구분해 주장하는 것이 실무상 중요하며, 단순히 "억울하다"는 감정적 주장이 아니라 구체적인 지출 내역과 그 돈이 상대방 재산 증식에 사용됐다는 인과관계를 자료로 뒷받침해야 한다.
청구 절차와 소멸시효 — 지급명령부터 소송까지
대여금이라는 판단이 서면 청구 절차는 일반적인 금전채권 회수 절차와 같다. 금액과 증거가 비교적 명확하면 상대방 주소지 관할 법원에 지급명령을 신청해 간이하게 진행할 수 있고, 상대방이 이의를 제기하면 통상의 민사소송으로 넘어간다. 반환약정의 존재 자체가 다투어질 것으로 예상된다면 처음부터 대여금반환청구 소송으로 진행하며 증거를 충실히 갖추는 편이 시간 낭비를 줄인다.
소멸시효도 놓치기 쉬운 부분이다. 민법 제162조 제1항은 "채권은 10년간 행사하지 아니하면 소멸시효가 완성한다"고 정하고 있어, 개인 간 대여금 채권은 원칙적으로 갚기로 한 날(변제기)로부터 10년이 지나면 소멸시효가 완성된다. 다만 변제기를 특정하지 않았다면 돈을 건넨 때부터 즉시 청구할 수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시점부터 소멸시효가 진행될 수 있으므로, 오래전에 건넨 돈일수록 시효 완성 여부를 먼저 점검할 필요가 있다.
개인 간 대여금 채권의 소멸시효는 원칙적으로 10년(민법 제162조 제1항) — 변제기를 언제로 볼지에 따라 기산점이 달라진다.
실무에서 놓치기 쉬운 지점들
관계가 유지되는 동안에는 증거를 남길 필요를 느끼지 못하다가, 막상 헤어지고 난 뒤에야 증거 부족을 실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목돈을 건넬 일이 있다면 그 시점에 간단하게라도 "언제까지 얼마를 갚는다"는 문자메시지나 메모를 남겨두는 것이 나중의 분쟁을 크게 줄인다. 이미 관계가 끝난 뒤라면 과거 대화 기록, 계좌이체 메모, 당시 상황을 아는 지인의 진술 등 지금 확보할 수 있는 자료부터 최대한 정리해두는 것이 우선이다.
사실혼 관계였다면 대여금 반환청구는 사실혼 해소에 따른 재산분할청구와는 별개의 절차라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재산분할은 두 사람이 공동으로 형성한 재산을 나누는 절차인 반면, 대여금 반환청구는 특정 시점에 오간 금전을 개인 채권으로 돌려받는 절차다. 두 청구를 혼동해 하나만 제기했다가 다른 하나의 시효나 주장 기회를 놓치는 일이 없도록, 관계 해소 초기에 어떤 청구가 가능한지 함께 정리해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자주 묻는 질문
Q. 계좌이체 내역만 있고 차용증이 없는데 대여금으로 인정받을 수 있나요?
A. 계좌이체 내역만으로는 부족하고 반환약정을 뒷받침하는 추가 자료가 필요합니다. 이체 당시 주고받은 문자·카카오톡에 상환 시기나 방법이 언급되어 있다면 유력한 증거가 되고, 상대방이 일부라도 갚은 이력이 있다면 더욱 도움이 됩니다.
Q. 생활비 명목으로 매달 보내던 돈도 나중에 대여금으로 청구할 수 있나요?
A. 정기적으로 생활비 명목으로 지출된 돈은 공동생활을 위한 지출로 추정되어 대여금으로 인정받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다만 특정 달에 예외적으로 큰 금액을 보내며 반환을 전제로 한 대화가 있었다면 그 부분만 별도로 대여금 주장이 가능할 수 있습니다.
Q. 상대방이 돈 받은 사실 자체를 부인하면 어떻게 하나요?
A. 계좌이체 내역, 현금 인출 후 전달 정황을 뒷받침하는 문자·통화 녹음 등으로 금전 수수 사실 자체를 먼저 증명해야 합니다. 수수 사실이 인정된 뒤에야 그 원인이 대여인지 생활비인지의 다툼으로 넘어가므로, 두 단계를 구분해 증거를 준비하는 것이 효율적입니다.
Q. 사실혼 관계가 아니라 단순 동거였는데도 같은 법리가 적용되나요?
A. 네, 소비대차의 성립 요건과 증명책임 법리는 혼인신고 여부나 사실혼 인정 여부와 무관하게 개인 간 금전거래에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다만 사실혼으로 인정되면 별도로 재산분할청구가 가능해지는 차이가 있을 뿐, 대여금 반환청구 자체의 법리는 동거인 사이에서도 같습니다.
Q. 지급명령과 소송 중 어느 쪽을 먼저 해야 하나요?
A. 증거가 명확하고 상대방의 이의 제기 가능성이 낮다면 지급명령이 빠르고 비용도 적게 듭니다. 그러나 반환약정 존재 자체가 다투어질 것으로 예상된다면 처음부터 소송으로 진행해 증거조사를 충실히 받는 편이 결과적으로 더 효율적일 수 있습니다.
Q. 오래전에 빌려준 돈인데 지금 청구해도 되나요?
A. 변제기로부터 10년이 지나지 않았다면 청구할 수 있습니다. 다만 변제기를 특정하지 않은 경우 지급 시점부터 시효가 진행될 수 있으므로, 청구에 앞서 소멸시효 완성 여부와 시효 중단 사유(승낙, 일부 변제 등)가 있었는지부터 점검하는 것이 좋습니다.
맺음말
동거인이나 사실혼 배우자에게 건넨 돈을 돌려받으려면 단순히 돈을 준 사실을 증명하는 것을 넘어, 그 돈이 갚기로 하고 준 것이었다는 반환약정까지 증명해야 한다. 계좌이체 내역은 출발점일 뿐이고, 지급 목적과 당시 대화, 상환 정황 같은 정황 증거가 결과를 좌우한다. 반대로 생활비나 공동생활을 위한 지출로 판단되면 부당이득으로도 회수하기 쉽지 않으므로, 관계가 유지되는 동안 목돈이 오갈 때는 간단한 메모나 메시지라도 남겨두는 습관이 나중의 분쟁을 예방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이미 관계가 끝나 증거가 부족한 상태라면 지금 확보 가능한 자료만으로 청구가 가능한지, 소멸시효는 남아 있는지부터 점검이 필요하다. 사안에 따라 대여금과 부당이득, 재산분할 중 어떤 청구를 어떤 순서로 구성할지가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므로 초기에 전략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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