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로 작성한 유언장 — 자서 요건 위반과 무효
사건 개요
거동이 불편해진 고령의 아버지가 유언을 남기고 싶어 하지만, 오랫동안 손으로 글씨를 써 본 적이 없어 몇 줄만 적어도 손이 떨리고 지칩니다. 이런 사정을 딱하게 여긴 자녀 한 명이 아버지의 뜻을 옆에서 여쭈어 가며 컴퓨터로 정성껏 문서를 작성합니다. "재산은 이렇게 나누어 달라"는 아버지의 말씀을 그대로 옮겨 적고, 보기 좋게 정리해 출력한 뒤 아버지께 내밀면, 아버지는 내용을 확인하고 마지막 장 하단에 자필로 서명하고 도장을 찍습니다.
얼마 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유품을 정리하던 중 이 문서가 발견됩니다. 문서를 작성해 드렸던 자녀에게 부동산 대부분을 물려준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나머지 형제자매는 처음 보는 문서 앞에서 당혹스러워하다가, 이내 이의를 제기합니다. "아버지 필체가 어디에도 없는데, 이게 어떻게 유언장이냐"는 것입니다.
이런 사건에서 법이 살피는 것은 문서를 준비한 자녀의 정성이나 아버지의 진짜 뜻이 무엇이었는가가 아닙니다.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이 법이 정한 방식, 그중에서도 '자서(自書)' 요건을 실제로 갖추었는가라는 형식적 잣대입니다. 아버지가 진심으로 그 내용을 원했다 하더라도, 방식이 어긋나면 유언 자체가 무효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핵심 쟁점
민법 제1066조 제1항은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이 유효하려면 유언자가 그 전문(全文)과 연월일, 주소, 성명을 자서하고 날인해야 한다고 정합니다. 여기서 '자서'란 유언자 본인이 자신의 손으로 직접 쓰는 것을 뜻합니다. 컴퓨터·워드프로세서·타자기 등 문서작성기구를 이용해 작성한 문서는, 설령 유언자가 불러 준 말을 한 글자도 틀리지 않게 옮겼다 하더라도 자서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이 법 문언과 실무의 일치된 해석입니다.
이 사건에서 특히 오해가 잦은 지점은 "마지막에 서명과 도장만 직접 찍었으니 그 부분만이라도 유효한 것 아니냐"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자필증서 유언의 요건은 서명 한 줄이 아니라 전문 전체의 자서를 요구합니다. 본문이 컴퓨터로 작성되고 서명·날인만 자필이라면, 문서의 일부가 아니라 유언 전체가 자필증서로서 무효가 됩니다. 일부 무효가 아니라 전부 무효라는 점이 실무에서 가장 자주 놓치는 부분입니다.
대법원은 유언의 방식에 관하여 "법정된 요건과 방식에 어긋난 유언은 그것이 유언자의 진정한 의사에 합치하더라도 무효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는 원칙을 밝힌 바 있습니다(대법원 2006. 3. 9. 선고 2005다57899 판결). 유언의 방식을 엄격하게 규정한 취지가 유언자의 진의를 명확히 하고 사후의 분쟁·혼란을 막기 위한 것인 이상, 진의와의 일치는 방식 위반을 치유하는 사유가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컴퓨터로 작성된 이 문서를 다른 유언 방식으로라도 살릴 수 있는지가 다음 문제입니다. 공정증서 유언은 공증인과 증인 2인의 참여가, 비밀증서 유언은 봉인과 확정일자 부여가, 구수증서 유언은 질병 등 급박한 사유와 2인 이상 증인 앞에서의 구수가 각각 필요합니다. 자녀가 컴퓨터로 미리 작성해 온 문서에는 이런 절차가 전혀 갖추어져 있지 않으므로, 다른 방식으로의 전환도 사실상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이런 문서는 완전한 무효로 귀결되고, 유언이 없었던 것과 같은 상태 — 즉 법정상속의 문제로 돌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김강희 변호사의 해결방법 [1]: 자서 요건 흠결을 흔들림 없는 사실로 확정하기
무효를 다투는 쪽이든, 반대로 유효를 주장하는 쪽이든 가장 먼저 다투어지는 지점은 "이 문서가 정말 자필이 아니었는가"라는 사실관계입니다. 이런 사건에서 김강희 변호사는 다음 순서로 사실관계를 촘촘하게 확정합니다.
1) 원본 문서의 작성방식을 물리적으로 특정합니다.
육안으로도 인쇄체와 필기체는 구분되지만, 다툼이 예상되는 사건에서는 문서감정을 통해 인쇄물임을 객관적으로 확인해 둡니다. 아울러 문서를 작성했다는 자녀의 컴퓨터·프린터의 인쇄 이력, 저장된 원본 파일의 작성일시·수정이력(메타데이터), 사용된 문서 프로그램 등을 확보하면 인쇄물이라는 사실 자체를 다투기 어려운 수준으로 굳힐 수 있습니다.
2) '서명만 자필이면 충분하다'는 반박을 조문으로 미리 차단합니다.
상대방은 흔히 "아버지가 마지막에 직접 서명하고 도장까지 찍었으니 유효하다"고 다툽니다. 이에 대해서는 민법 제1066조 제1항이 요구하는 자서의 대상이 서명 한 줄이 아니라 전문(全文)이라는 점, 그리고 판례가 확립한 엄격한 요식주의 원칙을 근거로 서면상 미리 반박 논리를 구성해 둡니다. 진의 여부를 다투는 함정에 빠지지 않고, 방식 위반이라는 객관적 사실 하나로 승부를 좁히는 것이 핵심입니다.
3) 작성 경위를 진술과 정황증거로 남깁니다.
누가 컴퓨터로 문서를 작성했는지, 아버지가 구술한 내용을 어떤 방식으로 옮겼는지, 작성 전후 가족 간 대화가 문자메시지나 통화로 남아 있는지를 정리합니다. 문서를 작성해 준 자녀 스스로 그 경위를 인정하는 경우가 많아, 이 진술만으로도 자필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투기 어렵게 만드는 결정적 증거가 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김강희 변호사의 해결방법 [2]: 무효 확정 이후 상속분을 실제로 되찾는 절차 설계
자서 요건 위반을 밝히는 것은 시작일 뿐, 그 뒤에 실제로 상속분을 회복하는 절차까지 이어져야 다툼이 마무리됩니다. 이 단계에서 김강희 변호사는 다음을 함께 설계합니다.
1) 유언무효확인의 소부터 확정해 둡니다.
상속재산분할심판을 곧바로 진행하려 해도, 유언장의 효력이 다투어지는 상태에서는 심판이 진행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먼저 유언무효확인의 소로 이 문서가 자필증서 유언으로서 효력이 없다는 점을 법원에서 확정한 뒤, 그 결과를 토대로 상속재산분할 절차로 넘어가는 순서를 잡습니다.
2) 법정상속분을 기준으로 재산을 다시 계산합니다.
유언이 무효가 되면 상속은 원칙적으로 법정상속분에 따라 이루어집니다. 이 과정에서 유언에 따라 이미 명의가 넘어간 부동산이 있다면 그 원상회복(소유권이전등기 말소 또는 진정명의회복)을 함께 청구하고, 아버지 생전에 특정 자녀에게 유독 몰린 증여가 있었는지도 함께 확인해 상속분 계산에 반영합니다.
3) 생전 증여가 얽혀 있다면 유류분 반환청구를 함께 검토합니다.
이 무효인 유언 외에도 특정 자녀에게 유독 재산이 쏠린 생전 증여 정황이 있다면, 법정상속분 회복만으로는 불균형이 다 풀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 유류분 반환청구를 함께 검토해 실질적인 몫을 되찾는 방안을 병행합니다.
4) 제척기간을 관리해 청구할 권리 자체를 잃지 않도록 합니다.
다른 상속인이 무효인 유언을 근거로 이미 재산을 점유하거나 등기까지 마친 상태라면, 그 반환 청구는 상속회복청구권의 성격을 띠게 되어 침해를 안 날부터 3년, 침해행위가 있은 날부터 10년 중 먼저 도래하는 기간 안에 행사해야 합니다(민법 제999조 제2항). 협상이나 가족 간 논의에 시간을 쏟다가 이 기간을 넘기면 권리 자체가 소멸할 수 있으므로, 처음부터 일정을 역산해 관리합니다.
5) 가정법원 검인절차의 성격을 정확히 알려 드립니다.
자필증서 유언을 보관·발견한 사람은 유언자 사망 후 지체 없이 가정법원에 검인을 청구해야 합니다. 그런데 검인은 문서의 현재 상태를 확인·보전하는 형식적 절차일 뿐, 그 유언이 실제로 유효한지를 심사하는 절차가 아닙니다. 검인을 받았다는 사정만으로 유효성이 확정된 것처럼 오해하는 경우가 많아, 실체적 효력을 다투려면 별도의 유언무효확인의 소가 필요하다는 점을 처음부터 짚어 드립니다.
결론
유언장은 정성으로 만드는 문서가 아니라, 법이 정한 방식대로 만들어야 비로소 효력을 갖는 문서입니다. 손으로 쓰기 어렵다는 이유로 컴퓨터의 도움을 받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이해되지만, 자필증서 유언에서는 그 편의가 곧 무효의 원인이 됩니다.
이미 컴퓨터로 작성된 문서를 두고 상속인들 사이에 다툼이 시작되었다면, 무효를 주장하는 쪽이든 그 문서에 기대어 재산을 지키려는 쪽이든 형식적 요건의 충족 여부부터 냉정하게 짚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상황이 이와 비슷하다면, 문서의 효력과 앞으로의 절차를 어떻게 끌고 가야 할지 한 번 상담을 받아보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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