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를 지나다 보면 건물 공사를 하는 현장을 종종 목격할 수 있습니다. 건물 완공 시기가 다가올수록 어떤 맛집이나 어떤 카페가 들어올까 자연스레 기대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유치권 행사 중”이라는 플래카드가 붙게 되더니, 그 이후로는 공사가 진행되지 않고 몇 년이 지난 지금에는 거리의 흉물이 되었습니다.
‘유치권’이란 무엇이고 유치권 행사 방법은 무엇인지, 유치권자는 어떻게 공사대금을 받을 수 있는지 등 지금부터 명칭부터가 낯선 유치권에 관하여 궁금했던 사항을 총 2편에 걸쳐 알아보겠습니다.
유치권이 무엇인가요?
유치권이란 타인의 물건 등을 점유하는 자가 그 물건 등에 관하여 생긴 채권을 가진 경우, 그 채권을 변제받을 때까지 목적물을 유치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합니다(민법 제 제320조 제1항).
어려워 보이는 한자어들이 많네요, 하나씩 풀어보겠습니다. (전문용어는 풀어서 설명할 경우 정확하게 원 의미를 담보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독자의 이해를 위해 대체어를 사용하는 등의 작성을 하였다는 점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일단 ❶ ‘타인의 물건’은 무슨 말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❷ ‘점유’란 해당 물건을 사실적으로 지배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쉽게 말하면 ‘가지고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예컨대 지금 제가 앉아있는 의자는 제가 점유하고 있는 의자인 것이죠. ❸ ‘그 물건 등에 관하여 생긴’ 부분은 법학 학문적으로는 견련관계라고 하는데, 이는 보다 상세한 설명이 필요하므로, 아래에서 목차를 바꾸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❹ 여기서의 ‘채권’(債權)은 금융에서 말하는 채권(債卷)과는 다른 개념으로 상대방(채무자)에 대해 일정한 행위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하는데, (엄밀하게 다른 개념이기는 하나) ‘청구권’으로 바꾸어 생각하더라도 크게 무리는 없습니다. ❺ ‘변제’란 채무의 내용대로 이행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채무자가 변제를 함으로써 채권자의 채권은 소멸하게 됩니다. 유치권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이 채권이 변제 시기가 되어야 합니다. 끝으로 ❻ 유치란, 점유를 계속하면서 인도를 거절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공사대금을 못 받은 경우의 유치권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념적인 내용이라 얼핏 이해가 잘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건물에 ‘유치권 행사 중’이라고 적힌 경우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건물을 신축하려는 A는 공사업체 B에게 건물 신축 공사를 의뢰하였습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B는 그 공사를 완료함과 동시에 A에게 공사대금을 청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A가 B에게 공사대금을 지급하지 않는 경우라면? 이 경우, 해당 건물이 A의 소유이고 그 건물을 B가 점유하고 있다면, B는 A의 건물에 관하여 유치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즉, ⅰ) B는 A의 건물(타인의 물건)을 신축하면서 ⅱ) A에게 그에 관하여 지출한 공사대금을 받을 권리 (타인의 물건에 관하여 생긴 채권)를 가지게 되고, ⅲ) A의 건물에 관리인원을 배치하여 다른 사람의 출입이나 이용을 통제하면서(점유), ⅳ) A가 공사대금을 완납할 때까지(채권을 변제받을 때까지) ⅴ) 인도를 거절할 수 있는(유치) 권리를 가지게 됩니다.

<편집 = 조소혜 디자이너>
정리하면, B가 가지는 이와 같은 권리를 ‘유치권’이라 하고, B가 유치하면서 유치권을 행사하는 대상인 타인의 물건을 ‘유치물’이라 하는 것입니다. 유치권은 현실에서는 주로 건물에 관한 미지급 공사대금을 받기 위한 사실상 우선변제력을 가집니다.
유치권의 성립요건
유치권이 성립하기 위한 각 요건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검토해야 할 사정이 많을 뿐만 아니라 배경지식이 상당히 요구되기에, 이하에서는 현실적으로 자주 쟁점이 되는 사항만 짚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요건 1 : 채권과 물건과의 관련성
물건의 소유자에 대하여 채권이 있다면 유치권을 가질 수 있다고 설명드렸습니다. 그런데, 아무 채권이나 가지고 있으면 모두 유치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일까요?

<편집 = 조소혜 디자이너>
유치권이 성립하기 위하여는 채권이 “그 물건이나 유가증권에 관하여 생긴” 것이어야 하는데, 여기서 따옴표 안의 부분을 강학상(학문상 해석으로) 견련관계(牽連關係)라 합니다. 견련관계라는 말이 생소할 텐데요, 이해를 돕기 위해 편의상 관련성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판례에 따르면, 이러한 관련성은 ① 채권이 목적물 자체로 발생한 경우 ② 채권이 목적물의 반환청구권과 동일한 법률관계나 사실관계로부터 발생한 경우를 의미한다고 합니다(대법원 2007. 9. 7. 선고 2005다16942 판결).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 구체적인 사례를 판례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 채권과 물건과의 관련성이 인정된 경우
대법원 1995. 9. 15. 선고 95다16202 판결 원문보기
[건물 신축공사를 한 수급인의 공사대금 채권] 주택건물의 신축공사를 한 수급인이 그 건물을 점유하고 있고 또 그 건물에 관하여 생긴 공사금 채권이 있다면, 수급인은 그 채권을 변제받을 때까지 건물을 유치할 권리가 있다고 할 것이고, 이러한 유치권은 수급인이 점유를 상실하거나 피담보채무가 변제되는 등 특단의 사정이 없는 한 소멸되지 않는다.
대법원 1980. 10. 14. 선고 79다1170 판결
[임차인의 유익비상환청구권] 건물임차인이 건물에 관한 유익비상환청구권에 터잡아 취득하게 되는 유치권은 임차건물의 유지사용에 필요한 범위내에서 임차대지부분에도 그 효력이 미친다.
위 두번째 판례에서 예시한 유익비상환청구권은 예를 들어, 임차인이 임차한 건물의 부동산 가치를 높이기 위해 방을 증축하거나 발코니를 확장하는 등의 비용을 지출한 경우, 이 비용을 임대차 계약을 마칠 때 임대인에게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합니다. 이 유익비상환청구권 또한 복잡하고 어려운 개념을 다수 포함하고 있어 본 편에서는 다루지 않겠습니다.
#2. 채권과 물건과의 관련성이 인정되지 않은 경우
대법원 2012. 1. 12. 선고 2011마2380 결정 원문보기
[부동산 매도인의 매매대금 채권] 매도인이 부동산을 점유하고 있고 소유권을 이전받은 매수인에게서 매매대금 일부를 지급받지 못하고 있다고 하여 매매대금채권을 피담보채권으로 매수인이나 그에게서 부동산 소유권을 취득한 제3자를 상대로 유치권을 주장할 수 없다.
대법원 1976. 5. 11. 선고 75다1305 판결 원문보기
[임차인의 임차보증금반환채권] 건물의 임대차에 있어서 임차인의 임대인에게 지급한 임차보증금 반환청구권이나 임대인이 건물시설을 아니하기 때문에 임차인에게 건물을 임차목적대로 사용 못한 것을 이유로 하는 손해배상청구권은 모두 민법 320조 소정 소위 그 건물에 관하여 생긴 채권이라 할 수 없다.
대법원 2012. 1. 26. 선고 2011다96208 판결 원문보기
[제3자의 수급인에 대한 자재대금채권] 피고는 위 건물 신축공사의 수급인인 한울과의 약정에 따라 그 공사현장에 시멘트와 모래 등의 건축자재를 공급하였을 뿐이라는 것인바, 그렇다면 이러한 피고의 건축자재대금채권은 그 건축자재를 공급받은 한울과의 매매계약에 따른 매매대금채권에 불과한 것이고, 피고가 공급한 건축자재가 수급인 등에 의해 위 건물의 신축공사에 사용됨으로써 결과적으로 위 건물에 부합되었다고 하여도 건축자재의 공급으로 인한 매매대금채권이 위 건물 자체에 관하여 생긴 채권이라고 할 수는 없다.
위 판례들은 관련성이 인정되지 않는 경우에는, 상대방에게 채권이 있어도 이를 이유로 유치권을 행사하여 상대방의 물건(건물 등)을 강제로 점유할 수 없다는 취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실제 로톡에 올라온 변호사 상담사례를 살펴보죠.
[로톡 상담사례] 아파트에 전기제품을 공급하고 대금을 지급받지 못한 경우
아파트 시공사의 하청업체와 계약을 체결하고 분양 중인 아파트에 총 9555만 원 상당의 전기제품을 공급하면서 그 대금은 10월 xx일에 받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청업체 직원이 시공사로부터 받은 대금을 횡령한 탓에 저희에게 대금을 지급할 수 없다고 하네요. 이 경우, 저희가 아파트에 관해 유치권 행사가 가능한가요?
위 상담사례의 질문자 회사는, 유치권을 행사하려는 목적물인 아파트 자체에 관한 채권을 가진 경우가 아니고, 하청업체와 체결한 계약에 따른 매매대금 채권을 가진 경우로 보입니다(위 대법원 2011다96208 판결의 사실관계와 유사). 따라서 질문자의 회사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아파트에 관하여 유치권을 행사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요건 2 : 채권자의 적법한 점유
채권자는 유치 물을 계속적으로 그리고 배타적(독점적)으로 점유해야 합니다. 실무상 자주 문제 되는 것으로서 건물에 대한 유치권의 경우라면 아래의 조건들이 갖추어져야 합니다.
1) 건물 경비업체를 통하여 건물의 방범활동을 하도록 하거나,
2) 채권자의 직원들이 현장사무실에 상주하도록 하면서 주차장 외벽 등에 현수막을 거는 등의 방법으로,
3) 유치권자 이외의 제3자의 출입을 통제하면서
4) 건물 임차인들의 영업과 서로 배치되지 아니하는 방법으로 건물을 관리한 경우 유치권이 성립하기 위한 점유가 인정될 수 있습니다.
유치권 성립요건으로서의 점유 인정 여부 원문보기
임의경매개시 되기 일주일 전부터 열쇠로 잠궈 놓고 2~3일에 한번 방문하여 타인의 출입을 확인하다가, 이후 유치권을 행사한다는 현수막을 부착하고 시건장치(잠금장치)를 설치하고 말뚝을 박아 출입통제를 하였습니다.
김상배 변호사
변호사 김상배 법률사무소
목적물에 대하여 임의경매개시결정이 있기 1주일 전에 유치권에 기하여 점유를 개시하면서 열쇠로 시건장치를 하여 타인이 출입하지 못하게 하였다면 그 무렵부터 점유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위와 같이 배타적(독점적)인 점유를 한 것이 인정되더라도, 그 점유는 '적법한 권원(權原)'이 있어야 합니다. 즉, 불법적인 행위를 통해서 점유(불법점유)를 시작하게 된 것이라면 이에 근거한 유치권은 성립할 수 없습니다.
앞서 예를 들었던 A와 B를 생각해보죠.
만약 건물을 신축하려는 A가 공사업체 B와 건물 신축 공사계약을 체결하고 B가 공사를 마친 후 대금을 받기 전에 건물을 A에게 인도하였다면 어떨까요? 이때, A가 공사대금 지급을 차일피일 미루는 경우, A의 승낙 없이 B가 해당 건물에 무단으로 침입하여 A의 점유를 배제하면서 유치권 행사 현수막을 설치하더라도, B의 점유는 불법점유에 해당하여 유치권이 성립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공사업체 B가 A로부터 공사 중간에 대금을 정산하여 지급받기로 하였는데 정산금을 지급받지 못한 경우, B가 공사 중 해당 건물을 점유하는 것은 공사계약이라는 적법한 권원(권리)이 있으므로 B는 정산금 채권에 근거한 유치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유치권 행사에 있어 그 점유 행위가 적법한지 여부는 비슷한 사안이라도 세부 내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반드시 법률전문가와 함께 사안을 검토하는 것이 좋습니다.
한편, 점유 이전에 다른 채권자가 해당 물건을 압류하였다면 유치권은 성립할 수 없는데, 이는 [유치권 행사하면 못 받은 공사대금 받을 수 있나요?]의 유치권 행사의 효과 부분에서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상법상 유치권의 특수성
단, 앞서 설명했던 유치권 행사의 성립요건은 민법에 규정된 유치권으로, 상법상의 유치권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편집 = 조소혜 디자이너>
유치권을 행사하려는 채권자와 그 상대방인 채무자가 모두 상법상의 ‘상인’에 해당하고 상행위로 인하여 발생한 채권이라면 상법 제58조의 상사유치권이 인정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사실상 건물 신축공사를 수주받은 건설사 내지 시공사는 현실적으로 상인에 해당할 가능성이 상당하므로, 결국 채무자가 상인인지 여부가 문제 됩니다.
상사유치권은 민사 유치권에 비하여 채권자 보호를 강화한 것인데, (1) 타인 소유의 물건이 아닌 채무자 소유의 물건에 대하여만 행사 가능하고 (2) 앞서 민사 유치권에서 요구되는 견련관계(관련성)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 차이점입니다. 특히 견련관계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은 현실에서 중요하게 작용하는데, 즉 민사 유치권의 성립이 부정된 선례에서도 당사자들이 상인이었다면 상사유치권의 행사가 가능하다는 것이지요.

<편집 = 조소혜 디자이너>
어떤가요, 유치권이라는 용어를 들어보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어떤 경우에서 인정되는 권리인지가 궁금하셨다면 이 포스트로 어느 정도 궁금증이 해소되었기를 바랍니다. 최대한 쉽게 풀어 설명하려고 하였지만 어느 정도 배경지식이 요구되는 내용이라 경우마다 유치권이 성립할 수 있는지 얼핏 판단이 쉽지 않으실 것이라 짐작됩니다. 따라서, 내가 유치권자가 될 수 있는지, 상대방이 주장하는 유치권이 적법한 권리인지를 판단하기 위하여는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보시는 것을 권유드립니다.
또한 계속해서 유치권 행사로 어떻게 공사대금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인지 [유치권 행사하면 못 받은 공사대금 받을 수 있나요?]편에서 자세히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