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변호사는 보통 의뢰인의 일에 화를 내지 않는 것이 기본 덕목이다. 의뢰인과 같이 화를 내면서 흥분하게 되면 이성적 판단을 하지 못하고 잘되던 일도 그르치기 십상이다. 그런데 이런 변호사 불문율이 잘 지켜지지 않을 때가 있다. 고소대리인으로서 대질조사에 참여할 때다. 대질조사는 고소인과 피고소인의 사실관계 주장에 다툼이 있는 경우 누구 말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두 사람을 동시에 불러 물어보는 절차이다. 일반적으로 물적 증거가 분명치 않고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되는 경우 대질조사를 많이 한다.
2. 평소 웬만하면 부동산 사기 고소대리 사건은 잘 맡지 않으려고 한다. 부동산 사기로 피의자를 기소시키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피해자가 다수라면 얘기가 다르지만 피해자가 1명이거나 소수인 경우 수사기관은 부동산 사건을 민사상의 문제로 보고 기소를 꺼려한다. 폭행이나 상해 같은 신체적인 유형력의 행사 같은 경우에는 기소되거나 약식명령을 받기가 쉬운데 반해 사기 사건 같이 돈문제가 얽힌 경우에는 민사상의 채무불이행 문제일 뿐 사기라고 보지 않는 것이다.
3. 예외적으로 부동산 사기 고소대리 사건을 맡는 경우가 종종 있다. 주로 피해자가 너무나 억울하지만 피의자의 재산이 전혀 없어 민사소송을 통해서는 피해액을 변제받기 어렵고 어느 정도 사기로 기소시킬 가능성이 높은 경우에 한해서다. 부동산 사기의 경우 피해자의 피해액은 막대하지만 피고소인은 페이퍼 회사이거나 재산이 없는 사람이므로 민사소송을 통해서는 피해를 회복하기 어렵다.
궁극적으로 관련자들에 대한 형사처벌 없이는 피고소인 역시 피해자의 피해를 나몰라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경우 피고소인을 사기로 기소시키는 방법만이 유일한 해결책이 될 수밖에 없다.
4. 다시 돌아가서 대질조사는 고소인과 피고소인을 소환하여 한 자리에서 서로 물어보는 절차이므로 수사 과정에 참여하는 변호사의 입장에서는 체력이나 정신력 소모가 크다. 수사관의 질문 내용을 들으면서 수사관의 의중을 파악해야 하고 상대방의 답변에 따라 적절히 대응하는 것도 필요하다. 추후 제출해야 할 증거나 주장들을 정리하는 것도 수사입회과정에서 단서를 얻는 경우가 많다.
5. 대질조사 자체도 고된 과정이지만 변호사로서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더 심한 때는 피고소인의 답변을 들을 때이다. 피고소인도 이미 형사고소를 당한 이상 형사처벌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신을 방어해야 한다. 자기 방어에 집중하는 순간부터 피해자의 피해는 안중에 없어진다. 오로지 자기 자신만 생각한다. 명확한 사실도 본인의 변소를 위해 거짓으로 일관한다. 잠자코 듣고 있다가도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도 많다.
대질조사를 참여하다 보면 수많은 인간들의 비인간성을 목격한다. 변호사 생활을 더 오래 하다보면 무뎌질 수 있을까 싶다가도 대질조사 때마다 인간에 대한 회의가 드는 걸 보면 이런 감정들을 시간이 해결해 주긴 어렵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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