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신문조차 못하는 성범죄진술로 피고인을 단죄할 수 있는가?
반대신문조차 못하는 성범죄진술로 피고인을 단죄할 수 있는가?
변호사에세이

반대신문조차 못하는 성범죄진술로 피고인을 단죄할 수 있는가? 

송미루 변호사

반대신문조차 못하는 성범죄진술로 피고인을 단죄할 수 있는가

— 형사소송법 제314조, '예외'가 '원칙'처럼 작동하는 자리에서

형사소송법은 전문증거의 증거능력을 원칙적으로 부정합니다.

법정에 직접 나와, 선서하고, 상대방의 반대신문을 견뎌낸 진술만이 유죄의 토대가 될 수 있다는 것

— 이것이 직접심리주의와 전문법칙이 지키려는 가치입니다.

제314조는 바로 그 원칙에 대한 좁은 예외에 불과합니다.

원진술자가 사망·질병·외국거주·소재불명 그 밖에 이에 준하는 사유로 인하여 도저히 법정에 설 수 없는 때에 한하여, 그것도 그 진술이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서 이루어졌음이 증명된 경우에만, 비로소 예외적으로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제314조(증거능력에 대한 예외) 제312조 또는 제313조의 경우에 공판준비 또는 공판기일에 진술을 요하는 자가 사망ㆍ질병ㆍ외국거주ㆍ소재불명 그 밖에 이에 준하는 사유로 인하여 진술할 수 없는 때에는 그 조서 및 그 밖의 서류(피고인 또는 피고인 아닌 자가 작성하였거나 진술한 내용이 포함된 문자ㆍ사진ㆍ영상 등의 정보로서 컴퓨터용디스크, 그 밖에 이와 비슷한 정보저장매체에 저장된 것을 포함한다)를 증거로 할 수 있다. 다만, 그 진술 또는 작성이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하에서 행하여졌음이 증명된 때에 한한다. <개정 2016. 5. 29.>
[전문개정 2007. 6. 1.]

문제는,
말 그대로 '예외'여야 할 이 조항이
실무의 법정에서는 너무나 자주 '원칙'처럼 작동한다는 데 있습니다.

 

1. '소재불명'이라는 미끄러운 비탈

대법원은 분명히 못 박아 두었습니다.

제314조의 요건 충족 여부는 엄격히 심사하여야 하고, 전문증거의 증거능력을 갖추기 위한 요건에 관한 입증책임은 검사에게 있으며, 법원이 '소재불명'을 인정하려면 증인의 법정 출석을 위한 "가능하고도 충분한 노력"을 다하였음에도 부득이 출석이 불가능하게 되었다는 사정을 검사가 증명한 경우여야 한다
(대법원 2013. 4. 11. 선고 2013도1435 판결 등).

법문과 판례의 언어는 이처럼 엄격합니다.

그러나 현실의 법정에서 '소재불명'은 종종 주민등록지 조회 한 번,

피해자 국선변호인을 통한 연락 시도 몇 차례,

소재탐지 회신 한 장으로 손쉽게 채워집니다.

"연락이 닿지 않는다"가 곧 "소재불명"으로,

"소재불명"이 다시 "진술이 불가능한 때"로 소리 없이 미끄러져 내려갑니다.

검사가 적극적으로 증명해야 할 사항이,

어느새 피고인이 반증해야 할 사항인 것처럼 뒤집히는 것입니다.

 

2. '선택적 출석'은 '소재불명'이 아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볼 지점이 있습니다.

제314조가 말하는 '소재불명으로 인한 진술불능'이란,

출석을 확보하고 싶어도 그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어 강제할 방도가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런데 만약 어떤 증인이 수사 단계에서부터 나왔다 사라졌다를 반복하고,

자신의 처벌 의사를 밝히고 싶을 때는 스스로 기관을 찾아오면서도 정작 검증의 자리인 공판에는 응하지 않는다면

— 이것은 '소재불명'이 아니라 '검증의 선택적 회피'에 가깝습니다.

소재불명의 본질은 '알 수 없음'에 있지 '나오지 않음'에 있지 않습니다.

출석과 함구를 자신의 사정에 따라 오가는 사람을 두고

"부득이 출석이 불가능하게 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제314조의 입구에서 따져야 할 것은 바로 이 지점입니다.

그 진술이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서 나온 것인지를 묻기 이전에,

애초에 그 진술이 '소재불명'이라는 예외의 전제 자체를 충족하는지를 검사가 증명했는가

— 이 질문 하나가 사건의 향방을 가릅니다.

 

3. 첫 번째 문턱을 너무 쉽게 넘으면, 두 번째 문턱은 더 쉽게 열린다

증거능력이라는 첫 번째 관문을 이렇게 헐겁게 통과하고 나면,

두 번째 관문인 '신빙성' 판단은 한층 더 수월하게 열립니다.

이른바 성인지 감수성의 요청은 그 자체로 정당한 역사적 출발점을 가집니다.

오랫동안 법정이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며

2차 가해를 반복해 온 관행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당한 출발점이 언제나 정당한 결론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감수성이 '진술의 일관성이나 객관적 정황과의 정합성을 따지는 것 자체가 부당하다'는 명제로까지 확장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감수성이 아니라 검증의 포기가 됩니다.

그리고 검증이 포기된 자리에서 가장 먼저,

가장 소리 없이 위태로워지는 사람은

— 다름 아닌 진짜로 결백한 피고인입니다.

반대신문을 통과하지 못한 진술로 사람을 단죄할 수 없다는 원칙은 피고인을 위한 특혜가 아니라,

형사재판이 무너지지 않기 위해 지켜야 할 최저선입니다.

 

4. 그리고, 법리만으로는 이기지 못한다

여기까지가 법리입니다.

그러나 저는 법정 싸움을 법리만으로 이길 수 있다고 믿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오산이라고 생각합니다.

재판부도 사람입니다.

정교하게 짜인 증거능력 서면은 판단의 '근거'를 제공하지만,

판단의 '용기'까지 주지는 못합니다.

무죄를 선고한다는 것은 단지 "검사의 입증이 부족하다"고 선언하는 기술적 행위가 아니라,

"이 사람을 처벌하지 않겠다"는 결단이기 때문입니다.

그 결단을 이끌어내려면,

유죄판결이 한 인간의 삶을 어떤 방식으로 무너뜨리는지를

재판부가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실감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특히 성범죄 유죄는 선고된 형량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신상정보 등록과 공개·고지, 취업제한

— 평생 단 한 번의 수사 경력조차 없이 살아온 사람에게 이 부수처분들은 사회적 사형선고에 가깝습니다.

한 사람의 직업과 관계, 평판, 그리고 그를 둘러싼 가족의 평범한 일상이 통째로 회복 불가능하게 부서집니다.

변호인의 일은 이 무게를 추상적인 우려가 아니라 손에 잡히는 현실로 재판부 앞에 가져다 놓는 것입니다.

그래서 좋은 변론요지서는 법전을 인용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한 사람의 생애를 인용합니다.

 

5. 결국 변론이 끝나는 자리

증거능력 없는 전문증거가 모두 배제되고 나면 법정에는 진공이 남습니다.

바로 그 진공 위에 한 시민의 남은 생을 통째로 올려놓아도 좋은가

— 반대신문 한 번 견디지 못한 진술에 기대어 사람을 단죄하는 것이 과연 우리가 지키려는 형사정의인가.

재판부가 스스로 이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것,

그리고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오래된 대원칙 앞으로 재판부를 데려다 놓는 것

— 변론은 거기까지 가야 비로소 끝납니다.

제314조는 예외입니다.

예외가 예외의 자리를 지킬 때, 비로소 원칙이 사람을 지킵니다.

 


※ 본 글은 실제 수행 사건을 바탕으로 하되, 의뢰인과 관련인의 신변 보호를 위하여 사건을 특정할 수 있는 일체의 정보를 변형·삭제하였으며, 삽입된 자료의 개인정보는 모두 마스킹 처리되었습니다. 본 글은 일반적인 법리와 변론 관점을 공유하기 위한 것으로, 특정 개인에 대한 사실의 적시를 목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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